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저문 강에 삽을 씻고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 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 바닥 썩는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

흐르는 강은 슬픔을 위로하고 노동을 어루만졌다. 스스로 깊어가는 강에 삽을 씻으며 절망으로부터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담배 한 대 피우며 흐르는 강으로부터 위안을 얻었다해도 고단한 삶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자연과 하나되면서 노동의 피로를 잊을 수 있었고 슬픔을 씻을 수 있었다.

이제 강은 아무도 위로해주지 못할 것이다. 수많은 삽과 포크레인이 강을 짓이길 것이며, 수십개의 댐은 강물을 가두어 버릴 것이다. 강변은 콘크리트로 뒤덮일 것이고, 그 위에 썰렁한 자전거 도로만이 덩그러니 놓여질 것이다. 강은 인간의 탐욕으로 그렇게 질식해 죽어갈 것이다. 강이 죽어갈수록 인간들의 병은 깊어질 것이다. 자연은 더 이상 인간을 위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정희성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 같은 아름다운 시는 더 이상 불려지지 않을 것이다.

자연은 그들의 탐욕을 저주할 것이며, 나도 그들의 탐욕을 저주할 것이다.


출처 : “진짜 강변 걸어봐요, 4대강사업 하고픈가” – 오마이뉴스

이 아름다운 강변의 갈대를 어찌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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