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똥꼬치마

기자와 똥꼬치마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언론이라고 인정받을만한 주간지인 <시사IN>의 기자, 고재열 씨가 지하철 계단에서 아주 짧은 치마(그는 똥꼬치마라고 했다)를 입은 여자를 뒤따르다 느낀 불쾌함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가 곤경에 처했다. 많은 비난들이 쏟아졌고, 급기야 그는 그 글에 대한 사과문을 게재했다.

고재열 기자가 올린 “지하철 똥꼬치마에 대한 단상”이라는 글을 읽고, 남자인 나도 무척 당황했다. 아무리 본인의 짜증이 머리 끝까지 뻗쳤다 하더라도 그런 식의 글을 올린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그 글을 읽고 내가 받은 느낌은 마치 이명박의 “마사지걸” 발언이나 “기생” 농담을 듣는 기분이었다. 그 글에는 여성 비하와 폭력적 표현이 넘쳤다. 본인도 밝혔지만, 무의식 중에 고재열 기자의 마초 근성이 반영된 글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늘 고재열 기자와 트위터로 대화를 나는 마법사 님의 글을 보다가 고재열 기자의 “똥꼬치마” 글이 실수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고재열 기자가 트위터에 올린 짧은 글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었다.

좌파는 섹시한 것을 섹시하다고 하지 못하고, 꼴불견을 꼴불견이라고 하지 못하는 것인가 봅니다. 댓글이 장난이 아니네요.

나는 개인적으로 고재열 기자를 모르기 때문에 그가 좌파인지 수구 꼴통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적어도 그가 올린 “똥꼬치마” 글이 좌파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그가 자신의 실수 혹은 잘못을 뉘우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는 이유는 그의 장황한 사과문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진정으로 잘못을 뉘우치는 사람은 그렇게 장황하게 꼬치꼬치 변명을 늘어놓지 않는다.

마법사 님의 말대로 그는 적어도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더 깊은 성찰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정치적 이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며, 인간의 기본 품성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이념을 떠나 성숙하지 못한 남자들이 흔히 여성을 적대시하거나 비하하는 것을 종종 목격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아직 철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과 생명의 기원이 여성임을 깨달을 때 그들은 비로소 아름다운 어른이 될 수 있다.

남자들은
딸을 낳아 아버지가 될 때
비로소 자신 속에서 으르렁거리던 짐승과
결별한다.
딸의 아랫도리를 바라보며
신이 나오는 길을 알게 된다.
아기가 나오는 곳이
바로 신이 나오는 곳임을 깨닫고
문득 부끄러워 얼굴 붉힌다.
딸에게 뽀뽀를 하며
자신의 수염이 때로 독가시였음도 안다.
남자들은
딸을 낳아 아버지가 될 때
비로소 자신 속에서 으르렁거리던 짐승과
화해한다.
아름다운 어른이 된다.

<문정희, 남자를 위하여>

철모르는 남자들이 자신 속의 짐승과 결별하고 아름다운 어른이 되길 바란다.

28 thoughts on “기자와 똥꼬치마

  1. 간결한 지적이시네요.
    그 간결함이 글에 대한 공명을 깊게 합니다.
    그처럼 단순한 이치를 무슨 좌파니 우파니 진보니 보수니 하고 있는 그 ‘물타기’ 현장을 보면… 정말 이런게 이른바 정치질인가 싶은 생각마저 듭니다. 특히 제 트위터에도 짧게 썼지만, ‘필화사건’ ‘숙주’ 운운하면서 노회찬 대표에게 묻어가려는 그 노회한 모습에는 참 저 젋은 기자가 나중에 정치하려고 저러나… 싶은 실망감마저 생기더군요. ( http://twitter.com/minoci/status/5604450163 ) 그냥 깔끔하게 사과하고 반성했더라면 참 좋았을텐데 말이죠.

    저도 글을 쓰려다가 말았는데요.
    소요유님 이 글은 겉멋든 글쟁이들에게 널리 널리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1. 살아보니, 담백하고 단순하게 사는 이들이 “진국”이더이다. 유명하고 화려하고 멋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속은 쭉정이일 경우가 많았습니다. 물론 윗글에 나오는 기자가 그런 사람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실수를 하고 잘못을 합니다. 문제는 그 실수나 잘못을 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런 것을 어떻게 인정하느냐가 문제일 것이고, 그런 실수를 통해 얼마나 더 성숙해지는가가 문제이겠지요.

      민노씨 님, 날씨가 추워지는데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2. Pingback: GatorLog
  3. 그런 일이 있었군요.

    “철모르는 남자들이 자신 속의 짐승과 결별하고 아름다운 어른이 되길 바란다.”
    –> 아이 둘의 아빠지만 계속해서 아름다워지도록 노력해야겠네요.

  4. 문 시인은 너무 여성적으로 세상을 보았군요.
    바로 그러한 남성적인 것이 자기와 우리를 이땅에 있게 함인데…

  5. 네. 그점이 바로 한겨레21과 시사인의 차이라 생각됩니다.
    시사인의 기사를 보면 한국사회에서 ‘진보’ 내지 ‘좌파’로 분류될 수 있고 그 점에 대해선 한겨레21과 흡사하지만 기사의 주제를 보면 한겨레21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시사인에는 젠더, 여성, 환경, 페미니즘 등의 주제의 기사는 거의 없습니다. 한겨레21에는 종종 다루고 있고요. 홍세화씨는 그것에 대해 아직 성찰이 부족한 것이라고 하고 소요유님은 좌파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고 그 기자분이 인간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것이라 표현하셨지만 전 상관이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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