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실려 온 아내의 마음 한자락

비에 실려 온 아내의 마음 한자락

하루 종일 촉촉히 내린 비에 봄내음이 서려있다. 흙과 풀과 나무는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맞으며 소리없이 재잘대고 있었다. 이미 겨울에 와 버린 봄이 새삼스럽지 않지만, 비는 봄의 느낌을 몇 배 증폭시킨다. 비에게는 그런 힘이 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아내가 시를 보내 주었다. 그 시 속에 아내의 마음이 봄비처럼 적셔 온다.

여기에 내리고
거기에는 내리지 않는 비
당신은 그렇게 먼 곳에 있습니다
지게도 없이
자기가 자기를 버리러 가는 길
길가의 풀들이나 스치며 걷다 보면
발 끝에 쟁쟁 깨지는 슬픔의 돌멩이 몇개
그것마저 내려놓고 가는 길
오로지 젖지 않는 마음 하나
어느 나무그늘 아래 부려두고 계신가요
여기에 밤새 비 내려
내 마음 시린 줄도 모르고 비에 젖었습니다
젖는 마음과 젖지 않는 마음의 거리
그렇게 먼 곳에서
다만 두 손 비비며 중얼거리는 말
그 무엇으로도 돌아오지 말기를
거기에 별빛으로나 그대 총총 뜨기를

[나희덕, 젖지 않는 마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하는데, 부부로 만나 결혼을 하고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함께 산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아내와 나는 어떤 인연이 있었길래 이렇게 만나 사랑하게 되었을까. 서로의 안부를 걱정하고, 건강을 챙기고, 서로에게 의지하게 되었을까.

봄비와 아내가 보내 준 시는 나를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내로 만들어 주었다. 아내의 마음이 고맙다. 시인 김남주가 감옥에 있을 때 자기 아내를 생각하며 시를 쓸 때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그대만이,
지금은 다만 그대 사랑만이 나를 살아 있게 한다.
감옥 속의, 겨울 속의 나를 머리 끝에서 발가락 끝까지,
가슴 가득히 뜨거운 피가 돌게 한다.
그대만이, 지금은 다만 그대 사랑만이.
이 한밤 어둠뿐인 이 한밤에
내가 철창에 기대어 그대를 그리워하듯
그녀 또한 창문 열고 나를 그리고 있을까.

[김남주, ‘지금은 다만 그대 사랑만이’ 중에서]

지금은 다만 아내의 마음만을 만지고 싶다. 봄비 소리를 들으며 느끼고 싶다. 사랑해, 여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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