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의 유언, 아름다운 마무리

법정 스님의 유언, 아름다운 마무리

엊그제 내린 눈으로 세상은 온통 하얗고 하늘은 푸르렀다. 그 하얀 세상 위로 이른 봄의 햇살이 내렸다. 서럽도록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이 땅의 맑은 영혼, 법정 스님이 입적하셨다.

스님은 몇 해 전부터 아름다운 마무리를 준비하고 계셨다. 그리고 맑고 향기로운 이른 봄날을 택해 생을 달리하셨다. 평생을 비움과 내려놓음으로 사셨던 스님은 소박하고 담백하면서도 유려한 필력으로 수많은 중생들을 일깨우셨다. 스님의 글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이유는 스님께서 그 글보다 더 아름답고 간소한 삶을 사셨기 때문이리라.

스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안다. 스님은 가셨지만, 스님이 남겨놓은 향기는 우리 안에 영원할 것이다.

스님의 마지막 수필집 <아름다운 마무리> 중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글은 스님께서 나같은 중생에게 해주시는 마지막 유언과 같은 말씀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삶에 대해 감사하게 여긴다. 내가 걸어온 길 말고는 나에게 다른 길이 없었음을 깨닫고 그 길이 나를 성장시켜 주었음을 믿는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과 모든 과정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에게 성장의 기회를 준 삶에 대해, 이 존재계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 아름다운 마무리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근원적인 물음 ‘나는 누구인가?’ 하고 묻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삶의 본질인 놀이를 회복하는 것.

아름다운 마무리는 지금이 바로 그때임을 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자연과 대지, 태양과 강, 나무와 풀을 돌아보고 내 안의 자연을 되찾는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개체인 나를 뛰어넘어 전체와 만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나를 얽어매고 있는 구속과 생각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

아름다운 마무리는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그 향기와 맛과 빛깔을 조용히 음미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스스로 가난과 간소함을 선택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또한 단순해지는 것.

아름다운 마무리는 살아온 날들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것, 타인의 상처를 치유하고 잃어버렸던 나를 찾는 것, 그리고 수많은 의존과 타성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홀로 서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언제든 떠날 채비를 갖춘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낡은 생각, 낡은 습관을 미련 없이 떨쳐 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법정, 아름다운 마무리>

법정 스님의 명복을 빕니다. 극락왕생하소서.

추.

1. 류시화 시인이 전하는 스님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이 글을 읽어 보시면 알겠지만, 주위의 제자들이 좀 더 스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이행했으면 스님이 더욱 기뻐하셨을 거란 생각을 합니다. 물론, 제자들 입장이나 종단 입장에서야 최선을 다해 스님을 살펴드리고 싶었겠지요. 그 마음 모르는 것은 아니나 좀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http://cocopeli.cafe24.com/bbs/view.php?id=heavenlake&no=6743

2. 주낙현 신부님께서 제 글을 직접 읽어 주셨습니다. 한 없이 부끄럽기도 하고, 한 없이 기쁘기도 합니다. 주 신부님의 음성으로 스님의 길을 배웅해 드리니 스님이 더욱 기쁘게 다른 생으로 가셨을 거라 믿습니다. 주 신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http://viamedia.or.kr/2010/03/11/855

8 thoughts on “법정 스님의 유언, 아름다운 마무리

  1. 아아. 법정 스님이 가셨군요. 아니, 입적하셨다고 해야.
    어찌 되었든, 그리고 그의 삶의 자취가 어찌 되었든,
    또 별 하나가 졌습니다. _()_

  2. 제가 살았던 때에 스님이 이 세상에 계셨고 그분의 글을 제가 읽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참 행복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요유님 블로그에 뜽금없이 들렀다 가곤 한 지가 꽤 오래된 사람입니다.
    스님의 글을 보고 용기내어 처음 글을 남깁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많은 사람들 중 하나로… 소요유님 글 잘 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1. 소민 님은 저와 같은 “과”시군요. 저도 그렇습니다. 어떨 때는 제가 쓴 글을 보고도 운 적이 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법정 스님이나 노무현 대통령 같은 분들과 한 시대를 같이 호흡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축복받은 사람들일지 모릅니다.

      건강하세요.

  3. “엊그제 내린 눈으로 세상은 온통 하얗고 하늘은 푸르렀다.
    그 하얀 세상 위로 이른 봄의 햇살이 내렸다.
    서럽도록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이 땅의 맑은 영혼, 법정 스님이 입적하셨다”

    법정 스님의 아름다운 영혼을
    또한 이다지도 아름답게 담아낼 수 있구나 싶답니다.
    아마도 님이 영위하는 삶의 지향점이 그 백터성과 동질여서 그런듯 합니다.

    세월의 퇴적이 깊어 갈수록 선명한점이 있다면
    내 실존이 지닐수 있는 소유물이란
    조물주로부터 부여 받은 한시적인 시간 뿐이라 생각됩니다.
    부여 받은 시간인 나의 소유물을
    한시간 한시간 비워나가느냐 과정이 바로 우리의 삶이고,
    그러고 일체의 흔적도 없이 소멸되는 것이야 말로 지극한 순리라 여깁니다.
    잠깐 머물고갈 그 무대를 깨끗히 비워놓는 것이야 말로 다가올 새로운 인생에 대한 도리이며,
    남긴다는 것이야 말로 주제 넓은 오만의 어리섞음이라 여깁니다.

    한시간, 한시간을 처절하리 만큼 순결하게 비워나가는
    그 과정의 모습만이 시간을 초월한 맑은 영혼되어 오래도록 빛날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냥 시간을 허비하며 소멸되기엔 인간의 존재가 너무나 존귀하기 때문이지요.

    1. pine님의 과찬의 말씀을 들을 때면 많이 부끄러워집니다.

      pine님이 말씀하신대로 일체의 흔적도 없이 소멸되고 비워나가야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의 궁극적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법정 스님이 그런 삶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셨구요.

      맑은 영혼이 되기를 소망해 보지만, 아직도 분노와 탐욕으로 얼룩진 저를 봅니다.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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