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를 쉽게 욕보이는 방법 1

망자를 쉽게 욕보이는 방법 1

망자에 대한 예의라는 말이 있다.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생전의 관계가 어떠하든 예의를 차리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는 것이다.

법정 스님이 어제 입적하자마자 청와대 대변인은 이런 식으로 논평을 했다.

법정 스님의 저서 <조화로운 삶>에 대해 이 대통령이 “산중에 생활하며 느끼는 소소한 감성과 깊은 사색을 편안한 언어로 써 쉽게 읽히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고 말한 추천의 사유도 소개했다.

이어 김 대변인은 “대통령이 해외 출장이나 순방갈 때, 휴가 떠날 때 법정 스님 수필집을 지니고 갔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한 핵심 참모는 “이 대통령과 법정 스님의 철학이 비슷하다”면서 그 비슷한 점을 “소박한 삶과 중도”라고 밝혔다.

<청와대 “이대통령과 법정스님 ´중도´ 철학 비슷”, 데일리안>

내가 알기로 법정 스님은 <조화로운 삶>이란 책을 쓴 적이 없다.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이 쓴 <조화로운 삶>을 읽은 적은 있지만, 법정 스님의 <조화로운 삶>은 없다. 도대체 이명박이 읽었다는 책은 도무지 무엇이란 말인가. 법정 스님의 저서가 조화로운 삶이라는 출판사를 통해 나온 적은 있다. 그렇다면 이명박은 책은 안 읽고 출판사만 읽었단 말인가.

이명박이 즐겨 읽는 책이 법정 스님의 <무소유>란 말을 듣고 기겁을 하며 웃은 적이 있다. 그럴 수도 있다. 이명박이 법정 스님의 책을 좋아한 것이 나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법정 스님의 책은 그의 인생에 아무런 영향을 못준 것 같다.

이거야 청와대 대변인의 하찮은 실수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뒤의 청와대 핵심 참모라는 자의 말은 더욱 가관이다. 이명박과 법정 스님의 철학이 비슷하다면서 그것을 “소박한 삶과 중도”라고 말했다. 갑자기 개그맨 안영미의 말이 생각났다. “얘네들 미친 거 아냐~~.”

입적하신 스님을 욕보여도 이렇게 욕을 보일 수 있을까. 스님이 돌아가시기 직전에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반대했다고 이런 식으로 욕을 보인다 말인가. 어떻게 이명박의 철학과 법정 스님의 철학이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당신들의 상상력이 부럽기만 하다.

법정 스님은 한반도 대운하(지금의 4대강 죽이기) 사업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연을 수단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생명의 근원으로서 하나의 생명체로서 바라봐야 한다. 자연은 인간과 격리된 별개의 세계가 아니다. 크게 보면 우주 자체가 커다란 생명체이며, 자연은 생명체의 본질이다. 우리는 그 자연의 일부분이며, 커다란 우주 생명체의 한 부분이다. 이 사실을 안다면 자연을 함부로 망가뜨릴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사업으로 은밀히 추진되고 있는 한반도 대운하 계획은 이 땅의 무수한 생명체로 이루어진 생태계를 크게 위협하고 파괴하려는 끔찍한 재앙이다.

<중략>

강은, 살아 있는 강은 굽이굽이마다 자연스럽게 흘러야 한다. 이런 강을 직선으로 만들고 깊은 웅덩이를 파서 물을 흐르지 못하도록 채워 놓고 강변에 콘크리트 제방을 쌓아 놓으면 그것은 살아 있는 강이 아니다. 갈수록 빈번해지는 국지성 호우는 토막 난 각 수로의 범람을 일으켜 홍수 피해를 가중시킬 것이 뻔하다.

대통령 공약사업 홍보물의 그럴듯한 그림으로 지역주민들을 속여 엉뚱한 환상을 불어 일으키고 있다. 개발 욕구에 불을 붙여 국론을 분열시키면서 이 사업을 추진하려는 것은 지극히 부도덕한 처사이다.

일찍이 없었던 이런 무모한 국책사업이 이 땅에서 이루어진다면 커다란 재앙이 될 것이다. 이런 일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다면 우리는 이 정권과 함께 우리 국토에 대해서 씻을 수 없는 범죄자가 될 것이다.

<법정 스님, 한반도 대운하 안된다>

법정 스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한반도 대운하, 즉 4대강 죽이기 사업은 이 땅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끔찍한 재앙이고, 지극히 부도덕한 처사이며, 이것을 막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는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라고.

온 국민의 80%가 반대하는 사업을 눈 하나 꿈쩍 하지 않고 진행하는 자들이 법정 스님과 철학이 비슷하다고? 그것도 아직 장례를 치르지 않은 스님의 법구 앞에서 할 말인가? 그러고도 당신들이 과연 인간의 탈을 썼다고 할 수 있는가?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못하는 자들이여, 이제 더 이상 법정 스님의 맑은 정신을 욕보이지 마라.

14 thoughts on “망자를 쉽게 욕보이는 방법 1

  1. 참 멍청한 정권이네요. 참모진들도 이렇게 멍청함을 드러내야 하나요?
    그렇게 유명한 분의 책 이름을 언급하면서 실수라고 무마할 수 있는 내용인가요?
    보도 자료는 도대체 누가 검토는 하는 걸까요? 이렇게 멍청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으니…

    누가 봐도 아닌 걸 갖다 붙이려는 것은 또 어떻게 받아들이라는 건가요? 허허 ^^;

    1. 그 자들에게 시스템이라고 붙일 수 있는 것이 있을까요? 오직 거짓과 탐욕으로만 점철된 그 자들에게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다만 입적하신 스님을 조용히 보내드리라는 부탁뿐입니다. 물론, 이런 정중한 부탁도 발로 걷어찰 자들이지만요.

  2. 읽은 적이 없는 것이겠죠.
    삽질하고 공구리칠 생각하느라 책 읽을 시간 있겠습니까.
    중학생도 알 법정스님의 대표적인 저서를 모르는 것 보면. 참.
    뭐래려나. 또 오해? -.-;;;

    가만히 닥치고 있으면 중간이나 가지, 라는 말을 저것들은 알까요?

    1.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이명박은 자신이 오바마와 닮았다고 했지요. 법정 스님이 돌아가시자 삶의 철학이 비슷하다고 했고. 무슨 얘기만 나오면 왕년에 자기도 해봤는데 하면서 아는 척을 하지요.

      이 사람은 열등감이 뼈에 사무친 사람입니다. 그러니,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 있던 걸 눈뜨고는 못봤겠지요.

  3. 참 잘 쓰셨습니다. 🙂
    주낙현 신부님의 낭송을 들으면서 다시 소요유님글을 눈으로도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동해서 왔는데, 이런 글을 새롭게 올려주셨군요. 저도 같은 주제에 대해 쓴 글이 있는데요. 말미에 짧게나마 소개하고 싶네요. 이건 정말 가신 분께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

    1. 민노씨 님께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는군요. 😉 제가 노회찬에 대해 좀 심하게 비판했다고 민노씨 님이 아쉽게 생각하셔서 저도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노회찬한테 미안한 것이 아니고 민노씨 님한테 미안합니다.

      민노씨 님과 저는 정치적 지향이 비슷할 것 같으면서도 딱 맞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

  4. Pingback: 민노씨.네
  5. 추.
    사소하게 궁금한 것이 생겨서요.
    트윗밈 플러그인은 비틀리(bit.ly) 북마클릿을 통해 트위터로 소개한 글은 계산하지 못하나요?
    트위터 북마크용 플러그인을 설정한 이유는 얼마나 내 글이 트위터에 인용되고 소개되었나를 알기 위한 목적도 갖고 있을텐데, 제가 좀전에 소개한 이 글이 트윗밈에는 잡히지 않아서 사소하게 호기심이 생겨 여쭤봅니다.

  6. 언제는 오바마랑 철학이 같다더니….
    산사람이고 죽은 사람이고 가리지 않고 욕을 보이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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