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노무현은 죽은 노무현

좋은 노무현은 죽은 노무현

백인들이 인디언들의 땅을 빼앗기 위해 그들과 전쟁을 벌이면서 했던 말,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이다.”

한나라당 출신 손학규가 민주당 대표가 됨으로써 민주당은 자유선진당과 더불어 한나라당의 위성 정당이 되었다. 민주당 대표 손학규가 노무현 대통령 묘소에 가서 무릎을 꿇었지만, 그 모습에서 아무런 진심이나 감동을 엿볼 수 없었다. 죽은 노무현은 말이 없었고, 손학규는 여전히 기회주의자에 불과했다.

노무현은 한줌의 지지자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이들에게 불편한 존재였다. 재벌, 언론, 한나라당, 그리고 검찰 등으로 이루어진 이 땅의 특권 세력에게는 말할 것도 없었고, 아파트 한채 부여 잡고 집값 떨어질까봐 전전긍긍하던 소시민에 이르기까지 노무현은 성가시고 귀찮고 불편한 존재였다. 수구, 진보를 막론하고 노무현에게 집단 린치를 가했고, 그는 피할 곳이 없었다.

그의 진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는 철저히 고립되었다. 그는 한줌 밖에 되지 않는 지지자들에게도 너무 미안해했다. 그는 부끄러움을 아는 거의 유일한 정치인이었던 데다가 결벽증까지 있었던 터였다. 그는 쓸쓸히 스스로를 유폐시켜 갔다.

노무현이 죽자 세상은 그들이 원하던 지난 세월로 돌아가 버렸다. 사람들이 그렇게 싫어하고 욕하고 증오하던 그가 사라졌는데 정작 그들의 눈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국민의 세금으로 강을 파헤치고 보를 세워 카지노배를 띄우겠다는 환상적 계획 앞에서도, 국민의 세금으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음향대포를 들여와도, 배추 한포기에 만오천원이 넘어 김장을 하기 힘들어도, 경포대라고 노무현을 비아냥대던 손학규가 민주당의 대표가 되었어도 사람들은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한미FTA에 대해 “좌파신자유주의”라고 게거품을 물던 진보들도 한-EU FTA에 대해서는 입 한번 뻥긋하지 않았다.

고은 시인이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보도되면서 그가 쓴 <만인보>의 “노무현”이란 시가 회자되고 있다.

모든 것을 혼자 시작했다
처음에는 공장에 다니다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을 검정고시로 마친 뒤
사법고시도 마친 뒤

그는 항상 수줍어하며 가난한 사람 편이었다
그는 항상 쓸쓸하고 어려운 사람 편이었다
슬픔 있는 곳
아픔 있는 곳에
그가 물속에 잠겨 있다가 솟아나왔다

푸우 물 뿜어대며

그러다가 끝내 유신체제에 맞서
부산항 일대
인권의 등대가 되어
그 등대에는
마치 그가 없는 듯이 무간수 등대가 되었다
힘찬 불빛으로

어디 그뿐이던가
사람들 삐까번쩍 광(光)내는데
그는 혼자 물러서서 그늘이 되었다
헛소리마저 판치는
텐트 밑에서
술기운 따위 없는 초승달이었다
아무래도 그의 진실 때문에
정치를 할 수 없으리라

속으로
속으로 격렬한
진실 때문에

<고은, “노무현”, <만인보> 중에서>

고은 시인은 이미 13년 전에,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훨씬 이전에 노무현의 진실을 꿰뚫어보고 그가 정치를 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특권과 탐욕이 판을 치던 시대에 노무현은 이방인이었고, 그는 세상과 타협을 하거나 공존할 수 없었다. 이 시를 읽으면서 한없는 슬픔과 그리움이 밀려왔다.

세상은 그가 살아있을 때보다 훨씬 그를 후하게 평가할지도 모른다. 그의 가치를 새삼 깨달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가 죽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에게 좋은 노무현은 죽은 노무현이기 때문이리라.

노무현은 참으로 쓸쓸한 사람이었고, 나는 그 쓸쓸함을 사무치게 사랑했다.

11 thoughts on “좋은 노무현은 죽은 노무현

  1.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흠모하다가 그 사랑을 증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난하고 헐뜻다가 결국에 그 사람을 죽이고서야 돌이켜 그를 다시 사랑하는게 사람의 숙명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노무현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딱 들어맞는 이야기라서 생각했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2. 아이고.. 확실히 바른 분이셨고,
    그래서 바르지 않은 수없이 많은 분들이 부끄러워서 그랬던 거 같아요

    평범한 시민들도 바른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처음에는 대통령이 모든 걸 다 해줄 주 알았나본데.. 바른 사람은 바른대로 그냥 살아도 되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은 변해야했고 그걸 말 했을 뿐인데.. 무참히 외면 당했습니다

    사람이 완벽할 수 있나요?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그도 그랬지만 그런 걸로 사람을 가벼이 판단했던 분들이 지금은 어디서 뭐하는 지 너무 안타깝습니다

    결국 힘 있는 사람 앞에서는 모두가 무릎을 꿇는 건 어쩔수 없지만
    정작 자기보다 약한 사람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그 사람의 본보기 같아요

    외국 컬럼 기자가 했던 기사가 생각나네요
    ” 수없이 많은 한국 정치인들이 평소에 저지르는 일들을 고 노무현 대통령은 결코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국 국민들은 그들의 부족함을 정치인들이 채워주길 바랬으나.. 문제는 정치인만이 아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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