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길은 비단이 아니었다

비단길은 비단이 아니었다

중앙아시아는 세계를 주름잡던 몇몇의 정복자의 의해 지배되었던 적이 있었다. 일찌기 알렉산더 대왕이 지나갔고, 몽골 칭기스칸의 지배를 받았으며, 14세기 아미르 티무르가 번성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 당시의 전쟁이란 것은 말을 타고 뿌연 먼지를 흩날리며 내달리는 것이었으리라. 감히 누가 수십만 명의 군대에 저항이라도 할 수 있었겠는가. 위대한 왕들의 군사들은 달릴 수 있는 데까지 달렸을 것이다. 그리고 후세 사람들은 그들이 갔던 곳을 정복했던 땅이라 지도 위에 선을 그었으리라. 정복이라는 것은 먼지를 날리며 지평선까지 달리는 것이었겠지.

아무다리야 강과 시르다리야 강이 흐르는 곳을 제외하고 땅은 풀 한 포기 키우기 힘들어 보였다. 이 팍팍하고 메마른 땅이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유럽과 중국을 잇는 상인들의 장삿길이었기 때문이었다. 장사꾼들은 수십 마리의 낙타 등 위에 비단을 싣고 이 길을 지나다녔다. 한 번 왔다 가는데 5년의 시간이 걸렸다. 뱃길이 열리기 전까지 그 길은 동서양을 잇는 유일한 길이었으리라. 후에 사람들은그 길을 비단길이라 불렀다. 아름다운 이름을 갖게된 그 길은 결코 비단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후에 이 땅은 소비에트 연방에 편입되었고, 스탈린은 연해주의 고려인을 강제로 이주시켰다. 70년 전의 일이다. 그들은 그 메마른 땅에서 까레이스키라 불렸다. 참으로 고단한 세월이었다.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에는 우즈벡인들도 있었고, 러시아인들도 있었고, 까레이스키들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한 것을 후회했고, 어떤 사람들은 무덤덤하게 반응했다. 그들 대부분은 이슬람교를 믿었으나 그들의 이슬람교는 순박한 것이었다.

타쉬켄트의 대학생들은 사회주의 국가의 대학생들이 그랬던 것처럼 정장을 즐겨입었고, 발랄하기 보다는 성숙해 보였다. 거리에는 대우차들로 넘쳤다. 지구 상에서 대우차의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처럼 보였다. 곳곳에 티무르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지구 상 어느 곳을 가든지 영웅이 필요한 법이었다. 그들은 티무르를 위대한 왕으로 기념했고, 칭기스칸을 파괴적 정복자로 폄하했다. 역사는 그렇게 상대적인 것이었다. 타쉬켄트의 티무르 박물관은 단 7개월만에 지어졌다고 안내인은 말했다. 소련에서 독립했으나 사회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말이었다.

오늘 하루 끼니 때마다 망빨이라는 국을 먹었다. 망빨은 고기 국물에 토마토를 비롯한 각종 야채가 들어가 있는 국이었고,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가장 즐겨 먹는 음식 중의 하나였다. 망빨은 궁합이 잘 맞는 뜻이라고 한다. 바다가 없었기에 생선 구경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 대신 그들은 양고기, 소고기, 말고기 등을 즐겨 먹었다. 사람들 몸에서 양고기 굽는 냄새가 났다.

밤낮의 기온차가 제법 컸다. 밤에는 한가위가 보름달보다 더 큰 달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들은 특별한 명절을 지내지는 않았다. 늘 감사하며 사는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은 낙천적으로 보였고, 순박해 보였다.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부족해 보이지도 않았다.

타쉬켄트 밤하늘에는 별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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