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일

당연한 일

세상엔 당연히 일어날 일 외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마땅한 이유없이 헤어지는 연인이 어디 있으며
까닭도 없는 싸움이 왜 일어나겠는가
당연하게 주저앉아 버릴 것들이 무너져 내리고
폭락해야 할 주가와 폭등해야 할 물가의
오르내림이 또한 당연하고
유유상종으로 헤쳐 모여를 거듭하는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너무도 당연하니
세상 모든 게 당연지사이다

출세의 길은 그러니까 당연히 일어날
일에 대해 남들보다 앞서 준비하는 것이다
알고보면 별 것 아니다
어제 본 재방송 드라마를 꾹 참고
하루 세 번씩만 더 보는 일
진부함을,
진부함의 지겨움을,
진부함의 고통을 견디는 것
그것이 출세의 길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세상엔 당연히 일어날 일 외엔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의외의 일이란,
우매한 인간들이 자신도 예상못할 일들을
벌려놓아 빚어지는 넌센스에 다름아니다
제가 벌려놓은 일들로 전전긍긍 불편한 생을
사는 동물이 인간말고 또 있으랴
생활이 편리해지면 인생이 불편해지듯
살아 온 만큼 불행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정해종, 당연한 일]

나이를 먹다 보면, 사람들은 삶을 바라보는 몇 가지 기준들을 만드는데, 언제부턴가 나는 인과율에 관한 고정관념을 갖기 시작했다.

“세상에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연처럼 보이는 어떠한 사건도 수많은 필연들이 만들어 낸 결과다. 즉, 우연은 필연이란 요소들의 변증법적인 결합일 뿐이다.”

시청앞에서 정말 우연히 20년전의 초등학교 짝을 만난다든가, 우연히 산 복권이 당첨되어 횡재를 한다든가, 버스에서 우연히 같이 앉은 여자와 눈이 맞아 결혼을 한다든가, 이런 정말 우연처럼 보이는 일들을 조목조목 따져보면 거기에는 낱낱의 필연적인 요소들이 들어 있다라는 사실을 믿기 시작한 것이다.

수억 마리의 정충 중의 하나가 선택되어 ‘나’라는 존재로 태어났다는 사실, 그 성스런 시작은 결코 확률이나 통계의 무책임한 해석으로 설명될 수 없다. 이런 상상은, 사람 사이의 인연이란 쉽게 저버릴 수 없는 관계라는 것, 내가 지금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가라는 생각까지 어렵지 않게 다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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