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역설

민주주의의 역설

물과 공기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요소다. 하지만 평소 사람들은 물과 공기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냥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미세먼지로 인해 공기의 질이 나빠지고, 4대강에 녹조가 창궐하여 물이 오염되면 그때서야 비로소 물과 공기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민주주의가 번영하고 인권이 보장되었던 시기는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때였다. 대통령 욕하는 것이 국민스포츠였던 때였다. 모든 것이 노무현 탓이었던 때였다. 시정잡배와 동네 개들도 대통령을 보고 짖던 시절이었다. 대통령은 낮았고, 국민이 대통령인 시대였다.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지만 그것이 왜 소중한지는 깨닫지 못했다.

이명박이 오고 노무현은 죽었다. 그때서야 몇몇 사람들이 노무현을 다시 보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은 알지 못했다. 이명박 치하 5년을 견디고도 사람들은 문재인 대신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4년이 흘렀다. 박근혜와 최순실 일당의 헌법 유린과 국정 농단이 터지기 전에는 사실 누가 이 땅의 주인인지 사람들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촛불집회를 보고 전 세계 사람들이 놀라고 있다. 어떻게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저렇게 평화로운 집회를 할 수 있을까? 그 광장의 모인 사람들의 힘으로 박근혜가 국회에서 탄핵되었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저력과 잠재력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 국민들 중 과반수가 불과 4년 전에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민주주의가 보장될 때는 무관심하거나 소중함을 모르다가 그것이 사라진 후에야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이 나라의 주인이 최순실이나 박근혜가 아니고 국민들이라고.

민주주의를 보장했던 노무현은 죽임을 당했고, 민주주의를 무시했던 박근혜는 국민들을 일깨웠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국민들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노무현보다 박근혜의 무개념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민주주의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투표는 해도 되고 안 해도 상관없는 그런 의미없는 권리가 아니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박근혜의 유일한 미덕은 이 나라 국민들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2016년 겨울의 촛불집회를 본다면 어떤 말을 할까? 그가 사무치게 보고 싶은 추운 겨울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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