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래기

시래기

시골 아주머니께서 시래기 한 다발을 보내셨다. 푸르누르스름하고 낡은 잎사귀들이 정갈하게 말라서 정성껏 묶여 있었다. 그것들에게서 햇볕과 바람과 흙과 시간의 냄새가 났다. 이제 그것들을 된장과 함께 보글보글 끓이면 추운 겨울 일용할 시래기된장국이 된다. 시래기된장국의 구수하고 푸근한 맛을 생각하며 도종환의 ‘시래기’라는 시를 읽었다.

저것은 맨 처음 어둔 땅을 뚫고 나온 잎들이다
아직 씨앗인 몸을 푸른 싹으로 바꾼 것도 저들이고
가장 바깥에 서서 흙먼지 폭우를 견디며
몸을 열 배 스무 배로 키운 것도 저들이다
더 깨끗하고 고운 잎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
가장 오래 세찬 바람맞으며
하루하루 낡아간 것도 저들이고
마침내 사람들이 고갱이만을 택하고 난 뒤
제일 먼저 버림받은 것도 저들이다
그나마 오래오래 푸르른 날들을 지켜온 저들을
기억하는 손에 의해 거두어져 겨울을 나다가
사람들의 입맛도 바닥나고 취향도 곤궁해졌을 때
잠시 옛날을 기억하게 할 짧은 허기를 메꾸기 위해
서리에 맞고 눈 맞아가며 견디고 있는 저 헌신

<도종환, 시래기>

이 시를 읽으니 존경하고 좋아하는 선배의 얼굴이 떠올랐다. 은퇴를 얼마 남기지 않은 그가 마치 시래기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는 한없이 부드러운 리더십의 소유자였지만, 해야할 일은 책임지고 끝까지 해내고마는 외유내강의 표본이었다. 바람 맞고 눈 맞아가며 견뎌온 그의 헌신과 시래기가 자꾸 겹쳤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시래기 같이 묵묵히 견뎌온 사람들이 세상을 지키고 바꿨다.

오늘 저녁은 시래기된장국을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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