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소

노인과 소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노인은 소를 몰고 들로 나갔다. 그들에게 삶은 퍽이나 고달픈 것이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논밭에 엎드려 그 힘든 노동을 견디어야 했다. 팔순을 바라보는 노인과 40년을 살어버린 소는 발걸음을 내딛는 것조차 힘겨워했다. 그렇게 30년을 살았다.

30년을 함께 한 소와 노인은 얼굴이 닮았고, 눈이 닮았고, 발걸음이 닮았다. 말하지 않고 눈빛만 봐도 노인과 소는 서로를 훤히 알 수 있었다. 노인은 소를 먹이기 위해 언제나 꼴을 베러 다녔고, 소를 위해 농약 한 번 치지 않았다. 소는 늘 노인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 발걸음을 옮기는 것조차 힘들어 하면서도 늘 노인과 함께 들에 나갔다.

할머니와 자식들의 성화에 못이겨 노인은 소를 팔러 우시장에 갔다. 소는 눈물을 흘렸고, 노인도 눈물을 흘렸다. 30년의 세월이었다. 소를 얼마에 팔겠냐는 사람들의 말에 노인은 5백만원을 달라고 했다. 사람들은 이런 소는 거저 줘도 안가져간다며 소를 비웃었고, 노인을 비웃었다. 그 5백만원은 30년 세월을 같이 한 소에 대한 노인의 마지막 예의였다.

노인은 소가 얼마 살지 못할 것을 알았고, 소는 자기의 주검이 노인의 손에 거두어지기를 바랬다. 소의 숨이 끊어지기 전, 노인은 소의 코뚜레를 풀었고 워낭을 떼어냈다. 소는 비로소 눈을 감았다. 노인은 죽은 소를 밭 한가운데에 묻었다. 소의 무덤을 바라보며, 노인은 워낭을 흔들었다. 바람을 타고, 워낭소리가 소의 영혼을 달래주었다.

삶과 죽음으로 30년의 세월이 나누어졌음에도 워낭소리는 노인과 소를 이어주고 있었다. 노인도 곧 소의 뒤를 따를 것이고 워낭소리는 저세상에서도 노인과 소를 이어줄 것이다. 노인에게는 소가 있었고, 소에게는 노인이 있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삶은 참으로 퍽퍽했지만, 그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그 삶을 견뎌냈고, 그들은 성자가 되었다.

난생 처음 부모님과 같이 극장에 가서 본 영화 “워낭소리”. 가슴이 먹먹했다.

6 thoughts on “노인과 소

  1. 전 설날 저녁때 광화문에 가서 보고 왔답니다.
    설 아침부터 집안에 문제가 생겨서 아침부터 시끄럽고 분주하고 언짢게 있다가…
    (왜 명절때 가끔 집안이 시끄러워지기도 하잖아요…)
    후배들과 미리 같이 보기로 약속도 한 것이고, 또 뒤숭숭한 집안을 좀 빠져나오고도 싶어서..
    휘리릭 나와서 보게 되었는데… 따뜻하고 웃을수있고… 좋았답니다.
    좀 더 편안한 마음에서 봤더라면 더 좋았을텐데…하는 아쉬움도 남지만요…

  2. 부모님이 은퇴하시고, 이제 칠순에 접어드십니다. 아들의 입장에서는 늘 응석부리고 싶은 그런 마음이지만, 사회의 통념상 이제 노인이 되신거지요. 경로우대증도 받으시고, 전철도 공짜로 타고 다니시니까요.

    영화는 늘 친구들이나 학교 선후배나 애인과 보는 것으로 생각했지요. 생각해보니 부모님을 모시고 영화를 본 기억이 없었습니다. 물론, 부모님 세대는 영화를 즐겨보는 세대도 아니지만, 그래도 더 늙으시기 전에 부모님과 같이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워낭소리”라는 영화를 인터넷에서 처음 접했을 때, 이 영화는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같이 봐야할 영화임을 알았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평생 농사를 지어온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소이지만, 그들의 삶 속에서 내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영화를 거의 보지 않으시는 부모님도 이 영화를 보시고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 이 땅의 모든 아버지와 소들에게 바치는 영화, 부모님과 같이 보기를 권합니다.

  3. ‘소는 주인을 닮는다’라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아내가 이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데 시간내서 봐야겠군요. 좋은 소개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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