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의 품격

세상의 거의 모든 탐욕과 이해가 충돌하는 정글 같은 정치판에서 품격과 헌신으로 비전과 가치를 실현해 나가는 정치인이 있을까? 더불어민주당의 대표였던 문재인 의원이 보여준 지난 1년간의 모습은 (진중권이 얘기했듯이) 초인적 인내를 바탕으로 한 품격과 헌신 그 자체였다.

문재인은 좋은 사람이고, 멋진 신사다. 그처럼 좋은 사람은 야수의 탐욕에 맞서기 위해 짐승의 비천함을 견뎌야 하는 정치인과 사실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처럼 마음이 선하고 훌륭한 인격을 갖춘 이가 정치인이 되었다는 사실은 이 비루한 나라 (백성들은 잘 모르겠지만) 정치판에 벼락 같은 축복이고, 어찌 보면 불가해한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문재인이 정치판에 들어올 일은 없었다. 노무현의 운명이 문재인의 운명이 되고 말았고, 결국 노무현을 죽인 이 땅의 기득권을 가진 빌어먹을 기회주의자들이 문재인을 정치판에 끌어들인 셈이다.

문재인이 당대표로 선출된 후 당내 비주류들은 그를 끊임없이 공격하고 흔들어댔다. 양아치도 이런 양아치가 없을 정도로 그들의 공격은 집요했고 악랄했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단 하루도 견뎌낼 수 없는 그런 극한 상황 속에서 문재인 한 번도 화를 낸 적도 없고 큰소리를 친 적도 없다. 묵묵히 견디면서 당의 혁신을 위해 대표가 해야할 일들을 견고히 해나갔다.

혁신위원회에서 나온 혁신안을 제도화했고, 유능한 인재들을 두루 모아 당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었으며, 10만명이 넘는 자발적 당원을 확보했다. 그는 단 한 차례도 사심을 가지고 일을 한 적이 없다. 정치인이 단 한 차례도 사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일이다. 과연 노무현 대통령이 얘기했듯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부드러웠지만 견고했다. 어눌한 듯하지만 세련되었다. 흔들리는 듯했지만 모든 일을 제대로 처리했다. 늘 정직하고 정도를 행했다. 언제나 당원과 국민만을 생각했다. 정말 성숙한 인격과 품위를 갖춘 정치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있다 하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만큼 당 대표직을 훌륭히 수행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난 1년간 문재인을 보면서 안쓰럽고 안타까웠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묵묵히 맡은 일들을 제대로 해내는 그를 보고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재인의 정치적 앞날이 밝지는 않지만, 만약에 그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된다면 그것은 2002년에 이어 또 하나의 기적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땅의 백성들은 가장 선하고 품격있는 지도자를 맞을지도 모른다.

문재인이 있기에 숨을 쉴 수 있었던 지난 1년이었다. 그의 인품에 감동하고 그의 헌신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의원이 14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6 15 남북정상회담 12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진실이 아니다

오른손을 잘리고 감방에 들어간 조국일보 이강희 논설주간이 교도소장 방에서 담배를 물고 전화를 받으면서 지껄인 말이다.

“오징어 씹어 보셨죠? 근데 그게 무지하게 질긴 겁니다. 계속 씹으시겠습니까? 그렇죠? 이빨 아프게 누가 그걸 끝까지 씹겠습니까? 마찬가집니다. 어차피 그들이 원하는 건 술자리나 인터넷에서 씹어댈 안주거리가 필요한 겁니다. 적당히 씹어대다가 싫증이 나면 뱉어 버리겠죠. 이빨도 아프고, 먹고 살기도 바쁘고. 맞습니다. 우린 끝까지 질기게 버티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나라 민족성이 원래 금방 끓고 금방 식지 않습니까? 적당한 시점에서 다른 안주거리를 던져 주면 그뿐입니다. 어차피 그들이 원하는 건 진실이 아닙니다. 고민하고 싶은 이에게는 고민 거리를, 울고 싶은 이에게는 울 거리를, 욕하고 싶어하는 이에게는 욕할 거리를 주는 거죠. 열심히 고민하고, 울고, 욕하면서 스트레스를 좀 풀다 보면은 제 풀에 지쳐 버리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대중을 개, 돼지로 길들였다. 당신이 진실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그들의 개, 돼지가 되었다는 반증이다.

역설(亦雪)과 역설(逆說)

북쪽에서 온 눈보라는 사정없이 휘몰아쳤다. 흰 눈 속의 강산과 마을은 하릴없이 적막했고, 거센 찬바람만이 옷섶을 파고들었다. 이런 날씨에 친구를 찾기 위해 남도까지 왔다고 하면 모두들 정신나갔다고 하겠지만, 우리는 지난 날 그가 보여 준 따스한 정이 사무치게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아무런 흔적 없는 눈 덮인 들판을 지나 동네 어귀에 이르자, 인적은 보이지 않고 개들만 컹컹 짖었다. 춥고 을씨년스러운 겨울날, 눈보라 속에 10년 전 세상을 달리한 친구가 잠들어 있을만한 곳을 더듬더듬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에 한 자의 눈이 쌓여 있었다. 둥근 봉분 안에 잠들어 있을 친구와 10년의 세월을 뒤로 한 채 달려온 여덟 명의 동기들은 저마다의 시간을 추억하였다. 10년이라는 세월은 슬픔보다는 아련함을 남겼다.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가 살아 남은 녀석들을 뭉치게 하는 것은 하나의 역설이었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이었고, 그 선물은 마법처럼 1년에 한 번씩 우리를 만나게 했다.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건만, 30년 전의 싱그러운 청춘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우리들의 넋두리는 눈 내리는 허공으로 흩어졌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뒤로 한 채 우리들은 기약없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삶은 그렇게 지속된다.

민주적으로 가르쳐야 하는 이유

도널드 핀켈(Donald L. Finkel)  교수가 쓴 <침묵으로 가르치기>를 읽다가 ‘민주적으로 가르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장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것을 가르치든지 가르치는 사람(교사)이 민주적인 방식을 따라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탐구 활동이란 것이 본래 민주적이다. 탐구할 때는 진실을 찾기 위해 권위에 대한 믿음을 포기해야 한다.
  2. 교육을 통해 민주주의 정신을 함양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교사는 민주사회에서 제몫을 톡톡히 해낼 민주시민을 길러낼 책임을 느낀다.
  3. 교사의 임무는 학생의 성격 개발에 힘쓰는 것이다. 학생의 독립심, 자신감, 자율성, 판단력, 책임감, 집단의 일원으로 생산적으로 활동하는 능력을 길러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런 성격 특질들이 바로 민주시민이 갖춰야 할 기본 덕성이다.

기억할만한 부모의 십계명

이성근, 주세희 부부는 몽골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는 선교사이자, 악동뮤지션이라 불리는 이찬혁, 이수현의 부모다. 악동뮤지션은 K팝스타 시즌2에서 우승한 실력파 그룹인데, 악동뮤지션이 우승을 하고 나서 이들 부모의 교육 방식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그들이 <시사IN>을 통해 설명한 아이들 교육에 관한 열 가지 규칙은 기억할만하다. 아이들은 어른들, 특히 부모의 거울이다. 아이들이 훌륭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부모가 훌륭해야 한다. 물론, 부모가 반면교사일수도 있지만 말이다.

  1. 아이가 본래부터 지닌  최고의 가치를 존중해주고 지지해주자.
  2.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치자.
  3. 나이답게 키우자.
  4.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자.
  5. 부족함 속에서도 늘 만족할 수 있는 법을 가르치자.
  6. 부모가 좋은 관객이 되어주어야 한다.
  7. 아이들이 딴짓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
  8. 아이들도 스스로 댓가를 지불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9. 부모에게도 약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10.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자.

이름 없는 비석

그날, 제주의 하늘은 잔뜩 찌푸렸고 세찬 바람에 눈발까지 날렸다. 까마귀들이 눈발 속에서 울어대며 웃무드내 하늘을 빙빙 돌다가 나뭇가지에 앉았다. 을씨년스러웠다.

어떤 이들은 폭동이라 했고, 어떤 이들은 사건이라 했으며, 어떤 이들은 항쟁이라 했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죄없는 수많은 제주의 양민들이 미군과 정부군의 공격으로 살해되었다는 것이다. 아직도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그 희생들은 온전히 안식하지 못했다.

제주 4.3 ……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고 정권이 교체된 후에야 비로소 제주 4.3의 진상이 하나둘 밝혀졌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과거 국가 권력의 잘못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을 전하기 전까지 그들은 숨죽여 울지도 못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의 세월 속에서 그들은 처절하게 고립되어 있었다. 오로지 한라산 중산간의 바람과 까마귀 울음만이 그들과 함께 했다. 그 아픔과 절망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그 무고한 사람들의 영혼을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

제주 4.3 평화기념관 전시실 입구에 이름 없는 비석, 백비(白碑)가 놓여 있다. 그 비석 앞 팻말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씌여 있다.

“언젠가 이 비에
제주 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

제주는 세상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섬이지만, 그 섬에는 너무나 슬프고 아픈 역사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아픔과 슬픔이 여전히 온전하게 위로받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전시실을 나오면서 낮고 목메인 소리로 <잠들지 않는 남도>를 읖조리며 그들의 평안을 기도했다.

방랑 규칙

다음은 바쇼가 썼다고 전해지는 방랑 규칙이다.

  1. 같은 여인숙에서 두 번 잠을 자지 말고, 아직 덥혀지지 않은 이불을 기대하라.
  2. 몸에 칼을 지니고 다니지 말라. 그렇게 해서 살아있는 것을 죽이지 말라. 같은 하늘 아래 있는 어떤 것, 같은 땅 위를 걷는 어떤 것도 해치지 말라.
  3. 옷과 일용품은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소유하지 말라. 지나침은 좋지 않으며, 부족함만 못하다.
  4. 물고기든 새 종류이든 동물이든 육식을 좋아하지 말라. 특별한 음식이나 맛에 길들여지는 것은 저급한 행동이다. ‘먹는 것이 단순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을 기억하라.
  5. 남이 청하지 않는데 스스로 시를 지어 보이지 말라. 그러나 요청을 받았을 때는 결코 거절하지 말라.
  6. 위험하거나 불편한 지역에 가더라도 여행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꼭 필요하다면 도중에 돌아서라.
  7. 말이나 가마를 타지 말라. 자신의 지팡이를 또 하나의 다리로 삼으라.
  8. 술을 마시지 말라. 어쩔 수 없이 마시더라도 한 잔을 비우고는 중단하라.
  9. 온갖 떠들썩한 자리를 피하라.
  10. 다른 사람의 약점을 지적하거나 자신의 장점을 말하지 말라. 남을 무시하고 자신을 치켜세우는 것은 가장 세속적인 짓이다.
  11. 시를 제외하고는 온갖 잡다한 것에 대한 대화를 삼가라. 그런 잡담을 나눈 뒤에는 반드시 낮잠을 자서 자신을 새롭게 하라.
  12. 이성 간의 하이쿠 시인과 친하지 말라. 하이쿠의 길은 집중에 있다. 항상 자신을 잘 들여다보라.
  13. 다른 사람의 것은 바늘 하나든 풀잎 하나든 취해서는 안 된다. 산과 강과 시내에게는 오직 하나의 주인이 있다. 이 점을 유의하라.
  14. 산과 강과 역사적인 장소들을 방문하라. 하지만 그 장소들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된다.
  15. 글자 하나라도 그대를 가르치는 사람에게 감사하라. 자신이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면 가르치지 말라. 자신의 완성을 이룬 다음에야 비로소 남을 가르칠 수 있다.
  16. 하룻밤 재워 주고 한 끼 밥을 준 사람에 대해선 절대 당연히 여기지 말라. 사람들에게 아첨하지도 말라. 그런 짓을 하는 자는 천한 자이다. 하이쿠의 길을 걷는 자는 그 길을 걷는 사람들과 교류해야 한다.
  17. 저녁에 생각하고, 아침에 생각하라. 하루가 시작될 무렵과 끝날 무렵에는 여행을 중단하라. 다른 사람들에게 수고를 끼치지 말라. 그렇게 하면 그들이 멀어진다는 것을 명심하라.

<마쓰오 바쇼, 류시화 옮김, 바쇼 하이쿠 선집, pp. 391-393>

우리의 삶은 여행이고, 우리들은 모두 나그네다.

여행자라고
이름 불리고 싶어라
초겨울비

旅人と 我名よばれん 初しぐれ

11월의 쓸쓸한 비가 겨울을 재촉하고, 우리들은 겨울나그네가 된다.

시를 쓰는 법

하이쿠의 성인이라 불리는 마쓰오 바쇼는 시를 쓰는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나무에 대해선 소나무에게 배우고
대나무에 대해선 대나무에게 배우라.
그대 자신이 미리 가지고 있던 주관적인 생각을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생각을 대상에 강요하게 되고 배우지 않게 된다.
대상과 하나가 될 때 시는 저절로 흘러나온다.
그 대상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 안에 감추어져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 그 일이 일어난다.
아무리 멋진 단어들로 시를 꾸민다 해도
그대의 느낌이 자연스럽지 않고
대상과 그대 자신이 분리되어 있다면,
그때 그대의 시는 진정한 시가 아니라
단지 주관적인 위조품에 지나지 않는다.

<마쓰오 바쇼, 류시화 옮김, 바쇼 하이쿠 선집>

그대가 적을 사랑한다면

만약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나는 다른 사람들도 사랑할 수 없다. 만약 우리가 정말로 우리 자신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잘못되게 생각할 수 없고, 잘못되게 말할 수 없으며, 잘못되게 행동할 수 없다. 만약 그대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안다면, 그때 그대는 어디에도 미움을 가져오지 않는다. 마음은 모든 선과 악의 선두 주자이다. 마음은 정화되면 좋은 카르마를 창조한다. 마음이 오염되지 않으면 그대의 행위는 순수할 것이고 세상도 순수할 것이다.

자애는 사랑과 친절을 가져오고 그대를 건강하게 만든다. 만약 그대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한다면 그것은 그대 자신에게 좋은 일이다. 이 세상에서 증오는 결코 증오를 통해 중단되지 않는다. 오직 사랑을 통해서만 그것은 중단된다. 이것은 영원한 법칙이다. 미국의 사랑이 없고 인도의 사랑이 없다. 사랑에는 차이가 없다. 마음은 놀라운 힘이다. 그대의 온 존재에 사랑의 생각이 구석구석 스며들게 해 보라. 그대의 순수한 가슴으로부터 그것이 나오게 하라. 그대가 적을 사랑한다면 그대는 적이 없을 것이다. 이것이 유일한 길이다.

<미르카 크네스터, 마음에 대해 무닌드라에게 물어보라, p. 303>

지난 주말, 프랑스 파리에서 대규모 테러가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무닌드라의 법문을 읽는다.

마음과 사띠

아나가리카 무닌드라(Anagarika Munindra)는 마음과 사띠(Sati)는 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음은 본래 색깔이 없다. 그것이 욕망으로 물들 때 우리는 그것을 ‘탐욕스러운 마음’이라 부른다. 분노가 일어나는 순간 그것은 ‘화내는 사람’ 혹은 ‘화내는 마음’으로 불린다. 사띠(마음챙김)가 없으면 마음은 이 분노의 영향을 받는다. 분노는 마음을 오염시키는 본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독을 만든다. 그러나 마음은 분노가 아니며 분노는 마음이 아니다. 마음은 탐욕이 아니고 탐욕은 마음이 아니다. 이것을 기억하라. 마음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본성을 갖고 있지 않다. ‘마음’은 단지 ‘아는 능력’, ‘인식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미르카 크네스터, 마음에 대해 무닌드라에게 물어보라, p. 23>

무닌드라는 사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사띠(마음챙김)는 깨어 있음이고, 알아차림이고, 기억하는 것이고, 기민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잊지 않고 단지 알아차리고, 대상에 온 마음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의미한다. […] 사띠는 지금 이 순간에 생각과 말과 행동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망각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미르카 크네스터, 마음에 대해 무닌드라에게 물어보라, pp. 23-24>

순간순간을 온 마음으로 주의를 기울여 맑게 살 수 있다면 누구나 평안하고 행복할 수 있다. 이것이 붓다의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