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글쓰기

유시민이 쓴 책은 쉽고 유익하다. 그는 엄청난 연구의 산물로 책을 내지 않는다. 그는 이미 나와 있는 많은 이론이나 사실들을 잘 이해하고 요약하여 독자들에게 쉽게 전달한다. 그의 책이 쉽다고 해서 결코 깊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의 책은 쉽고 유익하고 재미있다.

유시민이 쓴 책을 거의 다 사서 읽는 편인데, 이번에 나온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은 글쓰기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책이라 하겠다. 그가 밝히는 글쓰기에 관한 영업기밀(취향과 주장의 구별, 주장은 반드시 논증, 주제에 집중)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좋은 글에 대한 기준(짧고 간결하며 군더더기 없는 글) 등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글을 잘 쓰려고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

유시민이 쓴 책을 거의 다 읽는 사서 이유는 그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처럼 재주있는 사람이 기회주의자가 아니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노무현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는 노무현을 지키기 위해 홀홀단신 정치에 투신했다. 그와 같이 자유주의 성향이 있는 사람은 정치를 좋아하지도, 정치를 직업으로 삼지도 않는다. 그런 그가 노무현을 지키기 위해 정치인이 되었다. 때문에 그에게는 마음의 빚이 있다. 그래서 그가 쓴 책은 꼭 사야 한다. (사실 노무현도 글쓰기에 관한 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정치인이었다.)

그는 몇 안 되는 단심을 지닌 정치인이었고, 정계은퇴한 지금은 지식소매상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글쟁이가 되었다. 그는 정치인이었을 때보다 지금 훨씬 더 자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노무현은 떠났지만, 유시민이라도 행복하게 살아야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의 고군분투는 처연하기까지 하다.)

유시민의 건투를 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1982년 부처님 오신 날, 성철 스님께서 내려 주신 “자기를 바로 봅시다”라는 법어는 불교의 핵심 진리를 담고 있다. 이 말씀만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다면, 아무 번뇌와 걱정 없이 이 세상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허나 불생불멸의 본래 자기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진리는 수천년 전에 완성되어 전해졌지만, 인간들은 여전히 탐욕만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원래 구원되어 있습니다.
자기는 본래 부처입니다.
자기는 항상 행복과 영광에 넘쳐 있습니다.
극락과 천당은 꿈속의 잠꼬대입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하고 무한합니다.
설사 허공이 무너지고 땅이 없어져도 자기는 항상 변함이 없습니다.
유형, 무형 할 것 없이 우주의 삼라만상이 모두 자기입니다.
그러므로 반짝이는 별, 춤추는 나비 등등이 모두 자기입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모든 진리는 자기 속에 구비되어 있습니다.
만일 자기 밖에서 진리를 구하면,
이는 바다 밖에서 물을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영원하므로 종말이 없습니다.
자기를 모르는 사람은 세상의 종말을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이리저리 헤매고 있습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본래 순금입니다.
욕심이 마음의 눈을 가려 순금을 잡철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나만을 위하는 생각은 버리고 힘을 다하여 남을 도웁시다.
욕심이 자취를 감추면 마음의 눈이 열려서,
순금인 자기를 바로 보게 됩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아무리 헐벗고 굶주린 상대라도 그것은 겉보기일 뿐,
본모습은 거룩하고 숭고합니다.
겉모습만 보고 불쌍히 여기면,
이는 상대를 크게 모욕하는 것입니다.
모든 상대를 존경하며 받들어 모셔야 합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현대는 물질 만능에 휘말리어 자기를 상실하고 있습니다.
자기는 큰 바다와 같고 물질은 거품과 같습니다.
바다를 봐야지 거품은 따라가지 않아야 합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요,
이 세상이 본래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 주려고 오셨습니다.
이렇듯 크나큰 진리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다 함께 길이길이 축복합시다.

<성철 스님, 자기를 바로 봅시다, 1982년 부처님 오신 날 법어>

벌써 1년

세월호 침몰로 꽃다운 아이들과 시민들 304명이 세상을 떠난지 벌써 1년이 되었다. 지난 1년간 이 땅의 그 누구도 평안과 위로를 누리지 못했다. 아니 누릴 수 없었다.

실종자 가족들은 팽목항에서 바다만 바라보고 하염없이 울었고, 희생자 유가족들은 삭발하고 농성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슬픔은 깊어졌고, 그 슬픔은 분노가 되었다. 분노가 절망이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세월호 침몰에 대한 진실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세상은 색을 잃었고, 끝없이 침잠했다. 무거운 공기만이 사나운 바람으로 휘몰아쳤고, 검은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세상 떠난 이들의 안식을 위해, 남겨진 자들의 치유를 위해 기도할 뿐이다. 하지만 진실이 잠겨있는 한, 안식과 치유는 가능하지 않다.

안식과 치유와 위로와 평안이 없는 잔인한 4월은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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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없다

타이페이에 가면 마오콩(Maokong)이라는 산이 있다. 마오콩은 한자로 猫空이라 하는데,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고양이는 없다’라는 뜻이다. 일설에 의하면, 정말 그 산 주변에 고양이가 없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이 그냥 꾸며낸 말이다. 산의 돌과 바위들이 산 위에서 내려오는 물 때문에 움푹움푹 파여있는데, 그런 지형을 타이완 말로 Niaokang이라 한다. 이것과 같은 발음을 가진 단어가 “고양이가 할퀸”이라는 뜻이 있었고, 그것을 중국 본토말로 바꾼 것이 바로 마오콩이란다.

아무튼 마오콩을 오르기 위해서 사람들은 대부분 곤돌라를 탄다. 우리 일행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곤돌라가 고장이 났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택시를 불러 산 위에 있는 마오콩역에 도착했다. 타이페이 전경이 눈에 들어오고, 저 멀리 쌩뚱맞은 101타워가 솟아 있었다.

근처 찻집에서 우롱차를 마셨다. 따뜻한 봄바람이 불었다. 저멀리 고장난 곤돌라는 가다서다를 반복했고, 곤돌라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버스와 택시로 제각기 산을 내려갔다. 저 아래 도교사원인 지남궁의 화려한 자태가 보인다.

모처럼만의 맑은 하늘이란다. 중국 억양이 섞인 영어로 젊은 안내인이 타이페이의 이모저모에 대해 설명한다. 푸른 하늘과 울창한 나무들과 싱그러운 바람과 따뜻한 차와 함께 나른한 오후를 만끽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타이페이의 봄날이었다.

나이 먹을수록 바라는 것은

17세기,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어느 수녀가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Lord, thou knowest better than I know myself that I am growing older and will some day be old. Keep me from the fatal habit of thinking I must say something on every subject and on every occasion. Release me from craving to straighten out everybody’s affairs. Make me thoughtful but not moody; helpful but not bossy. With my vast store of wisdom it seems a pity not to use it all, but Thou knowest Lord, that I want a few friends at the end.

Keep my mind free from the recital of endless details; give me wings to get to the point. Seal my lips on my aches and pains. They are increasing and love of rehearsing them is becoming sweeter as the years go by. I dare not ask for grace enough to enjoy the tales of other’s pains, but help me to endure them with patience. I dare not ask for improved memory, but for a growing humility and a lessening cocksureness when my memory seems to clash with the memories of others. Teach me the glorious lesson that occasionally I may be mistaken.

Keep me reasonably sweet; I do not want to be a saint-some of them are so hard to live with-but a sour old person is one of the crowning works of the Devil. Give me the ability to see good things in unexpected places and talents in unexpected people. And, give me, O Lord, the grace to tell them so. Amen.

<Seventeenth Century Nun’s Prayer>

나이 먹을수록 바라는 것은 겸손하고, 사려깊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며, 따뜻하고, 너그럽고, 되도록 침묵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말수를 줄이고, 참견하지 않고, 군림하지 않고, 유연하게 타인을 받아들이고 싶다.

욕망을 줄이고, 삶을 보다 단순하고 간소하게 꾸려나가길 기도한다.

예수의 기도

흔히 기독교에서 “주님의 기도”로 알려져 있는 예수가 가르친 기도문이다. 마태복음 6장 9절에서 13절에 나와 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으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이 세상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소서.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우리가 용서해 준 것처럼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우리들을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으로부터 구원해 주소서.

Our Father in heaven, may your name be kept holy. May your Kingdom come soon. May your will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Give us today the food we need, and forgive us our sins, as we have forgiven those who sin against us. And don’t let us yield to temptation, but rescue us from the evil one.

<마태복음 6:9-13>

법(法)의 정의

법(또는 법률)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 보면, 법이란 사회 질서 유지와 정의 실현을 위해 국가가 공권력을 동원하여 강제하는 일종의 사회 규범이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법은 이런 사전적 정의와는 거리가 있다.

아일랜드의 극작가인 찰스 맥클린(Charles Macklin)은 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법이란 속임수(또는 말장난)의 과학이다. 당신의 면전에서는 웃으면서 당신의 주머니를 뒤진다.

The law is a sort of hocus-pocus science, that smiles in your face while it picks your pocket.

이 말은 농담 같지만, 법의 본질을 비교적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현실에서의 법을 다시 정의해 보면, “법이란 법조인들이 (자신들을 포함한)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제정하고, 해석하고, 집행하는 강제력이 동원된 술책”이다. 따라서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하다”고 얘기하는 것은 피지배계급을 기만하는 무의미한 당위일 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법조인이다. 법조인들은 법과 관련된 일을 하는 전문가 집단을 일컫는데, 여기에는 판사, 검사, 변호사 등이 포함된다. 법을 만드는 입법권은 국회의원에게 있지만, 국회의원들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집단이 법조인들이다. 또한,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의 수장이나 장관들도 법조인이 많으며, 사법부는 100% 법조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민주주의는 삼권분립을 기초로 서로의 권력을 견제한다고 되어 있지만, 이것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허위일 가능성이 높다. 대개 법은 법조인들을 주축으로 제정되고, 법조인들이 법을 해석하여 위법 여부를 판단하며, 법조인들이 지휘하는 행정부가 집행을 한다. 따라서 삼권분립의 원리라는 것은 법조인에 의한, 법조인을 위한, 법조인의 정치제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검사는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한을 독점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수사권과 기소권이다. 아무리 엄청난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검사가 기소하지 않으면 죄가 아니고 처벌되지 않는다. 설령, 검사가 기소하였다 하더라도 판사가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무죄를 내리면 처벌할 수 없다. 반대의 경우,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검사가 기소를 하고 판사가 법을 어겼다고 판결하면 사형을 당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박정희 정권 하에서의 인혁당 사건은 독재 정권과 결탁한 법조인들이 합법을 가장한 살인을 저지른 경우이다.

문제는 이런 법조인들의 도덕성이나 가치 판단이 일반 국민들의 평균적인 수준보다 전혀 높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간혹가다 존경을 받을만한 법조인들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극히 예외적이라 할 수 있다.

법조인들은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는다. 대부분 사법고시를 합격한다든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을 통과하여 법조인이 되는데, 이들 대부분은 기존에 형성된 질서를 수호하고 지배계급의 이익에 복무한다. 따라서 대개의 법조인들은 보수적이거나 수구적이다.

결국 이런 시스템 하에서 일반 국민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착하고 선한 법조인을 만나길 기도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지극히 좋은 운을 타고 나야 일어나는 일이고, 대부분은 그들의 처분만을 묵묵히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아버지는 당신의 아들이 법조인이 되길 바라셨지만, 속세의 이치가 무엇인지 잘 몰랐던 아들이 그것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행운이었다. 훗날, 그 선택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깨닫고 그 아들은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또 하나의 증거

죽음에 대해 선지자(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 이븐 알렉산더 등)들이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수호천사>를 쓴 로나 번도 죽음에 관한 진실을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우리 대부분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죽음의 순간에 고통과 불편함은 없다. 어떤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고통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고 나면 아무것도 없다. 두려움도 불안도 없다. 당신은 자유롭게 간다. 죽음은 탄생과 같다. 이상한 말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당신은 새로운 삶으로 다시 태어난다. 당신은 실제로 죽지 않는다. 당신이 떠나는 것은 단지 이 물질적인 껍질뿐이다. 마치 텅 빈 계랸 껍질처럼. <중략>

많은 시간 우리는 정의와 복수를 찾는다. 그런 우리가 이해하기란 매우 힘들겠지만, 죽음 이후 신 앞에 서는 순간, 우리의 영혼은 너무도 큰 사랑은 물론 신과 함께 있고 싶은 욕망을 느껴 그곳에 머무르고 싶어 한다. 그리고 매우 깊이 그리고 진정한 방식으로 용서를 구한다. 인간 조건의 연약함에서 기인해 이 지구에서 행한 모든 것에 대한 용서를. 그러면 신은 무한한 자비로 자신의 자녀들을 용서한다. 우리 모두는 신의 현존 안에 있는 아이들일 뿐이다.

당신의 영혼은 완전하다. 당신의 영혼이 육체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그 영혼은 우주를 통과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장소들로 여행한다. 얼마나 황홀한 기분일지 당신이 이해할 수 있도록 내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달리 표현할 방법은 없다. 당신 자신이 그것을 경험하기 전에는 말해 줄 방법도 없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그것을 경험하기 위해 죽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로나 번, 수호천사, pp. 286-287>

이런 증거들이 계속 쌓이기에,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을 슬퍼하거나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공감과 울림을 주는 말들

1. 채현국 선생이 며칠 전 진주에서 강연을 하셨다. 그는 “시시한 삶만이 확실하게 행복한 삶“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강연을 마쳤다.

“소박한 마음만 회복하면 된다, 삶 자체는 기적이다, 독을 어떻게 빼어내느냐는 문제다. 삶의 기적이 우리로 하여금 발효가 되고, 아름답고 좋은 포도주가 되게 할 것이다. 모른다는 생각부터 하면 된다. 모르는 게 아니고 안 하는 것이다. 소박한 마음을 회복하면 훌륭한 삶이 된다. 자기 자신을 예쁘게 봐주는 것부터 하면 된다.”

<“노인 봐주지 말라는 말은 젊은이들 속지 말라는 뜻”, 오마이뉴스>

글로벌 리더가 되겠다는 우리 아이들이 한 번쯤 되새겨볼 귀한 말씀이다. 리더보다는 확실히 평범한 민초가 훨씬 행복하다. 물론, 기회주의자인 리더가 되겠다면 또 다른 얘기지만 말이다.

2. 호주 아시안컵 결승전을 마치고 슈틸리케 감독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다수 선수들이 학교에서 축구를 배운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선수들에게 승리하는 법을 가르칠 뿐 축구를 즐기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슈틸리케 일문일답 “우리 선수들 자랑스러워해도 됩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축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 전체의 문제다. 우리나라 교육은 언제부터인가 본질을 가르치지 않고 항상 (짧은 기간 안에)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만을 가르친다. 어떻게 하면 문제를 잘 풀고, 어떻게 하면 시험을 잘 볼 수 있는지를 가르친다. 우리나라 교육은 어떻게 하든 다른 친구들과의 경쟁에서 이겨,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잡고 출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실 이것은 교육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민망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교육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정글 시스템 안에서 아무 죄도 없는 아이들이 꿈을 잃고 삶의 목표도 없이 공부하는 기계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와 부모들이 작당하여 아이들을 인질로 만든 추악하고 불행한 비극이고, 소수 몇몇을 제외하고 거의 대다수 국민들을 노예로 만드는 것이다.

이 땅의 기성세대들은 슈틸리케 감독의 일침을 깊이 새겨야할 것이다.

수호천사

로나 번이 쓴 <수호천사>에는 천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간단한 방법이 나온다.

“나는 내가 하는 모든 일마다 나의 천사들이 나와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이 간단한 요청이 천사들에게 우리를 도울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수호천사의 도움이 필요할 때 이런 기도를 해 보자. 그리하면 누구든지 천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