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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IT & Science

샤오미 미밴드 효과

샤오미 미밴드 효과

주위에 스마트 밴드나 스마트 시계를 차고 다니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 이런 종류의 기기에 대해 큰 기대는 없었다. 귀찮게 그런 걸 차고 다니나 그런 정도의 생각이었다.

6월 말에 샤오미 미밴드2를 샀다. 샤오미 미밴드를 사게 된 이유는 우선 저렴하고, 하루에 몇 걸음을 걸었는지 측정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상과는 다르게 샤오미 미밴드가 의외의 효과를 가져왔다. 매일 몇 걸음을 걸었는지가 기록이 되기 때문에 오늘 10,000보를 꼭 걸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되었다. 이런 동기부여 효과를 “샤오미 미밴드 효과”라고 부르고 싶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떤 때는 피곤하거나 귀찮기 때문에 아침 운동을 거르기도 하는데, 미밴드가 생기고 난 다음에는 귀찮아도 아침 운동을 꼭 하게 된다. 왜? 10,000보 이상을 걸어야 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야 하기 때문에.

지난 12일 동안 하루 평균 13,000보, 거리로는 10Km 정도를 걸었다. 건강에 큰 도움이 되었다. 무엇이든 성과를 내려면 우선 현재 상태를 알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 상태를 측정하여 데이터로 남겨야 한다. 샤오미 미밴드를 사용하면서 다시 확인한 깨달음이다.

기계가 사람처럼 생각할 수 있을까

기계가 사람처럼 생각할 수 있을까

바둑이라는 게임에서 인간이 공식적으로 기계를 이길 수 없음이 증명되자, 사람들은 기계가 인간을 지배할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하기 시작한다.

데카르트는 이미 380년 전에 그의 책 <방법서설(Discourse on the Method)>에서 기계가 사람처럼 이성을 가질 수 없다고 주장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여기서 나는 다음과 같은 것을 분명히 하려고 했다. 즉 원숭이나 이성이 없는 다른 동물들과 똑같은 기관과 모양을 가진 기계가 있다면, 이 기계가 저 동물과 동일한 본성을 갖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어떠한 수단도 우리에게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 신체와 비슷하고, 우리 행동을 가능한 한 흉내낼 수 있는 기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진정한 인간일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아주 확실한 두 가지 수단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첫째, 그 기계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우리 생각을 알게 할 때처럼, 말을 사용하거나 다른 기호를 조립하여 사용하는 일이 결코 없다는 것이다. 물론 기계가 말을 할 수 있도록, 나아가 그 기관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 물질적 작용에 따라 어떤 말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질 수 있다. 가령 어디를 만지면 무슨 일이 일이냐고 묻는다든가, 혹은 다른 곳을 만지면 아픈 소리를 지른다든가 하는 것 등이다. 그러나 그 기계는 자기 앞에서 말해지는 모든 의미에 대해 대답할 정도로 말들을 다양하게 정돈할 수 없지만, 아무리 우둔한 사람이라도 그런 것을 할 수 있다. 둘째는, 그 기계가 우리 못지 않게 혹은 종종 더 잘 많은 일을 처리한다고 하더라도, 역시 무언가 다른 일에 있어서는 하지 못하는 일이 있으며, 이로부터 그 기계는 인식이나 이해가 아니라 기관의 배치에 의해서만 움직인다는 것이 드러난다. 왜냐하면 이성은 모든 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보편적인 도구인 반면에, 이 기계가 개별적인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이에 필요한 개별적인 배치가 기관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지만, 우리 이성이 우리에게 행동하게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삶의 모든 상황에서 행동하기에 충분한 다양한 배치가 한 기계 속에 있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I worked especially hard to show that if any such machines had the organs and outward shape of a monkey or of some other animal that doesn’t have reason, we couldn’t tell that they didn’t possess entirely the same nature as these animals; whereas if any such machines bore a resemblance to our bodies and imitated as many of our actions as was practically possible, we would still have two very sure signs that they were nevertheless not real men. (1) The first is that they could never use words or other constructed signs, as we do to declare our thoughts to others. We can easily conceive of a machine so constructed that it utters words, and even utters words that correspond to bodily actions that will cause a change in its organs (touch it in one spot and it asks ‘What do you mean?’, touch it in another and it cries out ‘That hurts!’, and so on); but not that such a machine should produce different sequences of words so as to give an appropriately meaningful answer to whatever is said in its presence—which is something that the dullest of men can do. (2) Secondly, even though such machines might do some things as well as we do them, or perhaps even better, they would be bound to fail in others; and that would show us that they weren’t acting through understanding but only from the disposition of their organs. For whereas reason is a universal instrument that can be used in all kinds of situations, these organs need some particular disposition for each particular action; hence it is practically impossible for a machine to have enough different organs to make it act in all the contingencies of life in the way our reason makes us act.

요즘 기계들은 사람처럼 말을 하고 사람의 말을 알아 듣는(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사람처럼 행동한다 해도 그것은 그렇게 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지, 그것들이 의미를 이해하고 하는 것은 아니다.

알파고가 이세돌이나 커제를 이길 수 있는 것은 그렇게 하도록 프로그램되었기 때문이다. 알파고가 바둑이라는 놀이가 역사적으로나 철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하고 알 수도 없다.

인간의 특정 부분을 흉내낼 수 있는 기계를 만들 수는 있지만, 인간과 같은 기계를 만들 수는 없다. 현재까지의 결론은 진정한 의미의 튜링 기계(인공지능)는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하염없이 달만 바라보다

하염없이 달만 바라보다

새벽 5시에 잠을 깼다. 운동을 하러 밖으로 나갔는데 오늘 따라 뭔가 다른 에너지를 느꼈다. 밤이 길어져서 아침 해는 날마다 늦게 뜨는데, 어제보다 더 밝아진 새벽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순간, 아파트 건물 사이로 엄청나게 큰 달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태어나서 본 보름달 중 가장 큰 달이었다. 그 달이 쏟아내는 빛에 한동안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저렇고 크고 밝고 아름다운 달을 볼 수 있다니,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동이 밀려왔다. 새벽 운동을 해야된다는 생각은 잊어버리고 하염없이 달만 바라보았다.

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오늘 뜬 이 달이 68년만에 가장 큰 보름달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슈퍼문(Super Moon)이라 불렀다. 달은 지구 주위를 타원으로 돌고 있는데, 지구와 가장 가까워졌을 때 볼 수 있는 보름달이란다. 달은 평소보다도 몇만 km나 지구와 가까워졌고, 30%나 더 밝은 빛을 지구로 보내고 있었다.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아침 일찍 일어나 평생 가장 크고 밝은 달을 보다니 운이 몹시 좋은 날이었다. 자연에 대한 경이와 감사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68년만에 가장 큰 보름달
68년만의 가장 큰 보름달
아이패드 키보드 한영전환

아이패드 키보드 한영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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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패드 미니(iPad Mini)를 사용하다가 키보드가 필요하여 Logitech Ultrathin Keyboard Cover를 구입했다. 그런데 iOS 9으로 판올림한 후 한영전환 키가 작동을 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다. 아이패드에 입력을 자유롭게 하려고 키보드를 사용하는 것인데, 한영전환이 자유롭지 않으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이것 저것 구글링을 하다가 알아낸 것은 Ctrl+Space를 사용하면 된다는 것인데, 이 키보드에는 Ctrl 키가 없다. 어떤 글에는 Shift+Command+Space를 사용하면 된다고 나와 있는데, 이것도 해결책이 아니었다.

한동안 키보드를 사용하지 않다가 며칠 전 iOS 10으로 판올림한 후 다시 한 번 이 문제에 도전하였다. 그리하여 알아낸 결과는 바로 Function+Caps Lock이다. Function 키와 Caps Lock 키를 동시에 누르니 이전처럼 한영전환이 자유롭게 되었다.

이 기능을 사용하려면, iOS 10에서 Settings > General > Keyboard > Hardware Keyboard > Caps Lock Switch to/from Latin 을 켜주어야 한다. 간단한 것인데 알아내기 쉽지 않은 것들이 있다.

아이패드 미니를 위한 Logitech Ultrathin Keyboard Cover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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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e서재

우리집 e서재

그동안 사모은 책들이 방안에 한가득이다. 가끔은 이 책들을 정리해서 조그마한 도서관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하는데, 워낙 천성이 게을러서 엄두도 내지 못한다.

책목록을 만들 요량으로 엑셀을 열어 책의 이름과 저자, 출판사 등을 넣어 볼까 생각했는데, 책이 너무 많아 포기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국립중앙도서관 웹사이트를 가게 되었고, 우리집 e서재라는 서비스를 발견하게 되었다.

집에 있는 책의 목록을 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인데, 우리나라 국립중앙도서관이 국민들을 위해 이런 서비스를 하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더 기막힌 것은 국립중앙도서관 스마트폰 앱을 사용하면 바로 바코드 스캔으로 책의 정보를 입력시킬 수 있고, 나중에 엑셀 파일로 내려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시험 삼아 책상에 나뒹구는 책 몇 권을 바코드 스캔으로 입력해 보았다. ISBN을 자동으로 인식하고, 한국십진분류코드까지 생성해냈다. 스마트폰의 앱을 통해 책에 대한 서평까지 입력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서비스를 계획하고 개발한 국립중앙도서관에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 이런 서비스가 꾸준히 유지되어 우리나라 독서문화 발전에 큰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집e서재

마음은 뇌의 산물인가

마음은 뇌의 산물인가

오늘날 많은 신경과학자(혹은 뇌과학자)들은 인간의 마음 또는 의식이 뇌의 활동으로 생겨난다고 믿고 있다. 뉴런과 시냅스의 패턴을 연구하면, 첨단 장비로 뇌 영상을 찍어 보면, 마음이나 의식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알 수 있을까?

지난 번에 얘기했듯이, 과학자들은 생명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 마찬가지로 과학자들은 마음이나 의식에 대해서도 정의하지 못한다. 마음이나 의식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서, 그것이 뇌 활동의 산물인지는 어떻게 단정할 수 있을까?

물리요법가이자 UCLA 신체운동학 교수였던 발레리 헌트(Valerie Hunt)는 인간의 두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두뇌를 인간과 세계 사이의 관계에 중요한 요소라고 너무 지나치게 과대평가해왔다고 생각한다. 두뇌는 단지 정말 훌륭한 컴퓨터일 뿐이다. 하지만 창조성, 상상력, 영성 등의 모든 것과 관계되는 마음의 측면들을 두뇌 속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마음은 두뇌가 아니다. 마음은 바로 이 에너지 장 속에 있다.”

<마이클 탤보트, 홀로그램 우주, 정신세계사, p. 273>

아무리 좋은 현미경으로 신을 볼 수 없듯이, 인간의 과학으로 뇌를 아무리 연구해도 마음이나 의식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몸이 ‘참나’가 아니 듯이, 우리의 뇌가 마음이나 의식은 아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

한 유명한 생명과학자(혹은 생물학자)의 강연에 갔다가, 질문 기회를 얻어 생명이란 무엇인지 물어 보았다. 그는 잠시 당황하더니 생물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얘기를 했다. 세포로 구성되어 있고, 물질대사를 하고, 자극에 대해 반응하고 항상성을 유지하며, 발생, 생장, 생식, 유전, 적응과 진화를 하는 개체라고 말이다.

그것은 생명의 특성을 나열한 것이지, 생명의 정의는 아니다. 그가 말한 생명의 특성도 모든 생명체에 적용되지 않는다. 바이러스는 살아 있는 생명체인가? 수 년의 동면 기간 동안에 먹지도 않고 성장하지도 않는 아르테미아 새우는? 아름다운 조직으로 성장하고 복제하는 수정은?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하지만, 그 경계는 모호하다. 과학계에서 일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생명에 대한 면밀한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많은 학자들이 생명에 대한 수십 가지의 정의를 내렸지만, 그 어느 것도 생명이 무엇인지 명쾌히 설명하지 못했다. (Tsokolov, S. A., 2009, “Why is the definition of life so elusive? Epistemological considerations,” Astrobiology, Vol. 9, No. 4, pp. 401-412.)

그러던 중, <그리스도의 편지>를 읽다가 다음 구절에서 전율하였다.

우주에는 견고한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다양한 ‘의식의 상태’를 현상화시켜 보여주고 있는 것임을, 그리고 그 의식의 상태가 ‘티끌들의 아물거림’의 조직과 형상을 결정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모든 외적 형태란 내적 의식의 표현물이었다.

[생명]과 [의식]은 하나이고 같은 것임을 깨달았다.

“이것은 [생명]이다”라거나, “저것은 [의식]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의식은 곧 생명이었고, 생명은 곧 의식이었다. 그리고 그 둘을 만들어낸 ‘창조적 권능‘은 우주의 배후와 그 속과 그 너머에 있는 [신성한 우주심](Divine Universal Mind)이었다.

I realized there was nothing solid in the universe, everything visible was manifesting a differing ‘state of consciousness’ which determined the composition and form of the ‘shimmer of motes’.

Therefore, all outer form was an expression of the inner consciousness.

LIFE and CONSCIOUSNESS, I realized, were one and the same thing.

It was impossible to say ‘This is LIFE’ and ‘That is CONSCIOUSNESS’.

Consciousness was Life, and Life was Consciousness and was the ‘Creative Power’ of both; DIVINE UNIVERSAL MIND’ beyond, within and behind the universe.

<그리스도의 편지, 정신세계사, p. 44>

이 책을 통해 “생명은 의식이다”는 언명이 가장 정확한 생명의 정의임을 알 수 있었다. 물론 물질 세계만을 다루는 과학자들은 동의하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