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wsed by
Category: Life

주산지의 가뭄

주산지의 가뭄

여름은 아무도 모르게 다가와 스며들었다. 정수리 위의 태양이 연일 뜨거운 볕을 내뿜었다. 지난 2주 동안 한방울의 비도 오지 않았다. 땅이 갈라지고 작물은 메말라 농민들의 속은 타들어갔다. 몇 년 전부터 6월의 장마는 자취를 감췄다. 기상청은 마른장마라고 얘기하지만, 비가 오지 않는 것을 장마라 일컫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삼백 년 동안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았다던 경북 청송의 주산지도 바닥을 드러냈다. 수백 년을 물 속에 잠겨 있었던 왕버들의 무수한 잔뿌리가 하염없이 말라갔다. 신비롭고 고혹스러웠던 주산지의 풍광이 옛모습을 잃었다.

자연이 허락하지 않으면 인간들은 살 수가 없다. 더욱 겸허한 마음으로 온천지에 비를 내려달라고 빌어볼 요량이다. 그리하면 그 정성이 하늘에 닿아 그 마음을 받아주시지 않을까. 주말에는 제법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다. 그 비로 대지의 메마름이 조금이나마 걷히길 빌어본다.

소년들은 쉬이 늙고

소년들은 쉬이 늙고

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

학문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년들은 쉬이 늙었다. 돌아보니 30년이 흘렀다. 30년 전에는 모두들 까까머리 소년들이었는데 이제는 삶의 무게 앞에 힘겨워하는 장년의 아재들이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만 진학하면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세상은 대체로 비루하였고, 희망 따위는 너무 아득하여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 하루하루를 잘 버티고 견디어 30년을 살아냈으니, 그 소년들이 어찌 대견하다 하지 않겠는가. 소년들이여, 수고 많았다. 그대들의 고단함을 위로하며 박수를 보낸다.

이제 소년들은 그들이 비판했던 기성세대가 되었고, 꼰대가 되었다. 남은 삶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꾸역꾸역 건강하게 살길 바란다. 그러다 보면 삶의 무게가 저절로 사라지는 날이 올지 누가 알겠는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

세상에 태어난 이유

간밤에 내린 비로 나무에서 물비린내가 났다. 상쾌하고 촉촉한 6월의 아침, 딸아이가 생일 축하 카드를 보냈다.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세상을 지배하는 궁극의 원리가 사랑임을 깨닫고 이 삶이 다하는 날까지 그 사랑을 나누며 사는 것은 아닌지… 딸아이가 보내 준 카드가 문득 그것을 일깨운다.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 딸아!

휘게 10계명

휘게 10계명

  1. 분위기: 조명을 조금 어둡게 한다.
  2. 지금 이 순간: 현재에 충실한다. 휴대전화를 끈다.
  3. 달콤한 음식: 커피, 초콜릿, 쿠키, 케이크, 사탕. 더 주세요!
  4. 평등: ‘나’보다는 ‘우리’. 뭔가를 함께하거나 TV를 함께 본다.
  5. 감사: 만끽하라. 오늘이 인생 최고의 날일지도 모른다.
  6. 조화: 우리는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당신을 좋아한다. 당신이 무엇을 성취했든 뽐낼 필요가 없다.
  7. 편안함: 편안함을 느낀다. 휴식을 취한다. 긴장을 풀고 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8. 휴전: 감정 소모는 그만. 정치에 관해서라면 나중에 얘기한다.
  9. 화목: 추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관계를 다져보자.
  10. 보금자리: 이곳은 당신의 세계다. 평화롭고 안전한 장소다.

<마이크 비킹, 휘게 라이프, 위즈덤하우스, 2016, pp. 32-33>

덴마크 사람들의 행복은 휘게(Hygge)에서 나온다. 휘게는 간소하고 편안하고 따뜻하고 안전하고 평화로운 느낌이다.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마치 태아가 엄마 뱃속에서 느끼는 바로 그러한 아늑함이다. 모든 불필요로부터 자유로와지는 것, 그리하여 더이상 욕망할 것이 없는 상태가 휘게일 것이다. 행복한 삶이란 지금 이 순간 휘게에 빠지는 것이다.

삶의 역설

삶의 역설

삶이란 인간의 앎과 소유가 실체 없는 허위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 당위적 과정인데, 실제 일생 동안 그것을 깨닫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삶의 역설이다. 따라서 삶이란 인간들이 스스로 만든 관념의 허위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다 끝내버리는 고통의 연속으로 다시 정의될 수 있다. 고은의 시는 그런 사실을 건조하고 앙상하게 드러낸다.

비록 우리가 가진 것이 없더라도
바람 한 점 없이
지는 나무 잎새를 바라볼 일이다
또한 바람이 일어나서
흐득흐득 지는 잎새를 바라볼 일이다
우리가 아는 것이 없더라도
물이 왔다가 가는
저 오랜 썰물 때에 남아 있을 일이다
젊은 아내여
여기서 사는 동안
우리가 무엇을 가지며 무엇을 안다고 하겠는가
다만 잎새가 지고 물이 왔다가 갈 따름이다

<고은, 삶>

블로그 10년

블로그 10년

블로그를 시작한지 10년이 되었다. 블로그를 통해 그동안 많은 말을 했다. 슬픔과 분노와 비난을 토하기도 했고,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을 노래하기도 했다. 그 말들이 서로 뒤섞여 지난 10년의 흔적을 이곳에 새겼다.

흔적 없는 삶을 욕망하면서 흔적을 남기는 역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모든 욕망을 놓아버리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삶을 바랄 수 있을까?

삶이 허락되는 한, 블로그는 지속될 것이고 흔적은 남을 것이다. 새로운 10년은 더 간소하고 담백하게 살아보련다. 물처럼, 바람처럼, 구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