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亦雪)과 역설(逆說)

북쪽에서 온 눈보라는 사정없이 휘몰아쳤다. 흰 눈 속의 강산과 마을은 하릴없이 적막했고, 거센 찬바람만이 옷섶을 파고들었다. 이런 날씨에 친구를 찾기 위해 남도까지 왔다고 하면 모두들 정신나갔다고 하겠지만, 우리는 지난 날 그가 보여 준 따스한 정이 사무치게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아무런 흔적 없는 눈 덮인 들판을 지나 동네 어귀에 이르자, 인적은 보이지 않고 개들만 컹컹 짖었다. 춥고 을씨년스러운 겨울날, 눈보라 속에 10년 전 세상을 달리한 친구가 잠들어 있을만한 곳을 더듬더듬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에 한 자의 눈이 쌓여 있었다. 둥근 봉분 안에 잠들어 있을 친구와 10년의 세월을 뒤로 한 채 달려온 여덟 명의 동기들은 저마다의 시간을 추억하였다. 10년이라는 세월은 슬픔보다는 아련함을 남겼다.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가 살아 남은 녀석들을 뭉치게 하는 것은 하나의 역설이었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이었고, 그 선물은 마법처럼 1년에 한 번씩 우리를 만나게 했다.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건만, 30년 전의 싱그러운 청춘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우리들의 넋두리는 눈 내리는 허공으로 흩어졌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뒤로 한 채 우리들은 기약없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삶은 그렇게 지속된다.

기억할만한 부모의 십계명

이성근, 주세희 부부는 몽골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는 선교사이자, 악동뮤지션이라 불리는 이찬혁, 이수현의 부모다. 악동뮤지션은 K팝스타 시즌2에서 우승한 실력파 그룹인데, 악동뮤지션이 우승을 하고 나서 이들 부모의 교육 방식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그들이 <시사IN>을 통해 설명한 아이들 교육에 관한 열 가지 규칙은 기억할만하다. 아이들은 어른들, 특히 부모의 거울이다. 아이들이 훌륭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부모가 훌륭해야 한다. 물론, 부모가 반면교사일수도 있지만 말이다.

  1. 아이가 본래부터 지닌  최고의 가치를 존중해주고 지지해주자.
  2.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치자.
  3. 나이답게 키우자.
  4.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자.
  5. 부족함 속에서도 늘 만족할 수 있는 법을 가르치자.
  6. 부모가 좋은 관객이 되어주어야 한다.
  7. 아이들이 딴짓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
  8. 아이들도 스스로 댓가를 지불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9. 부모에게도 약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10.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자.

영웅

Some people don’t believe in heroes, but they haven’t met my dad.

사람들은 영웅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 아빠를 만난 적이 없다.

딸아이가 보내온 생일카드에 적혀 있는 이 말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예쁜 딸을 가진 아빠는 누구나 영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영웅이 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지만, 세상에 단 한 사람을 위해 영웅이 될 수도 있겠지. 사랑한다, 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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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생에 태어나도

어버이날 아침, 사랑하는 딸에게서 온 카드 한 장에 눈시울을 붉혔다. “다음 생에 태어나도 꼭 엄마 아빠 딸로 태어나겠다”는 그 말 한마디에 세상은 아니 우주는 아름다운 사랑의 빛으로 눈부셨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딸아. 사랑은 우주를 지배하는 궁극의 법칙이니까.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어버이날

자기를 바로 봅시다

1982년 부처님 오신 날, 성철 스님께서 내려 주신 “자기를 바로 봅시다”라는 법어는 불교의 핵심 진리를 담고 있다. 이 말씀만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다면, 아무 번뇌와 걱정 없이 이 세상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허나 불생불멸의 본래 자기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진리는 수천년 전에 완성되어 전해졌지만, 인간들은 여전히 탐욕만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원래 구원되어 있습니다.
자기는 본래 부처입니다.
자기는 항상 행복과 영광에 넘쳐 있습니다.
극락과 천당은 꿈속의 잠꼬대입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하고 무한합니다.
설사 허공이 무너지고 땅이 없어져도 자기는 항상 변함이 없습니다.
유형, 무형 할 것 없이 우주의 삼라만상이 모두 자기입니다.
그러므로 반짝이는 별, 춤추는 나비 등등이 모두 자기입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모든 진리는 자기 속에 구비되어 있습니다.
만일 자기 밖에서 진리를 구하면,
이는 바다 밖에서 물을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영원하므로 종말이 없습니다.
자기를 모르는 사람은 세상의 종말을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이리저리 헤매고 있습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본래 순금입니다.
욕심이 마음의 눈을 가려 순금을 잡철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나만을 위하는 생각은 버리고 힘을 다하여 남을 도웁시다.
욕심이 자취를 감추면 마음의 눈이 열려서,
순금인 자기를 바로 보게 됩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아무리 헐벗고 굶주린 상대라도 그것은 겉보기일 뿐,
본모습은 거룩하고 숭고합니다.
겉모습만 보고 불쌍히 여기면,
이는 상대를 크게 모욕하는 것입니다.
모든 상대를 존경하며 받들어 모셔야 합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현대는 물질 만능에 휘말리어 자기를 상실하고 있습니다.
자기는 큰 바다와 같고 물질은 거품과 같습니다.
바다를 봐야지 거품은 따라가지 않아야 합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요,
이 세상이 본래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 주려고 오셨습니다.
이렇듯 크나큰 진리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다 함께 길이길이 축복합시다.

<성철 스님, 자기를 바로 봅시다, 1982년 부처님 오신 날 법어>

벌써 1년

세월호 침몰로 꽃다운 아이들과 시민들 304명이 세상을 떠난지 벌써 1년이 되었다. 지난 1년간 이 땅의 그 누구도 평안과 위로를 누리지 못했다. 아니 누릴 수 없었다.

실종자 가족들은 팽목항에서 바다만 바라보고 하염없이 울었고, 희생자 유가족들은 삭발하고 농성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슬픔은 깊어졌고, 그 슬픔은 분노가 되었다. 분노가 절망이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세월호 침몰에 대한 진실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세상은 색을 잃었고, 끝없이 침잠했다. 무거운 공기만이 사나운 바람으로 휘몰아쳤고, 검은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세상 떠난 이들의 안식을 위해, 남겨진 자들의 치유를 위해 기도할 뿐이다. 하지만 진실이 잠겨있는 한, 안식과 치유는 가능하지 않다.

안식과 치유와 위로와 평안이 없는 잔인한 4월은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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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먹을수록 바라는 것은

17세기,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어느 수녀가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Lord, thou knowest better than I know myself that I am growing older and will some day be old. Keep me from the fatal habit of thinking I must say something on every subject and on every occasion. Release me from craving to straighten out everybody’s affairs. Make me thoughtful but not moody; helpful but not bossy. With my vast store of wisdom it seems a pity not to use it all, but Thou knowest Lord, that I want a few friends at the end.

Keep my mind free from the recital of endless details; give me wings to get to the point. Seal my lips on my aches and pains. They are increasing and love of rehearsing them is becoming sweeter as the years go by. I dare not ask for grace enough to enjoy the tales of other’s pains, but help me to endure them with patience. I dare not ask for improved memory, but for a growing humility and a lessening cocksureness when my memory seems to clash with the memories of others. Teach me the glorious lesson that occasionally I may be mistaken.

Keep me reasonably sweet; I do not want to be a saint-some of them are so hard to live with-but a sour old person is one of the crowning works of the Devil. Give me the ability to see good things in unexpected places and talents in unexpected people. And, give me, O Lord, the grace to tell them so. Amen.

<Seventeenth Century Nun’s Prayer>

나이 먹을수록 바라는 것은 겸손하고, 사려깊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며, 따뜻하고, 너그럽고, 되도록 침묵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말수를 줄이고, 참견하지 않고, 군림하지 않고, 유연하게 타인을 받아들이고 싶다.

욕망을 줄이고, 삶을 보다 단순하고 간소하게 꾸려나가길 기도한다.

법(法)의 정의

법(또는 법률)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 보면, 법이란 사회 질서 유지와 정의 실현을 위해 국가가 공권력을 동원하여 강제하는 일종의 사회 규범이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법은 이런 사전적 정의와는 거리가 있다.

아일랜드의 극작가인 찰스 맥클린(Charles Macklin)은 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법이란 속임수(또는 말장난)의 과학이다. 당신의 면전에서는 웃으면서 당신의 주머니를 뒤진다.

The law is a sort of hocus-pocus science, that smiles in your face while it picks your pocket.

이 말은 농담 같지만, 법의 본질을 비교적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현실에서의 법을 다시 정의해 보면, “법이란 법조인들이 (자신들을 포함한)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제정하고, 해석하고, 집행하는 강제력이 동원된 술책”이다. 따라서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하다”고 얘기하는 것은 피지배계급을 기만하는 무의미한 당위일 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법조인이다. 법조인들은 법과 관련된 일을 하는 전문가 집단을 일컫는데, 여기에는 판사, 검사, 변호사 등이 포함된다. 법을 만드는 입법권은 국회의원에게 있지만, 국회의원들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집단이 법조인들이다. 또한,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의 수장이나 장관들도 법조인이 많으며, 사법부는 100% 법조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민주주의는 삼권분립을 기초로 서로의 권력을 견제한다고 되어 있지만, 이것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허위일 가능성이 높다. 대개 법은 법조인들을 주축으로 제정되고, 법조인들이 법을 해석하여 위법 여부를 판단하며, 법조인들이 지휘하는 행정부가 집행을 한다. 따라서 삼권분립의 원리라는 것은 법조인에 의한, 법조인을 위한, 법조인의 정치제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검사는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한을 독점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수사권과 기소권이다. 아무리 엄청난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검사가 기소하지 않으면 죄가 아니고 처벌되지 않는다. 설령, 검사가 기소하였다 하더라도 판사가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무죄를 내리면 처벌할 수 없다. 반대의 경우,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검사가 기소를 하고 판사가 법을 어겼다고 판결하면 사형을 당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박정희 정권 하에서의 인혁당 사건은 독재 정권과 결탁한 법조인들이 합법을 가장한 살인을 저지른 경우이다.

문제는 이런 법조인들의 도덕성이나 가치 판단이 일반 국민들의 평균적인 수준보다 전혀 높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간혹가다 존경을 받을만한 법조인들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극히 예외적이라 할 수 있다.

법조인들은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는다. 대부분 사법고시를 합격한다든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을 통과하여 법조인이 되는데, 이들 대부분은 기존에 형성된 질서를 수호하고 지배계급의 이익에 복무한다. 따라서 대개의 법조인들은 보수적이거나 수구적이다.

결국 이런 시스템 하에서 일반 국민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착하고 선한 법조인을 만나길 기도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지극히 좋은 운을 타고 나야 일어나는 일이고, 대부분은 그들의 처분만을 묵묵히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아버지는 당신의 아들이 법조인이 되길 바라셨지만, 속세의 이치가 무엇인지 잘 몰랐던 아들이 그것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행운이었다. 훗날, 그 선택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깨닫고 그 아들은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또 하나의 증거

죽음에 대해 선지자(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 이븐 알렉산더 등)들이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수호천사>를 쓴 로나 번도 죽음에 관한 진실을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우리 대부분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죽음의 순간에 고통과 불편함은 없다. 어떤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고통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고 나면 아무것도 없다. 두려움도 불안도 없다. 당신은 자유롭게 간다. 죽음은 탄생과 같다. 이상한 말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당신은 새로운 삶으로 다시 태어난다. 당신은 실제로 죽지 않는다. 당신이 떠나는 것은 단지 이 물질적인 껍질뿐이다. 마치 텅 빈 계란 껍질처럼. <중략>

많은 시간 우리는 정의와 복수를 찾는다. 그런 우리가 이해하기란 매우 힘들겠지만, 죽음 이후 신 앞에 서는 순간, 우리의 영혼은 너무도 큰 사랑은 물론 신과 함께 있고 싶은 욕망을 느껴 그곳에 머무르고 싶어 한다. 그리고 매우 깊이 그리고 진정한 방식으로 용서를 구한다. 인간 조건의 연약함에서 기인해 이 지구에서 행한 모든 것에 대한 용서를. 그러면 신은 무한한 자비로 자신의 자녀들을 용서한다. 우리 모두는 신의 현존 안에 있는 아이들일 뿐이다.

당신의 영혼은 완전하다. 당신의 영혼이 육체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그 영혼은 우주를 통과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장소들로 여행한다. 얼마나 황홀한 기분일지 당신이 이해할 수 있도록 내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달리 표현할 방법은 없다. 당신 자신이 그것을 경험하기 전에는 말해 줄 방법도 없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그것을 경험하기 위해 죽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로나 번, 수호천사, pp. 286-287>

이런 증거들이 계속 쌓이기에,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을 슬퍼하거나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새해 인사

2015년 새해를 맞아 딸아이가 그려준 연하장. 새해에는 모두들 건강하고, 평안하고, 행복하길, 지난 해보다 더 자유로운 삶이 되길 기도합니다.

Happy New Year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