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나비

182년만에 찾아온 윤구월 때문인지 올 가을은 길고도 깊었다. 산자락부터 산꼭대기까지 울긋불긋 물이 들었고, 은하수 별만큼이나 무수한 낙엽으로 산은 아늑했다. 서걱거리고 바스락거리는 낙엽에서 바싹 마른 가을 햇볕 냄새가 났다.

하늘은 높았고, 숲은 고요했다. 갈색 융단처럼 낙엽이 깔렸다. 그 속을 헤치는 발자국 소리와 가끔씩 들려오는 까마귀 소리만이 숲을 가만히 흔들고 있었다. 어디선가 바람이 선듯선듯 불어왔다. 억새가 바람을 타고 나긋나긋 손짓했다.

갈잎을 헤치고 숲길을 거슬러 오르자 어디선가 나비 몇 마리가 나풀나풀 춤을 추며 나타난다. 가을 나비, 그것도 11월의 나비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인적이 없는 갈참나무 숲 속에서 나비가 날아 오른다. 나비는 갈색이기도 하고 옅은 노란색이기도 했는데, 그것들이 철을 모르는지 아니면 원래 11월에 생겨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비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걷는 길은 수천년 전의 전설 속으로 가을을 데려갔다.

그 나비들을 따라가면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을 노래하는 이백을 만날 것도 같다. 윤구월의 가을은 깊어가고, 하염없는 나비들의 날개짓은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들과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시간은 흐르는 듯 멈췄고, 세상은 어느덧 저만치 달아나 버렸다.

2014년의 가을은 나비들과 함께 그렇게 멀어지고 있었다.

민들레 그리고 국수집

시인 신용목이 쓴 민들레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가장 높은 곳에 보푸라기 깃을 단다
오직 사랑은
내 몸을 비워 그대에게 날아가는 일
외로운 정수리에 날개를 단다

<신용목, 민들레, 2004>

민들레국수집을 벌써 11년이 넘게 운영해온 서영남 대표의 미소는 한없이 온화하다. 그의 느릿하고도 부드러운 말투에서는 은은한 향기가 흐른다. 아무런 조건이나 이유없이 굶는 이들을 위해 따뜻한 밥을 짓는 그의 손길이 아름답다. 그로 인해 가난하고 비참했던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한 천국이 되었다.

비루한 세상을 구하기 위해 하늘은 가끔씩 천사들을 내려 보내는 듯하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이들은 바로 이런 분들이 아닐까.

서영남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방법

톨스토이는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사람들을 개선하는 것뿐이다.
사람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부터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If you see that some aspect of your society is bad, and you want to improve it, there is only one way to do so: you have to improve people. And in order to improve people, you begin with only one thing: you can become better yourself.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방법은 없는 듯하다. 박근혜와 새누리당, 일베충과 어버이연합 그리고 뉴라이트를 아무리 비난해도 우리 사회는 나아지지 않는다.

어제보다는 오늘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에게 한 번이라도 더 손을 내미는 것, 다른 사람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 그런 노력들이 세상을 단 한 뼘이라도 더 나아지게 하지 않을까.

만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바꾸는 것이다.

One of the most difficult things is not to change society – but to change yourself.

지금 퇴행하더라도 절망할 필요는 없다.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자기 자리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한다면,  몇 백년 후에는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

유유상종의 과학적 원리

우리가 살면서 자주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유유상종(類類相從)인데, 이것은 우리말로 “끼리끼리 모여 논다”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서양에서도 “Birds of a feather flock together”란 속담이 있으니, 이 삶의 법칙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용되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여 놀 수 밖에 없을까? 사실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 우주의 모든 생명체는 이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주의 생물, 무생물을 포함한 모든 물질은 저마다 특유의 에너지를 발산하다. 이 에너지를 동양에서는 기(氣)라 부르기도 했는데, 이 에너지 또는 기는 알다시피 파동의 형태를 띠고, 파동은 주파수와 파장으로 특징지워진다.

예를 들어, 자기가 좋아하는 방송을 보거나 듣기 위해서는 주파수를 맞춰 주어야 하는데, 이 과정을 동조(Synchronization)라고 한다. 주파수가 동조되지 않으면 우리는 원하는 방송을 보거나 들을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기와 비슷한 주파수의 기를 가진 사람들과는 왠지 모를 끌림이 있다. 그 사람을 한 번 더 쳐다 보게 되고, 그 사람과 얘기하고 싶고, 얘기를 하다 보면 소통이 잘 됨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어떤 사람과 삘(Feel)이 통하는 이유는 그 사람과의 에너지 주파수가 비슷하기 때문(다른 말로 하면, 의식의 수준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안대희, 문창극 총리 지명을 보면서, 어떤 이들은 이렇게 묻는다. “우리나라에 총리할 사람이 저런 사람들 밖에 없습니까?” 박근혜가 임명한 내각이나 새누리당에 모인 인간들을 보면 거의 다 그런 사람들 밖에 없다. 그들의 에너지 수준이 다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다.

친일파들은 친일파들과 통할 수 밖에 없고, 독립운동가들은 독립운동가들과 통할 수 밖에 없다. 탐욕스럽고 거짓말을 잘 하는 자들은 이명박을 좋아하고,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를 바라는 사람들은 노무현을 지지할 수 밖에 없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이념의 문제이고 가치관의 문제라고 얘기하지만, 사실 이것은 과학적 원리로 설명하는 것이 더 타당할지 모른다. 무학대사가 이성계에게 말했듯이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이는 것이다.

당신이 아직도 이명박이나 박근혜를 아무 이유없이 좋아한다면, 당신의 에너지 수준(또는 의식의 수준)이 그들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우주에서 가장 행복한 아빠

딸아이에게 이런 생일축하카드를 받는 아빠는 얼마나 행복할까? 아마 우주에서 가장 행복한 아빠와 딸이 아닐까?

생일카드

아빠가 우주에서 가장 사랑하는 딸아,

너는 아빠와 영원히 같이 살면서 매년 아빠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다고 했지만, 지구별에서 그 누구도 영원히 살 수 없기에 언젠가는 아빠도 너의 곁을 떠날 거야.

그날이 오더라도, 아빠의 영혼과 의식은 늘 너의 곁에 남을 거야.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언제나 네 곁에 아빠가 있다는 것을 너는 알 수 있을 거야. 우리의 영혼은 그렇게 이어져 있으니까.

너로 인해 아빠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고, 아빠로 인해 너도 행복한 사람이 되길 기도한다. 사랑한다, 딸아, 내 딸아!

<덧>

사랑하는 조카들도 멋진 생일카드를 보내왔다. 귀여운 녀석들.^^ 사랑한다.

생일카드1

생일카드2

고승덕의 역설

이번 지방선거에서 서울시 교육감 후보로 출마한 고승덕은 아주 훌륭한 딸을 두었다. 고승덕의 딸 고희경은 자기를 낳아준 아버지 고승덕이 왜 교육감 후보로 적합하지 않은지를 논리정연하게 밝혔다.

고승덕의 인물됨이야 이미 오래 전에 알았던 것이고, 고승덕의 개인 가정사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이번 딸의 공개적 낙선 운동으로 그가 집밖에서뿐만 아니라, 집안에서조차 존경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전처와 이혼하고 난 후,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남매를 방치하고 돌보지 않았음을 물론이고, 어떠한 경제적, 교육적 지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부부는 여러 가지 문제로 이혼할 수 있다. 하지만 피를 나눈 자식은 나눌래야 나눌 수 없는 천륜의 정이 있다. 이혼한 부부라도 자식을 보기 위해 주기적으로 만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고승덕은 이혼 후에 자식들과의 왕래는 고사하고, 전화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사람이 서울시 교육감 후보로 출마했고, 막강한 인지도를 바탕으로 가장 당선가능성이 높은 후보가 되었다.

고승덕의 딸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남들이 보기에 또는 본인이 느끼기에)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아버지 고승덕의 관심과 사랑과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어른이 되었고, 서울에서 교육받는 학생들을 위해 자기 아버지의 본질을 까발렸다.

만약 고승덕의 딸이 고승덕과 같이 살았다면, 정몽준의 아들처럼 대한민국 국민들을 미개하게 여기고 고승덕처럼 겉과 속인 다른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무엇이 그에게 더 좋았을 인생인지 속단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고승덕의 딸은 훌륭한 시민이 되었다는 것이고, 고승덕은 교육감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고승덕은 자기 딸의 교육에 무관심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딸을 훌륭하게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고승덕이 서울시 교육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서울시 교육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지 모른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고승덕은 서울시 교육감으로 당선될 가능성이 높고, 그 책임과 결과는 모두 서울시민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고희경의 용기에 감사하며, 그가 행복하길 바란다.

 

악몽보다 지독한 현실

2014년 4월 16일, 300명 넘는 사람들이 진도 앞바다에 수장되었다. 이것은 불가항력의 선박 사고가 아닌, 미필적 고의와 구역질나는 탐욕이 부른 학살에 가까운 인재였다. 죽은 이들 중 대부분은 아직 꽃도 피지 않은 어린 학생들이었다. 부모들은 피를 토하며 울부짖었다. 참혹한 슬픔과 절망이 차라리 악몽이길 빌었다.

아이의 시신조차 찾지 못한 어머니는 흐느끼며 이렇게 말했다.

“먼저 시신이라도 찾은 가족들을 보면 우리는 ‘축하한다’고 말하고 유가족들은 ‘미안하다’고 말한다.”

<[세월호 참사]”사과할 시간 있으면 잠수부들 안마나 해달라”, 노컷뉴스>

시신 찾은 것을 축하해야 하는 현실, 이것을 견디어야 하는 가족들, 그 말을 전해들어야 하는 국민들, 이 모습은 악몽보다 지독한 대한민국의 현실이었다.

2012년 12월, (비록 냉소적이었지만) 안녕하길 바랬는데, 그것은 그냥 공염불이 되어 버렸다. 슬픔은 늘 그렇듯 살아남은 자들의 몫으로 남았고, 악몽보다 지독한 현실은 기억 뒷편으로 사라질 것이다. 또다른 탐욕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와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을 것이고, 깨어있는 몇몇은 또다시 그들의 안녕을 기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