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순간

1990년대 왕가위에 빠져 있었던 적이 있었다. 우울하고 쓸쓸하지만 때로는 나른하고 몽환적이기도 한 그의 영화는 내 젊은 날 초상의 한 조각이었다.

비루하면서 부조리한 현실과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 그리고 방황, 그 안에서 우연히 찾아오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내 삶과 그의 영화는 기묘하게 뒤섞이면서 엇갈렸다. 그의 영화를 외면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의 저주받은 걸작이라 불리는 아비정전(阿飛正傳)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1960년 4월 16일 오후 3시.
우리 1분 동안 함께 했어.
우리 둘만의 소중했던 1분을.
이 1분은 지울 수 없어.
이미 과거가 됐으니.

그는 이 1분을 잊겠지만, 난 그를 잊을 수 없었다.

누구에게는 1분이 순간일 수 있고, 누구에게는 영원일 수 있다. 1960년 4월 16일 오후 3시, 아비와 수리진은 그 1분을 함께 할 운명이었다. 그리고 그 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삶의 모든 순간은 운명이다. 그리고 순간순간 살아지는 것이다.

친엄마 맞아?

암탉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자기 알을 품어 새끼를 키우고 싶었다. 그것이 목숨 걸고 양계장을 탈출해야 하는 이유였다. 암탉은 숲에서 어미 잃은 청둥오리의 알을 품었고, 청둥오리 새끼의 엄마가 되었다.

“친엄마 맞아?”

늪에서 살던 다른 짐승들이 수군거렸다. 암탉이 오리를 키우다니. 암탉은 하늘을 날지도 못했고 헤엄을 칠 줄도 몰랐다. 청둥오리가 크면서 배워야할 것들을 알려줄 수 없었다. 하지만 암탉은 친엄마보다도 더 애지중지하며 새끼 오리를 키웠다. 암탉에게 친엄마, 새엄마는 아무 의미없는 편견이었다.

세상을 지탱하는 것을 단 하나 고르라면 그것은 바로 “엄마의 마음”이다. 엄마는 생명의 기원이고, 세상을 유지하는 유일한 원동력이다. 복제 동물을 제외하고 엄마 없는 생명은있을 수 없다. 엄마 잃은 새끼처럼 불쌍한 생명은 없다.

계절이 바뀔수록 청둥오리는 건장하게 자랐고, 암탉은 시름시름 야위어갔다. 암탉은 모든 것을 다 주었다. 청둥오리는 누구보다도 높이 누구보다도 멀리 날았고, 자기 아비처럼 청둥오리 무리의 파수꾼이 되었다. 늠름한 청년으로 자란 오리를 보면서 늙은 암탉은 행복했다.

암탉은 자신의 천적인 족제비의 새끼들에게도 연민과 사랑을 느꼈고, 급기야 자신의 몸을 양식으로 주었다. 그것은 비극도 아니고 희생도 아니었다. 그것은 엄마의 무한한 사랑이었고, 세상을 지켜주는 행복이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바치는 헌사였다. 아직도 중년의 아들에게 “아가”라고 부르는 나의 어머니에게, 그리고 딸아이를 낳아 애지중지 기르고 있는 아내에게 바치는 예찬이었다.

엄마, 세상을 구원하는 사랑의 원천인 엄마.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그 엄마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렸다.

http://www.youtube.com/watch?v=ivG35eKms3A

젊음 그리고 사랑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지금 하고 있는 불과 같은 사랑이 영원할 것 같지만 그 사랑도 언젠가는 식어버린다. 달콤한 사랑일수록 아픔과 상처도 그만큼 깊어질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죽음으로 끝난 비극적 사랑이었기에 아름다웠다. 실제로 그들의 사랑이 결실을 맺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긴 세월을 같이 살았다면, 그들도 끊임없이 싸우고 화해하고, 그들의 열정적 감정도 세월에 따라 변했을 것이다.

지독하게 격한 감정을 믿지 말라. 그것이 사랑이든, 증오이든 간에 그런 감정은 늘 순간적인 것이다. 평정심이 생겼을 때, 그 감정을 조용히 바라보면 그 감정을 일으키게 한 상대를 보다 냉정하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젊음은 이런 따위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것이 젊음이다.

삶의 여러 굴곡을 거치고 산전수전을 겪은 후에야,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류시화 시인의 말처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우리의 생이 바뀔 수 있겠지만, 그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때문에 삶은 운명이다. 사랑도 그렇고 이별도 그렇다.

젊었을 때 꽤나 좋아했던 영화 음악,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의 테마. 오늘 문득 이 노래가 듣고 싶어졌다.

http://www.youtube.com/watch?v=CCOafzKxfpA

What is a youth? Impetuous fire.
What is a maid? Ice and desire.
The world wags on.

A rose will bloom, it then will fade.
So does a youth, so does the fairest maid.

Comes a time when one sweet smile,
Has its season for a while.
Then love’s in love with me.

Some they think only to marry.
Others will tease and tarry.
Mine is the very best parry.
Cupid he rules us all.

Caper the caper; sing me the song.
Death will come soon to hush us along.

Sweeter than honey and bitter as gall.
Love is the pasttime that never will pall.

Sweeter than honey and bitter as gall.
Cupid he rules us all.

사라지는 것들의 쓸쓸함

멸족을 눈 앞에 둔 소인족 소녀 아리에티와 심장병으로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소년 쇼우. 따사로운 어느 봄날 그들은 조우한다. 아리에티에게 인간은 공포였고, 쇼우에게 소인족은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공포와 호기심의 만남은 서로에 대한 연민이 되었고, 그 연민의 끝은 이별의 쓸쓸함이었다.

아리에티와 쇼우 그들은 조만간 사라질 것이다. 소인족은 멸족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고, 쇼우는 삶을 지탱하기 힘들 것이다. 그들은 사라질 것이지만, 아리에티와 쇼우는 그들이 함께 했던 짧은 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삶의 본질은 그런 것이다. 언뜻언뜻 희망의 한자락이 보이기도 하지만, 본질은 쓸쓸하게 사라지는 것이다. 사라지는 순간까지 삶은 지속될 것이고, 그 안에서 행복한 순간들을 만날 것이다.

그것으로 족한 것 아닐까.

http://www.youtube.com/watch?v=SuY6wrMDptA

아바타, 획을 긋는다는 것

제임스 카메론은 그의 최신작 <아바타>로 까칠한 천재 흥행 감독에서 스탠리 큐브릭과 미야자키 하야오의 계보를 잇는 거장의 반열로 올라섰다. 민노씨 님의 말처럼 좋든 싫든 이제 인간들이 만들어낸 영화는 <아바타>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카메론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감독으로는 피터 잭슨 정도일 것이고, 나머지는 그야말로 나머지로 전락했다.

영화의 줄거리나 모티브가 새롭지는 않지만, 과문한 내가 보기에도 영화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완벽한 영상은 모든 반론들을 무마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 완벽한 영상들의 흐름을 아우르는 나비족 여전사 네이티리의 한마디는 왜 이 영화가 걸작인가를 말해준다.

All energy is only borrowed and one day, you have to give it back.

영화를 보면서 내내 씁쓸했던 것은 자본의 폭력과 인간의 탐욕이 우주 저 편 판도라 행성만 파괴시킨 것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러한 탐욕과 폭력은 지금 여기에서도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 나비족은 판도라 행성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 땅 한반도에도 있는 것이다.

2009년 제임스 카메론은 영화 <아바타>로 획을 그었고, 이 땅 한반도는 <4대강 죽이기>로 난도질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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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만에 세상은 얼마나 좋아졌을까

2007년 6월 27일 노무현 대통령 청주 육거리 시장 방문.

그로부터 2년 후…

2009년6월 25일 이명박 대통령 서울 이문동 시장 방문.

단 2년만에 세상은 이렇게 좋아졌다. 이명박을 찍고 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졌을까?

나는 진심으로 그들이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깨닫게 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가슴 속 깊이, 아니 뼛 속 깊이 새기길 바란다. 그것만이 이 시대가 준 단 한가지 긍정적인 가르침을 받아드리는 것이리라.

노인과 소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노인은 소를 몰고 들로 나갔다. 그들에게 삶은 퍽이나 고달픈 것이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논밭에 엎드려 그 힘든 노동을 견디어야 했다. 팔순을 바라보는 노인과 40년을 살어버린 소는 발걸음을 내딛는 것조차 힘겨워했다. 그렇게 30년을 살았다.

30년을 함께 한 소와 노인은 얼굴이 닮았고, 눈이 닮았고, 발걸음이 닮았다. 말하지 않고 눈빛만 봐도 노인과 소는 서로를 훤히 알 수 있었다. 노인은 소를 먹이기 위해 언제나 꼴을 베러 다녔고, 소를 위해 농약 한 번 치지 않았다. 소는 늘 노인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 발걸음을 옮기는 것조차 힘들어 하면서도 늘 노인과 함께 들에 나갔다.

할머니와 자식들의 성화에 못이겨 노인은 소를 팔러 우시장에 갔다. 소는 눈물을 흘렸고, 노인도 눈물을 흘렸다. 30년의 세월이었다. 소를 얼마에 팔겠냐는 사람들의 말에 노인은 5백만원을 달라고 했다. 사람들은 이런 소는 거저 줘도 안가져간다며 소를 비웃었고, 노인을 비웃었다. 그 5백만원은 30년 세월을 같이 한 소에 대한 노인의 마지막 예의였다.

노인은 소가 얼마 살지 못할 것을 알았고, 소는 자기의 주검이 노인의 손에 거두어지기를 바랬다. 소의 숨이 끊어지기 전, 노인은 소의 코뚜레를 풀었고 워낭을 떼어냈다. 소는 비로소 눈을 감았다. 노인은 죽은 소를 밭 한가운데에 묻었다. 소의 무덤을 바라보며, 노인은 워낭을 흔들었다. 바람을 타고, 워낭소리가 소의 영혼을 달래주었다.

삶과 죽음으로 30년의 세월이 나누어졌음에도 워낭소리는 노인과 소를 이어주고 있었다. 노인도 곧 소의 뒤를 따를 것이고 워낭소리는 저세상에서도 노인과 소를 이어줄 것이다. 노인에게는 소가 있었고, 소에게는 노인이 있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삶은 참으로 퍽퍽했지만, 그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그 삶을 견뎌냈고, 그들은 성자가 되었다.

난생 처음 부모님과 같이 극장에 가서 본 영화 “워낭소리”. 가슴이 먹먹했다.

무릇 지도자란 이런 사람이어야

좋은 지도자는 조직의 구성원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당당할 수 있도록 한다. 같은 꿈을 꾸고,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한다. 조직의 구성원들은 지도자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그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우리나라는 한때 그런 지도자를 가졌었다. 그는 이미 역사의 뒤안으로 물러났지만,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를 보면서, 문득 그 사람이 생각났다. 현실이라는 땅에 발을 붙이고 있으면서도 무던히도 원칙과 상식을 말했던 사람. 내 생전에 강마에와 같은 지도자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가 보여준 가치는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러분들을 창피하게 만들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연주할 음악 앞에 작곡가 앞에 관객들 앞에 여러분들이 당당히 나서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의 음악을 들은 한사람 한사람이 이 힘든 세상에 작은 위로라도 받을 수 있게 하겠습니다. 그게 제가 이 시향을 하는 궁극적인 목표이자 꿈입니다. 여러분들도 그 꿈을 같이 꿨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배트맨?

이제서야 광야에서 백마를 타고 올 초인을 목놓아 기다리고 있는 시인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끝없는 절망의 나락 속에서 그여 그 희미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시인의 그 애타는 마음을 알 것도 같다.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 광야]

영화 Dark Knight에서 고담시의 정의로운 검사 Harvey Dent는 “영웅으로 죽든지 아니면 오래 살아남아 악당이 되는 것을 보든지” 둘 중의 하나라고 얘기했다.

WAYNE: Exactly. Who appointed the Batman?
DENT: We did. All of us who stood by and let scum take control of our city.
NATASCHA: But this is a democracy, Harvey.
DENT: When their enemies were at the gate, the Romans would suspend democracy and appoint one man to protect the city. It wasn’t considered an honor. It was considered public service.
RACHEL: And the last man they asked to protect the republic was named Caesar. He never gave up that power.
DENT: Well, I guess you either die a hero or you live long enough to see yourself become the villain. Look, whoever the Batman is, he doesn’t want to spend the rest of his life doing this. How could he?

사람들의 탐욕과 무관심 속에서 태어난 야만의 시대에 우리들은 절망했다. 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육사의 그토록 원했던 초인이나 Harvey가 원했던 배트맨은 과연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인가? 이 야만의 시대를 어떻게 견딜 것인가?

차라리 영화였으면, 차라리 영화였으면 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Le Grand Bleu

튀니지 Gammarth 바닷가 언덕에 있는 식당 이름은 “Le Grand Bleu” 이었다. 그 이름이 말해 주듯이 그곳에서 한없이 펼쳐진 지중해의 그 바다를 볼 수 있었다. 그 바다 색깔은 인간이 가진 언어로는 쉽게 형용하기 어려웠다.

넋을 잃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웨이터들은 끊임없이 음식을 나르고, 여기저기서 불어와 영어가 섞인 대화들이 오갔지만 나의 시선은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바다 건너에 시칠리아 섬이 있을 것이고, 아직도 바다 속에서 돌고래와 놀고 있을 쟈크가 있을 것만 같았다.

인간들의 삶은 참으로 비루하지만, 저 바다는 그 비루함과 그 비루함 속에 녹아있는 사랑과 증오마저도 모두 감싸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저 바다는 끝없이 자유로움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무 것도 거칠 것 없는 그 고독한 자유를. 그렇다. 무한한 자유는 무한한 고독이다. 그 쓸쓸함을 견딜 수 없다면 제대로 된 자유를 만끽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은 늘 그렇듯이 이렇게 공평한 법이다.

바다는 아버지를 데려갔고, 엔조를 데려갔다. 쟈크는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두고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간다. 그가 진정으로 사랑한 것은 바다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튀니지의 Gammarth에 가면 Le Grand Bleu 식당에 가야 한다. 그러면 Le Grand Bleu를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