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첫날은 잔인했다. 숨을 쉬기조차 힘들 정도로 대기는 누런 먼지로 가득했다. 고비사막으로부터 불어온 모래 바람이 한반도를 뒤덮었다. 살아있는 것들은 웅크릴 수 밖에 없었다. 누가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가?
T. S. Elliot. 그는 1922년에 쓴 황무지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남긴다.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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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를 예언한 놀라운 시
April 1st, 2007 · 1 Comment · Poetry
Tags:4월·황무지·황사·자연·T.-S.-Elliot
늙은 어머니의 젖가슴을 만지며
March 29th, 2007 · No Comments · Poetry
내가 철이 들기 시작한 것은 아마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다. 어머니의 노동과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 그 때부터 나는 비로소 인간이라는 범주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어머니가 될 수 없는 사내들의 열등감을 깨달았다. 그것은 신이 사내들에게 내린 형벌이었다.
내가 고통과 절망 속에서 방황할 때도 어머니의 가슴은 늘 한결같았다. 따스함. 언제나처럼 그 가슴은 나에게 안도와 위로를 [...]
Tags:늙은-어머니의-젖가슴을-만지며·생일·어머니·정호승·축하
10여년만에 다시 찾은 북한산
March 28th, 2007 · No Comments · Poetry, Travel
10여년만에 다시 와 본 북한산은 옛날 그대로였다. 몇몇 계곡이 안식년으로 쉬고 있었고, 기슭의 등산로들이 조금 정비되었을 뿐이었다. 산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말이 없었고, 수 많은 등산객들을 넉넉히 품어주고 있었다.
중력을 거스르는 것만큼 힘이 드는 일이 있을까. 허벅지에 전해오는 중력의 팍팍함에 나는 쉽게 지쳐갔다. 근육속에서 글리코겐이 끊임없이 연소되었고, 그에 비례하여 쌓인 젖산에 나는 피로하였다. 한 번의 [...]
아내가 보내 준 월요일을 여는 시
March 12th, 2007 · No Comments · Poetry
결혼 전에 나는 시를 많이 읽었었다. 읽은 시들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내 생각과 함께 아내에게 (그 때는 애인이었었나?) 보내곤 했다. 아내가 시를 즐겨 읽지는 않았지만, 내가 보내 준 시를 싫어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빛이 바랬지만 따뜻한 난로와 같은 추억이다.
월요일 아침 나의 일주일을 기분 좋게 시작하도록 아내는 시를 보내 왔다. 아내의 마음이 고맙다.
그리움이란 것은
마음 [...]
Tags:류시화·배은미·그리움이란-것은·시·아내·월요일
비에 실려 온 아내의 마음 한자락
March 2nd, 2007 · No Comments · Poetry
하루 종일 촉촉히 내린 비에 봄내음이 서려있다. 흙과 풀과 나무는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맞으며 소리없이 재잘대고 있었다. 이미 겨울에 와 버린 봄이 새삼스럽지 않지만, 비는 봄의 느낌을 몇 배 증폭시킨다. 비에게는 그런 힘이 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아내가 시를 보내 주었다. 그 시 속에 아내의 마음이 봄비처럼 적셔 온다.
여기에 내리고
거기에는 내리지 않는 비
당신은 그렇게 먼 곳에 [...]
김남주를 어찌 잊을 수 있으랴
February 13th, 2007 · No Comments · People, Poetry
세상이 그를 잊는다해도 나를 그럴 수 없다. 아직도 그의 시가 나의 폐부를 찌르며 나를 일깨우는데, 어찌 그를 잊을 수 있겠는가. 살아야 할 사람들은 그처럼 그렇게 갔다. 하늘도 그가 필요했을까. 그래서 그렇게 빨리 그를 데려갔을까. 그가 간 지 벌써 13년. 세상은 그가 없이 이렇게 굴러왔지만, 그가 있었다면 조금은 더 떳떳한 곳이 되지 않았을까.
김남주. 우리 [...]
입춘에 읽고 싶은 시
February 4th, 2007 · No Comments · Poetry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 벌려 껴안아 보는
너, [...]
내게는 첫눈이다
January 7th, 2007 · No Comments · Poetry, Travel
첫눈은 설레임이다. 유난히 따뜻한 올 겨울은 첫눈의 설레임 대신 봄 햇살의 포근함만을 주었다. 나 같이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겨울이 큰 축복이지만, 때로는 아무도 걷지 않은 눈 덮인 하얀 들판을 걸어보고 싶기도 하다.
강원도 평창에서 올 겨울 들어 처음 눈을 보았다. 떡가루 같은 하얀 눈 위에 딸아이와 같이 누워 하늘을 보았다. 이제 여섯 살이 되는 아이에게 [...]
오늘밤 아내에게 읽어주고 싶은 시
December 26th, 2006 · No Comments · Poetry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어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꼽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 보이는 게야
생각나?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늦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 너머 잎 내리는 잡목 숲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
이십대에 읽었던 두 편의 시
December 24th, 2006 · No Comments · Poetry
꽃처럼 무너지던 시절 있었네
나 아직 이십대 늙은 사내처럼
추억을 말하네……
사라져간 물결 있었네
그 물결 속으로
그리움의 나뭇가지를 꺾으며 나는
제발 내게 기적이 없기를 빌었네
삶이 전쟁이므로 사랑도 전쟁이었고
나의 샤먼 그대는 나를 적시지 않았네
세상에 대한 알 수 없는 적개심
나 휘발유 같던 시절 있었네
자폭하고 싶었지 나 아직 이십대
그대 내 전부의 세상
그대는 바뀌지 않았네 나 참을 수 없어
몸을 떨었네 휘발유 같던 시절 있었네
지난날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