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의 착각 또는 자해?

광주와 호남에서 국민의당의 지지율이 오르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8할을 담당했던 그곳에서 말이다. 김대중, 노무현의 민주정부 10년을 만들어낸 그곳에서 말이다. 기회주의 정당이자, 야권분열 정당이자, 새누리 2중대 정당인 국민의당을 지지한다고 한다. 광주와 호남의 정치의식이 그 정도라면 이 나라에 희망은 없다.

호남 사람들에게 국민의당을 지지하는 이유를 물으니, “무조건 본가(더불어민주당)를 혼내주기 위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더불어민주당(더민주)을 혼내주는 것은 좋은데, 그 방법이 국민의당 지지란다. 혼내는 방법이 너무 궁색하고 부끄럽지 않은가?

지금 국민의당을 만든 사람들은 어디 화성에서 온 외계인들인가? 그들은 더민주(새정치연합)에서 단물이란 단물은 모두 빨아 먹고, 먹던 우물에 가래침을 뱉고 나온 인간들인데, 그들이 이름만 바꾸면 새사람이 되는가? 현역 국회의원 교체 여론이 높았던 광주와 호남에서 다시 공천을 받고 국회의원되기 힘들어지자, 자기가 몸담았던 정당의 등에 칼을 꼽고 나와서 국민의당으로 출마하면 정치신인이 되는 것인가?

정치의식이 높다는 광주, 호남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호남에서 오랫동안 제1당을 차지한 더민주를 혼내주겠다는 것은 좋다. 그럴 수 있고, 때로는 그렇게 해야 한다. 더민주를 혼내기 위해 정의당이나 녹색당 등을 지지하겠다면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높이 평가할 것이다. 하지만, 더민주의 대안이 국민의당이라면 그것은 착각과 오판을 넘어선 자해행위다.

국민의당이 호남 제1당이 된들 호남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고립과 멸시뿐이다. 정말 안철수가 정권교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건지, 아니면 국민의당이 호남을 넘어 전국정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건지 궁금하다.

그동안 더민주가 보였던 퇴행적 행태의 근본 원인을 제공한 자들이 만든 당이 국민의당이다. 호남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호남의 정치자영업자와 종편이 합작해서 만들어낸 근거없는 마타도어에서 벗어나라고 말이다. 국민의당을 지지해서 당신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한국 현대사에서 광주와 호남이 기회주의자들을 지지한 적은 없다. 그것이 주어진 운명이었던, 아니면 자의적 선택이었던 간에 광주와 호남은 한국 민주주의의 버팀목이었고, 근간이었다. 또다시 이 나라의 운명은 광주와 호남이 쥐게 되었다. 당신들의 선택에 따라 이 나라의 미래가 달라진다. 그 선택이 국민의당은 아니길 바랄 뿐이다.

망월동의 영령들이 당신들의 선택을 지켜보고 있다.

신사의 품격

세상의 거의 모든 탐욕과 이해가 충돌하는 정글 같은 정치판에서 품격과 헌신으로 비전과 가치를 실현해 나가는 정치인이 있을까? 더불어민주당의 대표였던 문재인 의원이 보여준 지난 1년간의 모습은 (진중권이 얘기했듯이) 초인적 인내를 바탕으로 한 품격과 헌신 그 자체였다.

문재인은 좋은 사람이고, 멋진 신사다. 그처럼 좋은 사람은 야수의 탐욕에 맞서기 위해 짐승의 비천함을 견뎌야 하는 정치인과 사실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처럼 마음이 선하고 훌륭한 인격을 갖춘 이가 정치인이 되었다는 사실은 이 비루한 나라 (백성들은 잘 모르겠지만) 정치판에 벼락 같은 축복이고, 어찌 보면 불가해한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문재인이 정치판에 들어올 일은 없었다. 노무현의 운명이 문재인의 운명이 되고 말았고, 결국 노무현을 죽인 이 땅의 기득권을 가진 빌어먹을 기회주의자들이 문재인을 정치판에 끌어들인 셈이다.

문재인이 당대표로 선출된 후 당내 비주류들은 그를 끊임없이 공격하고 흔들어댔다. 양아치도 이런 양아치가 없을 정도로 그들의 공격은 집요했고 악랄했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단 하루도 견뎌낼 수 없는 그런 극한 상황 속에서 문재인 한 번도 화를 낸 적도 없고 큰소리를 친 적도 없다. 묵묵히 견디면서 당의 혁신을 위해 대표가 해야할 일들을 견고히 해나갔다.

혁신위원회에서 나온 혁신안을 제도화했고, 유능한 인재들을 두루 모아 당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었으며, 10만명이 넘는 자발적 당원을 확보했다. 그는 단 한 차례도 사심을 가지고 일을 한 적이 없다. 정치인이 단 한 차례도 사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일이다. 과연 노무현 대통령이 얘기했듯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부드러웠지만 견고했다. 어눌한 듯하지만 세련되었다. 흔들리는 듯했지만 모든 일을 제대로 처리했다. 늘 정직하고 정도를 행했다. 언제나 당원과 국민만을 생각했다. 정말 성숙한 인격과 품위를 갖춘 정치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있다 하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만큼 당 대표직을 훌륭히 수행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난 1년간 문재인을 보면서 안쓰럽고 안타까웠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묵묵히 맡은 일들을 제대로 해내는 그를 보고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재인의 정치적 앞날이 밝지는 않지만, 만약에 그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된다면 그것은 2002년에 이어 또 하나의 기적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땅의 백성들은 가장 선하고 품격있는 지도자를 맞을지도 모른다.

문재인이 있기에 숨을 쉴 수 있었던 지난 1년이었다. 그의 인품에 감동하고 그의 헌신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의원이 14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6 15 남북정상회담 12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어떤 효도

그의 아버지는 독립군을 토벌하던 일본군 장교였고, 해방 이후 남로당 군총책이었으며,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고 독재자가 되었다. 죽을 때까지 권력을 지키고자 유신을 선포했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탄압했다.

역사는 그의 아버지를 친일 매국노, 독재자로 기록했다.

그는 아버지를 기록한 역사를 바로잡겠다고 나섰다. 아버지의 명예(그런 것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회복을 위해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선언한다. 아버지를 친일파로, 독재자로 기록한 역사책은 편향된 교과서이고, 그런 편향된 교과서로 배우는 학생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가 독재를 했다기 보다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렇다면 역사 교과서 국정화도 그에게는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역사는 그를 심청이 수준의 효녀로 기록할까? 효녀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하고,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는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모른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그의 효도가 눈물겹기만 하다.

문재인과 리더십

김대중과 노무현이 사라진 이후 야당은 지리멸렬했다. 거의 모든 선거에서 야당은 새누리당을 이기지 못했다. 정치, 언론 환경을 비롯한 모든 조건이 야당에게 불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더 큰 문제는 야당 내부에 있다. 그것은 ‘후단협의 추억’이라 부를만한 기회주의자들의 창궐이다.

하나로 똘똘 뭉쳐 친일과 독재 세력들과 싸워도 이기기 힘든 판에,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당은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는 후단협의 후예들이 암세포처럼 당을 좀먹고 있다.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기회주의자들의 힘은 무척 세다.

문재인은 현재 이런 야당의 대표다.

문재인은 좋은 사람이다. 정치를 하기에는 너무 착한 사람이다. 노무현이 그렇게 죽임을 당하지만 않았어도 문재인이 정치판에 들어올 일이 없었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고 얘기한 문재인의 말처럼, 그는 지금 노무현이 남긴 숙제를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야당의 홍보위원장 손혜원 씨의 인터뷰 중에 문재인을 평가하는 대목이 나온다.

– 그렇게 훌륭한 면들이 유권자에게 어필하지 못 하는 건 결국 문 대표의 리더십 부재 때문 아닌가.

“그건 아니다. 다만 정치를 하려면 카리스마가 있어야 하는데 문 대표는 남을 너무 많이 배려한다. 본인이 소신을 갖고 맞다고 생각하면 그걸 제압해서 자기 쪽으로 밀고 가야 하는데 문 대표는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걸 강압적으로 자기 의견으로 모으는 일들을 안 한다. 늘 표결을 해야 결론이 난다. 균형감 있는 얘기를 하는데 바로 옆에서 아니라고 반대를 하면 가만히 있는 거다. 샤이(수줍음을 타는 것)해서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 만들러 들어와 .. 재신임 안 되면 나도 떠날 것>

손혜원 씨의 평가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문재인은 훌륭한 자질을 가진 좋은 사람인데, 사람이 너무 좋아 리더십이 미숙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문재인이 새겨들어야 하는 말이다.

리더가 해야할 일 중 가장 힘든 일은 바로 갈등을 조정하고, 다루기 힘든 사람들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리더십의 대가 존 맥스웰(John Maxwell)에 따르면, 이런 상황에서 리더는 다음 두 가지 질문을 해야 한다.

  • 그들이 변할 능력이 있는가? (능력)
  • 그들이 변할까? (태도)

이 두 가지 질문 모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없다면, 그들(부정적이고 비협조적이며 무능한 조직원들)과 함께 갈 수 없다.

당신을 따르지도, 생산적인 직원이 되려 하지 않는 사람은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그런 사람들은 당신을 더 나은 리더로 만들어 주지도 않는다. 그저 조직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직원이 있다는 뜻일 뿐이다. 누군가를 조직에서 퇴출해야 함에도 인정에 이끌리든 어떤 이유로든 조직에 잔류시키기로 결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당신의 리더십이 미숙하다는 인상을 줄 뿐이다.

<중략>

이처럼 어려운 결정을 하고 싶은 사람은 없지만, 누군가는 그런 결정을 반드시 해야 한다. 그런 결정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좋은 리더는 이런 문제에 직면했을 때 단호하게 결단을 내린다. 자신에게 물어보라. “이것이 조직에 최선일까?” 까다롭고 다루기 힘든 직원을 계속 안고 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더군다나 그것이 조직에 최선이 아니라면 퇴출시켜야 마땅하다.

<존 맥스웰,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다시 물어야 할 것들, pp. 215-217>

지금 문재인이 해야할 일은 야당 안에서 암세포처럼 당을 좀먹는 기회주의자들을 (정계에서) 퇴출시키는 것이다. 그 기회주의자들은 새누리당을 제외한 이 나라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족속들이다. 이 족속들을 제거하지 않는 한, 야당은 물론 이 나라에 미래는 없다.

유감이라는 말장난

전쟁 직전까지 치달았던 남과 북의 대결이 6가지의 합의를 뒤로한 채 막을 내렸다. 겉으로는 맞짱을 떠보겠다고 짐짓 허세를 떨었지만, 남이나 북이나 전면전을 벌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또 한 번의 전쟁은 공멸이라는 것을 최소한의 지능만으로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의 합의가 있기 전, 남한의 최고권력자 박근혜는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이 없는 한 합의는 없다고 못박았다. 그리고 나온 합의문에는 지뢰 폭발에 대한 북한의 유감 표명이 있었다.

2.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지역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하였다.

남한의 쓰레기 언론들은 이 문구를 가지고 북한이 사과를 했다며 설레발을 떨었다. 이것이 사과가 되어야만 박근혜가 제시한 지침이 제대로 지켜졌다고 얘기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과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것”을 말한다. 위의 합의문 2항에서 북한은 지뢰 폭발을 자기들의 짓이라고 인정하지도 않았고,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지도 않았다. 지뢰 폭발로 남측의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이 유감이라고만 했다.

유감은 “마음에 섭섭하거나 불만스러운 느낌”을 가리킨다. 북한이 남한 군인들의 부상에 유감을 표했다는 것은 그저 “다쳐서 안타깝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합의문에서 북한의 속내는 “우리가 한 짓은 아니지만, 사람이 다쳤으니 불쌍하고 안타깝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과가 아니고, 그냥 위로 정도의 인삿말인 것이다.

(유시민에 따르면) 합리적 판단능력이 부족한 박근혜가 고집을 피워 전쟁불사를 외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국민들은 유감이라는 말장난이 사태를 봉합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유감이라는 표현은 정말 편리하다. 정치인들이 사과를 해야할 때, 그들은 흔히 “유감스럽다” 또는 “유감을 표한다”고 한다. 기회주의자들이 사용하는 기회주의적 표현이긴 하지만, 그 기회주의적 표현이 때로는 더 큰 불행을 막기도 한다.

독재자 후손들의 치킨 게임

우연인지 운명인지, 현재 남과 북의 최고권력자는 독재자들의 후손이다. 북한의 김정은은 김일성의 손자요, 김정일의 아들이다. 이제 겨우 삼십을 넘은 이 젊은 권력자는 할아버지 김일성의 젊었을 때 모습을 많이 닮았다.

북한은 겉으로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김씨왕조 국가다. (국가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인 폐쇄된 사이비 종교 집단으로 봐도 될 듯하다.) 21세기에도 권력이 3대째 세습되고 있다. 김정은은 집권 초기부터 자기 권력에 걸림돌이 되는 인물들을 숙청하고 있는데, 이것은 역설적으로 그의 권력 기반이 견고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박근혜는 박정희의 딸이다. 박정희는 만화에나 나올 법한 한국현대사의 가장 걸출한 기회주의자다. 박정희가 부하 김재규의 총을 맞고 죽은지 35년이 흘렀는데, 아직도 그를 반인반신으로 지지하는 불쌍한 노인들이 많아 박정희의 딸, 박근혜는 남한의 최고권력자가 되었다.

남한은 자본주의 국가다. 경제 성장도 제법 이루었고, 형식 상의 민주주의도 이룬 나라지만, 남한 권력의 9할은 친일과 독재의 후예들이 잡고 있다. 때문에 정의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기 힘들고, 대부분의 서민들은 (자신이 노예인 것을 모른 채) 노예처럼 살고 있다.

이 독재자들의 후손들이 며칠 전부터 7500만 민족의 목숨을 담보로 치킨 게임을 벌이고 있다. 북한의 지뢰 도발에 남한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다시 시작하자, 남북한이 서로 포탄을 쏘며 긴장을 높이고 있다. 곧 전쟁이라도 터질 것 같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다.

1950년의 한국전쟁 같은 전면전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전쟁이 다시 일어난다면 그것은 공멸이다. 김정은이나 박근혜가 원하는 것은 이러한 위기 상황을 조성하여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유지하는 것이다. 그들은 적당히 위기를 조성하고, 적당히 주고받으면서 권력을 유지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북한은 어차피 왕조국가이니 정상적인 방법으로 정권이 교체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쿠데타나 민중혁명이 성공하지 않는 한 김씨왕조는 지속될 것이다. 문제는 남한이다. 남한은 5년마다 최고권력자가 선거에 의해 바뀌는 구조지만, 지배계층은 늘 친일과 독재 후예나 부역 세력들이다. 많은 백성들이 노예로 살면서 아무 고민없이 1번만 찍는 이상, 독재자 후손들의 치킨 게임은 계속될 것이다.

지난 2년 반동안,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보여준 리더십은 완벽했다. 세월호, 메르스, 국정원 해킹도 모자라 이제는 전쟁을 빌미로 국민들을 협박하는 그의 모습에서 아버지 박정희가 살아온 듯한 전율을 느낀다. 대한민국은 침몰해가는 세월호일 뿐이다.

남북한의 권력자들이 이제 국민들의 목숨까지도 위협하는 상황에서 계속 안녕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계속 안녕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시간에 대하여

사람이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환상 중 하나는 바로 “시간”이다. 이 시간이라는 관념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거의 모든 사람이 과거, 현재, 미래가 존재하는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흐르는 강물과 같은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와 미래라는 관념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만 존재한다. 과거와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현재라는 순간만이 존재할 뿐이다.

싯다르타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도 그 비밀, 그러니까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 비밀을 강물로부터 배웠습니까?”
“그래요, 싯다르타.” 바주데바가 대답했다.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강물은 어디에서나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강의 원천에서나, 강 어귀에서나, 폭포에서나, 나루터에서나, 시냇물의 여울에서나, 바다에서나, 산에서나, 도처에서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강에는 현재만이 있을 뿐, 과거라는 그림자도, 미래라는 그림자도 없다, 바로 이런 것이지요?”
“바로 그렇습니다.” 싯다르타가 말했다. “그리고 그것을 배웠을 때 나는 나의 인생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나의 인생도 한 줄기 강물이었습니다. 소년 싯다르타는 장년 싯다르타와 노년 싯다르타로부터 단지 그림자에 의하여 분리되어 있을 뿐, 진짜 현실에 의하여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싯타르타의 전생들도 결코 과거의 일이 아니었으며, 싯타르타의 죽음이나 범천에로의 회귀도 결코 미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아무것도 없었으며,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은 현존하는 것이며, 모든 것은 본질과 현재를 지니고 있습니다.”
싯다르타는 무아지경에 빠져 황홀한 상태로 말하였으니, 이러한 깨달음이 그를 그토록 기쁘게 하였던 것이다. 아, 일체의 번뇌의 근원이 시간 아니고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자신을 괴롭히는 것도, 두려워하는 것도 그 근원은 모두 시간 아니고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그렇다면 인간이 그 시간이라는 것을 극복하는 즉시, 인간이 그 시간이라는 것을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즉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힘겨운 일과 모든 적대감이 제거되고 극복되는 것이 아닌가?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민음사, pp. 157-158>

적절한 최고임금은 얼마인가

지난 해 우리나라 최저임금이 한 시간에 5210원이었다. 이것을 월급으로 계산하면 108만8890원(월 209시간)이 된다. 물론 최저임금도 못 받는 사람이 수두룩하지만, 법에서 규정한 임금으로 계산하면 연봉 1300만원 정도가 2014년의 최저임금이었다.

2014년에 제일 돈을 많이 번 대기업 등기임원은 삼성전자 신종균 사장인데, 연봉 146억원을 받았다. 삼성전자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회사고 돈을 많이 버는 회사이긴 하지만, 일반 서민들의 입장에서 146억이라는 숫자는 전혀 현실감이 없다. 최저임금의 무려 1100배가 넘는 액수니까.

그렇다면 재벌총수들은 어떤가. 이들은 아주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라 대부분 등기임원에서 빠져 2014년의 연봉 공개 대상이 아니었다. 2013년 SK 최태원 회장이 감옥에 있으면서도 301억원을 받았다. 최저임금의 무려 2000배가 넘는 어마어마한 액수다. 죄를 지어 구속이 되었는데도 회사에서 300억원이 넘는 돈을 받았다는 사실이 과연 실제 있을 수 있는 일인지 믿기 어려웠다.

우리나라 재벌 총수나 대기업 사장들은 최저임금의 수천 배가 넘는 돈을 연봉으로 받고 있다. 이런 극단적 불균형과 양극화는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한다. 1%도 안 되는 소수의 집단이 사회 전체의 부를 거의 모두 차지하는 이런 현실은 부도덕하고, 지속가능하지 않다.

지나치게 많은 돈은 사람들을 병들게 한다. 우리나라 재벌들 치고 형제 간에 싸움을 하지 않는 집안이 없다. 그들이 벌이는 골육상잔의 막장 드라마를 볼라치면, 인간이라는 종족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 상상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양극화를 해소하고 사회시스템을 건강하게 유지하며 사람들을 타락시키기 않을 만큼의 최고임금은 어느 정도일까?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에 따르면, 한 조직의 최고임금은 최저임금의 20배를 넘지 말아야 한다. 20배를 넘게 되면, 종업원들의 분노와 사기 저하가 회사에 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I have often advised managers that a 20-to-one salary ratio is the limit beyond which they cannot go if they don’t want resentment and falling morale to hit their companies.”

<What’s the right ratio for CEO-to-worker pay?, Washington Post>

실제로 홀푸드(Whole Foods)라는 회사는 최고경영자의 임금을 회사 평균 임금의 19배 정도로 제한하고 있다. 드러커의 20:1 원칙을 준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책이 회사를 발전시키고 종업원들의 사기를 높여 더 좋은 회사로 만든다.

2015년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시급 5580원이고, 연봉으로 따지면 1400만원 정도다. 따라서, 이것을 기준으로 드러커의 원칙에 따라 계산하면 바람직한 최고임금은 2억 8천만원 정도라고 볼 수 있다.

최저임금과 최고임금을 연동시키면, 최고경영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에 지금처럼 인색하지 않을 것이다. 양극화를 줄일 수 있고, 건강한 경제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다.

과연 피터 드러커는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릴만하다.

우리나라 지배계급의 뿌리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0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생긴 지 67년이 되었다. 1987년 형식적 민주화를 이룩한 지 30년 가까이 되었지만, 아직도 이 나라는 봉건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나라를 지배하는 권력자들은 가깝게는 군부독재와 친일파에 줄을 대고 있고, 멀게는 조선 후기 노론 세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 노론은 조선 숙종 이후 300년 간, 이 땅에서 단 한 번도 권력을 놓아본 적이 없다고 볼 수 있다. 노론의 후예들이 친일파로 살아남고, 그 친일파들은 해방 이후에도 이 땅에서 숙청되지 않고 권력을 움켜쥐고 있다. 정치 권력뿐만 아니라 경제, 문화, 언론, 사법, 행정, 학계 할 것 없이 우리 사회 거의 모든 분야의 권력을 노론의 후예들, 친일파의 후예들이 잡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는 수구도 아니고, 보수도 아니고, 진보는 더더욱 아니다. 그들을 규정할 수 있는 단 한마디는 바로 “기회주의”다. 그들은 권력을 잡고 생존하기 위해서 무한변신이 가능한 카멜레온 같은 자들이다. 그들은 친일파도 될 수 있고, 친미주의자도 될 수 있으며, 필요하다면 공산주의자도 될 수 있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가리지 않는다.

이 나라 지배계급의 뿌리는 300년 전의 노론이었고, 노론의 영수는 송시열이다. 송시열은 “송자”라고 칭송되는 성현의 반열에까지 오른 이유가 바로 그 노론의 후예들이 여전히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시열은 기회주의자가 아니었지만, 철저히 사대부계급의 이익과 당파의 이익을 위해 한 평생을 살았다. 그에게는 나라도, 국왕도, 백성도 뒷전이었다. 그의 학문은 주자로 시작해 주자로 끝났는데, 그 주자학은 사대부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다.

한때 송시열의 제자였던 윤증의 편지를 보면 그의 인물됨을 짐작할 수 있다. 이 편지를 본 송시열은 크게 화를 내며, “나를 죽일 자는 바로 윤증”이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문하(송시열)께서는 한결같이 주자를 종주로 하고 사업은 대의에 두었으나, 자신에게 찬동하는 자는 친밀하게 대하고 바른 말로 뜻을 어기는 자는 화를 당하니 이 때문에 문하의 큰 이름이 온 세상을 덮지만 진실한 덕은 안으로 병듭니다. 굳세다는 것은 자신을 이기는 것을 말함인데 문하는 힘으로 남을 복종시키는 것을 굳세다고 하니 이는 참된 굳셈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문하의 위력을 두려워해서 복종하는 것이지 덕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니 이는 완연한 부귀가의 모습일 뿐 유학자의 기상이 없습니다.

<이덕일,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p.336>

이 나라 지배 권력의 뿌리를 알려면 송시열과 노론을 알아야 한다. 그들이 이 땅을 지배한 지 300년이 넘었다. 이 나라는 표면적으로는 민주 국가가 되었지만, 여전히 봉건적 계급 사회를 내포하고 있다. 지배계급은 모든 상부구조를 동원하여 끊임없이 노예들을 만들어내고 있으나, 그 노예들은 자신이 노예인지 모른다. 그리하여 이 지배구조는 별일 없이 지속되고 있다.

을미년 여름, 여전히 안녕하신가

을미년 여름은 너무 일찍 시작됐다. 봄인가 했더니 순식간에 여름이 되었다. 봄은 갈수록 짧아지고, 여름의 시작은 점점 일러졌다.

날이 가물었다. 지난 겨울부터 제대로 된 비가 오지 않았다. 논바닥이 갈라지고, 농심이 타들어갔다. 4대강에는 물이 넘쳐도, 그 물을 농사에 사용할 수 없었다. 4대강 사업을 하면 가뭄과 홍수를 막을 수 있다고 한 그 자들의 말은 모두 거짓이었다.

날이 가물고, 역병이 돌았다. 정부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아니 그들은 전염을 억제하고 역병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역병은 나날이 번져 나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격리되고 몇몇은 죽어나갔다. 민심은 흉흉해지고 경기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늘 경제타령을 했지만, 경제는 나아지지 않았다. 예전에 대통령을 경포대라 욕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때의 경제는 지금보다 훨씬 좋았다. 어떤 사람들은 외환위기 때보다도 더 어렵다고 했다. 정부의 관심은 오로지 집값이었다. 집값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정부는 빚을 내서 집을 사라고 했다. 그것이 유일한 경제 정책이었다. 이자율은 계속 떨어지고 사람들의 빚은 늘어 갔다. 경제는 백척간두였다.

세월호 침몰로 진도 앞바다에서 수백명의 사람이 죽었다. 1년하고도 2개월이 지난 지금, 그 죄없는 어린 학생들과 시민들이 왜 죽어야만 했는지 아무도 몰랐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고, 진실을 밝히려 하지 않았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여전히 길에서 울었고, 억울한 원혼들은 구천을 맴돌았다.

“그래서 대통령 될라구 하는 거 아녜요, 지금. ㅎㅎㅎ” 그 여자는 이렇게 말하고 51.6%의 득표로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2년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예상보다 견딜만 하신지, 여전히 안녕하신지 궁금할 따름이다.

당신의 아들딸은 세월호를 타지 않았기에 괜찮고, 당신의 가족들은 메르스에 걸리지 않아 괜찮고, 당신은 집을 사기 위해 빚을 내지 않았으니 괜찮고, 당신은 농사짓는 농부가 아니니까 괜찮다고? 그렇다면 계속 안녕하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을미년 여름은 비도 오지 않고, 사정없이 더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