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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5] 세월호의 흔적

[산티아고 순례길 5] 세월호의 흔적

카미노를 걷다 보면 가끔씩 세월호의 흔적을 발견한다. 한국 사람들에게 세월호 참사는 잊혀지지 않는 트라우마였다. 자식을 잃은 부모뿐만 아니라 그 아이들이 수장되는 순간을 TV를 통해 지켜보던 거의 모든 이들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과 상처를 안겼다.

대통령은 가증스런 위선의 눈물을 보이며 유가족의 한을 풀겠다고 거짓말을 했다. 참사의 진상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진상규명은 끊임없이 방해받고 있다. 그 방해하는 집단이 이 참사를 기획했을 것이라는 짐작만 할 뿐이다.

누군가가 철조망에 노란 리본을 걸어 놓았다. 무덤 앞 십자가에는 노란 리본 스티커가 붙어 있다. 카미노를 걷는 이들 중에 세월호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유가족을 비롯한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것이다.

카미노를 걷다가 노란 리본을 보면서 세월호의 상처를 기억한다. 그 상처가 치유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진상규명이다. 카미노는 분명 그렇게 말했고, 그렇게 될 것이라고 소리 없이 외쳤다.

철조망에 걸린 세월호의 흔적
철조망에 걸린 세월호의 흔적
로산나 무덤의 세월호 리본
로산나 무덤의 세월호 리본
[산티아고 순례길 4] 길의 가르침

[산티아고 순례길 4] 길의 가르침

전설이 있었다. 예수의 제자 야고보의 유해가 별들의 들판에 묻혀 있다는. 그 전설에 의해 길이 열렸고, 그 길을 따라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 많은 사람들이 산티아고로 향했다. 그들은 순례자라 불렸다.

길은 피레네 산맥을 넘고 나바라와 메세타 평원을 거쳐 갈라시아에 닿아 있었다. 그 길을 떠나는 사람들은 자기만의 이유가 있었다. 어떤 이들은 신께 더 가까이 가기 위해 길을 떠났고, 다른 이들은 진리를 찾아 떠났다. 기적을 믿는 이들도 있었고, 치유가 필요한 이들도 있었다.

길은 그곳에 있었고, 그 길은 꿈꾸는 자가 보아야 할 것을 보여주고, 필요한 것을 내주었다. 길의 법칙을 가르쳐 주었고,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게 해 주었다. 탐욕의 폐해를 알게 해주었고, 겸손이 무엇인지, 열정이 무엇인지, 인내가 왜 필요한지 가르쳐 주었다.

길은 공평하였다. 걸은 만큼 알게 해주었고, 사람들은 걸은 만큼 성장하였다. 그 길 위의 사람들은 동료가 되었고, 친구가 되었고, 가족이 되었다. 기쁨을 같이 하고 슬픔과 고통을 나누며 함께 걸었다. 산티아고라는 목표가 있었지만, 그곳에 정말 성 야고보의 유해가 묻혀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성 야고보는 상징일 뿐이었다. 그것이 가리키는 것은 사랑이었다. 그들은 마침내 그 사랑이 산티아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순례길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곳에 존재했다. 산티아고 순례길뿐만 아니라 모든 길에 있다는 사실도, 그 모든 길 위에서 걷고 있는 모든 존재가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 결국, 순례는 사랑을 찾아 떠나는 것이며, 그 사랑이 모든 존재임을 깨닫는 여정이다. 길은 그 진리를 가르쳐 주었다.

생장의 스페인문, 드디어 출발
생장의 스페인문, 드디어 출발
저멀리 양떼
저멀리 양떼
Honto 이정표
Honto 이정표
오리송 가는길
오리송 가는길
길가의 말들
길가의 말들
오리송 산장
오리송 산장

생장에서 오리송까지는 약 10Km. 아내는 오리송 산장에서 꼭 하룻밤을 묵어야 한다고 우겼다. 성수기인 여름에 여기에서 묵으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눈 앞에 펼쳐진 피레네의 멋진 풍광과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이곳을 지상낙원으로 만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저 아래 풀을 뜯고 있는 양들과 말들을 바라보았다.

한국에서 온 신부님 일행과 인사를 나누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산장에 묵는 40여명의 사람들과 자기 소개를 하며 인사했다. 우연으로 보이지만 운명으로 만난 이들이었다. 시끌벅적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카미노에서의 첫날밤, 모두들 평화롭게 잠에 취했다.

덧.

<야고보의 전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된 후, 예수의 제자였던 야고보가 스페인 북부 지방까지 복음을 전하러 왔다. 그 후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순교하고, 그의 유해가 돌배에 실려 스페인 북부 해안에 떠내려오게 된다. 야고보의 유해가 스페인 북부에 묻히게 되고 그 이야기는 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진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 9세기에 별들의 들판이라 불리는 곳의 한 무덤이 별의 계시에 따라 야곱의 무덤으로 밝혀진다. 왕은 그곳에 성당을 짓고 성 야고보를 추모한다. 그 후 사람들의 순례가 시작되었고, 중세에는 교황이 예루살렘, 로마와 더불어 산티아고데캄포스텔라를 3대 성지로 선포하였다.

[산티아고 순례길 3] 생장의 구름모자

[산티아고 순례길 3] 생장의 구름모자

계획하지도 않았고 별 기대도 없었지만, 설레임과 호기심으로 일찍 잠을 깼다. 아직 시차 적응이 안 되어 일찍 일어난 건지도 모를 일이지만.

멀리서 동이 트기 시작했다. 숙소에서 아침을 챙겨먹고 강가에 나가 산책을 했다. 강물이 유유히 흐른다. 저 유장한 강물은 어디에서 바다를 만날 것인가. 바욘역에서 생장피에드포르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Saint-Esprit 다리
Saint-Esprit 다리
바욘역
바욘역
생장 가는 열차
생장 가는 열차

생장의 순례자 사무실에서 세 명의 한국 젊은이들을 만났다. 젊음은 생장에서 더욱 빛났다. 그들은 론세스바예스로 서둘러 떠났고, 남겨진 자는 생장의 낡은 성곽을 둘러 보았다. 돌틈의 이끼가 시간의 두께를 말해주고 있었다.

하늘은 드높고, 독수리 같이 보이는 새 서너 마리가 공중을 빙빙 돌고 있었다. 저 앞에 보이는 피레네 산맥의 어느 봉우리에 하얀 구름모자가 멋스럽게 걸렸고, 바닥에는 산티아고의 방향을 가리키는 금속 표식이 번들거렸다.

계획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은 뜻밖의 여정에 순례자가 되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남겨진 자에게는 이 길을 걸어야하는 숙명 같은 임무가 있었다. 그는 그 임무를 입 밖에 내서는 안 된다. 성당에 들러 이번 여행의 안녕과 모든 이의 행복을 위해 기도했다. 상쾌한 출발이었다.

생장 전경
성곽에서 바라본 생장의 전경
생장의 풍경
생장의 풍경
구름모자
피레네 산맥에 걸린 구름모자
산티아고 방향을 가리키는 바닥 표식
산티아고 방향을 가리키는 바닥 표식
노틀담 뒤퐁 성당
노틀담 뒤퐁 성당
[산티아고 순례길 2] 바욘의 노을

[산티아고 순례길 2] 바욘의 노을

11시간의 비행 끝에 파리에 도착했다. 흐린 날씨에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내일 생장피에드포르에 가기 위해 오늘 바욘에 도착해야한다. 비행기를 갈아탈 때까지 시간이 꽤 남았다.

때마침 유로2016이 프랑스에서 열리고 있는데, 스페인과 이탈리아 경기가 TV로 중계되고 있었다. 영국의 EU탈퇴로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도 많은 유럽 사람들은 축구에 열광하고 있었다. 스페인은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결국 2대0으로 이탈리아가 8강에 올랐다.

바욘 비아리츠 공항에 도착하니 밤 9시가 되었다. C버스에 올라 친절한 여자 버스 기사의 도움으로 바욘 시내에서 내렸다. 니브강이 유장하게 흐르고 해는 서쪽으로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호텔로 걸어오는 동안 프랑스 남부 소도시의 여유를 마음껏 즐겼다.

니브강 저편으로 노을이 아름답게 물들었다. 깨끗하고 여유롭고 나른한 바욘의 밤이었다.

바욘, 니브강
바욘, 니브강
바욘의 노을
바욘의 노을
[산티아고 순례길 1] 뜻밖의 여정

[산티아고 순례길 1] 뜻밖의 여정

삶은 대개 계획대로 전개되지 않는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모든 여행이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불과 두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순례길을 끝까지 걸을 수는 없지만, 이번 여행은 사람의 의지와는 상관 없는 일종의 ‘부름’이었고, ‘선물’이었다.

새벽 3시 반, 휴대전화 알람을 맞춰 놓고 잠이 들었지만 전화기는 울리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부름’으로 눈을 떴다. 역시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루가 시작되었다. 공항가는 버스 좌석을 예매하지 않았는데, 새벽에 사람이 그렇게 많을 줄 몰랐다. 표 파는 아저씨가 마지막 한자리가 남았다고 귀뜸해 주었다. 누군가가 계속 지켜보면서 도와주는 기분이 들었다.

인천공항은 예상대로 몹시 붐볐다. 방학을 맞은 젊은이들과 중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공항은 북새통이었다. 에어프랑스 기장들의 파업 때문인지 파리로 가는 비행기의 도착이 지연되었다. 비행기에 탄 젊은이들의 얼굴에는 호기심과 설레임이 가득했다. 비행기에서 주는 두 번의 밥을 꼬박 챙겨먹고, 몇편의 영화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나이가 들면서, 오랜 비행이 주는 피로를 쉽게 견디지 못했다. 늘 계획없이 사는 자의 운명인지 모르겠지만, 뜻밖의 여행이라도 큰 기대는 없었다.

인천공항, 출발 전 비행기 모습
인천공항, 출발 전 비행기 모습
[산티아고 순례길] 준비물과 원칙

[산티아고 순례길] 준비물과 원칙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가 많은 젊은이들이 무거운 배낭과 발에 생긴 물집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을 보았다. 어떤 젊은이는 14Kg의 짐을 배낭에 넣고 다녔다. 그렇게 많은 물건들을 가지고 다니니 발과 무릎이 아플 수밖에 없었다.

순례는 일반적인 여행과는 다르다. 순례는 마음과 몸을 비우고 영성을 키우며 삶의 무게를 가볍게 하는 여정이다. 그런 귀중한 시간과 과정이 무거운 짐과 부상때문에 고통의 시간이 된다면 순례의 본래 목적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 글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몇 가지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그들의 성공적인 순례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원칙

  1. 물건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무게다. 무조건 가벼운 것을 고른다.
  2. 꼭 필요한 것만 가져간다.
  3. 무조건 7Kg 이하로 짐을 싸라.

꼭 필요한 것들

  • 등산화: 목이 있는 가벼운 경등산화가 좋다. 방수 기능이 있는 것이면 더 좋다. 새신발은 반드시 길을 들여야 한다. 신발 깔창을 좋은 것으로 구입하는 것도 권한다.
  • 배낭: 무조건 40리터 이하, 무게 1Kg 이하로 준비한다. 35리터 배낭이면 충분하다. 배낭커버도 있어야 한다.
  • 침낭: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오리털 침낭 중 가장 가벼운 것을 선택한다.
  • 양말: 등산양말과 발가락양말을 준비한다. 발에 물집 생기는 것을 방지하려면 발가락양말을 신고 그 위에 등산양말을 겹쳐 신는다. 발가락양말은 마라토너들이 신는 쿨맥스 소재의 양말을 권한다.
  • 슬리퍼: 가벼운 것으로 준비한다.
  • 모자: 햇볕을 잘 가릴 수 있는 가벼운 것으로 준비한다.
  • 등산지팡이: 등산지팡이는 2개 한쌍으로 현지에서 구입하면 된다. 20유로면 충분하다.
  • 판초우의: 역시 가볍고 방수가 잘 되는 것으로 준비한다.
  • : 잘 마르는 기능성 옷으로 티셔츠, 바지 각 2개씩 준비한다. 여름이라도 추위를 막을 수 있는 바람막이 겉옷을 준비한다. 속옷도 잘 마르는 것으로 2벌 준비한다.
  • 세면도구: 칫솔, 치약, 비누, 면도기, 기능성 수건 등.
  • 화장품: 로션, 썬크림 등.
  • 스마트폰: 모든 자료는 pdf로 만들어 스마트폰에 저장한다.
  • 일기장, 필기도구

가져가면 후회하는 것들

  • 카메라: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무거운 DSLR 카메라를 가져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반드시 후회한다. 카메라는 스마트폰이면 충분하다.
  • : 여행 중에 책을 읽겠다고 가져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역시 금방 버리게 된다. 필요한 자료는 모두 스마트폰에 저장하여 읽으면 된다.
  • : 지병이 있지 않는 한, 약은 필요없다. 필요하면 현지에서 구입한다.
이름 없는 비석

이름 없는 비석

그날, 제주의 하늘은 잔뜩 찌푸렸고 세찬 바람에 눈발까지 날렸다. 까마귀들이 눈발 속에서 울어대며 웃무드내 하늘을 빙빙 돌다가 나뭇가지에 앉았다. 을씨년스러웠다.

어떤 이들은 폭동이라 했고, 어떤 이들은 사건이라 했으며, 어떤 이들은 항쟁이라 했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죄없는 수많은 제주의 양민들이 미군과 정부군의 공격으로 살해되었다는 것이다. 아직도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그 희생들은 온전히 안식하지 못했다.

제주 4.3 ……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고 정권이 교체된 후에야 비로소 제주 4.3의 진상이 하나둘 밝혀졌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과거 국가 권력의 잘못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을 전하기 전까지 그들은 숨죽여 울지도 못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의 세월 속에서 그들은 처절하게 고립되어 있었다. 오로지 한라산 중산간의 바람과 까마귀 울음만이 그들과 함께 했다. 그 아픔과 절망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그 무고한 사람들의 영혼을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

제주 4.3 평화기념관 전시실 입구에 이름 없는 비석, 백비(白碑)가 놓여 있다. 그 비석 앞 팻말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씌여 있다.

“언젠가 이 비에
제주 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

제주는 세상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섬이지만, 그 섬에는 너무나 슬프고 아픈 역사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아픔과 슬픔이 여전히 온전하게 위로받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전시실을 나오면서 낮고 목메인 소리로 <잠들지 않는 남도>를 읖조리며 그들의 평안을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