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없다

타이페이에 가면 마오콩(Maokong)이라는 산이 있다. 마오콩은 한자로 猫空이라 하는데,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고양이는 없다’라는 뜻이다. 일설에 의하면, 정말 그 산 주변에 고양이가 없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이 그냥 꾸며낸 말이다. 산의 돌과 바위들이 산 위에서 내려오는 물 때문에 움푹움푹 파여있는데, 그런 지형을 타이완 말로 Niaokang이라 한다. 이것과 같은 발음을 가진 단어가 “고양이가 할퀸”이라는 뜻이 있었고, 그것을 중국 본토말로 바꾼 것이 바로 마오콩이란다.

아무튼 마오콩을 오르기 위해서 사람들은 대부분 곤돌라를 탄다. 우리 일행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곤돌라가 고장이 났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택시를 불러 산 위에 있는 마오콩역에 도착했다. 타이페이 전경이 눈에 들어오고, 저 멀리 쌩뚱맞은 101타워가 솟아 있었다.

근처 찻집에서 우롱차를 마셨다. 따뜻한 봄바람이 불었다. 저멀리 고장난 곤돌라는 가다서다를 반복했고, 곤돌라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버스와 택시로 제각기 산을 내려갔다. 저 아래 도교사원인 지남궁의 화려한 자태가 보인다.

모처럼만의 맑은 하늘이란다. 중국 억양이 섞인 영어로 젊은 안내인이 타이페이의 이모저모에 대해 설명한다. 푸른 하늘과 울창한 나무들과 싱그러운 바람과 따뜻한 차와 함께 나른한 오후를 만끽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타이페이의 봄날이었다.

희고 긴 구름의 땅

지금으로부터 약 1000년 전쯤 하와이키에서 카누를 타고온 마오리 사람들이 이 땅을 처음 발견하고 한 말이 Aotearoa라고 한다. 희고 긴 구름이라는 뜻인데, 하얗고 긴 구름에 싸인 그 섬이 마오리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보였으리라.

오클랜드 공항에서 본 마오리 사람들은 모두 닮았다. 그들의 DNA에는 하와이키에서 온 조상들의 유전자가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몇 백년이 흐른 뒤, 다른 신대륙처럼 뉴질랜드에도 유럽 사람들이 들어왔다. 유럽 사람들은 그들이 문명이라 부르는 것들을 가지도 들어왔고, 마오리 사람들은 유럽인들의 기술과 탐욕을 받아들였다. 미약하게 이어져온 마오리의 전통 문화를 제외하고 뉴질랜드의 삶은 서구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지금의 뉴질랜드는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이나 <호빗>으로 더 유명한 땅이 되었다. 이들 영화는 뉴질랜드 아니면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인간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때묻지 않은 자연은 톨킨이 얘기한 중간계가 이곳일 수 밖에 없음을 말해준다.

오클랜드 같은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초지에 양과 소들이 하릴없이 풀을 뜯는다. 12월의 햇볕은 따가웠고,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평화롭게 떠다니고 있었다.

돌고래와 조우하다

영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따르면 돌고래는 지구별에서 두 번째로 지능이 높은 생명체인데(인간은 세 번째), 이 돌고래들이 지구별의 파멸을 예견하고 공중제비를 돌며 인간들에게 여러 차례 경고했지만, 인간들은 돌고래들의 이러한 행동을 장난으로만 받아들였고, 결국 돌고래들은 “So long and thanks for all the fish”라는 말을 남기고 모두 지구별을 떠나고 말았다.

그렇게 지구별을 떠난 줄로만 알았던 돌고래들을 뉴질랜드 북부 해안의 다도해(Bay of Islands)에서 보게 될 줄이야.

일주일 내내 비바람으로 12월의 여름을 체감하지 못했는데, 그날은 모처럼 날이 개고 화창했다. 선장은 날씨가 좋아 돌고래를 볼 수 있을 거라 얘기했지만, 여전히 믿을 수 없었다. 아침 나절에 나갔던 유람선 승객들은 돌고래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며 투덜거렸다.

배가 Assassination Cove에 다다르자, 어디선가 돌고래 수십 마리가 쏜살같이 헤엄쳐왔다. 그 중 몇몇은 시키지도 않은 점프와 공중제비를 돌면서 여전히 지구별의 종말(?)을 경고했다. 그들은 초음파로 의사소통을 했고, 인간들은 여전히 그들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유람선 창문을 손톱으로 두드리자 바다 밑에 숨어 있던 돌고래들이 바로 눈 앞에 나타났다. 살아 생전에 그 녀석들과 수족관이 아닌 바다에서 그렇게 만나게 될 줄도 몰랐고, 그렇게 교감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뉴질랜드의 하늘은 자외선을 막아주는 오존층이 얇다. 그야말로 햇볕이 살을 파고들었다. 그렇지만 그날은 운이 몹시 좋았다.

우산봉에서 비를 맞다

계룡산의 변방에 자리잡은 갑하산우산봉은 현충원을 둘러싸고 있는 전망좋은 산이다. 유성은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나오는 살기 좋은 곳 중 하나인데, 그 중 현충원 자리는 매화낙지형의 명당이라 불린다. 그 명당을 둘러싼 갑하산, 신선봉, 우산봉의 능선은 현충원을 내려다 보기도 좋고, 저 멀리 국립공원 계룡산의 연봉들을 조망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특히, 신선봉에서 우산봉으로 가는 능선길은 숲과 바위가 어우러지고, 소나무가 많아 걷기 편한 길이다. 솔향기 가득한 숲과 낙엽으로 푹신한 오솔길을 걷다 보면, 속세의 시름을 모두 잊고 자연과 하나됨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 산길에서 비를 만났다. 빗방울이 나뭇잎들을 간지르고, 어디선가 이름 모를 새가 구슬피 울었다. 나무들은 비가 오는 하늘을 향해 팔을 뻗어 소리 없이 환호하면서 청정한 숨을 내쉬었다. 비와 함께 향긋한 숲 냄새, 산 냄새, 바위 냄새가 피어 놀랐다. 아카시아 마른 꽃잎이 눈꽃처럼 길 위에 깔렸다. 칡넝쿨은 신이 나서 나무를 감으며 기지개를 켰다. 무릉이 있다면 바로 이런 곳이 아닐까.

우산봉에서는 우산 없이 비를 맞아야 한다. 그 빗속에서 산이 되고, 숲이 되고, 나무가 되어야 한다. 우산봉에서 비를 맞으며 자연의 온전함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갑하산

이번 산행은 대전둘레산길 8구간이었다. 산행 거리는 약 10km이고, 시간은 약 4시간이 걸렸다.

도덕봉에 오른다고

5월의 산은 아기의 솜털 같다. 초등학생들의 재잘거림이다. 그 싱그러운 푸르름이 막 피어오르는 5월의 산. 그 산을 외면하기란 불가능하다.

오랜만에 계룡산 수통골에 있는 도덕봉에 올랐다. 도덕봉에 오른다고 더 도덕적인 인간이 되지는 않겠지만, 도덕봉을 포함한 모든 산들은 인간을 조금 더 겸손하게 한다. 산을 오른다는 것은 자연 앞에 홀로 서는 것이다. 그 안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자연과 하나되는 것이다.

산행은 대전과 공주의 경계인 삽재에서 시작되었다. 도덕봉과 자티고개, 금수봉삼거리를 거쳐 수통골로 내려왔다. 산행 거리는 약 8km 정도고, 시간은 약 3시간이 걸렸다. 원래는 금수봉과 빈계산까지 가려고 했으나, 시간이 여의치 않았다.

산행 전날, 아이폰 앱스토어에서 산넘어산GPS라는 앱을 받았다. 이 앱을 이용하니 산행동안 거의 모든 행적이 기록되었다. 바야흐로 이제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있는 빅데이터 시대에 사는 것이다.

블로그에 산행의 흔적을 남겨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그림을 첨부한다.

도덕봉

 

다자이후 텐만구

다카오 선생을 만난 것도 선생과 같이 다자이후(大宰府)에 간 것도 계획에는 없었던 일이었다. 삶이란 계획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 선생은 큐슈국립박물관에 간다고 했었고, 같이 갈 생각이 있냐고 물었었다. 안 갈 이유가 없었기에 선생을 따라 나섰고, 선생은 박물관을 보기 전에 텐만구(天満宮)에 들르자고 했다.

텐만구는 학문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스와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真)를 기리는 유명한 신사이다. 텐만구 본전 앞에 토비우메(飛梅)는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데, 미치자네의 아름다운 시에 감응하여 교토에서 날아왔다 한다.

동풍이 불면 향기를 바람에 실어 보내다오
매화여, 주인이 떠났다고 봄을 잊지 말고

東風ふかば におひおこせよ
梅の花 あるじなしとて 春な忘れそ

봄바람에 매화 향기가 천 년 넘은 녹나무 아래로 퍼지고, 마음 심 모양의 연못에는 금빛 잉어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복을 빌고 나오는 길에 우메가에모치(梅ケ枝餠)를 한 입 베어물고 있었다.

다자이후 텐만구에서 만난 봄은 매화 향기와 함께 오래토록 기억에 남았다.

소녀와 고릴라, 그리고 바다

파도 소리, 갈매기 울음 소리 들려오는 이 곳은
인적 드문 어느 작은 어항
바람이 분다

바다에 나갔던 기억조차 없는 폐선 한 척
그 옆에 어디서 흘러들었는지 아무도 모르는 고릴라 한 마리
소녀는 고릴라를 사랑했고, 꽃을 귀에 꽂아 주었고
그래서 고릴라는 슬펐다

그들을 지켜보던 동네 할배
가슴 답답한지 담배 물고 어디론가 가버리고
색바랜 빈 의자만 덩그라니 남았다

소녀와 고릴라

경북 경주시 양남면 읍천항에 가면 고릴라와 소녀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사려니 숲

사려니 숲에
갔었지

사각거리는 붉은 송이를 밟으며
안개가 스며드는 길을 따라
숲으로 들어갔지

사방은 고요하고
숲은 침묵에 잠겨 있었지
졸참나무, 서어나무, 때죽나무 무성한 숲 속
노루 한 마리
시간과 함께 침묵 속에 멈춰 있었지

그곳은
차마 사람의 발길이 닿지 말아야 했을
완전한 세상
속세로부터 이어지던 숲길이
점점 사라지고 말았지

사려니 숲에 다시
갈 수 없었지

<소요유, 2013년 7월>

어제도 사막 모래언덕을 넘었구나 싶은 날
내 말을 가만히 웃으며 들어주는 이와
오래 걷고 싶은 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보다 다섯 배 열 배나 큰 나무들이
몇 시간씩 우리를 가려주는 길
종처럼 생긴 때죽나무 꽃들이
오리 십리 줄지어 서서
조그맣고 짙은 향기의 종소리를 울리는 길
이제 그만 초록으로 돌아오라고 우리를 부르는
산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것들을 주체하기 어려운 날
마음도 건천이 된 지 오래인 날
쏟아진 빗줄기가 순식간에 천미천 같은 개울을 이루고
우리도 환호작약하며 물줄기를 따라가는 질
나도 그대도 단풍드는 날이 오리라는 걸
받아들이게 하는 가을 서어나무 길
길을 끊어 놓은 폭설이
오늘 하루의 속도를 늦추게 해준 걸
고맙게 받아들인 삼나무 숲길
문득 짐을 싸서 그곳으로 가고 싶은
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라산 중간산
신역(神域)으로 뻗어 있는 사려니 숲길 같은

<도종환, 사려니 숲길>

Le Grand Bleu

튀니지 Gammarth 바닷가 언덕에 있는 식당 이름은 “Le Grand Bleu” 이었다. 그 이름이 말해 주듯이 그곳에서 한없이 펼쳐진 지중해의 그 바다를 볼 수 있었다. 그 바다 색깔은 인간이 가진 언어로는 쉽게 형용하기 어려웠다.

넋을 잃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웨이터들은 끊임없이 음식을 나르고, 여기저기서 불어와 영어가 섞인 대화들이 오갔지만 나의 시선은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바다 건너에 시칠리아 섬이 있을 것이고, 아직도 바다 속에서 돌고래와 놀고 있을 쟈크가 있을 것만 같았다.

인간들의 삶은 참으로 비루하지만, 저 바다는 그 비루함과 그 비루함 속에 녹아있는 사랑과 증오마저도 모두 감싸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저 바다는 끝없이 자유로움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무 것도 거칠 것 없는 그 고독한 자유를. 그렇다. 무한한 자유는 무한한 고독이다. 그 쓸쓸함을 견딜 수 없다면 제대로 된 자유를 만끽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은 늘 그렇듯이 이렇게 공평한 법이다.

바다는 아버지를 데려갔고, 엔조를 데려갔다. 쟈크는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두고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간다. 그가 진정으로 사랑한 것은 바다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튀니지의 Gammarth에 가면 Le Grand Bleu 식당에 가야 한다. 그러면 Le Grand Bleu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냉새우보리밥의 추억

빠리에서 튀니스로 가는 에어 프랑스 비행기 안의 여자 승무원들은 육감적이었다. 그들이 음료수와 식사를 나르기 위해 비행기 복도를 이리저리 지날 때마다 이름 모를 향수 알갱이들이 흩날렸다. 그 향수 알갱이들은 아무렇게나 구겨져서 자고있는 승객들을 깨웠다.

승무원들이 내놓은 음식은 생전 처음 본 듯한 것이었다. 이것이 프랑스식인지, 중국식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국적 불명의 음식이었다. 작은 새우 세 마리와 보리 알갱이들의 조화. 볶음밥 같이 보이는 이 음식을 입에 가져가는 순간, 그것의 냉기가 소름을 돋게 했다. 평소에는 정말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새우와 보리가 서로 어울리지 못한 채 곤두 서 있었다. 나는 그 음식을 “냉새우보리밥”이라 이름지었다.

17시간 정도의 여정에 몸은 피로하였고, 허기가 져서 냉새우보리밥을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이가 시려웠고, 한기가 온몸을 감샀다. 따뜻한 차를 한모금 마심으로써 그 한기를 조금씩 달랬다.

비행기는 지중해를 건너고 있었고, 승객들은 냉새우보리밥을 꾸역꾸역 먹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