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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 October 2007

막장 한국 언론, 막장까지도 넘어서다

막장 한국 언론, 막장까지도 넘어서다

한국의 보수 언론(다른 말로는 수구찌라시)들에게 북한의 김정일은 어떤 사람이었던가. 상종할 수 없는 철천지 원수요, 악의 화신이 아니었던가. 주석궁으로 탱크를 몰고 들어가 없애버려야 할 그런 인간이 아니었던가. 아마 오사마 빈 라덴보다도 한 십만배쯤 더 나쁜 인간 말종이 아니었던가.

그런 김정일이 노무현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한국 언론들을 조롱했다. “기자가 아니라 작가인 것 같다”라고. 그러면서 김정일은 기분 나쁘지 않다고 했다. 왜? “니들은 찌라시니까” 말은 그렇게 안했지만 그런 비웃음이 깔려 있었다.

자신들이 인간 말종이라 여기던 김정일한테까지 조롱받는 한국의 보수 언론들 (대표주자는 조중동문이렷다). 이제 올 때까지 왔다. 여기가 막장이다. 기자가 사실을 보도하지 않고 지어낸다고 소리를 들었다면 그건 얘기 끝난 것 아닌가. 그것도 김정일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왔으니 더 이상 할 말도 없을 것 같다.

김정일의 조롱을 받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한국의 언론들은 남북정상들이 내놓은 선언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역사적인 남북정상 선언 폄훼에 앞장서고 있다. 이들 신문들이 내놓은 기사들의 제목들을 훑어 보자.

[중앙일보] 상봉 확대, 동포애 강조 … 새로운 게 없다
[동아일보] “납북자 문제 거론조차 안하다니…”
[동아일보] ‘내정 불간섭’ 인권문제 눈감는 셈
[조선일보] 북핵→ 6자회담으로 떠넘겨
[동아일보] 정상들 ‘수시 만남’… 선언적 문구 그칠 가능성
[MBC] ‘NLL 문제’ 논란
[연합뉴스] <10.4선언> “공동선언 내용 막연“<WSJ>

어떡해서든지 남북정상회담의 결실을 훼손해 보겠다는 그들의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가? 어떡해서든지 선언에 명시된 내용이 실천되지 않길 바라는 그들의 희망이 엿보이지 않는가? 한겨레만이 “예상 뛰어넘는 진전”…‘남북 공동번영’ 가속페달이라며 정상회담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어제밤 노무현 대통령은 입술이 부르튼채로 대국민 보고회를 가졌다. 입술이 부르트면서까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불철주야 일을 하고 온 대통령에게 단 한마디 감사와 위로는 하지 않고, 선언문 잉크도 마르기 전에 물어뜯기 바쁜 한국 언론들.

막장에 다다른 한국 언론이 막장을 뛰어 넘고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 쓰레기들을 봐줘야 한단 말인가.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방해하는 암적 존재는 이땅의 쓰레기 막장 언론들이다.

아내는 예뻤다

아내는 예뻤다

결혼 전 아내는 싱그러웠다. 화사한 복사꽃처럼 발그레한 그의 얼굴에서 향긋한 봄날의 냄새가 났다. 결혼 전의 여자들이 대개 그렇겠지만, 아내는 나의 눈에 햇살 비치기 전 풀잎에 달린 맑은 이슬처럼 보였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런 것이다.

나는 아직도 큰 길 건너 저 멀리 걸어가는 아내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키가 큰 아내가 겅정거리며 걸어가는 뒷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의 뒤태는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에서도 빛이 났다.

아내는 참으로 발랄했고, 재치있었다. 그리고 때로는 덤벙댔다. 그것들은 내가 가지지 못한, 그리고 내가 때로는 부러워했던 그런 것들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애어른처럼 굴었던 나는 늘 맏이처럼 행동했고, 늘 느긋했다. 그런 내게 아내의 재기 발랄은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아내는 글을 잘 썼고, 많이 썼다. 내게도 많은 메일을 보내 왔다. 그의 메일을 읽는 것은 그날 하루의 큰 기쁨 중의 하나였다. 지금은 그 많은 글들이 다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며칠 전 아내는 그 당시 자기가 썼던 시 한편을 찾아 보내왔다. 그 시를 읽어 보니 우리가 결혼 전 만났던 그 순간순간들이 눈에 어렸다. 우리에게도 그렇게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었다. 가슴 뭉클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더라도 잊지 말았으면 하는그 순간들. 아내의 시와 함께 고이 간직하고 싶다.

비가 오면

비가 오면
사람들은 빨래를 걷는다
나의 그는
비가 오면 방구석에 처박힌 빨래감을
주렁주렁 빨래줄에 내다 널 것 같은 사람

비가 오면
사람들은 우산을 쓴다
나의 그는
비어 젖어 제 색을 더해가는 녹음진 공원에 앉아
한 없이 함께 젖어 갈 것 같은 사람

비가 오면
나는
그가 보고 싶은 간절함이
맘 속에 빗물처럼 고여
열번이 넘게 간 신호에도
수화기를 놓지 못하는
바보가 된다

아내와 결혼한 지 벌써 10여년이 된다. 세월이 그의 싱그러움을 조금 가져가 버렸지만 여전히 내게는 예쁜 아내이고, 고마운 아내다. 사랑해, 당신.

노무현, 오르가즘을 준 대통령

노무현, 오르가즘을 준 대통령

“삼팔선을 베고 죽더라도 민족의 분단을 막겠다”고 하며 김구 선생은 걸어서 삼팔선은 넘었다. 그리고 60여년이 지난 후 노무현 대통령은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그래 60년만의 일이다.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분단의 고통과 아픔, 그 회한의 세월을 뒤로 하고, 60년만에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대통령 노무현은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지난 60년간 우리 민족을 옥죄왔고, 남으로 북으로 민족을 갈라 놓았던 그 선은 그렇게 끊어졌다.

대통령이 그 선 위에 발을 올리는 순간 나는 부들부들 떨었다. 전율했다. 그것은 단순한 감동이 아니었다. 눈물이라도 왈칵 쏟을 것 같은, 목이 메어서 무어라 얘기할 수도 없는, 표현할 수도 형언할 수도 없는 감격. 그래 그것은 오르가즘이었다.

대통령은 겸손했고, 당당했고, 거칠 것이 없었다. 그의 말대로 하자면 “전혀 꿀릴 것이 없었다”. 그리고 사려 깊었다. 김정일 위원장과의 회담 때도 그랬고, 아리랑 공연을 볼 때도 그러했다.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한반도를 주목했고, 때마침 6자 회담도 타결되었다. 노무현이 부여잡고 끝까지 놓지 않았던 두 가지의 무기 “원칙”과 “상식”은 남북통일과 민족번영의 길을 닦으므로 더욱 빛이 났다. 남북정상회담은 21세기 우리나라가 낳은 위대한 지도자 노무현 시대의 절정이라 일컬을 만했다.

3일 간의 회담을 끝내고 남과 북의 정상들은 남북관계발전 평화번영선언 8개항을 내놓았다. 그 선언문을 읽고 또 읽었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목이 메였다. 북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나도 이 정도인데, 북에 가족을 두고온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 것인가. 종전선언이 추진되며, 국방장관 회담이 열리고,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경의선 화물 열차 운행이 시작될 것이고, 백두산과 서울간 직항로도 개설될 것이다. 60여년간 끊어졌던 한반도의 핏줄들이 하나 둘씩 연결되기 시작한 것이다. 더우기 남과 북의 정상들은 수시로 만나 현안 문제들을 협의하기로 했다 한다.

새로운 세기에 접어들어 대한민국의 국운이 융성해진다라는 예측은 빈 말이 아니었다. 나라의 경제는 정부 수립 이후 어느 때 보다도 탄탄해졌고, 남북관계는 어느 때보다 더 유연해졌다. 나는 이것이 노무현 대통령 “탓”이라 감히 단언한다. 그리고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우리 국민들이 당연히 누려야할 행복이라 말하고 싶다.

국민들에게 자부심을 주고, 감동을 주는 지도자, 나 같은 지지자에게는 오르가즘까지 주는 대통령, 노무현.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한 지난 4년 8개월이 너무 자랑스럽고 행복했다. 숱한 고난과 질시가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그리고 꿋꿋히 이겨 나간 대통령, 그리하여 마침내 한반도 번영의 물꼬를 튼 대통령. 그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존경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제 4개월 후면 그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하지만 그는 지난 5여년간 대통령으로 봉사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해냈다. 우리가 그보다 더 훌륭하고 더 위대한 지도자를 대통령으로 맞을 수 있을까? 답은 부정적이다. 적어도 당분간 노무현 같은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맞기는 정말 어려워 보인다. 지난 5년간 우리는 세계 최고의 대통령을 누렸으므로 더 이상 회한은 없다. 노무현이 이룩한 철학과 정책이 다음 정부에서도 이어지길 기도한다.

대통령님, 지난 3일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대통령님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편안하게 돌아오십시오.

마지막으로 역사적인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전문을 발췌한다. 이런 역사적인 선언은 블로그에 간직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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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연으로 가는 버스

침연으로 가는 버스

우즈베키스탄에서 타 본 버스들은 모두 낡았다. 앞 유리창에 금이 갔고, 차문에 고무줄이 매달려 있었다. 그 버스들은 사실 폐차장으로 가야 마땅해 보이는 것들이었다. 침연은 해발 3000미터 이상의 고지에 있는 마을이었다. 나는 그 버스를 처음 탈 때부터 이 버스로는 그렇게 높은 곳까지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버스는 시내에서 고장이 났고, 결국 우리는 다른 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타쉬켄트 근방에서 제법 경치 좋은 곳이라 일컬어지는 그 곳은 사람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수원지가 있었다. 우리나라 소양호보다 작아보이는 곳이었지만, 그곳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되는 소중한 물의 공급지였다. 바다가 없는 우즈벡 사람들은 여름에 이 호수에 와서 수영을 한다고 했다. 먹는 물에서 수영을 해야 하는 사람들의 처지가 안타까웠다.

최근 서너달 동안 전혀 비가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가 도착할 무렵, 석달만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침연(Chimyon)도 을씨년스러웠고, 길가에 사과를 내놓고 파는 마을 주민들도 비에 젖어 있었다. 중동에서는 손님이 왔을 때 비가 오면 그 손님을 극진히 대접한다고 한다. 물이 귀한 땅에서 비를 몰고 온 손님이 얼마나 반가울 것인가. 중동의 사막처럼 물이 귀하지는 않지만 우즈베키스탄도 많이 메말라보였다. 석달만에 비를 몰고온 우리가 얼마나 반가웠을까. 두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간 끝에 우리는 아주 작은 폭포를 보았다. 폭포에서 물이 쏟아지기는 했지만, 그 빈약함이 낯설었다.

점심식사는 오후 두시에 시작되어서 다섯시가 다 되어서 끝났다. 식사도중에 말을 타보는 일행도 있었고, 당구를 치러 간사람도 있었다. 말의 순대와 소의 혀가 나왔고, 즉석에서 구운 만두는 우리나라 만두와 다름없었다. 역시 망빨과 볶은밥을 먹었다.

빗방울이 탁자를 적시고, 바람이 불어 아름드리 호두나무에서 호두가 두두둑 떨어졌다. 침연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