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wsed by
Month: January 2008

김광석, 나의 청춘이여

김광석, 나의 청춘이여

노래는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묘한 매력이 있다. 어떤 노래를 들으면, 그 노래에 묻혀있던 옛 기억들이 솔솔 풀려나온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단 한 명의 가수를 선택하라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김광석을 꼽는다. 그것은 더없이 아름다운 그의 노래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노래와 함께한 나의 청춘 때문이기도 하다. 나의 20대, 30대는 어김없이 그의 노래를 배경으로 깔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벌써 12년이 되었다), 그의 죽음은 벼락같이 찾아왔다. 너무도 갑작스런 그의 부음은 전혀 현실감이 없었고, 그 누구도 믿으려 들지 않았다. 그는 분명한 이유도 없이 저 세상으로 갔다. 마치 기타 하나로 지상에서 1000번의 공연을 해야만 했던 타락천사처럼. 그 공연을 무사히 마치면, 다시 천상의 세계로 되돌아갈수 있었던 바로 그 천사처럼 아무 말 없이 떠나갔다.

그가 떠나갔지만, 그가 남긴 노래는 여전히 내 주위를 맴돌았다. 그의 노래에 뒤섞여버린 내 청춘은 그와 함께 떠날 줄 몰랐다. 그의 부재는 남겨진 그의 노래에 아련함을 더해 주었고, 그가 떠난 이후 나는 여전히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그를 붙잡고 있었다. 슬픔은 언제나 살아남은 자의 몫이지만, 그가 남긴 노래들로 인해 그 슬픔은 추억으로 승화되었다.

갓 서른을 넘기고, 그가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사라져버린 김광석.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그는 다시 오지 않았다. 우리가 그를 떠나 보낸 것도 아니고, 그가 우리를 떠나고 싶었던 것도 아닐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의 노래는 점점 우리들 마음 속에 스며들고, 여전히 우리들은 그를 잊지 못하고 있다.

내 청춘은 머무르지 않지만, 김광석의 노래 속에는 오롯히 살아 있다. 내 첫사랑의 추억이 그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에 젖어 있듯이. 때문에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죽는 날까지 내 청춘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아! 김광석이여, 나의 청춘이여!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새와 작별하듯
그대 떠나보내고 돌아와
술잔앞에 앉으면 눈물 나누나

그대 보내고 아주 지는 별빛 바라볼 때
눈물 흘러 내리는 못다한 말들
그 아픈 사랑 지울 수 있을까

어느 하루 비라도 추억처럼
흩날리는 거리에서
쓸쓸한 사람되어 고개 숙이면 그대 목소리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였음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였음을

어느 하루 바람젖은 어깨
스치며 지나가고 내 지친 시간들이
창에 어리면 그대 미워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였음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였음을

이제 우리 다시는
사랑으로 세상에 오지 말기
그립단 말들도 묻어버리기
못다한 사랑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였음을…

삼성, 또 하나의 가족?

삼성, 또 하나의 가족?

미국 생활을 오래 하다가 느낀 것 중의 하나는 미국 사람들이 “의외로” 실수를 잘 저지르지만, 여간해서는 사과를 잘 안한다는 것이다. 특히 업무에 관해서 잘못이 있을 때 그들은 냉큼 사과하지 않는다.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본 결과, 미국은 소송이 만능인 나라라서 한 번 잘못을 인정해 버리면 자칫 인생이 결딴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삼성중공업의 잘못으로 태안 앞바다가 죽음의 바다로 변했다. 사고가 난지 한달이 지났지만, 삼성 쪽에서는 공식적인 사과 한마디 없이 책임을 하청업체에 떠넘긴다고 한다. 그런데 그 하청업체의 자본금이 5천만원이란다. 기름 유출 사고로 인한 태안 앞바다의 피해가 수조원이 넘을 것 같은데, 사과 한마디 없이 책임을 하청업체에 떠넘긴다? 이것이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삼성이 하고 있는 일이다.

순박한 어민들과 국민들은 연일 자원봉사로 바다의 떠있는 기름을 닦아내기에 여념이 없지만 정작 책임을 져야할 기업은 말 한마디 없다. 사과는 커녕 항해일지까지 조작했다고 하니 더 말해 무엇하랴. 이런 기업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이고, 이런 기업의 총수가 존경받는 나라이니 할 말 다한 것 아닌가? 삼성 입장에서는 어설프게 잘못을 인정하는 사과를 했다가 자칫 회사가 결딴날 수도 있다는 위기 의식에 몸을 사리는것 같다. 글로벌 기업답지 않은가? 미국식으로 말이다.

미국 생활을 하면서 또 느낀 것은 자본주의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범죄에 대해서는 용서가 없다는 것이다. 아주 잘나가던 기업이었던 에너지 회사 엔론과 통신 회사 월드컴은 분식 회계 때문에 망해 버렸고, 경영진은 10년 이상 감옥에서 죄값을 치루고 있다. 미국에서 탈세를 하다가 걸리면 그것은 거의 인생 종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삼성 총수의 아들은 4조의 돈을 벌면서 단 16억원의 세금을 냈고, 세금을 피하기 위해 자식들을 위장취업시킨 어떤 정치인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면서 이들은 신자유주의를 강화해야 하며,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야 하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지금 현 상태로 보면, 우리나라가 미국보다도 훨씬 더 기업하기 좋은 나라 아닌가?

도대체 언제까지 금이나 모아가면서 나라를 살리자고, 태안 앞바다 기름을 닦으면서 바다를 살리자고 할 작정인가? 그러면서도 한나라당을 찍어주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들인가? 당신들이 살리자고 하는 경제는 도대체 어느 나라 누구를 위한 경제인가? 분노할 때는 분노할 줄도 알아야 하고, 기억할 것은 기억해야 하지 않겠는가?

얼마나 더 당해야 정신을 차릴 것인가?

경부운하와 에비앙 생수

경부운하와 에비앙 생수

너무 오래된 일이라 언제인지 정확하진 않지만 (한 30년 전쯤 될까),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석유가 많이 나는 중동에서는 물이 없어 외국에서 물을 사다 먹는단다.” 이 말에 우리 모두는 깔깔대고 웃었다. 그 당시 어린이들에게는 “물을 외국에서 사다 먹는다”라는 상황이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금수강산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석유는 나지 않지만 산 좋고 물 좋은 그래서 축복받은 땅이 한반도라고 배우지 않았던가.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때의 기억이 또렷히 되살아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중동 사람들에게 참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들은 물이 없어 외국에서 물을 사다 먹었지만, 우리는 멀쩡한 물을 파헤쳐 못먹게 만들고, 외국에서 물을 사다 먹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편 한반도대운하 TF에서는 팔당댐 등에서 식수를 길어올리는 직접취수 방식을 지하수에서 식수를 공급하는 간접취수 방식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사업 본격 시동, 한국경제]

한 10년 후쯤 중동의 초등학교에서는 한국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배울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은 석유도 안나는 나라가 물을 외국에서 사다 먹고 있다. 한 때는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물이 좋은 나라였는데, 그 좋은 물을 다 못먹게 만들었단다.” 중동의 어린이들이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훗날 우리는 우리 자식들에게 어떤 변명을 늘어놓을 것인가? 경제가 좋아지면 에비앙 생수를 사다 먹으면 그만이라고 얘기할 것인가? 에비앙 생수는 1리터에 2000원 정도하는 물이니 기름값보다 훨씬 비싸다고 해야 하나? 기름값이 비싸다고 세금을 내려달라는 국민들은 나중에 물값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까?

나는 30여년 전 중동의 어린이들에게 미안하고, 나는 나의 자식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