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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가을

약사암

약사암

백양사 약사암 가는 길에 가을이 저물어 간다. 가을 단풍 잎새가 거의 다 떨어지고, 저멀리 백학봉이 수백년 묵은 갈참나무 사이로 허연 이마를 드러낸다. 그 백학봉 중턱에 약사암과 영천굴이 있다. 영험한 약사여래의 기운과 영천굴의 석간수로 몸과 마음의 병을 고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올랐다. 그 오르막에서 자연의 신비와 붓다의 자비로 사람들은 속세의 번뇌와 업보를 털어내곤 했다.

가을은 쓸쓸히 끝나가는데, 미련이 남은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단풍의 절정은 지났고 겨울은 저만치 다가왔지만, 마지막 황혼을 불사르듯 울긋불긋 가을 빛들이 하얀 바위에 수를 놓는다. 이만하면 됐다, 이만하면 됐다. 여전히 처연한 단풍 속의 약사여래를 뒤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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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 입구의 갈참나무
백양사 쌍계루
백양사 쌍계루
백양사 대웅전
백양사 대웅전 뒤로 백학봉이 보인다
약사암 가는 길의 단풍
약사암 가는 길의 단풍
백학봉 중턱 약사암
백학봉 중턱 약사암
영천굴
영천굴
영천굴 안의 약사여래
영천굴 안의 약사여래
여전히 아름다운 단풍
여전히 아름다운 단풍
가을이 저물어 간다
가을이 저물어 간다
만추

만추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숲에서 안개가 피어 올랐다. 비를 맞은 노란 단풍이 고개를 숙이고, 길은 갈잎으로 덮여 있다. 가을의 마지막 자락에서 편백나무들이 안개 사이로 그윽한 향내를 풍긴다. 인적은 드물고 길은 안개 저편으로 사라진다. 2016년의 가을이 그렇게 저물고 있었다.

장성 축령산의 만추.

그곳에서 이 숲을 만든 춘원 임종국 선생을 생각한다. 20여년간 300만 그루의 편백나무를 심어 아름다운 숲을 만든 우리나라 조림의 선각자. 임종국 선생을 생각하며 더 나은 세상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비에 젖은 단풍
비에 젖은 단풍
오솔길을 덮은 가랑잎
오솔길을 덮은 가랑잎
길은 안개 뒤편으로 사라지다
길은 안개 뒤편으로 사라지다
안개 속의 편백나무숲
안개 속의 편백나무숲
편백나무숲 속의 오솔길
편백나무숲 속의 오솔길
임종국 선생의 수목장 가는 길
임종국 선생의 수목장 가는 길
단풍나무를 지나며
단풍나무를 지나며
만추
만추
흐린 가을 하늘에

흐린 가을 하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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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도 될 만한 날에 청년들과 산에 올랐다. 지난 여름의 무더위와 짙은 푸르름은 간 곳이 없고, 나뭇잎이 물들어 가을은 저만치 다가와 있었다. 시절이 하수상하여도 자연은 세상과 관계 없이 제 철을 지켜 나갔다. 그나마 젊은이들의 웃음소리와 힘찬 발걸음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쉬는 날

쉬는 날

사느라고 애들 쓴다.

오늘은 시도 읽지 말고 모두 그냥 쉬어라.

맑은 가을 하늘가에 서서

시드는 햇볕이나 발로 툭툭 차며 놀아라.

<김용택, 쉬는 날,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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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의 활짝 핀 코스모스를 보며, 김용택의 시를 생각했다. 그래. 오늘 같은 날은 아무 일도 안 하고, 푸른 하늘 아래 한들거리는 코스모스나 보면서 놀아야겠다.

가을 나비

가을 나비

182년만에 찾아온 윤구월 때문인지 올 가을은 길고도 깊었다. 산자락부터 산꼭대기까지 울긋불긋 물이 들었고, 은하수 별만큼이나 무수한 낙엽으로 산은 아늑했다. 서걱거리고 바스락거리는 낙엽에서 바싹 마른 가을 햇볕 냄새가 났다.

하늘은 높았고, 숲은 고요했다. 갈색 융단처럼 낙엽이 깔렸다. 그 속을 헤치는 발자국 소리와 가끔씩 들려오는 까마귀 소리만이 숲을 가만히 흔들고 있었다. 바람이 선듯선듯 불어왔다. 억새가 바람을 타고 나긋나긋 손짓했다.

갈잎을 헤치고 숲길을 거슬러 오르자 어디선가 나비 몇 마리가 나풀나풀 춤을 추며 나타난다. 가을 나비, 그것도 11월의 나비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인적이 없는 갈참나무 숲 속에서 나비가 날아 오른다. 나비는 갈색이기도 하고 옅은 노란색이기도 했는데, 그것들이 철을 모르는지 아니면 원래 11월에 생겨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비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걷는 길은 수천년 전의 전설 속으로 가을을 데려갔다.

그 나비들을 따라가면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을 노래하는 이백을 만날 것도 같다. 윤구월의 가을은 깊어가고, 하염없는 나비들의 날개짓은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들과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시간은 흐르는 듯 멈췄고, 세상은 어느덧 저만치 달아나 버렸다.

2014년의 가을은 나비들과 함께 그렇게 멀어지고 있었다.

바람 부는 날

바람 부는 날

숲 속 참나무 사이로 바람이 지나간다. 나뭇잎들을 어루만지며 지나간다. 나무들이 솨아솨아 소리내어 바람을 배웅한다. 참나무 아래로 도토리들이 떨어지고, 머리에 수건을 두른 할매들이 도토리들을 주어 담는다. 오늘 저녁엔 떫떠름한 도토리묵이 밥상에 오를 것이다.

가을은 깊어가고, 숲은 서서히 겨울 맞을 채비를 한다. 바람 부는 날에는 숲 속 참나무에 기대 앉아 시 한 편 읊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바람이 분다
바람에 감전된 나뭇잎들이 온몸을 떨자
나무 가득 쏴아 쏴아아
파도 흐르는 소리가 난다
바람이 부는 곳으로 가 보자고
바람의 무늬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 보자고
작고 여린 이파리들이
굵고 튼튼한 나뭇가지를 잡아당긴다
실처럼 가는 나뭇잎 줄기에 끌려
아름드리 나무 거대한 기둥이
공손하게 허리를 굽힌다

<김기택, 바람 부는 날의 시>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오늘같이 청명한 가을날에 듣고 싶은 노래. 인간들이 세상에 거의 유일하게 기여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음악이 아닐까라는 생각.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휴일 아침이면 나를 깨운 전화 오늘은 어디서 무얼 할까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 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람은 죄가 될 테니까

가끔 두려워져 지난 밤 꿈처럼 사라질까 기도해
매일 너를 보고 너의 손을 잡고 내 곁에 있는 너를 확인해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 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람은 죄가 될 테니까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내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거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한경혜 작사,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