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

고래가그랬어 교육연구소와 경향신문이 함께 진행하는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을 오늘에야 알게 되어 허겁지겁 참여하였다.

이 일곱 가지 약속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가장 기본으로 공유해야 할 덕목임에도, 이 나라에서는 서로 약속을 해야 하는 운동이 되어 버렸다. 서글픈 현실이다.

어려운 형편에도 매달 고래를 만들어 주고 이런 교육운동을 실천하는 김규항과 일꾼들에게 존경과 격려를 보낸다. 고래는 우리 딸아이가 가장 기다리는 책 중에 하나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운동에 참여하여 우리 아이들이 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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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

 

어른들의 죄악 그리고 불안

서머힐 학교를 세운 진보적 교육자 알렉산더 닐(Alexander S. Neill)은 현대 문명의 죄악과 아이들의 자유를 빼앗는 어른들의 불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대 문명의 죄악은 어린이들을 마음대로 놀아보지도 못하게 하는 데서 생긴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어린이들은 사실상 어른이 되기 전에 이미 어른으로 길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어른이 어린이의 놀이에 대한 충동을 억제할 때의 원인은 한 마디로 불안 때문이다.

어린이의 장래를 염려하는 어른들의 불안이 어린이의 놀 권리를 빼앗도록 잘못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소년 시절을 이제 더 이상 상기할 수도 없고, 스스로 만족스럽게 놀지도 못했으며,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펴지도 못했던 부모들은 좋은 부모가 될 수 없다. 놀 능력을 상실한 어린이는 영혼이 죽었고, 그의 친구들에게는 하나의 위험이 된다.

[A. S. 닐, 서머힐]

이제 아이들이 노는 법도 학원에서 배워야 할 시대에 살고 있다.

진정한 배움이란 무엇인가

언제부턴가 머리 속에서 맴돌던 물음 하나, “진정한 배움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자 많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교육의 목표는 무엇이고, 왜 가르치고 왜 배워야 하는지 고민했었다.

변산공동체학교를 세웠던 윤구병 선생은 교육의 목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육의 궁극 목표는 두 마디로 이야기할 수 있다. 첫째는 스스로 제 앞가림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고, 둘째는 함께 어울려 사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첫째와 둘째 차례가 바뀌어도 괜찮다. 이 목표를 이루면 교육은 성공하는 것이다.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래야 마땅하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사는 곳이 다르다고 이 궁극 목표가 달라질 수 있는가? 천만에!

[윤구병, 변산공동체학교]

윤구병 선생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스스로 제 앞가림을 하고, 다른 이들과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 배우는 것이다. 생의 절반을 학교에서 보냈어도 아직도 이 두 가지를 이루지 못했다. 그것은 이 땅의 교육이 제대로된 교육이 아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스스로 일용할 곡식을 기르고, 스스로 아픈 몸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자연과 더불어, 뜻을 같이 하는 다른 이들과 더불어 같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인간이란 존재에게 배움이 필요하고 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지 않다.

죽기 전까지 이 두 가지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제 알았으니 힘써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스스로 자기 앞가림을 하고 자연과 이웃과 더불어 어울려 살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체벌은 교육이 아니라 폭력일 뿐이다

최근 서울시 교육청이 학교에서의 체벌을 전면 금지했다. 너무나 당연하고 너무나 늦은 일인데도 아직 학교에서 체벌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쓰레기 언론에서도 진보 교육감이 당선되자 아무 대책도 없이 학교에서 체벌을 금지했다고 난리법석을 피운다.

그들에게 정말 묻고 싶다. 정말 사람을 때려서 교육을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그게 진심인지, 아니 객관적으로 그것이 정말 가능한 일인지 묻고 싶다. 아이들이 맞기 싫어서 말을 듣는 것이 정말 교육이라고 생각하는지, 교사라고 해서 정말 아이들을 때릴 권리가 있는지, 그것이 교권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체벌은 교육이 아니라 폭력일 뿐이다. 체벌이란 교사나 부모가 아이들에게 행사하는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붙인 폭력의 다른 이름이다. 어떤 이들은 “사랑의 매”는 필요하지 않느냐고 반문하지만, 그런 것은 성립하지 않는다. 내가 널 너무나 사랑하기에 널 죽도록 팬다? 너무나 웃긴 얘기다. 정의로운 전쟁이 존재하지 않듯이 사랑의 매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체벌 금지가 학교 현장을 몰라서 하는 순진한 얘기라고 몰아부친다. 체벌을 금지하면 아이들을 통제할 수 없다고 한다. 체벌 금지 때문에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다는 사람들은 교육 현장에서 떠나야 한다. 체벌이라는 무기로 무장하지 않고 아이들 앞에 설 수 없다는 사람들은 이미 교육자가 아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아버지이며, 어른들의 거울이다. 아이들이 이상 증상을 보일 때는 분명 기성세대가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은 거의 대부분 어른들의 책임이다. 부모의 책임이고, 교사의 책임이고, 기성세대 모두의 책임인 것이다. 그래서 때려서라도 가르치겠다? “나는 똑바로 걸을 수 없지만, 너는 똑바로 걸어야 돼”라고 울부짖는 엄마 게가 생각난다.

아이들을 때려서 가르치겠다고 하는 발상은 일본제국주의와 군부독재와 함께 사라졌어야 했다. 하긴 아직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자들이 일제잔재와 독재부역 세력들이니 학교에서 이런 기대를 하는 것이 우스운 일인지 모르겠다. 세상이 진보한다는 것,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이렇게나마 조금씩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을 때리지 마라.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스승의 날, 하루 빨리 없어져야 한다

지난 주말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스승의 날이었다. 스승이라고 불리울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서 스승의 날을 기념한다니, 이런 부조리한 블랙 코메디가 또 어디 있을까.

급진적 교육 사상가인 이반 일리히(Ivan Illich)는 그의 책 <학교 없는 사회(Deschooling Society)>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Universal education through schooling is not feasible. It would be no more feasible if it were attempted by means of alternative institutions built on the style of present schools. Neither new attitudes of teachers toward their pupils nor the proliferation of educational hardware or software (in classroom or bedroom), nor finally the attempt to expand the pedagogue’s responsibility until it engulfs his pupils’ lifetimes will deliver universal education. The current search for new educational funnels must be reversed into the search for their institutional inverse: educational webs which heighten the opportunity for each one to transform each moment of his living into one of learning, sharing, and caring.

학교를 통한 보편적 교육은 가능하지 않다. 보편적 교육은 현행 학교 형태 위해 세워진 어떠한 대안교육으로도 가능하지 않다. 학생에 대한 교사들의 새로운 태도, 교육적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의 보급, 학생들의 일생 동안 교사의 교육적 책임을 넓힌다고 해도 보편적 교육은 가능하지 않다.  새로운 주입식 교육울 추구하는 현행 추세를, 그 정반대의 제도 추구, 즉 개인의 삶의 모든 순간을 공부하고, 나누고, 돕는 순간으로 바꾸도록 하는 교육 네트워크로 전환해야 한다.

일리히는 제도화된 학교의 위험성을 고발했다. 그는 학교에는 교육이 없고, 교회에는 신과 종교가 없으며, 병원에는 치유가 없음을 꿰뚫어 보았다. 이러한 그의 통찰은 상당히 급진적이고 심오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2010년 한국에서는 일리히의 주장이 사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전세계적으로 교육열이 가장 높고, 대학 진학률이 가장 높은 나라이다. 한국의 부모들은 자녀 교육에 모든 것을 다 건 사람들이고, 자녀 교육에 관한 한 이들은 미쳤다. 교육이라고 해봤자 그들이 얘기하는 것은 속칭 “일류 대학 들어가기”뿐인데도 말이다.

한국은 대학 졸업장으로 계급이 분화되는 사회이다.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에 따라 인생의 출발선이 달라지고, 그들을 보는 눈이, 그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때문에 부모들은 자녀들의 대학 진학에 목숨을 걸고 있고, 초중고 교육이라는 것은 오직 일류 대학 들어가기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학교에서는 오직 경쟁만을 가르친다. 그것도 얼마나 시험 문제를 잘 푸느냐에 따른 경쟁. 학교에는 교육이 없고, 오직 훈육과 조련만이 있다. 아이들은 시험보는 기계, 문제 푸는 기계로 전락한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오직 이런 과정을 통해 이 나라가 원하는 인력들을 생산한다.

이런 과정을 우수하게 통과한 소수의 아이들은 일류 대학 졸업장을 가지고 사회 지배 계층으로 진입하게 되고, 이 경쟁에서 탈락한 대다수 아이들은 평생을 루저(Loser)로 살아가게 된다. 삶에 대한 열정도 없고, 고민도 없고, 성찰도 없이 그저 정글 같은 세상 속에서 저마다의 파편화된 삶을 영위한다.

한국의 학교들은 그런 인재(라고 부를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들을 생산한다. 대학은 졸업장을 미끼로 장사를 하고 있고, 중고등학교는 일류 대학을 가기 위해 견뎌야하는 훈련소이다.

도대체 이런 나라에서 군사부일체 운운하면서 스승의 날을 꼬박꼬박 챙기는 것을 보면, 하나의 거대한 정신병원을 보는 것 같다. 웃기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이 나라에 어떤 스승이 있을까? 아이들을 성적과 대학 진학이라는 올가미로 세뇌하는 스승들 외에 어떤 스승들이 있을까? 아이들에게 꽃 받을 자격이 있는 스승들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 아니 이 거대한 집단 정신 이상과 집단 사기극을 알아볼 수 있는 스승이 존재하기는 한 것일까?

스승의 날은 이 땅의 스승들에게 가장 부끄러운 날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 날이 하루 빨리 없어지길 바란다. 아이들을 정신적 불구로 만드는 나라에서 스승의 날을 기념하는 것은 정말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엽기이기 때문이다.

자식을 아주 쉽게 망치는 방법

누군가가 말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거울이라고. 아이들이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거의 전부 어른들의 책임이다. 특히, 아이의 생활과 사고방식에 가장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부모의 책임이다. 모든 아이들은 태어나길 천사로 태어났다. 지금의 어른들이 어렸을 때도 천사와 같은 맑은 눈망울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의 어른들이 탐욕에 눈이 멀게 된 것은 그 어른들의 부모 때문이며, 지금의 아이들이 못된 어른이 되는 것은 그 아이들의 부모인 우리 어른들 때문이다.

최근 외국어고등학교의 존폐 문제로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사교육을 부추기고 입시 전문 학원으로 전락한 외고가 존재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외국어를 전문적으로 가르쳐 아이들을 글로벌 인재로 키우겠다는 학교가 외고인데, 사실 이런 발상 자체가 아주 웃기는 일이다. 도대체 말끝마다 글로벌 인재 운운하는 사회 풍토도 상식 이하이지만, 외국어만 잘한다고 글로벌 인재가 된다는 생각 자체는 너무 순진해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아주 웃기는 설립 취지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고 학교를 입시 학원처럼 만들어 버린 사실이다.

이런 기형적 교육기관(이라는 말을 쓰기도 민망하지만)에 자식을 보내고 있는 어떤 엄마는 “공부 못하는 학생들과 섞이게 하기 싫다”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닌다. 미안한 말이지만, 이런 부모 밑에서 아이들은 제대로 자랄 수 없다. 물론 수학 문제 하나, 영어 단어 하나 더 잘 풀고 외울지는 몰라도 그것이 공부 잘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이런 부모들은 자기들의 탐욕때문에 자식의 인생을 망치고 자식의 행복을 유린하는 사람들이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과 섞이게 하기 싫다고? 그렇다면 못사는 아이들과 섞이게 하기도 싫을 것이고, 피부색이 까만 아이들과도 섞이게 하기 싫을 것이다. 참으로 반인권적이고 반사회적이고 반교육적 발상 아닌가. 그러면 공부 잘하는 학생들만 모아놓고 그 안에서 공부하면 아주 훌륭한 인간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아무런 이론적 실증적 증거도 없는 이런 논리는 특권의식에 젖은 부모들이 (본인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자식을 망치기 위해 들이대는 흉기인 것이다. 이렇게 키워진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눈물을 이해할 수 없는 절름발이 인생을 살게 된다.

자식에게서 뜨거운 가슴을 빼앗는 부모들,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고 자식의 삶을 망치는 부모들, “이게 다 너를 위해서 그러는거야”라고 매일 거짓말하며 공부를 강요하고 자식을 못살게구는 부모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당신 자식은 결코 당신 소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줘야 할 것은 치열한 경쟁에서 이겨 네 친구를 밟고 일어서라는 정글의 법칙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어려운 친구들을 도와주고 같이 살아갈 수 있는지, 내가 어려울 때는 어떻게 도움을 받는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더불어 같이 살아가는지를 보여줘야 한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과 섞이게 하기 싫다”는 태도는 지극히 반인간적이고 반교육적이기에 아이들은 쉽게 감당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최근들어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교육열을 예로 들면서 미국 사회를 자극하고 있는 모양이다. 미국의 공교육이 무너졌기에 이를 바로잡기 위해 오바마가 한국의 경우를 예로 드는 것이겠지만, 이것은 오바마가 하나는 알고 둘을 모르는 것이다. 한국 부모들의 교육열은 유대인들조차 놀랄 정도로 높지만, 그 교육의 방향과 방법은 심히 뒤틀려있고 노력에 비하면 효과도 아주 낮은 실정이다. 아이들을 공부하는 기계로 만들어버리고 무한 경쟁으로 몰아가는 한국 부모들의 실상을 오바마가 안다면 더이상 한국의 예를 들어가면서 미국의 공교육을 회복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못하는 아이들과 섞여야 하고, 운동 잘하는 아이들은 못하는 아이들과 섞여야 하고, 잘사는 아이들은 못사는 아이들과 섞여야 한다. 그렇게 부딪히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서로를 도와주며 자라나야 한다.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지금의 외고는 마땅히 폐지되어야 한다.

아이들의 가슴에 대못을 치는 세상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들은 잘 자란다. 예쁘고 반듯하고 명랑하고 건강하게 자란다. 잠든 아이 머리맡에 있는 일기장을 펼쳐보다가 “내가 나비가 된다면”이라는 제목의 일기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나비가 된다면 가장 예쁜 꽃에 집을 지을 것이다. 어떻게 지을거냐면 꽃에 눕고 또다른 꽃잎을 이불로 사용할 것이다. 집을 다 완성하면 꿀을 많이 모아 친구들에게 나누어줄 것이다. 그리고 꿀벌과도 힘을 합쳐서 꿀을 모을 것이다.

여름과 가을이 지나서 겨울이 되면 그동안 꿀벌이랑 친구들과 모은 꿀들을 똑같이 나누어 가질 것이다. 친구들과 꿀벌들은 내년 봄에 다시 만날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 딸아이가 쓴 너무나 따뜻하고 예쁜 글이다. 내가 간섭하지 않아도 아이는 이렇게 잘 자라고 있다. 대견하고 고마운 일이다.

이렇게 예쁜 아이들이 좋은 선생님들과 즐겁게 공부해야 할 학교에 탐욕에 찌들은 자들은 경찰까지 밀어넣었다. 일제고사라는 시험시간에 체험학습을 허락했다는 이유로 선생님들을 자르고, 아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겼다. 대한민국의 “교육현장”에서 2008년 12월에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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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곳곳이 전쟁터 아니면 공사판으로 변하고 있다. 나중에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변명을 해댈 것인가? 절반의 탐욕과 절반의 무관심으로 이 야만의 권력을 우리 손으로 만들었다고 자랑할 것인가?

성탄절을 앞두고 가장 즐거워야할 아이들의 가슴에 대한민국은 대못을 치고 있다. 예수가 와서 통곡할 일이 아닌가.

고승덕, 한국 교육 실패의 전형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회 전략팀장으로 맹활약하고 고승덕 변호사는 참 대단한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경기고, 서울법대를 나오고, 그 어렵다는 고시를 세 가지나 합격했으며 (그것도 수석, 차석 또는 최연소 등으로 합격했다 한다), 미국에서 내놓으라 하는 하버드, 예일, 컬럼비아 대학 등에서 학위를 한 우리나라 법조계를 대표할만한 차세대 주자였다. 또한 방송출연으로 많은 인기를 누렸으며,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팬페이지를 만들었고, 회원으로 가입한 사람이 25000명이 넘었다.

학력이나 경력으로 봐서 이 고승덕 변호사는 우리나라 거의 모든 부모들의 로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나 화려한 프로필에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이니까. 그가 쓴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은 없다”라는 책이 한 때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정도니 그가 얼마나 많은 기대와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었는지를 짐작해 볼만 하다.

그런 그가 한나라당 대선 후보 이명박의 품으로 날아들었다. 수십 가지 비리 의혹으로 거의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신문들의 올인으로 근근히 버티고 있는 이명박 후보의 숨통을 틔우기 위해서 이명박의 충견으로 들어갔다. 돈과 명예와 인기를 누렸으니, 이제 남은 것은 권력 뿐인가. 고승덕은 이명박이 연관된 BBK 주가 조작 사건에 관련된 거의 모든 법률적인 문제에 대한 변명과 대변을 하고 있다. 그의 50년 화려한 경력을 허물고 있는 것이다.

고승덕이라는 사람은 참으로 똑똑한 수재였음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현재 그의 모습은 아무런 역사 의식도, 사회 의식도, 도덕적 가치도 판단하지 못하는 팔푼이 같은 모습이다. 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나라 교육, 우리나라 부모들이 추구하는 교육, 공부만 잘 하는 아이들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를 다시 깨닫는다.

고승덕에게서 우리 교육 실패의 전형을 본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단지 공부만 잘 하는 수재들이 아니다. 자기 자신의 부귀영화만을 위해 불나비처럼 불 속으로 뛰어드는 그런 영악한 사람들이 아니다. 정말 잘 산다는 건 무엇인가, 고승덕을 보면서 아이들 교육을 제대로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도 이명박에게는 달려가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삼성 회장의 인식에 동의할 수 없다

삼성 신입사원의 사직서가 블로그계를 달굴 때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나라 경제를 걱정하며 샌드위치 상황이 더 심해지고 있고, 교육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이날 서울 중구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하면서 기자들로부터 ‘샌드위치 위기’에 대한 질문을 받고 “더 심해지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샌드위치’ 위기 극복방안을 찾았느냐는 질문에 “우리나라 교육제도, 기술개발력…인재를 더 천재화시켜야지요”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그러면 기업들은 인재 육성을 잘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기업들이야 항상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 회장은 인재양성 방안을 묻는 질문에 “자체적으로 많이 키워야 하고 외국에서도 스카우트 해야 한다”며 교육제도의 문제점으로 “획일적이다. 전반적으로 고쳐야 하고 21세기에 맞춰야 한다. 선진국을 따라가면 된다”고 덧붙였다.

[이건희 회장 "샌드위치 상황 더 심해지고 있다", 연합뉴스]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 기업 삼성에 들어가기도 쉽지 않을텐데, 삼성의 신입 사원은 삼성의 문화에 절망하여 미련없이 사표를 던졌고, 삼성의 회장은 기업들은 인재 육성을 항상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재를 더 천재화시키는 교육을 하고 있는데, 신입사원은 절망했다. 정말 삼성을 비롯한 기업의 인재 육성이라는 것이 아무 문제가 없을까? 정말 획일적인 교육이 문제일까? 정말 선진국만 따라가면 그런 문제를 고칠 수 있을까?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오랜 외국 생활의 경험에 비추어 얘기하면, 우리 국민들 만큼 똑똑하고, 우리 국민들 만큼 부지런하고, 우리 국민들 만큼 열심히 일하며, 우리 국민들 만큼 교육에 관심이 있는 나라는 없다. 오히려 너무 부지런하고, 너무 일을 많이 하고, 너무 교육열이 높아서 문제다. 때로는 쉬어 갈 줄도 알고, 때로는 뒤돌아 볼 줄도 알아야 하고, 때로는 뒤처지는 이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는데, 오로지 앞만 보고 쉬지 않고 가는 것이 문제다.

이건희 회장의 말이 늘 그렇듯 구체적이지 않기에 그가 얘기하는 교육제도의 문제가 무엇인지 쉽게 파악할 수 없다. 하지만 삼성과 우리 경제의 문제는 “도덕성 부재”와 “가진 자들의 책임 방기”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교육제도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진다고 얘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아들에게 수조원의 재산의 물려주면서 겨우 10억여원의 증여세만을 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이런 편법이 가능하단 말인가.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았다면 유야무야 넘어갈 수도 있었을테지만, 상식과 원칙만을 부여잡고 있는 참여정부에서는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돈이 많다는 사람이 왜 자신의 명예를 더럽히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도덕적으로 지탄받게 만드는가. 정말 이것이 세계 일류를 지향하는 기업이 할 일인가.

MBC 이상호 기자가 폭로한 삼성 X파일에 따르면 삼성은 검사들을 비롯한 법조계 인사들을 떡값이라는 미명하에 관리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정작 불법 행위를 감추기 위해 하는 일이 검사 관리라니 정말 기가 찰 노릇 아닌가. 검찰은 대통령이나 법무장관의 말보다 삼성과 같은 재벌의 말을 더 두려워하는 것이다.

또한 시사저널의 기자들은 삼성 관련 기사를 임의로 삭제한 편집진에 대항하여 장기 파업을 하고 있다. 정작 “언론 자유”를 떠드는 다른 매체의 기자들은 자본의 탄압 앞에는 모로쇠로 일관하며 정부의 기자실 통폐합만 문제 삼는다. 실제 우리나라의 언론을 통제하는 곳은 삼성을 비롯한 재벌 자본임에도 불구하고 하이에나 언론들은 노무현 정부만을 탓한다. 정말 이 기자라는 자들이 가소롭지 않은가.

우리나라의 교육이 정말 문제라면 “획일적”인 교육제도가 문제라기 보다는 “도덕과 사회 윤리” 교육이 더 큰 문제인 것이다. 재벌 총수라는 사람들이 부끄러운 할 줄 모르고, 법 위에 군림하려는 것 이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을까. 이것이 자본주의 시장 경제 체제를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삼성 신입사원의 사직서가 블로그계에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지만, 정작 삼성 회장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삼성의 미래는 밝지 않다. 몇 명의 천재를 교육시키고 더 데려올 생각보다는 얼마나 더 도덕적으로 투명하고 깨끗하며, 사회적 책임을 질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삼성 경쟁력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최고경영자가 변하지 않는 한 그 기업의 미래는 없다.

너무 서두르지 마, 견디기 힘이 들 때면

장혜진의 “네게로”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다. 곡도 좋고 노래도 잘 하지만, 무엇보다 가사가 심금을 울린다.

너무 서두르지 마 견디기 힘이 들 때면
애써 따라오려 하지말고 오히려 더 천천히

한 사람이 열 발자국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의미있는 것은 “열 사람이 함께 한 발자국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노래다. 경쟁에 지쳐 버려 인생의 가장 좋은 시절을 암울하게 보내고 있을 우리나라의 불쌍한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삶이 단거리 경주가 아님에도 회색인간들이 정해놓은 그 길에서 낙오해서는 안된다는 생각때문에 기계처럼 공부하는 아이들. 그 길에서 한 발 앞서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에도 이 사회는 그것을 강요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삶의 소중한 가치를 제대로 전해 주지 못하는 사회에서 이 노래는 단비처럼 촉촉히 우리의 귀를 적신다.

모든 것은 회색인간 어른들의 100% 잘못이다. 아이들의 꿈을 빼앗는 회색인간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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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서두르지마 견디기 힘이 들 때면
애써 따라오려 하지말고 오히려 더 천천히
그래 그렇게 다가와 내가 여기에서 기다릴께

숨이 찰땐 걸어오렴 힘이 들며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우린 아주 먼길을 가야만 해 서두르지마

함께 걸어가는 것 그것이 내겐 소중해
조금 늦는것쯤 상관없어 내가 지쳐있을때
네가 기다려준것처럼 내가 여기있어 힘을 내봐

숨이 찰땐 걸어오렴 힘이 들때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우린 아주 먼길을 가야만 해 서두르지마

걱정마 기다리고 있어 이젠 멀지 않아
조금만 더 힘을 내
내가 너의 두팔을 잡아줄수 있도록

숨이 찰땐 걸어오렴 힘이 들때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우린 아주 먼길을 가야만해 서두르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