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언론을 견디느니 차라리 탈레반을 견디겠다

아프간 피랍 사태가 정부의 노력으로 잘 마무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언론이 한마디씩 토를 달고 있다. 휴가까지 반납하며 사태해결을 위해 노심초사한 대통령과 공무원들의 노력에는 애써 눈을 감으면서 말도 안되는 논리와 프레임으로 정부를 공격한다.

자, 수구 보수 신문들부터 보자.

“국제사회 원칙을 지키기보다 발등의 불 끄기에 급급한 인상을 남겼다.”

국책 연구기관의 한 책임 연구원은 29일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를 수습하면서 외교적 손익을 따져볼 때 한국은 국제적 신뢰와 국격에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다.

[인질은 석방됐지만 '비싼 수업료' 지불, 중앙일보]

납치가 일어난 지역의 정부를 제쳐둔 채 납치범과 직접 협상을 벌인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미국 유에스에이투데이는 “앞으로 여러 나라가 무장세력에 항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고, 독일 슈피겔은 “납치를 부추길 수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 인질 구했지만 납치 근본 해결 못해, 동아일보]

“광(光) 나는 것은 청와대가, 껄끄러운 것은 외교통상부가 발표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억류 중인 한국인 인질 19명의 전격 석방합의 사실이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 명의로 발표된 배경을 놓고 대선을 겨냥한 ‘생색내기’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고생은 외교부가 하고 생색은 청와대가?, 서울경제]

납치된 사람들을 구해 오니, 이제 한다는 소리가 국제 사회의 원칙을 못지켜 국격에 상처를 받았단다. 직접 협상을 벌인 것이 잘못이라고 한다. 정말 어이없지 않은가.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테러 집단과 직접 협상을 하지 않으면서 납치된 사람들을 전원 무사히 구해왔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아프간 정부나 미국은 탈레반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고 뒷짐만 지고 있는 형국에서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직접 협상” 말고 또 무엇이 있단 말인가.

만약 매일 한 사람씩 죽어 나가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국제적 관행을 지키기 위해 탈레반과 직접 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했을 경우 이 쓰레기 언론들은 직접 협상하라고 매일 정부를 다그쳤을 것이다.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국제적 원칙이 무슨 소용이냐고 하면서. 안 봐도 비디오 아닌가.

더욱 웃긴 것은 인질 석방 발표를 청와대가 했다고 비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대선을 겨냥한 “생색 내기”라고 보도하고 있다. 이 정도라면 우리나라의 잘난 언론들은 구제 불능이다. 이들은 예수나 부처가 와도 구제가 안되는 족속들이다.

그렇다면 자칭 진보 언론들의 보도는 또 어떨까. 오마이뉴스의 윤똑똑이 손석춘이 또 나섰다.

고 김선일이 참혹하게 숨졌을 때 경고했듯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남은 인질이 모두 풀려나기로 합의된 오늘, 거듭 진지하게 당부한다. 이라크에서는 자주적 결정으로 철군해야 옳다. 그것이 또 다른 참극을 막는 유일한 길이다. 침략전쟁 파병으로 추락한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스스로 높일 길이다.

[인질 석방을 환호만 할 수 없는 까닭, 오마이뉴스]

손석춘은 이 납치사건이 정부의 아프가니스탄 파병 때문이라고 보는 것 같은데, 그것은 아니다. 이번 납치 건은 아프가니스탄 파병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다. 파병을 안 했더라도 샘물교회의 단기선교단이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봉사라는 이름의 선교 활동을 했다면 역시 납치되었을 것이다. 이 사건의 책임은 파병을 한 정부가 아니라 정부의 만류에도 굳이 아프가니스탄 선교를 떠난 교회 측에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아니 노무현 대통령이 정말 원해서 이라크에 파병을 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억측일 뿐이다. 하고 싶지 않아도 할 수 밖에 없는 일들이 있는 것이다.

한겨레 또한 사설에서 횡설수설하면서 결론은 이라크 철군이다.

이런 조건들이 충족되려면 무엇보다 명분 있는 외교가 전제돼야 한다. 사실 한국은 아프간에 지금까지 군 병력을 남겨놓을 이유가 없었다. 이라크 파병도 처음부터 명분이 없었다. 정부의 이런 어정쩡한 태도가 이번 사태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음은 물론이다. 비상시의 외교력은 평소의 외교 행태에 따라 크게 달라지게 마련이다. 한국 외교는 이제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한국 외교 현주소 보여준 아프간 인질 사태, 한겨레]

정부의 노력과 성과를 흔쾌히 칭찬하지 못하고 어떤 식으로든 흠짓 내려하는 한국의 언론들. 그들에게는 기자실이라는 떡고물이 더 중요하겠지. 탈레반보다도 더 극악스러워 보이는 언론들이다. 아, 정말 이런 언론들을 견뎌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프간 사태 해결의 최고 공로자는 ‘한국 언론’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된 사람들이 모두 풀려났다. 경위야 어찌되었든 일단 큰 희생없이 사건이 마무리된 것은 잘 된 일이다. 40여일 간 납치되었던 사람들도 삶에 대해, 그리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신앙과 종교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오히려 이 사건은 그들에게 내린 하늘의 선물일 수도 있다. 이런 경험을 통해 그들은 좀 더 겸손하고 다른 종교를 존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었을테니. 뭐, 아니면 말고.

많은 국민들은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해 정부가 들인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국민의 생명을 최우선시했던 우리 정부는 “테러 집단과의 직접 협상”이라는 꺼림칙한 전술도 마다하지 않았다. 국제 사회의 비난의 목소리를 각오하고 “철 없는” 국민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정부가 보여준 헌신적인 노력은 평가받고, 칭찬받아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 해결의 숨은 공로자는 따로 있다. 바로 우리나라의 그 잘난 언론들이다. 우리나라 언론들은 단 한 명의 기자도 사건의 현장인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하지 못했다. 물론, 우리 정부 요청을 받은 아프간 정부가 비자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한국의 기자들이 아프가니스탄에 가지 않았던 (아니 못했던) 것은 사태 해결에 가장 큰 밑거름이 되었다.

연합뉴스 발로 한겨레에 보도된 기사는 아프간 사태의 최대 희생자는 ‘한국 언론’이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그것은 언론들의 입장이고, 피랍자나 그들의 가족, 국민의 입장에서 우리나라 언론들이 직접 아프간 땅을 밟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다.

그들이 아프간에 가서 쏟아냈을 법한 그 어마어마한 가공의 왜곡 기사들만 상상하면 등줄기가 오싹해진다. 당장 사태 해결이 된 후언론들이 내놓는 기사들을 보라.

정부 초기대응 미숙… “희생 불렀다” [YTN]

외교적 개가인가 … 테러집단과 타협인가 [중앙일보]

‘이면합의’ 있나 [연합뉴스]

탈레반 ‘몸값’ 포기했을까? [연합뉴스]

한국 외교 ‘반성과 새출발’ 계기 [연합뉴스]

이런 언론들이 협상이 진행되는 아프간 현지에 가서 직접 취재한답시고 협상팀을 비아냥대는 추측성 기사를 마구 쏟아냈다면 아마 대부분의 피랍자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열받은 탈레반이 기자들까지 납치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 사태에 대해 우리나라 언론과 기자들이 보인 그 자제력에 나는 고개 숙인다. 당신들의 그런 노력이 21명의 목숨을 건진거나 다름 없다. 당신들이 맨날 “무능”하다고 욕하는 참여정부는 당신들이 방해만 하지 않으면 일을 제대로 해결한다.

그냥 외신들 (비록 오보라도) 받아쓰기나 하면서 편하게 지내길 바란다. 당신들은 가만히 있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납치된 한국인 중 또 한 명이 살해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정말로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더 답답한 것은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에 특사를 보내 협상을 하고 있지만 이 협상이 성공하기는 정말 힘들어 보인다. 아프간 정부도 탈레반의 요구를 쉽사리 들어줄 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인질들은 하루에 한 명씩 살해될 것이고, 그것을 빌미로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군은 탈레반의 거점을 초토화시킬 것이며, 그 와중에 죄없는 민간인 수백 아니 수천명이 또 목숨을 잃을 것이다.

한국 정부와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과 미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다. 미국의 승인이 없으면 탈레반이 요구한 수감자 석방을 들어줄 수 없다. 그런데 오늘도 미국은 테러리스트와 협상은 없다라는 원칙만 되풀이하고 있다. 미국인이 인질로 잡힌 것도 아니기 때문에 뒷짐만 지고 있는 형국이다. 아프간 정부도 미국의 승인이 없이 탈레반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때문에 지금의 협상은 큰 결실을 맺기 힘들고, 시간이 갈수록 탈레반에 의해 살해되든 아니면 건강이 악화되어 죽게되든 납치된 사람들만 희생되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탈레반과 미국이다. 그러므로 납치된 사람들을 몇 명이라도 구출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미국을 설득해서 탈레반의 요구사항을 수용하게 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탈레반을 설득해서 그들의 요구를 낮추거나 취하하게 하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미국 정부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미국 국민과 여론이다. 미국 국민들을 움직일 수 있다면 미국 정부도 자신들의 원칙만을 고수할 수는 없다. 미국은 기독교 국가이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나서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봉사든 선교든 간에 납치된 사람들을 아프가니스탄에 보낸 한국의 교회들이 앞장서야 한다. 한국의 기독교인 중에 갈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은 미국 워싱턴에 가라. 그리고 백악관 앞에서 금식하며 기도하라.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때까지 기도하고 또 기도하라.

이교도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겠다고 전쟁 중인 아프가니스탄에 봉사단원을 보낸 사람들이 왜 같은 종교를 가진 미국 국민들을 설득하지 못하는가. 지금처럼 정부에게만 맡겨 놓을 일이 아니다. 물론 정부도 모든 외교 채널을 동원하여 미국과 얘기하고 있겠지만,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정말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납치된 사람들을 걱정한다면 지금이라도 미국으로 달려가 미국 국민과 여론에 호소하라. 결자해지라 하지 않았는가. 샘물교회 교인들부터 미국 설득에 앞장서라. 지금 열쇠를 쥐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다.

그와 동시에 탈레반을 설득하라. 탈레반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다. 꾸란의 가르침을 목숨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지금 탈레반이 하고 있는 짓들은 이슬람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꾸란의 가르침으로 그들을 설득하자. 그들이 저지르고 있는 이 납치극이 과연 알라의 뜻과 합당한지 아닌지 알려줘야 한다. 꾸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타인과 그리고 지상에 아무런 해악을 끼치지 아니한 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살해하는 것은 모든 백성을 살해하는 것과 같으며 또한 한 사람을 구제하는 것은 모든 백성을 구제하는 것과도 같다 하였으매 그리하여 선지자들이 말씀을 가지고 너희에게 오셨노라

[꾸란 5:32]

이슬람 국가들의 여론에 호소하여 탈레반을 설득하는 수 밖에 없다. 그들의 행위가 꾸란에 어떻게 어긋나고 있는지 얘기해야 한다. 지금 아픈 사람만이라도 풀려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벌써 보름이 흘렀다. 시간이 더 지나면 그들이 살해하지 않더라도 건강이 악화되어 죽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 있다. 서둘러야 한다.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며 언제나 비가 온다고 한다. 그것은 인디언들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라 한다. 전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를 자랑하는 한국의 기독교인들이여. 이제 더 이상 방관만 하지 말고 미국 설득에 앞장서라. 당신의 형제들이 지금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죽고 있지 않은가. 무슬림들을 기독교인으로 개종시키겠다는 그 용기로 미국 국민들을 설득하라. 미국의 기독교인들을 설득하라.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인디언들처럼.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종교는 진정한 종교가 아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이 납치되었다 한다. 그 젊은이들은 선교와 봉사 활동을 하러 그 위험한 지역에 들어간 사람들이다. 추측컨대 그들 대부분은 착하고 순수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일게다. 그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도한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 기독교 지도자들은 이슬람 지역 같이 다른 종교를 믿는 곳에서의 선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여러 종교가 있지만, 그 중 기독교의 배타성은 으뜸이라 하겠다. 다른 모든 종교를 우상 숭배라고 폄하하면서 하나님만이 모든 죄를 사하고 구원해 줄 것이라고 말한다. 교회를 다니지 않고는 구원을 받을 수도 천국에 갈 수도 없다고 한다.

기독교와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형제 종교들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이나 유대교의 여호와나 이슬람교의 알라는 부르는 이름만 다를 뿐 같은 신이다. 그들이 인정하는 선지자들이 다를 뿐 그 뿌리는 한군데이다. 이슬람교를 믿는다고, 유대교를 믿는다고 구원받지 못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들이 얘기하는 신은 모두 하나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기독교가 자신들의 종교만이 옳은 종교이고, 다른 종교들은 모두 이단이고 사교이고 우상 숭배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이번 사건과 같은 일은 계속될 것 같다. 물론 납치가 옳다는 것도 아니고, 기독교의 종교 활동 자유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상대에 대한 예의는 갖추어야 할 것이 아닌가. 한겨레신문의 ‘한국=기독교 선교’ 인식 탓 피해 가능성이란 기사를 보고 나는 정말 놀랐다.

한국 개신교 신자 1300여명은 지난해 8월 아프간에서 축제를 벌이려다가, 추방 직전에 행사를 취소한 바 있다. 당시 아프간 대통령까지 나서 추방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2002년부터 3년 동안 카불에서 봉사했던, 한국제이티에스의 유정길씨는 “선교단체들이 심지어 무슬림사원에서 통성기도를 하고 찬송가를 부르는 장면을 공표하기도 했다”며 “이를 통해 한국인들이 모두 개신교 선교사로 인식돼 한국인들이 테러의 표적이 떠올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무슬림 사원에서 찬송가를 부르고 통성 기도를 하는 개신교 신자들을 그 나라 사람들은 어떤 눈으로 보았을까. 정말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러 온 사도들로 보았을까? 아닐 것이다. 자신들의 종교를 부정하고 파괴하러 온 침략자들로 보았을 것이다.

다른 종교를 부정하고 오직 기독교만이 유일 정통 종교라고 주장하고 위와 같은 양식없는 행동을 한다면 기독교만 고립되고 인정받지 못하며 지탄을 받을 뿐이다. 절에 가서 찬송가를 부르고, 무슬림 사원에서 통성 기도를 하는 기독교인들. 종교에 대한 천착이 너무나 부족한 무늬만 종교인들이라 아니 할 수 없다.

한기총도 그렇고, 이랜드도 그렇고, 초대형 교회들도 그렇고, 이명박도 그렇고. 우리나라의 기독교가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다. 욕심을 버리고 회개하길 바란다.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종교인들은 진정한 종교인이 아니다.

다시 한 번 납치된 젊은이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바란다. 그리고, 이번 사건에서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이 뭔가를 깨달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