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리더십

참여정부 청와대 대변인 윤태영 씨가 쓴 <바보, 산을 옮기다>를 읽던 중,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몇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이 척박한 나라에 노무현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비현실적이어서, 그것은 마치 전설의 고향 한 토막을 보는 듯했다.

노무현은 리더십의 핵심 조건으로 원칙을 꼽았다.

“원칙은 사회의 존립 근거이며, 신뢰 역시 원칙에서 비롯된다.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신뢰받는 지도자가 되고, 사회적 집단적으로도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신뢰받는 지도자가 된다. 다자간의 원칙이 정당하다고 역사적으로 검증된 것은 곧 우리 모두의 이익이 된다.”

지도자의 눈높이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민의 눈높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는데, 그것은 지도자가 할 일은 아니다. 지도자의 눈높이는 역사의 눈높이여야 한다. 지도자는 국민의 눈높이를 역사의 눈높이로 끌어올려 함께 이끌어가는 것이다.”

지도자의 판단력과 통찰력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판단력과 통찰력의 토대 위헤서 정확한 예견이 가능해진다. 판단력이나 통찰력은 기본적으로 해박한 지식, 깊이있는 사고에서 나오는 것이다. 통이 작은 것이 판단력, 통이 큰 것이 통찰력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만약 참여정부 시절에 세월호 참사나 메르스 사태가 일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처럼 갈팡질팡 아무 대처도 못하고 책임만 회피하려 했다면, 아마 수십번 탄핵되고 쫓겨났을 것이다.

노무현 이후 새누리당 정권이 내세운 리더들은 원칙도 없고, 신뢰도 없고, 역사의 눈높이는 고사하고 국민의 눈높이조차 따라가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들에게 리더가 갖추어야할 판단력이나 통찰력을 요구하는 것이 오히려 범죄일지 모른다.

리더를 잘못 뽑으면 자기 생명이 위태롭다는 사실을 우리 국민들은 깨달을 수 있을까? 세월호 참사나 메르스 사태만으로는 아직 부족한 것일까?

노무현은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는 너무 앞서 온 사람이었고, 많은 국민들이 그의 진가를 알지 못했다.

기회주의자들의 특징

기회주의자들은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우선 그들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은 사람으로서 지녀야할 기본 품성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말이다. 사람과 짐승을 가르는 기준 중 하나가 바로 ‘부끄러움을 아느냐 모르느냐’인데, 기회주의자들은 부끄러움을 모르기 때문에 짐승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회주의자들은 부끄러움을 모를 뿐 아니라 끝없는 탐욕으로 뭉쳐있어 짐승보다 못할 때가 더 많다.

기회주의자들은 겉과 속이 다르고, 말과 행동이 다르다. 겉으로는 예의 바르고 화려한 언어로 얘기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겉모습이나 말과는 사뭇 거리가 있다.  기회주의자들이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은 공허하다. 그것이 행동으로 뒷받침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회주의자들은 항상 눈 앞의 이익을 좇는다. 그들에게 의(義)를 바라는 것은 나무 위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보다 어렵다. 눈 앞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은 역사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역사라는 것도 힘만 있으면 언제든 왜곡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기회주의자들이 거의 늘 성공한다는 것이고, 지배계층의 모든 부문을 기회주의자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회에서 성공을 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보다 더 약삭빠른 기회주의자가 된다는 뜻이다. 지금 이 나라에서 힘깨나 쓴다는 자들 중 열의 아홉은 기회주의자다. 기회주의자들이 지배하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새정치연합이라는 정당의 내분도 결국은 기회주의자들과의 싸움으로 보면 된다. 이 나라의 기회주의자들이 극도로 혐오하고 저주하는 사람이 노무현이다. 기회주의자들이 노무현을 죽이는데는 성공했지만, 그가 남긴 정신은 없애지 못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친노패권’ 운운하는 자는 100% 기회주의자들이고, 그들이야말로 마땅히 사라져야할 족속들이다.

p.s. 기회주의자들은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그들은 무책임하다. 마땅히 자기가 져야할 책임도 아랫 사람들에게 전가한다. 유체이탈 화법의 달인들은 전형적인 기회주의자들이다.

기회주의자들은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극도로 무능하다. 특히, 다른 사람을 위한 일에 있어서는 거의 젬병이다. 이들은 다른 사람을 위한다는 개념 자체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짓말에는 매우 능하며 자기자신의 이익을 좇는 일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기회주의자들은 공직을 맡아서는 절대 안 되지만, 이들은 기를 쓰고 공직을 얻으려 한다. 공직에 딸린 책임은 나몰라라 하면서, 그 권력만을 탐하기 때문이며, 그 권력을 이용해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면서 사리사욕을 채운다. 그들이 기회주의자들이다.

유시민의 글쓰기

유시민이 쓴 책은 쉽고 유익하다. 그는 엄청난 연구의 산물로 책을 내지 않는다. 그는 이미 나와 있는 많은 이론이나 사실들을 잘 이해하고 요약하여 독자들에게 쉽게 전달한다. 그의 책이 쉽다고 해서 결코 깊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의 책은 쉽고 유익하고 재미있다.

유시민이 쓴 책을 거의 다 사서 읽는 편인데, 이번에 나온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은 글쓰기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책이라 하겠다. 그가 밝히는 글쓰기에 관한 영업기밀(취향과 주장의 구별, 주장은 반드시 논증, 주제에 집중)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좋은 글에 대한 기준(짧고 간결하며 군더더기 없는 글) 등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글을 잘 쓰려고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

유시민이 쓴 책을 거의 다 읽는 사서 이유는 그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처럼 재주있는 사람이 기회주의자가 아니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노무현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는 노무현을 지키기 위해 홀홀단신 정치에 투신했다. 그와 같이 자유주의 성향이 있는 사람은 정치를 좋아하지도, 정치를 직업으로 삼지도 않는다. 그런 그가 노무현을 지키기 위해 정치인이 되었다. 때문에 그에게는 마음의 빚이 있다. 그래서 그가 쓴 책은 꼭 사야 한다. (사실 노무현도 글쓰기에 관한 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정치인이었다.)

그는 몇 안 되는 단심을 지닌 정치인이었고, 정계은퇴한 지금은 지식소매상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글쟁이가 되었다. 그는 정치인이었을 때보다 지금 훨씬 더 자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노무현은 떠났지만, 유시민이라도 행복하게 살아야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의 고군분투는 처연하기까지 하다.)

유시민의 건투를 빈다.

 

노무현의 글쓰기

참여정부 연설문 작성 비서관이었던 강원국의 증언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은 글쓰기(특히, 연설문)에 관한 한 최고의 안목과 역량을 갖춘 정치인이었다. 수구 기회주의 세력들은 그의 말투를 문제 삼아 끊임없이 그를 헐뜯었지만, 연설에 관한 한 노무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치가였다.

강원국이 펴낸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에 노무현 대통령이 비서관에게 내린 32개의 글쓰기 지침이 나온다. 그것은 연설문뿐만 아니라 좋은 글을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금과옥조와 같은 것들이다. 그 중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정리해 본다.

  • 쉽고 친근하게 쓰게.
  • 글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고 쓰게. 설득인지, 설명인지, 반박인지, 감동인지.
  • 짧고 간결하게 쓰게. 군더더기야말로 글쓰기의 최대 적이네.
  • 수식어는 최대한 줄이게. 진정성을 해칠 수 있네.
  • 일반론은 싫네. 누구나 하는 얘기 말고, 내 얘기를 하고 싶네.
  • 문장은 자를 수 있으면 최대한 잘라서 단문으로 써주게. 탁탁 치고 가야 힘이 있네.
  • 접속사를 꼭 넣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말게. 없어도 사람들은 전체 흐름으로 이해하네.
  • 통계 수치는 글의 신뢰를 높일 수 있네.
  • 상징적이고 압축적인, 머리에 콕 박히는 말을 찾아보게.
  • 글은 자연스러운 게 좋네. 인위적으로 고치려고 하지 말게.
  • 중언부언하는 것은 절대 용납 못하네.
  • 책임질 수 없는 말은 넣지 말게.
  • 중요한 것은 앞에 배치하게. 사람들은 뒤를 잘 안 보네. 단락 맨 앞에 명제를 던지고, 뒤에서 설명하는 식으로 서술하는 것이 좋네.
  • 한 문장 안에서는 한 가지 사실만을 언급해주게. 헷갈리네.
  • 평소에 사용하는 말을 쓰는 것이 좋네. 영토보다는 땅, 식사보다는 밥, 치하보다는 칭찬이 낫지 않을까?
  • 글은 논리가 기본이네. 멋있는 글을 쓰려다가 논리가 틀어지면 아무것도 안 되네.
  • 이전에 한 말들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네.
  •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표현은 쓰지 말게. 모호한 것은 때로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지금 이 시대가 가는 방향과 맞지 않네.
  • 단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 글은 써서는 안 되는 글이네.

<강원국, 대통령의 글쓰기, pp. 19-21>

이 나라는 한때 이런 수준을 대통령을 가졌었다. 불과 10년도 안 된 일이지만, 너무 현실성이 없어서 마치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얘기 같지 않은가.

위안

사람 사는 세상이 오지 않는다 해도 이 한 장의 사진은 많은 이들에게 위안이 될 것이다. 비루하고 척박한 세상에도 아주 가끔은 이런 의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다면.

노무현문재인

노빠로 산다는 것

노빠로 산다는 것은
가슴에 주홍글씨 새기는 것
상식과 원칙을 부여잡고
사람 사는 세상 만들겠다는 죄 아닌 죄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 되어
돌팔매를 맞는 것

노빠로 산다는 것은
바람개비 하나 가슴에 품는 것
바람이 불면
행여 그가 왔을까
그리움이 눈물 되고 강물 되어
바다로 나아가는 것

노빠로 산다는 것은
어둠이 빛을 가리고
희망이 절망을 뛰어 넘지 못하는
탐욕과 공포의 벼랑 끝에서
노란 풍선 하나
푸른 하늘에 날리는 것

<소요유, 2013년 5월>

벌써 4년. 5월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올해도 당신을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힙니다. 누가 알았겠습니까. 당신을 좋아하고 사랑했다는 죄가 이런 천형 같은 끝없는 그리움이 될 줄.

“세상을 바꾸었다고 생각했는데 물을 가르고 온 것만 같다”는 당신의 말이 귀에서 울립니다. 애초에 세상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지도 아니 너무 오래 걸리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너무 빨리 세상에 왔고, 너무 빨리 세상을 떠났습니다. 멀리서나마 당신을 볼 수 있었던 그 순간이 꿈만 같습니다.

갈 길 잃은 노빠는 올해도 풍선을 날리고, 바람개비를 돌리며 당신을 생각합니다. 편히 쉬시길 기도합니다.

강금원 회장, 안부 전해 주시오

강금원 회장님!

당신은 참으로 멋진 사내입니다. 정의가 무엇인지, 의리가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준 사내입니다. 당신은 영웅을 알아보았고, 그 영웅을 물심양면으로 도왔고, 그리하여 그 영웅이 뜻을 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당신의 무조건적인 후원과 사랑과 믿음이 없었다라면 그의 정치적 성공도 없었을 겁니다. 당신은 감히 그의 영원한 친구라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내입니다. 고맙고도 고맙습니다.

오늘 당신의 부음을 들었습니다. 가슴 끝이 아렸습니다. 말못할 슬픔이 밀려 왔습니다. 우리들의 영웅을 도왔다는 이유만으로 당신은 모진 고초를 겪었고, 결국 당신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조리한 세상에서 영웅을 알아본 댓가였습니다. 그 영웅에게 날개를 달아준 댓가였습니다. 세상은 전혀 정의롭지 않은데,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나선 이를 도와준 댓가였습니다. 사악한 권력의 개들은 당신을 가두고, 압박하고, 급기야 죽게 만들었습니다. 이 땅에서 다시는 그런 영웅이 나타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겠지요.

하늘나라에 가서 그를 만나거든 부디 안부 전해 주시오. 우리들은 그저 허허로이 지내고 있다고. 하지만 그가 당신이 오는 것을 반길지는 알 수가 없네요. 그곳에서도 그는 당신에게  미안하다, 면목없다 얘기할 사람이니까요.

당신과 그를 보면 유유상종이란 말이 절로 떠오릅니다. 하는 일은 달라도 생각이 같고, 삶을 대하는 자세가 같았기 때문이겠지요. 이제 저 세상에서 편히 쉬세요. 그와 함께 그동안 못다한 얘기도 나누고, 하늘나라 오솔길에서 산책도 하세요. 그가 이 세상에 대해 물으면 그냥 잊으라고 얘기해 주세요.

당신과 그가 한때 머물렀던 이 세상. 그 흔적이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네요.

당신의 명복을 빕니다.

검찰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

어젯밤 꿈에 노무현 대통령을 보았다. 대통령은 몸이 편찮은 듯 누워 있었고, 나는 그 옆에서 검찰을 손 봐야 한다고 간언을 하고 있었다. 검찰의 인적 쇄신 없이는 그리고 사법 체계의 쇄신이 없이는 우리의 미래도 노무현 대통령의 미래도 없다고 거의 매달리다시피 말하고 있었다. 여기서 표현은 이렇게 점잖게 했지만, 꿈 속에서는 검찰을 쓸어버려야 한다고 얘기했던 것 같다.

대통령은 몹시 불편한 기색이었다. 그런 인위적인 방법으로는 안된다고 내 요구를 거절하였다. 나는 그런 대통령이 너무 답답했다. 그렇게 검찰에 당하고도 어떻게 저런 말씀을 하시는지 너무 답답하여 가슴을 치다 잠을 깼다.

새벽에 <나는 꼼수다> 봉주 7회를 듣다가 부천지검에 있는 박은정 검사가 양심선언을 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나경원 남편인 김재호 판사가 자기 배우자 건에 대해 특정인을 기소해달라는 청탁 전화를 직접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박은정 검사가 그런 양심선언을 하게 된 계기는 사람이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내가 이렇게 저항하는 이유는 사람이고 싶어서다.”

<‘나꼼수’ 봉주 7회, 박은정 검사 “나경원 남편 김재호 판사 기소 청탁”, TV리포트>

나는 그동안 검찰이란 조직에 몸담은 자들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검사동일체라는 고리타분한 봉건적 원칙 아래 자신들의 특권만을 위해 하나로 똘똘 뭉쳐 있는 이 집단은 이 나라의 어느 범죄 조직과 견주어도 결코 뒤쳐지지 않는다. 이들은 우리 현대사의 가장 위대한 정치인을 가장 비열한 방법으로 죽인 자들이다.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결코 구원받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지른 자들이다.

그런 추악한 집단 안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오늘 박은정 검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오늘 또 한사람의 의인을 발견했다. 그리고 왜 꿈 속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을 쓸어버리자는 내 요구를 거부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씀이 가슴에 사무친다.

박은정 검사의 이름 석자를 이 블로그에 남겨 기억하고자 한다. 우리 모두는 그 무엇이기 이전에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가해자들이 지배하는 세상

2011년 12월20일, 대구의 한 중학생이 친구들의 집단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학생의 유서가 공개되면서, 그 학생을 괴롭혀온 가해자들의 만행은 세상을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친구에게 욕설과 폭행은 기본이고, 심지어 물고문까지 가했다는 사실에 이르러서 사람들은 경악했다. 괴롭힘을 당했던 학생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가해 학생들은 미성년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구속되었다.

2011년 12월 30일,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민주화운동 시절 받은 고문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김근태 상임고문은 3선 의원을 지냈으며, 노무현 정부 때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1985년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에 그는 이근안으로부터 한달 가량 물고문, 전기고문 등을 당했다. 그 고문의 후유증으로 김근태는 파킨슨병을 얻었고, 결국 6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김근태를 고문한 이근안은 2000년에 체포되어 7년 징역을 살다가 지금은 개신교 목사가 되었다. 군부독재의 원흉, 전두환은 여전히 주머니에 마르지 않은 29만원을 넣고 다니면서 잘먹고 잘살고 있다.

2011년 12월 14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1000번째 집회가 열렸다. 지난 20년 동안 할머니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랑곳하지 않고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의 만행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다. 그동안 많은 할머니들이 가슴에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났다. 일본은 여전히 1965년 한일협정으로 모든 부채를 탕감했다는 입장이고, 오히려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위안부 동상을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은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검찰과 언론으로 대변되는 기득권층의 집단 괴롭힘이 그를 저 세상으로 보낸 것이다. 물론, 그 검찰과 언론의 뒤에는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있고, 그 뒤에는 재벌이 있었다. 그들은 친일과 군부독재 그리고 기회주의라는 공통된 속성을 지니고 있었기에 노무현이라는 인물을 살려둘 수 없었다. 이명박은 여전히 국민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고, 한나라당은 이 나라 국회의 과반 이상을 점하고 있다. 친일과 독재 부역 언론인 조중동은 여전히 신문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중학생들의 학교 폭력과 집단 괴롭힘이 과연 그들만의 문제일까? 과연 학교 교육만이 잘못되어서 일어난 일일까? 그것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병리 현상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거울이다.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은 3대가 망하고, 친일파들은 기득권세력이 되어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고문하고, 수천억원의 부정부패를 일삼은 군부독재의 원흉이 버젓이 고개를 들고 전직 대통령 행세를 한다. 민주운동가를 고문한 경찰은 목사가 되어 설교를 하고, 전과 14범 사기꾼에 속아 대통령으로 선출한 후 경제를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아무 죄도 없는 전직 대통령을 검찰과 언론을 동원하여 여론재판을 한 후 끝내 죽이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라길 바라는 것 자체가 비정상이다. 네가 성공하려면 네 경쟁자들을 밟아 이겨야 한다고 가르치는 학교, 친구한테 맞지 말고, 먼저 때리라고 가르치는 부모, 가해자가 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세상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정의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고, 친구를 밟아 이겨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이 정글보다도 못한 무한경쟁 시스템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지 궁금할 뿐이다.

친구들의 집단 괴롭힘에 목숨을 끊은 중학생은 잊혀질 것이며, 심성 착하고 가해자가 될 수 없는 또다른 학생들이 죽어나갈 것이다. 재벌과 한나라당, 조중동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들의 특권을 지켜나갈 것이고, 검찰과 경찰은 여태 그랬듯이 특권층의 주구 노릇을 할 것이다. 앞으로 노무현과 같이 정의를 목놓아 부르는 정치인을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나타난다 하더라도 또 죽임을 당할 것이다.

2012년 새해가 밝았지만, 희망 따위는 별로 없다.

“아, 씨바, 노무현 보고 싶다”

그래, 나 노무현 좋아. 난 자연인 노무현보다 남자다운 남자를 본 적이 없어. 나보다 남자다워. 난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남자가 다 됐어. 그 전엔 나도 부분적으로 찌질했어. 하여튼 난 그런 사람 처음 봤고 아직까진 마지막으로 봤어.

아, 씨바, 노무현 보고 싶다.

이명박 같은 자가 그런 남자를 죽이다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내가 노무현 노제 때 사람들 쳐다볼까 봐 소방차 뒤에 숨어서 울다가 그 자리에서 혼자 결심한 게 있어. 남은 세상은,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그리고 공적 행사에선 검은 넥타이만 맨다. 내가 슬퍼하니까 어떤 새끼가 아예 삼년상 치르라고 빈정대기에, 그래 치를게 이 새끼야, 한 이후로. 봉하도 안 간다. 가서 경건하게 슬퍼하고 그러는 거 싫어. 체질에 안 맞아. 나중에 가서 웃을 거다. 그리고 난 아직, 어떻게든 다 안 했어.

[김어준, 닥치고 정치, p. 299~300]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를 보다가 이 대목에서 울컥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어떻게 이명박 같은 자가 노무현을 죽일 수 있었을까. 이런 일은 영화에서도 일어나지 않는 일인데, 이 빌어먹을 땅이 저주를 받긴 받은 모양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하늘은 푸르고, 은행잎은 저리도 노랗게, 예쁘게 물드는데…

아, 씨바, 노무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