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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대통령

말을 잘하는 방법

말을 잘하는 방법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윤태영 씨가 <대통령의 말하기>라는 책을 내놓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뛰어난 연설가이고, 달변가였으며, 토론의 명수였다. 말 잘하는 사람으로 첫손에 꼽을만한 정치가였으나, 그는 그의 재능 때문에 적지 않은 설화를 겪기도 했다. 물론 그 설화의 대부분은 그를 하이에나처럼 물어뜯던 언론과 기득권 세력의 근거없는 시기와 모략 때문이었다.

<대통령의 말하기>의 서문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에 대한 철학과 원칙이 어떠했는지 보여주는 구절이 있다.

“말은 한 사람이 지닌 사상의 표현이다. 사상이 빈곤하면 말도 빈곤하다. 결국 말은 지적 능력의 표현이다.”

“말을 잘하는 것과 말재주는 다른 것이다. 국가 지도가의 말은 말재주 수준이 아니고 사상의 표현이고 철학의 표현이다. 가치와 전략, 철학이 담긴 말을 쓸 줄 알아야 지도자가 되는 법이다.”

<윤태영, 대통령의 말하기, pp. 5-7>

노무현의 비서관이자 대변인이었던 윤태영은 이 책에서 청와대 근무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23가지의 방편을 소개한다. 이 방편들은 모두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나온 것들이다. 말(특히 연설)을 잘하고 싶은 사람들(특히 정치인이나 리더)에게 유용한 지침들이다.

대중을 설득해야 하는 정치인이 아닌 일반 사람들이 말을 잘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책을 읽다가 말하기에 대한 평소의 생각을 정리해본다. 윤태영이 정리한 노무현의 말하기 방편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그 방편보다 더 기초적인 항목들이다.

  1. 말을 잘하기 위한 가장 기본은 경청이다. 경청을 잘하는 사람은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특별히 말을 잘하지 않아도 경청을 잘하고 공감 능력이 뛰어나면 상대방은 그 사람이 말을 잘한다고 느낀다.
  2. 말을 할 때 진심을 담아야 한다. 말재주가 좋아 유창하고 세련된 표현으로 말을 하더라도 진심을 담지 않으면, 상대방은 그 말에 영혼이 없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3. 자기의 말을 해야 한다. 남의 얘기 말고, 자기의 얘기를 해야 한다. 자기가 직접 경험한 것이라면 더욱 좋고, 설령 남이 한 말을 전할 때에도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자기 말이 아닐 경우, 대부분 그 말들은 공허하거나 깊이가 없다.

노무현은 훌륭한 대통령이었고, 참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말 한마디에도 고심을 했고, 영혼을 담으려 노력했다. 책을 읽으면서 그가 많이 보고 싶었다.

<덧> 같이 읽으면 좋은 글

을미년 여름, 여전히 안녕하신가

을미년 여름, 여전히 안녕하신가

을미년 여름은 너무 일찍 시작됐다. 봄인가 했더니 순식간에 여름이 되었다. 봄은 갈수록 짧아지고, 여름의 시작은 점점 일러졌다.

날이 가물었다. 지난 겨울부터 제대로 된 비가 오지 않았다. 논바닥이 갈라지고, 농심이 타들어갔다. 4대강에는 물이 넘쳐도, 그 물을 농사에 사용할 수 없었다. 4대강 사업을 하면 가뭄과 홍수를 막을 수 있다고 한 그 자들의 말은 모두 거짓이었다.

날이 가물고, 역병이 돌았다. 정부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아니 그들은 전염을 억제하고 역병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역병은 나날이 번져 나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격리되고 몇몇은 죽어나갔다. 민심은 흉흉해지고 경기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늘 경제타령을 했지만, 경제는 나아지지 않았다. 예전에 대통령을 경포대라 욕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때의 경제는 지금보다 훨씬 좋았다. 어떤 사람들은 외환위기 때보다도 더 어렵다고 했다. 정부의 관심은 오로지 집값이었다. 집값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정부는 빚을 내서 집을 사라고 했다. 그것이 유일한 경제 정책이었다. 이자율은 계속 떨어지고 사람들의 빚은 늘어 갔다. 경제는 백척간두였다.

세월호 침몰로 진도 앞바다에서 수백명의 사람이 죽었다. 1년하고도 2개월이 지난 지금, 그 죄없는 어린 학생들과 시민들이 왜 죽어야만 했는지 아무도 몰랐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고, 진실을 밝히려 하지 않았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여전히 길에서 울었고, 억울한 원혼들은 구천을 맴돌았다.

“그래서 대통령 될라구 하는 거 아녜요, 지금. ㅎㅎㅎ” 그 여자는 이렇게 말하고 51.6%의 득표로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2년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예상보다 견딜만 하신지, 여전히 안녕하신지 궁금할 따름이다.

당신의 아들딸은 세월호를 타지 않았기에 괜찮고, 당신의 가족들은 메르스에 걸리지 않아 괜찮고, 당신은 집을 사기 위해 빚을 내지 않았으니 괜찮고, 당신은 농사짓는 농부가 아니니까 괜찮다고? 그렇다면 계속 안녕하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을미년 여름은 비도 오지 않고, 사정없이 더울 것 같다.

네 가지 없는 안철수

네 가지 없는 안철수

이명박의 극악스런 사기질에 학을 뗀 많은 사람들이 이번에는 안철수에 눈이 멀었다. 특히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젊은이들이 안철수에 열광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작년부터 지금까지 안철수의 언행을 유심히 살펴본 결과, 그는 결코 이 나라를 이끌고 갈 능력과 자질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말로는 역사의식이 있다고 얘기했지만, 그는 이 나라의 근본 문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말로는 정치혁신을 얘기하지만, 그가 주장하는 정치혁신이 무엇인지 얘기하지 않는다. 안철수는 정치혁신은 고사하고, 정권교체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는 야권 단일화에 대해 시종일관 외면하고 있다.

안철수가 정치지도자가 될 수 없는 이유, 아니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첫째 그는 색깔이 없다. 모호하다. 선명하지 않다. 도대체 누구 편인지를 밝히지 않는다. 언뜻 보면 야권 후보 같은데, 꼭 그렇지도 않다. 민주당과 비슷한 노선인 것처럼 말은 하지만, 새누리당과도 같이 할 수 있는 인물이다. 민중의 편인 듯 하지만, 사실은 특권층에 공고히 발을 딛고 있다.

정치지도자가 되려면 자신의 정치 철학과 노선을 분명히 하는 것이 우선인데, 안철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다. 손석희의 말처럼 “정치인은 메세지를 투명하게 전달”해야 하는데, 그는 늘 연막을 친다. 조금만 난처한 질문을 대하면 “국민이 판단”할 거라고 슬쩍 비켜 나간다. 사실 이런 사람이 제일 위험한 법이다. 냄새는 그럴 듯 하게 풍기지만, 결국에는 뒷통수를 치는 스타일이다.

둘째 안철수는 경험이 없다. 실패해 본 경험이 없고, 절망해 본 경험이 없다. 남을 위해 싸워본 경험도 없고, 공적인 일을 해 본 경험도 없다.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았으며 기업을 세워 성공했지만, 그것만을 가지고는 정치지도자가 될 수 없다. 그가 정치를 할 생각이 있었으면, 지난 총선에 출마했어야 했다.

유시민의 표현을 빌자면, “정치는 야수의 탐욕과 싸우기 위해 짐승의 비천함을 겪으면서 성인의 고귀함을 추구하는 것”이라 했다. 안철수는 짐승의 비천함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야수의 탐욕과도 싸우려 하지 않고, 오로지 성인의 고귀함을 말로만 추구하고 있다. 안철수가 주장하는 무소속 대통령은 본인조차도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 우리는 초등학교 반장 선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의 본질은 “권력 투쟁”이다.

셋째, 안철수는 정치인으로서의 내용이 없다. 알맹이가 없다. 공허하다. 그의 대선출마선언문, 비전선언문 모두 읽어 보았지만, 그가 추구하는 정치혁신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냥 좋은 말들일 뿐이다. 단일화의 조건으로 민주당에 요구한 정치혁신 또한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 도대체 어떤 정치혁신을 해야만 단일화 협상에 응할 것인지 며느리도 모른다.

말이 힘을 가지려면 그것이 행동으로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그는 행동으로 보여준 적이 없다. 그의 정치적 언술은 내용도 없지만 그의 행동과도 맞지 않는다. 물론, 그가 정치인이 아니었기에 실천을 요구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수 있지만, 그가 출마선언을 하고 보여 준 박정희 참배, 국회의원 철새 만들어 빼오기 등은 결코 정치혁신이 아니다.

넷째, 이명박 비판이 없다. 노무현을 신랄하게 비판하는데 주저하지 않지만, 이명박에 대해서는 일언반구가 없다. 그가 미래기획위원으로서 이명박 정권에 부역했다는 사실도 얘기하지도 않는다. 노무현에 대해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빈부격차의 심화는 굉장히 큰 과”라고 또렷히 얘기하는 사람이 이명박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 재벌의 경제력 심화와 빈부격차로 말하자면 이명박을 당해낼 사람이 없는데, 혹시 이명박이 두려워서 말을 못하는 것일까?

이런 네 가지가 없는 안철수의 언행을 면밀히 살펴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우선 안철수는 정권교체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아니 아예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안철수는 단일화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설령 단일화를 진행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안철수로의 단일화지, 문재인으로의 단일화는 아니다. 따라서, 안철수는 야권 후보가 아니다. 안철수는 오히려 (이명박을 포함한) 이 나라의 기득권층이 내놓을 수 있는 (박근혜보다도 훨씬 더) 매력적인 후보일 확률이 높다.

계산은 이미 끝났다. 안철수 입장에서 이번 대선출마와 완주는 전혀 밑질 것 없는 장사다. 다만 정권교체를 우선으로 바라는 사람들은 앞으로 전개될 답답한 상황 하에서 적어도 안철수를 지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최선의 선택

최선의 선택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5·16 군사쿠데타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돌아가신 아버지로선 불가피하게 최선의 선택을 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오늘의 한국이 있기까지 5·16이 그 초석을 만들었다고 볼 때 바른 판단을 내리셨다고 본다.”

박근혜 말처럼 그의 아버지 박정희는 늘 최선의 선택을 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일제시대에는 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혈서를 썼고, 결국 원하던 일본군 장교가 되었다. 해방이 되자 광복군으로 기어들어갔고, 좌익이 득세하던 시기에는 남로당 군총책이 되었으며, 한국전쟁 이후에는 국군 장성이 되어 호시탐탐 쿠데타의 기회를 엿봤다. 그리고 마침내 4·19 혁명으로 이룩한 민주주의를 총칼로 무참하게 무너뜨렸다.

박정희는 최선을 다한 독재자였고, 최선을 다해 어린 여자들을 희롱하였으며, 최선을 다해 부하의 총탄을 맞고 세상을 등졌다. 박정희의 최선의 선택은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최악의 불행이었고, 공포였다.

박정희는 독재자이기 이전에 기회주의자였다. 식민지 시대와 해방 정국 그리고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그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기회만 주어지면 권력을 향해 카멜레온처럼 변신했다. 물론 그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지만, 그 능력은 자신을 포함한 거의 모든 이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악마의 주술과도 같은 것이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것이 민주공화국의 가장 근간이 되는 헌법 1조이다. 박정희는 헌법 1조를 어긴 범죄자일 뿐이다.

그런 박정희를 옹호하거나 지지하는 자들은 민주공화국을 부정하는 아주 위험한 사람들이고, 민주공화국에서 삶을 영위할 자격이 없는 자들이다. 그것은 마치 독일에서 아직도 히틀러를 추종하는 네오나치 세력과도 같은 것이다. 아무리 민주공화국이라 하더라도 민주주의 근본을 인정하지 않는 세력들은 용인될 수 없다.

오늘의 한국이 있기까지는 5·16 쿠데타가 초석이 된 것이 아니고,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 6·10 항쟁이 초석이 된 것이다. 5·16 쿠데타와 유신헌법은 민주주의의 반동일 뿐 초석이 될 수 없다.

5·16 쿠데타를 최선의 선택, 바른 판단, 구국의 혁명이라 얘기하는 사람들은 그가 누구이든 간에 민주공화국의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박근혜의 대통령 결격사유는 그가 독재자의 딸이어서가 아니라 민주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최선의 선택이 늘 옳은 것은 아니다.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뒤에야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뒤에야

어느 인디언 예언자는  탐욕에 눈이 먼 세상에 대해 이렇게 경고했다.

Only after the last tree has been cut down. Only after the last river has been poisoned. Only after the last fish has been caught. Only then will you find that money cannot be eaten.

[Cree Indian Prophecy]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뒤에야. 마지막 강물이 더럽혀진 뒤에야. 마지막 물고기가 잡힌 뒤에야. 그대들은 깨닫게 되리라. 사람이 돈을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

[크리족 인디언 예언자]

사람들은 진정 무엇이 소중한지 알지 못한다. 그것을 잃고 나서야 그것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닫게 된다. 잃고 나서 깨닫게 된다면 그나마도 다행이다. 그것을 잃고 나서도 무엇을 잃었는지, 아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

2009년 5월 23일, 그는 홀연히 세상을 떴다. 시간은 무심히 흘렀고, 어느덧 1년이 지났다. 몇몇 사람들은 슬퍼했지만, 많은 이들은 정작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닫지 못했다.

세상에 우연이란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저마다의 존재 이유를 가지고 있다.

정의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최소한의 상식조차도 버거워하는 땅에서 그는 단 한 번이라도 정의가 이기는 역사를 만들자고 했다. 특권과 반칙을 물리치자고 했다. 그의 말대로 그는 처음으로 정의가 승리하는 역사를 보여줬다.

몇몇에게는 감동이었고, 몇몇에게는 당황이었고, 그리고 몇몇 특권층에게는 경악이었다.

경악한 이들은 그를 죽여야 했다. 그가 만들어놓은 역사를 지워야 했다. 더 이상 이 땅에서 할 일이 남아있지 않았고, 더 이상 이 땅을 견딜 수 없을 때, 그는 홀로 세상을 떴다.

몇몇은 눈물을 흘렸고, 어떤 이들을 그를 욕하며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세상은 가라앉았다. 희망이 사라지고 절망이 창궐했다. 나무들이 사라지고, 강이 더럽혀지기 시작했다. 거짓만이 세상을 헤쳐나가는 유일한 지혜로 군림했다.

세상에 우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마지막으로 모든 것은 운명이라고 얘기했다.

사람들은 정의 보다는 돈을, 민주주의 보다는 특권주의를, 그리고 노무현 보다는 이명박을 선택했다.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뒤에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1년이 지나도 나는 그의 사진을 보고, 그의 목소리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 그는 나에게 마지막 나무였고, 마지막 강물이었다. 그는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마지막 강물을 잃은 나는 어떻게 바다에 가야할지 알지 못하고 울고만 있다. 마지막 강물이었던 그가 보고 싶다.

싱그럽게 푸른 5월은 가장 슬픈 계절이 되었다.

5만불 받은 의자를 보며 한명숙 대통령을 꿈꾸다

5만불 받은 의자를 보며 한명숙 대통령을 꿈꾸다

결국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이 돈을 준 것은 한명숙 전 총리가 아니고, 총리 공관에 있는 의자임이 밝혀졌다.

곽 전 사장은 “돈을 직접 줬느냐”는 김형두 재판장의 질문에 “오찬이 끝난 뒤 두 장관(강동석, 정세균)이 나가고, 내가 조금 늦게 나가면서 인사를 하고 나갔다”며 “인사는 포켓 안에 든 돈봉투 2개를 내가 앉았던 의자 위에 놓고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김 재판장이 “(돈봉투를) 식탁이 아니라 의자에 놓고 나온 게 맞느냐, 오찬 참석자 4명 중 돈을 놓고 가는 것을 본 사람이 있느냐”고 묻자 곽 전 사장은 “4명 중 본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김 재판장이 거듭 “한 전 총리가 돈봉투를 놓는 장면을 봤느냐”고 물어보자 그는 “그러지 않았다, 인사하면 미안하니까 그냥 놓고 나왔다, 어떻게 보여주겠느냐”고 답했다.

[곽영욱 전 사장, 돈봉투 진술 ‘오락가락’, 오마이뉴스]

총리 공관의 의자는 돈 5만불을 받아 어디다 썼을까? 이제 검찰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의자를 체포해 구속시키는 일 밖에 남지 않았다. 아무런 물증도 없이 오직 돈을 줬다는 곽 전 사장의 말에만 의존해 (이것도 곽 전 사장이 자발적으로 얘기했는지조차 의심스럽긴 하지만) 한 전 총리를 기소한 검찰이지만, 법정에서 곽 전 사장은 의자에다 돈을 놓고 왔다라고 했으니 검찰의 처지는 사면초가가 되었다.

검찰은 “총리 공관 의자”를 출국금지시키고, 당장 영장을 발부받아 구속을 시켜야 할 것이다. 모든 과정이 TV로 생중계될 것이고, 의자는 묵비권을 행사할 것이다. 과연 검찰이 의자의 유죄를 밝혀낼 수 있을까?

내가 인정하는 수구반동 기회주의 세력의 단 한 가지 능력은 이들이 동물적 감각으로 누가 핵심인지를 찍어낸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죽이고 난 후, 이들은 한명숙 전 총리가 민주 세력의 핵심임을 알았다. 그리고 말도 안되는 혐의를 씌워 한 전 총리를 기소한 것이다. 노무현을 죽였던 것처럼 한명숙도 죽이려 한 것이다.

그런데, 한명숙 전 총리는 노무현 대통령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노무현을 포함하여) 이땅의 모든 남자들이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오연호 기자와 만나 인터뷰했던 내용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친노 예비 후보들 중에 누가 대통령 후보가 되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노무현 대통령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누가 되는지 모르지만, 나보고 마음대로 지명하라고 그러면 한명숙씨요.”

“앞으로의 우리 정치는요, 이것이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상대하고도 대화를 하는 쪽으로 가야 됩니다. 사회적 갈등 과정에서도 사람들하고 끊임없이 대화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근데 그 점에서 한명숙씨가 굉장히 탁월한 장점을 가지고 있어요. 자기 소신에 관해서는 강단이 있지만 사람이, 느낌이 부드러워요.

“부드러우면 상대방한테 신뢰를 줘요. 이 사람하고 말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다 진심인 줄 알고 진지하게 대화를 해요. 나까지 나서 대화를 해도 도저히 안 풀리는 어떤 사안이 있어서 한명숙 총리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이제 그만두십시오. 그거 되지도 않을 타협을 뭘 자꾸 하려고 그럽니까?’ 그러면 한 총리가 ‘아, 그래도 조금 며칠만 나한테 맡겨놓아 주세요’ 합니다. 그러면 내가 그 사안을 잊어먹고 있으면 보름 되고 한 달 되고 하는데, 어찌어찌 해 가지고 그 문제를 풀어서 가지고 와요.”

앞으로 우리 정치 풍토나 분위기 같은 것으로 봤을 때 좀 부드러운 지도자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그 점이 부족한 것이) 나는 항상 내 약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만 보면 이상하게 이 사람들(정적)이 저 사람이 나를 뭔가 해코지할 거라는 불신 아닌 불신감을 갖고 있거든. ‘또 저게 무슨 꼼수를 내나?’ 저 사람들은 내가 꼼수를 내는 것으로 알고 있거든, 나는. 꼼수를 안 부리는데도.”

[“내 마음대로 차기 지명하라면 한명숙” 승부사 노무현, 부드러움을 부러워하다, 오마이뉴스]

노무현 대통령의 안목은 정확했다. 한명숙 전 총리는 소신과 강단이 있으면서도 상대방을 감싸안는 온화함과 부드러움이 있다. 그것이 바로 어머니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한명숙 전 총리를 볼 때마다 나는 내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천하의 노무현도 어머니의 따뜻한 가슴을 가질 수 없었고, 그걸 가진 한 전 총리를 부러워했다.

수구반동 기회주의 세력의 앞잡이가 되어 버린 검찰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한명숙 전 총리가 민주 세력의 핵심임을 꿰뚫어본 것은 가상하나, 그를 절대로 잡아넣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검찰은 한명숙 전 총리의 선거운동을 앞장서서 해주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한명숙 전 총리가 서울 시장에 당선될 확률은 점점 높아질 것이고, 차기 대선에서도 가장 유력한 주자로 떠오를 것이다.

한나라당 안에서는 박근혜가 유력한 차기 후보가 될 것이고, 그 박근혜를 잡을 사람은 바로 한명숙 전 총리가 될 것이다. 한명숙을 차기 대통령으로 생각했던 노무현의 바람은 역설적으로 검찰의 의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제가 인생을 그렇게 살아 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말은 아무나 한다고 울림을 주는 말이 아니다. 그에게 무한한 존경과 신뢰를 보낸다. 그리고 나는 오늘 5만불을 받은 의자를 보면서 한명숙 대통령을 꿈꿔 본다.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다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다

장자가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그는 나비가 되어 온 세상을 훨훨 날아다녔다. 그 나비는 잠시 쉬려고 나뭇가지에 앉았다가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보니 나비가 아니라 장자였다. 장자가 나비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장자의 꿈을 꾼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을 만났다. 그의 서거 후 처음 그의 모습을 본 것이다. 그는 건강해 보였고, 무척이나 바뻐 보였다. 그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말을 들어 주었다. 늘 그렇듯 그의 얼굴에는 인자한 미소가 가득했다. 누군가가 말했다. 그의 곁을 지키던 사람들이 모두 떠났다고. 마지막 남았던 보좌관도 어제 떠났다고. 내가 그에게 다가가 그의 곁에 있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그저 웃기만 했다. 나는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주저리 주저리 얘기했다. 한참을 듣고만 있던 그는 “자네는 쓸모있는 사람이군.” 라고 말하며 저멀리 앞서가기 시작했다. 그를 잡으려 했으나 잡을 수가 없었다. 꿈이었다.

꿈 속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만난 건 이번이 세 번째인데, 이번처럼 선명하게 그를 만나서 얘기한 적은 없었다. 그는 이 세상에서보다 저 세상에서 훨씬 평안해 보였으나 그의 곁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저 세상에도 그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많은데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가 떠난 이 세상에는 여전히 그를 탓하는 사람들로 넘친다. 수구든 진보든 간에 여간해서 그의 진심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마치 이 어처구니 없는 세상의 모순이 마치 모두 그로부터 시작된 듯이 말한다. 때때로 그와 이명박을 비교하며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목숨까지도 버렸는데 말이다. 우석훈은 이명박의 4대강이나 노무현의 세종시가 모두 같은 토건이라 말한다. 시사IN의 고종석은 이렇게 말한다.

이명박 정권은 나쁜 정권인가? 그렇다. 이 정권은 애오라지 자본의 자기증식 욕망 위에 올라탄 ‘삼마이 정권’이다. 그럼 노무현 정권은 좋은 정권이었나? 모르겠다. 희망 잃은 노동자들이 잇따라 제 몸을 살라도 “분신을 투쟁 수단으로 삼는 시대는 지났다”라고 그들을 훈계한 이가 노무현이고,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한·미 FTA를 날조된 통계수치 위에서 강행한 이가 노무현이며, 자신의 정치적 결정 때문에 이역만리에서 참혹하게 살해된 자국 시민에게 예의를 갖추기는커녕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테러에 단호히 대처하겠다며 ‘위엄’을 보인 이가 노무현이고, 당시 여당과 한나라당 사이에 무슨 이념 차이가 있느냐며 이른바 대연정(大聯政)을 꾀했던 이가 노무현이다. 특권(층)이 싫다며 좌충우돌하던 그가 미움이라는 열정을 조금만 합리적으로 배분했더라면, 오늘날 한국 공교육의 터미네이터가 돼버린 외국어고등학교라는 괴물은 진작 없어졌을 것이고, 그 자신이 피해자였던 학벌주의의 힘도 조금은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고종석, 어느 회색인의 서유기>

아무래도 내가 병신인가 보다. 저렇게 똑똑한 지식인들이 노무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비난할 수 있는데 나는 그럴 수 없으니 말이다. 그는 수퍼맨도 아니었고 신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모든 것은 노무현 때문이다. 저들에게 노무현 따위는 안중에도 없나 보다. 그렇게 하찮은 노무현이고 실패한 노무현인데, 나는 왜 노무현만 생각하면 눈물이 앞서는 걸까. 아무래도 내가 미쳤나 보다. 왜 꿈 속에서조차 그의 안부가 궁금하고 그의 곁을 지키겠다고 안달하는 것일까. 아무래도 내가 제 정신이 아닌게지, 아마 그럴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