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가끔은 수구꼴통이고 싶다

3주간 블로그를 팽개쳐 놓았다. 집에 사람이 살지 않으면 잡초가 우거지고 점점 황폐해지듯이, 블로그도 마찬가지였다. 주인장조차 잘 들르지 않는 블로그엔 스팸 댓글만이 쌓여 있었다. 오랜만에 청소를 했다.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글로 쓰고 싶지도 않았다. 정말 단순하게 그들이 짖어대는 대로 믿어주고 싶기도 했다.

천안함은 북한의 어뢰 공격이라는 보도를 믿어주고 싶었다. 아무 증거가 없어도 상관없이. 아주 단순하게 쓰레기 언론들이 보도하는 대로 그냥 생각없이 믿어주고 싶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흘리는 눈물이 악어의 눈물이 아니고, 진심에서 나오는 눈물임을 믿어주고 싶었다.

4대강 사업은 홍수를 방지하고 자연을 살리는 사업임을 믿어주고 싶었다. 아무런 증거가 없어도 그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한명숙 전총리는 총리공관에서 곽사장으로부터 5만불의 현찰을 받았다는 검찰의 주장을 믿고 싶었다. 법원의 무죄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수구꼴통들의 손을 들어주고 싶었다.

김대중, 노무현은 빨갱이 좌파이고, 그들이 집권했던 10년이 “잃어버린 10년”임을 믿어주고 싶었다.

이 땅에서 수구꼴통으로 사는 것은 참 단순하고 편안해 보인다. 아무 걱정없이, 고민없이, 의심없이 그냥 정부나 언론이 얘기하는대로 그냥 믿으면 된다. 반대하는 자들은 그냥 “좌빨”로 몰아붙이면 된다. 가끔은 나도 그렇게 단순하게, 편안하게 살고 싶다.

지방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이 나라는 별 희망이 없어 보인다.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거짓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오늘 하루 별일 없었으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다.

빨갱이와 신자유주의

수구반동 기회주의 세력들이 해방 이후 자신들의 친일 행적을 감추기 위해 들고 나온 무기는 “반공”이었다. 자신들의 정적을 죽이기 위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그들은 “빨갱이” 딱지를 남발했다. 수많은 민족주의 인사들과 독립운동가들이 빨갱이라는 미명으로 스러져갔다. 이성과 논리와 상식은 빨갱이 딱지 앞에 처참하게 뭉개졌다. “반공”을 국시로 50여년 간을 살았다.

수구반동 기회주의자의 전형인 박정희는 그의 정적 김대중을 빨갱이로 낙인찍어 평생을 괴롭혔다. 내가 어렸을 때, 나는 김대중이 정말 좌파 정치인인줄로만 알았다. 김대중의 <옥중서신>을 읽고서야 그가 얼마나 보수적인 정치인인지 알게 되었고, 사실 조금은 실망한 적이 있다. 남로당 군총책을 맡았던 박정희가 온건 보수정치인 김대중을 빨갱이로 몰아붙일 정도이니 더 이상 무엇을 말하겠는가.

수구반동 기회주의 세력들이 처음으로 정권을 놓친 것이 해방 이후 52년만인 1997년이었다. 그들은 지독히도 탐욕적이지만 또한 지독히도 무능했는데 그 결과는 1997년 IMF 외환 위기였다. 이때도 김대중은 원조 수구반동 기회주의자 중 하나인 김종필과 손을 잡지 않고는 정권교체를 할 수 없었다.

2002년, 혜성과 같은 노무현의 등장은 수구반동 기회주의 세력들에게는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 땅 한반도에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그들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단기필마로 정권을 쟁취했긴 했지만, 수구반동 기회주의 세력은 노무현을 탄핵했고, 끊임없이 흔들어댔다. 수구반동 세력들은 10년만에 정권을 다시 가져갔다. 그리고 그들은 2009년 노무현과 김대중을 죽였다. 인정하지도 않았고, 인정할 수도 없었던 그 10년의 세월을 지우려고 노무현과 김대중을 죽였다.

수구반동 기회주의 세력들과는 다르게 소위 자칭 좌파라는 세력들은 김대중과 노무현 10년의 세월을 “신자유주의” 시대로 규정하고 공격했다. 지금 이 땅의 주요한 문제들은 신자유주의로부터 기인하며 그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김대중과 노무현은 공공의 적이라는 논리였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이명박보다 더 파렴치하다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면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수구반동 기회주의 세력의 “빨갱이” 공격과 자칭 자파라는 세력들의 “신자유주의” 공격은 방향만 다를 뿐 본질은 같다. 수구반동 세력들은 무능하고 부패하고 탐욕적인 세력이고 자칭 좌파들은 몰역사적이고 독선적인 세력이지만 기회주의자들이라는 점에서는 똑같다.

최근 경향신문의 논설위원 이대근이 레디앙에 기고한 글을 보면 진보 정치학자 최장집의 논리와 판박이다. 이명박 정권을 반민주 정권이라 할 수 없고, 이명박 정권이 반민주이면 김대중, 노무현도 반민주가 되어야한다는 그 논리 말이다.

일반적으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반민주 독재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같은 기준으로 이명박 정권에 대해서도 그런 딱지를 붙여서는 안 된다. 물론 이명박 정권이 단순히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노선을 계승했을 뿐 아니라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분명히 차이가 있다. 그러나 역시 그 차이로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설정할 수 없는 것은 너무 자명하다. 사회적 시민권의 확산 정도, 사회 경제적 정책을 기준 삼아 이명박 정권을 반민주로 규정하고 싶다면 지난 10년 정권도 역시 반민주가 되어야 한다.

[이대근, “민주당-진보정당 모두 패배하는 길“, 레디앙]

이대근과 같은 사이비 좌파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수구반동 세력의 영구집권을 꿈꾸는 것일까? 정말 이들이 신자유주의를 반대한다면 이명박 정권 퇴진 운동에 나서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김대중, 노무현은 신랄하게 공격하면서 이명박은 애써 두둔하거나 모른척 한다. 김대중, 노무현이 신자유주의 정부라 공격을 받아야한다면 그 잣대로 이명박은 한 100만배쯤 더 신랄하게 공격받아야 한다. 때문에 나는 이들이 정말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자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역겹다.

자칭 B급 좌파인 김규항도 이대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10여년 동안 세 개의 정권이 존재했다. 그중 두 정권은 민주주의의 껍질을 앞세워 자본 편에 섰고 하나의 정권은 그 껍질마저 팽개치고 자본 편에 서고 있다. 그리고 그 두 정권을 맡았던 사람들이 그 ‘차이’를 내세워 오늘 다시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있다. “어떠세요. 겪어보니까 그래도 옛날이 그립지요?” 근래 그들 가운데 한 주요한 인사가 강연에서 했다는 말은 그들의 태도를 잘 드러낸다. 그들이 마치 인간이 어디까지 파렴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는 듯한 행태를 지속할 수 있는 건, 그들을 ‘그래도 현실적인 대안’이라 인정하는 사람들 덕이다.

[김규항, 민주주의의 씨앗, 한겨레]

김규항의 논리대로라면 노무현을 지지하는 나같은 사람은 파렴치한이다. 우스운 것은 나같은 파렴치한은 신자유주의를 찬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노무현을 지지했을까? 노무현은 정말 신자유주의자였을까? 노무현은 정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자본의 편에만 섰을까? 노무현의 정책은 모두 신자유주의이기 때문에 내팽개쳐져야만 라는 것일까? 과연 우석훈의 말대로 “행정도시 건설”이나 “4대강 죽이기 사업”이 똑같은 토목사업일 뿐일까?

나는 궁금하다. 진보신당 지지율 1.2%로 그들은 어떻게 권력을 쟁취할 것인가? 조중동과 한나라당과 싸우지 않고 그들은 어떻게 정권을 쟁취해서 신자유주의를 몰아낼 것인가? 반노무현, 반신자유주의만으로 그들은 그들이 꿈꾸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미안하지만, 이 땅의 민주주의는 김대중 노무현의 유산을 이어가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민주주의 씨앗은 김대중, 그리고 노무현이다.

왜 서민들은 이명박을 지지할 수 밖에 없을까

한겨레21이 흥미로운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한겨레21은 이명박 취임 1주년을 맞이하여, 아직까지도 이명박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사람들의 소득을 토대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가난한 서민들이 이명박의 정책을 더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부세하고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이들이 종부세 축소와 폐지에 더 많이 찬성했고, 아이들 학원비도 제대로 줄 수 없는 사람들이 사교육을 조장하는 교육정책을 지지했다.

이명박이 지난 1년간 한 일이라고는 상위 1~2%의 특권층을 더욱 배불리는 것이었는데,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이 왜 이명박이를 더 지지하고 나서는 것일까? 우리나라 서민들은 메조키스트들인가? 정상적인 사고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 불가사의한 일이 21세기 인터넷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왜 버젓이 성행하는 것일까? 과연 서민들은 이명박이 어떤 인간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한겨레21이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현상에 대해 변함없이 전문가들의 해석을 덧붙였지만, 핵심을 찌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러한 계급 배반 현상은 서민들이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도록 우리나라 지배 기제들이 얼마나 견고하고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것이다. 지난 가을, 나는 도스타인 분데 베블렌을 말을 인용하면서 왜 서민들이 보수적인지를 설명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내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보수적이요, 부자들은 오늘에 불만을 품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보수적이다.

[도스타인 분데 베블렌, 유한계급론]

가난한 사람들은 하루하루 벌어먹기가 힘든 사람들이다. 지배 계급이나 특권층이 자신들을 어떻게 등쳐먹고 있는지를 분석할 시간도 없고, 여유도 없다. 그저 하루하루를 근근히 버텨나가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여론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조중동문과 같은 수구 언론들의 마타도어는 그야말로 이들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극약이다. 이명박이 집권하자마자 왜  KBS와 YTN을 장악하고자 발악을 했겠는가. 신문 시장은 이미 친일과 독재 부역 세력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었지만, 방송은 아직도 민주 정권 세력들이 경영자로 있었기 때문에 이들부터 축출해야 했던 것이다. 정연주가 사라진 KBS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정권의 나팔수가 되어버렸다.

서민들이 종부세의 구체적 사항을 파악하기도 전에 쓰레기 수구 언론들은 “세금 폭탄”이라는 마타도어로 이들을 융단폭격 해버렸다. 자기 집 한 채 없는 서민들은 종부세 대상자들도 아니면서, 종부세를 반대하는 이유는 그 세금의 구체적 용도를 알기도 전에 이미 폭탄으로 인식해 버렸기 때문이다. 자식들 학원비조차 제대로 마련해주는 부모들이 이명박의 교육 정책을 지지하는 이유는 “평준화 교육 정책”이 이 땅의 공교육을 말아먹었다는 쓰레기 신문들의 사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서민들을 위한 언론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겨레와 경향 정도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들의 힘은 여론 시장에서 너무 미약할 뿐더러, 이들이 가진 편협함이 서민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서민들을 위한 정치 세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나라당이야 원래 가진 자들을 위한 정당이니 그렇다쳐도, 민주당의 궁물 정신과 민노당의 독선은 서민들의 이해관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좌파들이 아무리 “신자유주의”가 문제라고 게거품을 물어도 그것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버린다. 이명박이 매일매일 사기를 쳐도 서민들은 그것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용산 참사는 강호순 사건으로 돌려막고, 청와대 여론 조작은 추기경의 죽음으로 돌려 막는 판국에서 이명박이 어떤 짓을 해도 서민들은 그것이 자기들의 목줄을 조이는 것이라는 것을 모른다.

수구 신문과 어용 방송들의 여론 장악과 더불어 이 땅 서민들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또다른 도구들은 바로 지역감정과 남북 대치 상황이다. 군부 독재의 후예, 차떼기 원조 한나라당은 어떤 짓을 해도 30% 지지세력이 있다. 선거 때마다 투표율이 점점 낮아지는 상황에서 이 30%는 언제나 한나라당에게 국회의 절반 이상의 의석을 몰아주고 있다. 민주 정권 10년으로 남북관계가 많이 좋아졌었지만, 이명박이 들어오면서 다시 남북 대치가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빨갱이라면 이를 가는 60대 이상의 노인들은 꼬박꼬박 투표를 한다.

쓰레기 언론들의 여론 장악, 지역 감정, 남북 대치 상황은 우리나라 서민들이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든다. 여기에 젊은이들의 정치 무관심과, 중산층과 특권층들의 탐욕이 더해져 대한민국은 완벽한 매트릭스(Matrix)가 되어버렸다. 그야말로 이 땅의 부도덕한 특권층과 지배계급이 만들어낸 매트릭스에서 서민들은 실험실 쥐처럼 생활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이러한 지배계급의 카르텔을 깨지 않고서는 서민들의 이명박 지지를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좌파들이 정신차려야 하는 이유, 깨어있는 사람들이 정신차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사회의 시급한 당면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인식하고, 어떻게 하면 이 카르텔을 깨뜨릴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강기갑을 지켜내야 하는 이유

18대 국회가 당연히 막장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은 지난 해 봄 총선이 끝난 바로 직후였다. 수구 정당 한나라당이 170석을 넘었고, 그에 못지 않은 수구 정당 자유선진당이 18석, 친박연대라는 해괴한 이름을 가진 한나라당 샴쌍둥이가 8석으로 국회의 3분의 2가 수구들로 득시글거렸다. 게다가 무늬만 야당인 민주당이 80여석, 그리고 잘난 진보 민노당은 17대에 비해 반으로 줄어든 5석에 불과했다.

이런 “똥덩어리” (강마에 버전으로) 국회를 만든 우리 국민들의 저력(?)에 대해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박정희, 전두환의 군사 쿠데타에 의해 생긴 결과가 아니다. 물론 역사적으로 파고들면 그들의 영향이 없다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직접적으로는 국민들의 무관심과 탐욕이 빚은 불행한 결과다. 수구세력 지지자들을 제외하고 모두가 깊이 반성해야할 일이다.

그런데, 쓰레기장에서 장미꽃이 핀다고 이런 막장 18대 국회를 만든 국민들이 용서받을 수 있다면 그 이유는 강기갑이라는 인물 때문일 것이다. 나는 정말 경남 사천의 유권자들에게 깊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그들이야말로 18대 국회 유일한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을 국회로 보내주었다.

나는 민주노동당 당원이 아니고, 그 당을 지지하지도 않는다. 참여정부 시절 민노당이 보여주었던 정치력 부재와 그동안 민노당의 간판이라 불려왔던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등에 깊이깊이 실망했던 사람이다.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은 좌파 인텔리일지언정 그들은 노동자 농민이 아니다. 그들은 머리와 말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다. (다크 나이트의 조커가 말했듯이) 그들은 스키머(Schemer)이고, (김근태, 문국현이 그렇듯이) 그들은 껍데기다.

내가 민노당을 지지하지도 않으면서 강달프 강기갑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현재 18대 국회의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이 땅의 농민들과 노동자들에게 말이다. 일하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자신의 노동으로 가치를 생산하고 창조하고 그러면서도 늘 고달프게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말이다. 강기갑의 어깨에 수백만 농민들의 그리고 천만 노동자들의 한과 기대와 염원이 걸려 있다.

강기갑은 평생 농민으로 살아왔다. 그는 그의 두손으로 흙을 일구고, 곡식을 키우면서 살아온 사람이다. 지금은 정치인이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뼛속 깊이 농민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는 투박하고, 거칠고, 어눌하고, 세련되지 못했지만, 그는 정직한 손을 가지고 있고, 노동의 의미를 온몸으로 알고 있다. 이 지점에서 강기갑은 말로만 정치를 하던 기존 좌파 인텔리들과 극명하게 구별된다.

조중동,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수구들은 본능적으로 누가 그들의 주적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들의 주적을 숙청하기 위해 악랄하게 그리고 집요하게 공격한다. 대단한 능력이다. 김대중, 노무현, 유시민, 이해찬 등이 끊임없이 그들의 표적이 되었다. 그들이 정치 무대에서 사라지자, (노무현은 여전히 그들의 밥이지만) 이제 그 화살이 강기갑을 향하고 있다. 강기갑은 현재 수구들의 눈엣가시다.

한나라당은 강기갑의 사퇴결의안을 준비하고, 국회사무처는 강기갑을 고발한단다. 검찰은 법원에서 나온 1심 결과가 너무가볍다며 어떻게 해서든 강기갑을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에서 끌어내려 하고 있다. 조중동은 연일 강기갑에 대해 폭력사범으로 집중포화를 퍼붓고 있다.

수구세력 지지자들을 제외하고, 대한민국에는 현재 강기갑이 필요하다. 그는 현재 대한민국 국회를 구할 수 있는 단 한명의 의인이다. 수구들의 표적이 된 강기갑을 지켜야 한다. 당신이 노동자, 농민, 서민이라면 강기갑에게 힘을 보태주어야 한다. 지금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끌고가는 이 나라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들은 강기갑을 끌어안아야 한다.

나는 노무현, 유시민에 이어 세번째로 강기갑을 후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국회에서 정정당당히 의정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저 탐욕에 찌든 한나라당과 수구세력에게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릴 수 있도록 그를 우리가 지켜내야 할 것이다.

강기갑 의원에게 한가지 부탁하고 싶은데, 다음에는 저 박계동이의 면상에 국민의 이름으로 정의의 고무신을 날려주시길 바란다. 룸싸롱에서 여종업원 가슴이나 만지던 자가 국회사무처장이라니. 이런 자들 때문에 대한민국 국회는 하염없이 막장으로 치닫는 것이다.

아직도 모든 것이 노무현 탓

퇴임한 지 두달이 지난 노무현 대통령은 여전히 동네북이다. 수구들은 노무현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혈안이고, 좌파들은 총선의 패배를 노무현 탓으로 돌리기 위해 안달이다. 수구세력의 첫 번째 목표가 된 것은 노무현 정부의 주된 정책 중의 하나인 지방분권화와 혁신도시 정책이다.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기다리고 있던 지방 정부와 지방 국민들은 손가락만 빨 것이다. 예상한 일이었기에 놀랍지도 않다.

그런데, 소위 좌파 세력들이 총선 패배의 책임을 노무현한테 돌리는 듯한 발언은 도저히 참기 힘들다. 김규항은 “노회찬과 홍정욱”이란 글에서 노회찬이 패배한 책임을 노무현에게 돌린다. 노무현이 한국 국민들에게서 “가치 추구”를 빼앗았기 때문에 이명박이 당선되고, 홍정욱이 당선되었단다.

가짜 진보’ 노무현 정권의 가장 큰 죄악은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서 ‘가치에의 추구’를 앗아가 버렸다는 것일 게다. 이명박 씨는 5년 전만 같아도 대통령 후보로서 파멸하기 충분한 도덕적 결함들을 가졌다. 그러나 그 결함들은 노무현 정권 5년을 통해 더 이상 결함이 아니게 되었다. 2007년의 한국인들은 이명박을 도덕적으로 용서한 게 아니라 이명박의 도덕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번 총선에서 진보신당 같은 곳의 후보가 당선되는 건 애초부터 어려운 일이었다.

[김규항, 노회찬과 홍정욱]

참으로 엿같은 소리다. 더군다나 이런 현실 인식은 좌파 세력들에게도 전혀 도움이 안되는 것이다. 나는 노무현만큼 가치를 중요시 여기는 정치인을 알지 못한다. 노무현이 추구한 가치는 “상식과 원칙”, 이 두가지다. 물론, 좌파들이 봤을 때는 아주 우스운 가치일 수도 있겠지. 민중들의 계급의식을 깨우쳐 주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상식과 원칙이라는 가치조차 건국 이래 단 한번도 실현된 적이 없는 나라가 이 잘난 “대한민국”이다.

우리나라 좌파의 위기는 민중들이 자신의 계급의식을 자각하지 못해서 나타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식과 원칙조차 수용되지 못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1%로 대표되는 수구언론과 재벌, 사법부, 검찰, 고위공무원들 그리고 그 1% 수구세력을 30% 지지하는 지역주의 투표들. 이러한 문제들을 노무현 정부가 만들어낸 것인가? 이 문제들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죽 있어 왔고, 오히려 그 갈등은 노무현 정부 때 더 커졌으며, 이제 그 1% 수구세력들의 면모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노무현과 수구들이 대립할 때, 좌파들은 어느 편에 있었나? 내가 알기로는 대부분 수구들의 편에 있었다. 노회찬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자마자 조선일보에서 강연을 하면서 30년간 조선일보를 봐왔으며 가장 좋은 품질의 신문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가 어떤 신문인가? 친일과 군부독재 세력의 본산지 아닌가? 나는 노무현이 조선일보를 본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누가 가치를 앗아갔나? 이라크 파병과 한미FTA를 제외하고 민노당은 한나라당과 손잡고 반노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그리고도 좌파가 망하는 건 모든 게 노무현 탓이다.

좌파들은 참으로 머리가 나쁘다. 노무현보다도 나쁘고 심지어 수구들보다도 머리가 나쁘다. 문제가 뭔지를 모른다. 적이 누구인지, 동지가 누구인지, 누가 연대할 세력인지 알지 못한다. 문제가 해결하려면 문제가 무엇인지 부터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자신들의 소멸을 노무현 탓으로만 돌리고는 그들에게 아무런 희망이 없다. (나도 동의하는 바이고, 좌파의 관점에서 봤을 때도) 노회찬은 홍정욱보다 훌륭한 인생을 살아왔다. 하지만, 이번 선거처럼 뉴타운 사기극에 투표율 50% 이하일 경우에는 노회찬이 아니라 노회찬 할아버지가 와도 수구를 이길 수 없다.

노무현은 이제 무대를 내려왔다. 이제 노무현을 내버려 둘 때도 되지 않았는가? 노무현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다했다. 노무현의 문제라면, 그가 시대를 너무 앞서 나왔다는 것 밖에 없다. 하지만 상식으로 살고 싶어하는 국민들이라면 그에게 존경을 보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 봉하마을에서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좌파가 진보가 되려면 정신을 차려야 할 것이다.

기만적 민주주의와 수구세력의 힘

우선 글을 시작하기 전에 두어 가지 사실을 바로잡아야겠다. 우리나라의 잘난 수구 언론들이 총선이 끝나고 나팔을 불어대는 것 중의 하나가 “민심이 보수화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거짓말이다. 투표를 한 46%의 표심은 보수화된 것이 아니고 “수구” 또는 “극우” 그 자체였다. 수구세력이라 할 수 있는 한나라당이 과반수를 차지했고, 또 다른 정통 수구인 자유선진당과 친박연대 (진짜 이름 웃기지 않은가) 그리고 친박 무소속을 합하면 50여석이 넘는다. 수구 세력이 의회 권력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했다. 언론이 진보로 분류하는 통합민주당이나 창조한국당 등은 사실 보수라고 보는 것이 맞고, 진보세력이라 불리울 수 있는 정당은 민노당과 진보신당 정도이다. 진보신당은 당선자를 내지 못했고, 민노당은 5석 정도의 명맥만 유지했다. 결과적으로 진보 세력은 국회의 1.67% 만을 차지한 것이다.

수구 언론들이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면서 또 지껄이는 이야기는 “절묘한 민심의 선택”이라는 말이다. 이건 그냥 “수구” 투표를 해버린 46% 유권자들에 대한 감사의 립서비스이다. 수구 세력이 개헌선을 가져가 버렸는데 무슨 민심의 절묘한 선택? 한나라당이 턱걸이 과반을 했기 때문에 하는 소리인가 아니면 너무 좋아서 웃자고 하는 소리인가?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뭐가 다른가. 그들은 다 한 뱃속에서 나온 일란성 샴쌍둥이일 뿐이다.

20여년 전, 그 지긋지긋한 군부독재를 청산하고, 많은 국민들은 권력을 국민의 손으로 선출하면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것은 정말로 순진한 생각이었다. 87년도 전두환이 물러가고도 전두환의 친구인 노태우가 국민의 손에 의해 뽑혔고, 92년에는 이들과 손을 잡은 김영삼이 다시 선출되었다. 97년에 와서야 수구세력에서 보수세력으로의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는데, 수구세력이 나라를 말아먹지 않았다면 불가능했고 아니 나라를 말아먹었다 해도 김대중이 또다른 수구인 김종필과 손잡지 않았다면 역시 불가능했다. 첫번째 정권교체는 외환위기로 인한 나라 망한 댓가로 받은 절반의 정권교체였다.

2002년은 어떠했는가? 그때는 노무현이라는 걸출한 정치인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노무현은 정말 1세기 한번 나올까 말까한 정치인이다. 수구세력이 노무현을 그렇게 미워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노무현과 더불어 인터넷이라는 또다른 무기가 국민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거의 기적이었고, 신이 대한민국을 보살폈다고 밖에 얘기할 수 없는 세계 정치사의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이와 같은 민주화 이후 20여년의 짧은 역사를 살펴봐도 친일과 독재로부터 시작된 우리나라의 수구들의 힘은 정말 막강하다. 우리나라 언론, 입법, 사법, 행정 모든 분야에서 수구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현재 90% 이상이다. 이들은 자기들 입맛에 맞게 여론을 호도하거나 왜곡하고 민주주의를 기만한다. 투표 성향으로 보았을 때, 우리나라 국민들 중 이런 수구들의 이념을 따르는 사람들이 한 30% 정도 되는 것 같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수구세력들은 계급적 이익 때문이건 (이 부분은 5%도 안되는 것 같고) 지역주의 때문이건 아니면 반공 때문이건 간에 언제나 한나라당에 투표를 한다. 이 30% 는 거의 언제나 투표를 한다는 것이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국회의원 선거이든, 대선이든, 보궐선거이든 간에 말이다.

따라서 전체 투표율이 60% 이하가 되면 수구세력을 이길 방도가 없다. 참여정부 때 재보선에서 40 대 0으로 열린우리당이 졌고, 그때 정치권은 참여정부의 실정때문이라고 노무현을 몰아세웠지만, 이건 노무현이 아니라 세종대왕이 대통령이 되었어도 이길 수 없는 선거였다. 투표율 30% 정도인 재보선에서 수구세력이 아니고는 이길 방법이 없다. 이번 총선도 마찬가지다. 투표율 46%로는 수구세력이 아닌 보수, 진보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선거였다. 적어도 민주당이나 민노당이 한나라당과 대등하게 경쟁을 하려면 적어도 70% 이상의 투표율이 나와야 한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악순환이 발생하는데 정치권의 수구세력들은 그들의 명성에 걸맞게 정치 혐오를 불러 일으키고 (부정부패든, 성추행이든, 개싸움이든 간에) 유권자들은 점점 그 행태를 보고 욕을 해대면서 선거에 관심을 잃게 된다. 왜냐하면 바뀌는 것이 없고, 그렇게 욕을 먹어도 그놈들이 또 뽑히니까.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증폭되면서, 투표율은 점점 낮아지게 된다. 그러면서 정치 권력은 점점 수구화되어 간다. 이것은 수구 세력들의 또다른 전략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국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할수록 자신들이 득세할 수 있기 때문에 계속 정치 혐오를 불러 일으킨다.

또 하나 웃긴 것은 친일에 앞장서고 독재에 부역을 했던 신문들이 민주화 이후에 언론 자유를 외친다는 사실이다. 박정희를 찬양하고 전두환을 옹호했던 수구세력들은 민주화 이후에 줄기차게 투표를 해댄다는 사실이다. 민주화 과정에 아무 기여도 하지 않았던 아니 오히려 민주화의 적이었던 세력들이 민주화의 열매를 가져간다. 이거 정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일이다.

군부 독재 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지금의 수구세력들은 선거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정치적 정당성(그것이 비록 기만적이라 할지라도)을 획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정희, 전두환 때는 거리로 나가 싸우면서 위안이라도 얻고 희망이라도 얻었는데, 지금은 그것조차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뽑았다는데 무슨 할 말이 있는가? 왜 투표 안했냐고 하면 무슨 할 말이 있는가? 사실 상황은 20여년 전보다 더 비참해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타파할 것인가?

  1. 투표를 의무화해야 한다. 지금처럼 50% 이하의 투표율로는 선출된 권력도 정당성을 찾기는 쉽지 않다. 투표를 의무화한 호주는 투표율이 90%를 넘고 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우리는 민심을 운운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기권할 자유도 있다고 얘기하는데,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2. 투표 용지에 기권란을 넣어야 한다. 뽑고 싶지 않은 후보가 당연히 있을 수 있으므로 기권란을 반드시 추가해야 한다.
  3. 기권이 50%가 넘으면 그 선거는 무효로 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정당은 해산해야 하고, 다시 처음부터 정치 지형을 다시 짜야 한다.
  4. 선출된 권력에 대한 소환의 권리를 국민들에게 주어야 한다.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잘못 선출되었을 때는 소환되어야 하고 탄핵되어야 한다. 그러한 권리가 국민들에게 부여되어야 한다.
  5. 국민들에게도 입법청원권과 입법권 그리고 국민투표에 부의할 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한다.
  6. 이러한 절차를 간소화하고 투표를 쉽게 하기 위해서 전자투표(인터넷 투표나 휴대전화 투표) 등을 도입해야 한다.

이 정도 되면, 민주주의의 기만성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선거 제도의 변경은 헌법이나 선거법 등 관련 법률을 개정해야 하는데, 수구 세력이 3분의 2나 들어가 있는 국회에서 국민들의 선거 참여를 위해 법률을 개정할 리 만무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앞으로 선거로 정권을 교체하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국민들의 정치에 더욱 혐오감을 느낄 것이고, 그에 비례하여 투표율은 계속 50%를 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수구 세력의 장기 집권은 불을 보듯 뻔하다.

역사에 비추어 볼 때, 두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하나는 97년의 경우처럼 나라가 망하는 경우이고, 또 하나는 노무현과 같은 매력적인 정치인이 나와 국민들에게 잠시나마 희망을 주는 것이다. 이메가와 한나라당의 국정운영 능력을 보았을 때, 외환 위기와 같은 경우가 멀지 않아 다시 올 것 같지만, 그 때도 박근혜가 눈물 한두 번 흘리면 수구 세력은 다시 뭉칠 것이다. 즉, 나라가 망해도 정권교체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다른 하나는 노무현과 같은 정치인이 다시 나와 주어서 국민들의 관심을 높여야 하고 정치 참여를 높여야 하는데, 이 부분도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 같다.내가 유시민을 지켜 보는 이유는 바로 두번 째 가능성 때문이다. 유시민 정도되면 노무현의 뒤를 이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다시 한 번 신이 대한민국을 보살피시고,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다면 아예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적어도 70% 아니 80% 이상의 국민들이 선거에 참여하지 않으면, 이메가가 운하를 파든, 사기를 치든, 나라를 말아 먹든, 팔아 먹든, 뭘 해도 수구의 집권을 막을 길이 없다. 수구 언론들과 선관위와 검찰과 사법부 등은 지속적으로 국민들의 정치 참여를 좌절시킬 것이다. 지금처럼 정치에 무관심해서는 우리는 민주주의를 한다고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미안한 얘기지만, 우리나라의 앞날은 상당히 어둡고, 민주주의는 서민과 노동자들을 더욱 기만할 것이다.

한줌도 안되는 친일과 독재 세력을 단죄하지 못한 것이 나라의 원죄가 되어 버렸다. 이제 어찌할 것인가. 어떻게 희망의 근거를 마련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들의 고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FTA로 확실해진 것 한 가지

한미FTA 문제로 확실해진 것은 우리나라 좌파라 일컬어지는 민노당과 오마이뉴스 등이 결코 진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의 정치적 지향이 좌파일지 몰라도, 그들의 행동은 수구인 한나라당과 조선일보와 하나 다를 것이 없었다. 즉 민노당은 한나라당의 좌파 버전이고, 오마이뉴스는 조선일보의 좌파 버전이란 말이다.

한미FTA 반대할 수 있고, 그 결과도 쉽사리 예측하기 힘들다. 하지만, FTA 반대와 저지가 절대선이 되어 근거없이 비난하고,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된다. 냉정하고 침착하게 어떤 것이 잘 되고, 어떤 것이 손해인지를 명확하게 분석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아직 그럴만한 시간이 있고, 능력이 있다. 그 결과에 따라 찬성을 할 수도 있고, 반대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제밤 100분 토론에서 민노당 국회의원 노회찬과 한신대 교수 이해영이 보인 부실한 논리는 지금 FTA 반대파들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었다. 지금은 어거지가 통하는 시대가 아니다. FTA를 추진한 정부와 협상단의 논리와 협상 결과를 인정할 건 인정하고 부족한 것은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 보완이 안된다면 국회 비준을 반대할 것인지 차분하게 생각하고 토론하며 그 후에 결론을 내려도 늦지 않다.

일단 FTA는 악이며 반드시 저지해야 할 것이라고 상정해 놓고는 생산적인 토론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북한에 대한 지원을 언제나 퍼주기라고 트집잡는 한나라당과 조선일보의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는 것이다.

FTA와 같은 사안은 여러 집단들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에 한마디로 재단하기가 쉽지 않다. 찬성도 있을 수 있고, 반대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결론을 이끌어내는 과정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그동안 참여정부 아래에서 우리나라 민노당을 비롯한 좌파들이 이끌어왔던 여러 가지 운동들 중 제대로 성공한 것이 거의 없는 이유도 FTA문제와 마찬가지다. 결론을 이미 정해 놓고, 그것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부안 방폐장 문제, 새만금, 평택 미군기지 문제, 그리고 작금의 FTA까지 그들은 현실에 기반하지도 않았고, 합리적이지도 않았다.

그들의 지향을 이해하지만, 그들이 지금 보이는 행위는 진보의 것이 아니다. 낡았다. 민노당이 지금과 같은 행위를 계속한다면 아마 다음에는 원내 진출조차 어려울 것 같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현실이 그렇게 만만한 것도 아니다. 반대를 하려면 최소한 대통령과 협상단의 논리를 이길 수 있도록 공부하고, 대안을 제시하라. 그리하여 농민들을 비롯한 국민들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우리나라 좌파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수구 좌파라면 차라리 좌파 안 하는 것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