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그리고 국수집

시인 신용목이 쓴 민들레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가장 높은 곳에 보푸라기 깃을 단다
오직 사랑은
내 몸을 비워 그대에게 날아가는 일
외로운 정수리에 날개를 단다

<신용목, 민들레, 2004>

민들레국수집을 벌써 11년이 넘게 운영해온 서영남 대표의 미소는 한없이 온화하다. 그의 느릿하고도 부드러운 말투에서는 은은한 향기가 흐른다. 아무런 조건이나 이유없이 굶는 이들을 위해 따뜻한 밥을 짓는 그의 손길이 아름답다. 그로 인해 가난하고 비참했던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한 천국이 되었다.

비루한 세상을 구하기 위해 하늘은 가끔씩 천사들을 내려 보내는 듯하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이들은 바로 이런 분들이 아닐까.

서영남

선생님

선생님을 뵌 지 올해로 꼭 삼십 년이 됩니다. 삼십 년 전, 저는 풋풋한 소년이었고, 선생님은 혈기왕성한 청년이셨지요. 세월이 살과 같이 흘러, 그때 청년이던 선생님이 벌써 정년퇴임을 하십니다.

새로 생긴 학교에 배정되었을 때, 제 부모님은 걱정을 좀 하셨습니다. 집에서도 멀었고, 학교에는 중장비가 지나다니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그때 별 생각이 없었는데, 선생님이 담임을 맡으신 후, 모든 것이 즐겁고 행복했었습니다. 아마 선생님을 만나려고 그 학교에 간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먼 길을 통학하던 것도, 선생님을 도와 반장으로서 학급을 운영했던 것도, 친구들과 같이 머리 맞대며 공부하던 일들도 모두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선생님도 기억하실 겁니다. 그때 우리 반은 모든 분야에서 상을 받아, 교실 한쪽 벽에 상장이 수도 없이 걸렸었습니다. 정말 신나고 재미있던 시절이었고, 아마 그때가 제 소년 시절의 절정이었을 겁니다.

선생님과 같이 갔던 심천 미루나무 숲도 생각나고, 김태곤의 망부석을 멋들어지게 부르시던 모습도, 언젠가 카메라를 새로 사셨다고 우리들 사진을 찍어주시던 것도 생각납니다. 아직도 그때 사진이 제 앨범에 남아 있습니다.

공부도 공부지만, 남자답게 사나이답게 사람답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늘 가르쳐주시고 보여주셨던 선생님. 선생님과 같이 했던 그 시간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제가 없었겠지요. 자주 연락도 못 드리고, 자주 찾아 뵙지도 못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언제나 청년의 모습으로 제 마음 속에 계십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선생님!

이제 삼십 년이 넘게 교단에 계시다가 정년을 맞이하게 되셨네요. 정년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여러 가지로 감개무량하고 시원섭섭하시리라 짐작해 봅니다. 정년으로 교단을 떠나시지만, 선생님께서는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시겠지요. 저는 선생님의 원조 제자로 늘 선생님의 제 2의 인생을 응원하겠습니다.

선생님의 정년을 축하하며, 선생님의 진정한 여행을 위해 제가 좋아하는 시 한 편을 선물로 드립니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 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실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나짐 히크메트, 진정한 여행>

선생님의 진정한 여행은 이제부터일 겁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엄마와 컴퓨터

타닥타닥 타닥타닥
늦은 밤
고요함을 깨고
낮게 울려퍼지는
컴퓨터 소리

엄마는 오늘도
늦게까지 일하신다

낮에 보니
자판이 다 닳아 있는
엄마의 컴퓨터
마음이 쓰라린다

밤하늘의 별은 반짝반짝
나의 눈은 말똥말똥
엄마 손은 타닥타닥

밤 사이에 훌쩍 자라
내일 아침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시는 딸아이가 밤늦게 일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쓴 것이다. 밤늦게까지 일하는 아내의 고단한 노동과 그것을 보고 안쓰럽게 생각하는 딸아이의 예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청춘

그거 알아요.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걸. 나이가 들면 몸은 늙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아요. 일흔이 넘은 노인들도 언제나 마음은 이십대라고 하잖아요. 그게 빈 말이 아니예요. 세월의 가르침을 잘 간직한 사람들의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넓어지고 깊어질 뿐, 늙지는 않아요.

청춘은 물리적인 나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예요.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거예요. 마음이 늙지 않는 사람들은 언제나 청춘으로 남을 수 있어요. 모든 건 깨달음과 선택이고, 그리고 그 선택을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달린 거예요.

세상은 탐욕과 공포로 사람들을 지배하려 하지만, 지혜로운 이들은 그것들로부터 벗어나서 늘 청춘을 누려요.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단지 깨닫지 못할 뿐이지요. 회색신사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여유를 가져야 해요. 시간이라는 관념은 환상이고, 바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회색신사들에게 길들여진 걸 의미해요.

마음은 늙지 않고, 세상에 바쁜 일은 없어요. 욕심을 버리고 순간순간을 즐기기 바래요. 그러면 아무런 걱정이 없지요. 우리들은 언제나 청춘인 걸요.

Youth is not a time of life; it is a state of mind; it is not a matter of rosy cheeks, red lips and supple knees; it is a matter of the will, a quality of the imagination, a vigor of the emotions; it is the freshness of the deep springs of life.

Youth means a temperamental predominance of courage over timidity of the appetite, for adventure over the love of ease. This often exists in a man of sixty more than a body of twenty. Nobody grows old merely by a number of years. We grow old by deserting our ideals.

Years may wrinkle the skin, but to give up enthusiasm wrinkles the soul. Worry, fear, self-distrust bows the heart and turns the spirit back to dust.

Whether sixty or sixteen, there is in every human being’s heart the lure of wonder, the unfailing child-like appetite of what’s next, and the joy of the game of living. In the center of your heart and my heart there is a wireless station; so long as it receives messages of beauty, hope, cheer, courage and power from men and from the Infinite, so long are you young.

When the aerials are down, and your spirit is covered with snows of cynicism and the ice of pessimism, then you are grown old, even at twenty, but as long as your aerials are up, to catch the waves of optimism, there is hope you may die young at eighty.

<Samuel Ullman, Youth>

청춘이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다.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 씩씩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열정이다. 청춘은 인생이란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이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한 삶을 뿌리치는 모험심이다. 때로는 스무살 청년보다 예순살 노인이 더 젊을 수 있다. 나이 먹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꿈과 희망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다.

세월은 피부에 주름살을 늘게 하지만, 열정을 잃으면 영혼에 주름이 진다. 고뇌, 공포, 실망에 의해서 기력은 땅을 기고 정신은 먼지가 된다.

예순이든 열여섯이든 인간의 가슴에는 경이로움에 끌리는 마음, 어린이처럼 미지에 대한 탐구심, 인생에 대한 즐거움과 환희가 있다. 우리 모두의 가슴속엔 마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우체국이 있다. 다른 사람과 하느님으로부터 아름다움, 희망, 기쁨, 용기, 힘의 영감을 받는 한, 그대는 젊다.

영감의 교류가 끊기고 영혼이 비난의 눈에 덮여 슬픔과 탄식의 얼음 속에 갇힐 때 스무 살이라도 인간은 늙는다. 고개를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여든 살이라도 인간은 청춘으로 남는다.

<사무엘 울만, 청춘>

사려니 숲

사려니 숲에
갔었지

사각거리는 붉은 송이를 밟으며
안개가 스며드는 길을 따라
숲으로 들어갔지

사방은 고요하고
숲은 침묵에 잠겨 있었지
졸참나무, 서어나무, 때죽나무 무성한 숲 속
노루 한 마리
시간과 함께 침묵 속에 멈춰 있었지

그곳은
차마 사람의 발길이 닿지 말아야 했을
완전한 세상
속세로부터 이어지던 숲길이
점점 사라지고 말았지

사려니 숲에 다시
갈 수 없었지

<소요유, 2013년 7월>

어제도 사막 모래언덕을 넘었구나 싶은 날
내 말을 가만히 웃으며 들어주는 이와
오래 걷고 싶은 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보다 다섯 배 열 배나 큰 나무들이
몇 시간씩 우리를 가려주는 길
종처럼 생긴 때죽나무 꽃들이
오리 십리 줄지어 서서
조그맣고 짙은 향기의 종소리를 울리는 길
이제 그만 초록으로 돌아오라고 우리를 부르는
산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것들을 주체하기 어려운 날
마음도 건천이 된 지 오래인 날
쏟아진 빗줄기가 순식간에 천미천 같은 개울을 이루고
우리도 환호작약하며 물줄기를 따라가는 질
나도 그대도 단풍드는 날이 오리라는 걸
받아들이게 하는 가을 서어나무 길
길을 끊어 놓은 폭설이
오늘 하루의 속도를 늦추게 해준 걸
고맙게 받아들인 삼나무 숲길
문득 짐을 싸서 그곳으로 가고 싶은
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라산 중간산
신역(神域)으로 뻗어 있는 사려니 숲길 같은

<도종환, 사려니 숲길>

나무의 시

나무에 대한 시를 쓰려면 먼저
눈을 감고
나무가 되어야지
너의 전생애가 나무처럼 흔들려야지
해질녘 나무의 노래를
나무 위에 날아와 앉는
세상의 모든 새를
너 자신처럼 느껴야지
네가 외로울 때마다
이 세상 어딘가에
너의 나무가 서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지
그리하여 외로움이 너의 그림자만큼 길어질 때
해질녘 너의 그림자가 그 나무에 가 닿을 때
넌 비로소 나무에 대해 말해야지
그러나 언제나 삶에 대해 말해야지
그 어떤 것도 말고

<류시화, 나무의 시>

이 시는 류시화가 아들 미륵이에게 주는 시였는데, 아내는 이 시를 읽으며 내가 생각난다고 했다. 아내는 나를 아들처럼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전생애가 흔들릴 때, 내가 외로울 때, 이 세상 어딘가에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내 옆에) 서 있는 나무가 바로 아내다. 항상 고맙고 사랑하는 나의 나무가 아내다. 나도 그의 나무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