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을 찍는다는 것

안철수는 진영(당)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했고, 유시민은 사람도 중요하지만 당도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정치에 있어서 사람보다도 당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치에 있어서 당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어떤 인물이나 정당을 지지하기 전에 해야 할 것 중 하나는 그 인물이나 정당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신중히 살펴보는 일이다. 그 역사의 궤적이 바로 그 인물이 또는 그 정당이 어떤 좌표를 가지고 나아가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516쿠데타의 주역인 박정희의 민주공화당(공화당)이 나온다. 공화당이 창당될 때 이승만의 자유당 잔재 세력을 흡수했기 때문에, 이승만의 자유당과도 무관하지 않다. 박정희의 공화당은 전두환의 민주정의당(민정당)으로 흡수되고, 민정당은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의 삼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민자당)으로 탈바꿈한다. 민자당이 신한국당이 되고, 신한국당이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한나라당이 되며, 바로 이 한나라당이 이름을 바꿔 새누리당이 된다.

지금 새누리당의 대표가 박정희 딸인 박근혜인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독재자 아버지가 원조인 당을 수십년이 지난 후에 딸이 물려받은 것은 것이다. 친일과 독재와 군사쿠데타의 피가 면면히 흐르는 정당이 바로 새누리당인 것이다.

총선이나 대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를 찍는다는 것은 친일과 독재에 부역하는 것이고, 군사쿠데타를 용인하는 것이며, 민간인 사찰과 같은 중대 범죄에 암묵적 공범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히틀러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네오나찌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새누리당의 기저에 흐르고 있는 본질은 보수도 아니고, 극우도 아니다. 그 본질은 자기만 잘먹고 잘살면 된다는 극단적 이기주의와 목적만 달성할 수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기회주의인데, 그것들이 도를 지나쳐 이미 범죄의 수준을 넘어섰다.

새누리당을 찍는다는 것은 바로 그런 범죄자들과 한패가 된다는 것이고, 본인이 기회주의자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들과 한패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들을 찍어 국회의원으로 만들고, 대통령으로 만들라. 그들을 처벌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들을 지지해서는 안 된다.

새누리당은 어떤 짓을 해도 유권자 30%의 고정표가 있다. 그렇기에 그들이 그렇게 후안무치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고름을 놔둔다고 새살이 되지 않는다. 고름은 도려내야 한다. 새누리당은 민주주의의 고름과 같은 존재다. 투표율 70%면 도려낼 수 있다.

새누리당을 찍는다는 것은 단지 한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고, 서민들의 삶을 짓밟는 것이며, 우리 아들 딸들의 미래를 망치는 것이다.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아직도 모든 것이 노무현 탓

퇴임한 지 두달이 지난 노무현 대통령은 여전히 동네북이다. 수구들은 노무현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혈안이고, 좌파들은 총선의 패배를 노무현 탓으로 돌리기 위해 안달이다. 수구세력의 첫 번째 목표가 된 것은 노무현 정부의 주된 정책 중의 하나인 지방분권화와 혁신도시 정책이다.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기다리고 있던 지방 정부와 지방 국민들은 손가락만 빨 것이다. 예상한 일이었기에 놀랍지도 않다.

그런데, 소위 좌파 세력들이 총선 패배의 책임을 노무현한테 돌리는 듯한 발언은 도저히 참기 힘들다. 김규항은 “노회찬과 홍정욱”이란 글에서 노회찬이 패배한 책임을 노무현에게 돌린다. 노무현이 한국 국민들에게서 “가치 추구”를 빼앗았기 때문에 이명박이 당선되고, 홍정욱이 당선되었단다.

가짜 진보’ 노무현 정권의 가장 큰 죄악은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서 ‘가치에의 추구’를 앗아가 버렸다는 것일 게다. 이명박 씨는 5년 전만 같아도 대통령 후보로서 파멸하기 충분한 도덕적 결함들을 가졌다. 그러나 그 결함들은 노무현 정권 5년을 통해 더 이상 결함이 아니게 되었다. 2007년의 한국인들은 이명박을 도덕적으로 용서한 게 아니라 이명박의 도덕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번 총선에서 진보신당 같은 곳의 후보가 당선되는 건 애초부터 어려운 일이었다.

[김규항, 노회찬과 홍정욱]

참으로 엿같은 소리다. 더군다나 이런 현실 인식은 좌파 세력들에게도 전혀 도움이 안되는 것이다. 나는 노무현만큼 가치를 중요시 여기는 정치인을 알지 못한다. 노무현이 추구한 가치는 “상식과 원칙”, 이 두가지다. 물론, 좌파들이 봤을 때는 아주 우스운 가치일 수도 있겠지. 민중들의 계급의식을 깨우쳐 주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상식과 원칙이라는 가치조차 건국 이래 단 한번도 실현된 적이 없는 나라가 이 잘난 “대한민국”이다.

우리나라 좌파의 위기는 민중들이 자신의 계급의식을 자각하지 못해서 나타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식과 원칙조차 수용되지 못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1%로 대표되는 수구언론과 재벌, 사법부, 검찰, 고위공무원들 그리고 그 1% 수구세력을 30% 지지하는 지역주의 투표들. 이러한 문제들을 노무현 정부가 만들어낸 것인가? 이 문제들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죽 있어 왔고, 오히려 그 갈등은 노무현 정부 때 더 커졌으며, 이제 그 1% 수구세력들의 면모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노무현과 수구들이 대립할 때, 좌파들은 어느 편에 있었나? 내가 알기로는 대부분 수구들의 편에 있었다. 노회찬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자마자 조선일보에서 강연을 하면서 30년간 조선일보를 봐왔으며 가장 좋은 품질의 신문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가 어떤 신문인가? 친일과 군부독재 세력의 본산지 아닌가? 나는 노무현이 조선일보를 본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누가 가치를 앗아갔나? 이라크 파병과 한미FTA를 제외하고 민노당은 한나라당과 손잡고 반노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그리고도 좌파가 망하는 건 모든 게 노무현 탓이다.

좌파들은 참으로 머리가 나쁘다. 노무현보다도 나쁘고 심지어 수구들보다도 머리가 나쁘다. 문제가 뭔지를 모른다. 적이 누구인지, 동지가 누구인지, 누가 연대할 세력인지 알지 못한다. 문제가 해결하려면 문제가 무엇인지 부터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자신들의 소멸을 노무현 탓으로만 돌리고는 그들에게 아무런 희망이 없다. (나도 동의하는 바이고, 좌파의 관점에서 봤을 때도) 노회찬은 홍정욱보다 훌륭한 인생을 살아왔다. 하지만, 이번 선거처럼 뉴타운 사기극에 투표율 50% 이하일 경우에는 노회찬이 아니라 노회찬 할아버지가 와도 수구를 이길 수 없다.

노무현은 이제 무대를 내려왔다. 이제 노무현을 내버려 둘 때도 되지 않았는가? 노무현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다했다. 노무현의 문제라면, 그가 시대를 너무 앞서 나왔다는 것 밖에 없다. 하지만 상식으로 살고 싶어하는 국민들이라면 그에게 존경을 보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 봉하마을에서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좌파가 진보가 되려면 정신을 차려야 할 것이다.

기만적 민주주의와 수구세력의 힘

우선 글을 시작하기 전에 두어 가지 사실을 바로잡아야겠다. 우리나라의 잘난 수구 언론들이 총선이 끝나고 나팔을 불어대는 것 중의 하나가 “민심이 보수화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거짓말이다. 투표를 한 46%의 표심은 보수화된 것이 아니고 “수구” 또는 “극우” 그 자체였다. 수구세력이라 할 수 있는 한나라당이 과반수를 차지했고, 또 다른 정통 수구인 자유선진당과 친박연대 (진짜 이름 웃기지 않은가) 그리고 친박 무소속을 합하면 50여석이 넘는다. 수구 세력이 의회 권력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했다. 언론이 진보로 분류하는 통합민주당이나 창조한국당 등은 사실 보수라고 보는 것이 맞고, 진보세력이라 불리울 수 있는 정당은 민노당과 진보신당 정도이다. 진보신당은 당선자를 내지 못했고, 민노당은 5석 정도의 명맥만 유지했다. 결과적으로 진보 세력은 국회의 1.67% 만을 차지한 것이다.

수구 언론들이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면서 또 지껄이는 이야기는 “절묘한 민심의 선택”이라는 말이다. 이건 그냥 “수구” 투표를 해버린 46% 유권자들에 대한 감사의 립서비스이다. 수구 세력이 개헌선을 가져가 버렸는데 무슨 민심의 절묘한 선택? 한나라당이 턱걸이 과반을 했기 때문에 하는 소리인가 아니면 너무 좋아서 웃자고 하는 소리인가?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뭐가 다른가. 그들은 다 한 뱃속에서 나온 일란성 샴쌍둥이일 뿐이다.

20여년 전, 그 지긋지긋한 군부독재를 청산하고, 많은 국민들은 권력을 국민의 손으로 선출하면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것은 정말로 순진한 생각이었다. 87년도 전두환이 물러가고도 전두환의 친구인 노태우가 국민의 손에 의해 뽑혔고, 92년에는 이들과 손을 잡은 김영삼이 다시 선출되었다. 97년에 와서야 수구세력에서 보수세력으로의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는데, 수구세력이 나라를 말아먹지 않았다면 불가능했고 아니 나라를 말아먹었다 해도 김대중이 또다른 수구인 김종필과 손잡지 않았다면 역시 불가능했다. 첫번째 정권교체는 외환위기로 인한 나라 망한 댓가로 받은 절반의 정권교체였다.

2002년은 어떠했는가? 그때는 노무현이라는 걸출한 정치인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노무현은 정말 1세기 한번 나올까 말까한 정치인이다. 수구세력이 노무현을 그렇게 미워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노무현과 더불어 인터넷이라는 또다른 무기가 국민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거의 기적이었고, 신이 대한민국을 보살폈다고 밖에 얘기할 수 없는 세계 정치사의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이와 같은 민주화 이후 20여년의 짧은 역사를 살펴봐도 친일과 독재로부터 시작된 우리나라의 수구들의 힘은 정말 막강하다. 우리나라 언론, 입법, 사법, 행정 모든 분야에서 수구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현재 90% 이상이다. 이들은 자기들 입맛에 맞게 여론을 호도하거나 왜곡하고 민주주의를 기만한다. 투표 성향으로 보았을 때, 우리나라 국민들 중 이런 수구들의 이념을 따르는 사람들이 한 30% 정도 되는 것 같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수구세력들은 계급적 이익 때문이건 (이 부분은 5%도 안되는 것 같고) 지역주의 때문이건 아니면 반공 때문이건 간에 언제나 한나라당에 투표를 한다. 이 30% 는 거의 언제나 투표를 한다는 것이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국회의원 선거이든, 대선이든, 보궐선거이든 간에 말이다.

따라서 전체 투표율이 60% 이하가 되면 수구세력을 이길 방도가 없다. 참여정부 때 재보선에서 40 대 0으로 열린우리당이 졌고, 그때 정치권은 참여정부의 실정때문이라고 노무현을 몰아세웠지만, 이건 노무현이 아니라 세종대왕이 대통령이 되었어도 이길 수 없는 선거였다. 투표율 30% 정도인 재보선에서 수구세력이 아니고는 이길 방법이 없다. 이번 총선도 마찬가지다. 투표율 46%로는 수구세력이 아닌 보수, 진보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선거였다. 적어도 민주당이나 민노당이 한나라당과 대등하게 경쟁을 하려면 적어도 70% 이상의 투표율이 나와야 한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악순환이 발생하는데 정치권의 수구세력들은 그들의 명성에 걸맞게 정치 혐오를 불러 일으키고 (부정부패든, 성추행이든, 개싸움이든 간에) 유권자들은 점점 그 행태를 보고 욕을 해대면서 선거에 관심을 잃게 된다. 왜냐하면 바뀌는 것이 없고, 그렇게 욕을 먹어도 그놈들이 또 뽑히니까.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증폭되면서, 투표율은 점점 낮아지게 된다. 그러면서 정치 권력은 점점 수구화되어 간다. 이것은 수구 세력들의 또다른 전략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국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할수록 자신들이 득세할 수 있기 때문에 계속 정치 혐오를 불러 일으킨다.

또 하나 웃긴 것은 친일에 앞장서고 독재에 부역을 했던 신문들이 민주화 이후에 언론 자유를 외친다는 사실이다. 박정희를 찬양하고 전두환을 옹호했던 수구세력들은 민주화 이후에 줄기차게 투표를 해댄다는 사실이다. 민주화 과정에 아무 기여도 하지 않았던 아니 오히려 민주화의 적이었던 세력들이 민주화의 열매를 가져간다. 이거 정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일이다.

군부 독재 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지금의 수구세력들은 선거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정치적 정당성(그것이 비록 기만적이라 할지라도)을 획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정희, 전두환 때는 거리로 나가 싸우면서 위안이라도 얻고 희망이라도 얻었는데, 지금은 그것조차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뽑았다는데 무슨 할 말이 있는가? 왜 투표 안했냐고 하면 무슨 할 말이 있는가? 사실 상황은 20여년 전보다 더 비참해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타파할 것인가?

  1. 투표를 의무화해야 한다. 지금처럼 50% 이하의 투표율로는 선출된 권력도 정당성을 찾기는 쉽지 않다. 투표를 의무화한 호주는 투표율이 90%를 넘고 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우리는 민심을 운운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기권할 자유도 있다고 얘기하는데,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2. 투표 용지에 기권란을 넣어야 한다. 뽑고 싶지 않은 후보가 당연히 있을 수 있으므로 기권란을 반드시 추가해야 한다.
  3. 기권이 50%가 넘으면 그 선거는 무효로 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정당은 해산해야 하고, 다시 처음부터 정치 지형을 다시 짜야 한다.
  4. 선출된 권력에 대한 소환의 권리를 국민들에게 주어야 한다.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잘못 선출되었을 때는 소환되어야 하고 탄핵되어야 한다. 그러한 권리가 국민들에게 부여되어야 한다.
  5. 국민들에게도 입법청원권과 입법권 그리고 국민투표에 부의할 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한다.
  6. 이러한 절차를 간소화하고 투표를 쉽게 하기 위해서 전자투표(인터넷 투표나 휴대전화 투표) 등을 도입해야 한다.

이 정도 되면, 민주주의의 기만성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선거 제도의 변경은 헌법이나 선거법 등 관련 법률을 개정해야 하는데, 수구 세력이 3분의 2나 들어가 있는 국회에서 국민들의 선거 참여를 위해 법률을 개정할 리 만무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앞으로 선거로 정권을 교체하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국민들의 정치에 더욱 혐오감을 느낄 것이고, 그에 비례하여 투표율은 계속 50%를 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수구 세력의 장기 집권은 불을 보듯 뻔하다.

역사에 비추어 볼 때, 두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하나는 97년의 경우처럼 나라가 망하는 경우이고, 또 하나는 노무현과 같은 매력적인 정치인이 나와 국민들에게 잠시나마 희망을 주는 것이다. 이메가와 한나라당의 국정운영 능력을 보았을 때, 외환 위기와 같은 경우가 멀지 않아 다시 올 것 같지만, 그 때도 박근혜가 눈물 한두 번 흘리면 수구 세력은 다시 뭉칠 것이다. 즉, 나라가 망해도 정권교체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다른 하나는 노무현과 같은 정치인이 다시 나와 주어서 국민들의 관심을 높여야 하고 정치 참여를 높여야 하는데, 이 부분도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 같다.내가 유시민을 지켜 보는 이유는 바로 두번 째 가능성 때문이다. 유시민 정도되면 노무현의 뒤를 이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다시 한 번 신이 대한민국을 보살피시고,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다면 아예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적어도 70% 아니 80% 이상의 국민들이 선거에 참여하지 않으면, 이메가가 운하를 파든, 사기를 치든, 나라를 말아 먹든, 팔아 먹든, 뭘 해도 수구의 집권을 막을 길이 없다. 수구 언론들과 선관위와 검찰과 사법부 등은 지속적으로 국민들의 정치 참여를 좌절시킬 것이다. 지금처럼 정치에 무관심해서는 우리는 민주주의를 한다고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미안한 얘기지만, 우리나라의 앞날은 상당히 어둡고, 민주주의는 서민과 노동자들을 더욱 기만할 것이다.

한줌도 안되는 친일과 독재 세력을 단죄하지 못한 것이 나라의 원죄가 되어 버렸다. 이제 어찌할 것인가. 어떻게 희망의 근거를 마련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들의 고민이 되어야 할 것이다.

20대를 위한 나라가 없는 이유

한겨레가 보도한 적극적 투표의사층 여론 조사를 보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번 총선에서 우리나라 20대 중 적극적으로 투표하겠다고 답한 사람은 전체의 44.6% 밖에 되지 않았다. 60대 이상의 87.1%가 투표하겠다고 한 것에 비하면 절반 밖에 안되는 수준이다.

우리나라 20대들의 정치적 무관심에 놀랐고, 그들은 분노조차 표출할 수 없는 자들이라는 사실에 절망했다. 도대체 우리나라 20대들이 바라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투표의 권리를 저버릴 정도로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행복한 사회일까? 그러면서 왜 88만원 세대가 어떻다느니, 청년백수가 어떻다느니, 대학 등록금이 너무 올랐다느니 하는 불만들을 쏟아내는 것인가. 정말 우리나라 20대들은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도덕 상실과 약육강식의 이 정글 같은 사회에 만족하고 있는 것인가?

현재 합법적으로 정권을 교체하는 방법은 선거에서 투표를 하는 것 밖에 없다.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다, 찍을 사람이 없다, 찍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라고 하는 20대들의 변명에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가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적 권리 포기를 합리화하지는 못한다. 세상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20대가 투표하지 않기 때문이다. 찍을 사람이 없을 수는 있지만, 찍지 말아야 할 사람은 있다. 당선되지 말아야 할 사람은 있다. 과반수를 획득하지 말아야 하는 정당이 있단 말이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투표권 하나를 쟁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선배들이 목숨을 버리고 피를 흘렸는지를 아는가. 이 투표권이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이것을 안다면 “투표를 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라는 한가한 소리를 하지는 못할 것이다. 후보로 나온 자들이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지능이 있다면 단 1밀리미터라도 누가 더 20대들의 처지를 위해 노력할 사람인지, 어떤 정당이 더 나은 정당인지 비교하여 표를 던져라. 그것도 못하겠다면 투표장에 가서 자기 이름을 쓰고 나오는 한이 있더라도 투표하러 가라.

도아 님의 글을 보면 20대가 투표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잘 나와 있다. 20대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20대를 위한 나라는 오지 않는다. 2008년 4월 이메가와 한나라당이 날뛰는 이 초현실적인 세계가 마음에 든다면 당신은 투표장에 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들을 눈뜨고는 더 보지 못하겠다면 투표장에 반드시 가야 한다. 가서, 민노당이든, 민주당이든, 진보신당이든 찍어라. 그래야지만 20대들이 기성세대에 대해 욕을 할 권리라도 생기는 것이다.

정말 이메가가 노리는 잿빛 세상의 회색 인간으로서, 노예로서 병신같이 살아갈 것인가? 20대를 위한 나라는 20대가 만들어야 한다. 20대가 이렇게 정치에 무관심해서는 이 나라의 미래는 없다. 희망은 없다.

이제 20대들도 (Matrix의 Neo처럼) 빨간 약을 먹어야 할 시간이다. 진실을 알고 책임을 져 나가야 할 때다. 분노할 때는 분노해야 한다. 어찌 할 것인가? 정말 계속 이런 세상에 파란 약을 먹고 살고 싶은가?

방관자는 그저 동조자일 뿐이다. 선택은 20대들의 몫이다.

유시민을 부탁합니다

박정희가 만들어 놓은 지역감정이라는 덫에 온 정치권과 국민들이 허우적거릴 때, 돈키호테처럼 지역감정과 맞서겠다고 나타난 이가 있었습니다. 누구인지는 다들 아시겠지요? 그는 대한민국 정치 1번지라는 종로의 탄탄한 지역구를 버리고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부산의 유권자들은 김대중 당으로 출마한 그를 외면했고, 그 외면은 역설적으로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한때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근원지 역할을 했던 경상도 지역은 이제 한나라당의 텃밭이 된지 너무 오래되었습니다. 국회의원은 말할 것도 없고,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 그리고 이번에 중앙정부까지 모두 한나라당의 인물들로 들어차 버렸습니다. 이런 것을 전문 용어로 일당독재라고 합니다.

지난 20여년간 한나라당의 일당독재가 부산과 대구 그리고 경상도에 어떤 혜택을 되돌려 주었는지는 모르지만, 경상도는 경제적으로도 퇴락하고 있습니다. 사실 경상도 뿐만 아니고, 수도권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지역이 퇴락하고 있지요. 그래도 경상도 사람들의 한나라당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따지기도 난감하고 민망할 정도로 경상도의 패권주의적 지역감정은 참으로 견고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선거제도를 고치는 등 여러 가지 노력을 해야 하는데도,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오히려 지역감정에 기대거나 조장하고 다니기 일쑤입니다. 그들에게 뭔가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지요.

그 와중에서 부산은 노무현을 배출했고, 대구는 유시민을 길러냈습니다. 참으로 역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견고한 동토의 땅에서 노무현과 유시민 같은 걸출한 정치인들이 나왔다는 것. 그래서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나 신은 공평하다는 말이 나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하고 봉하마을로 내려가서 마을 주민들에게 인사를 할 때, 비가 오는 와중에도 노무현 대통령은 유시민을 단상으로 올렸습니다. 말은 그렇게하지 않았지만, 노무현은 유시민을 자신의 정치 후계자로 지목한 것이지요. 저한테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그 유시민이 이번 총선에서 대구 수성을에 출마합니다. 그도 노무현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지역구를 버리고, 고난의 길을 택한 것입니다. “한나라당이라면 고이즈미 일본 총리도 당선”된다는 그 땅에서 유시민이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정말 힘든 일이겠지만, 유시민이 이번에 당선이 된다면 그는 다음에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노무현과 유시민은 개성이 다른 정치인들이지만, 드물게 단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머리가 좋고, 능력이 있으며, 염치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대구 수성을 유권자들에게 부탁합니다. 여러분들이 유시민에게 투표하든, 하지 않든 그것은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하지만 이미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위치에 서 있습니다. 지난 대선보다도 사실은 더 중요한 선거가 지금 대구 수성을에서 치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유시민이 당선된다면, 대구는 지역감정의 덫에서 일거에 해방될 수 있습니다. 이런 기회는 평생 한번 올까 말까한 그런 소중한 기회입니다. 유시민으로 하여금 여러분의 명예와 자랑이 될 수 있도록 하십시오.

저는 사실 대구에 사시는 여러분들이 부럽습니다. 유시민과 같은 정치인을 민의의 대표로 만들어 국회에 보낼 수 있는 그런 특권을 가진 여러분들이 부럽습니다.

유시민을 정중하게 부탁합니다.

총선, 네 가진대로 찍어라

이 글은 가진 것은 쥐뿔도 없는 “서민”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조중동문 같은 후안무치한 우리나라 대다수 언론들에게 속아서 엉뚱한 정당에 투표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쓴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기 집도 없이 월세나 전세를 살면서 “세금폭탄”이라는 말 한마디에 “종부세 폐지”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제발 정신 좀 차려”라고 얘기하기 위해 쓴 글이다. 지난 대선 때, 한 백수 젊은이가 나와서 취직이 안된다며 “경제를 살리겠다는 이메가를 지지한다”는 그런 눈물겨운 코메디가 되풀이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쓴 글이다.

오래 전 김규항은 “비판적 지지”라는 투표 행위를 비판하면서 “네 이념대로 찍어라”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김규항은 그 글에서 김대중이나 노무현을 비판적 지지했던 진보주의자들의 어리석음을 꾸짖으면서, “털끝만큼”이라도 진보의 지분을 늘리기 위해서는 “네 이념대로 찍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중립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사람이 제 이념대로 순정하게 찍는 것, 그래서 한국정치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한국인들의 이념적 스펙트럼과 동기화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것만이 한국인들이 제 처지에 가장 적절한 정치를 맞을 유일한 방법이다. 네 이념대로 찍어라. 한국사회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면 가장 반동적인 보수후보를 찍어라. 한국사회의 표면적 악취라도 우선 덜고 싶다면 가장 개혁적인 보수 후보를 찍어라. 그러나 한국사회의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진지하게 바란다면 (당선 가능성을 절대 기준으로 한 이런저런 되지 못한 정치평론일랑 걷어치우고) 그저 가장 진보적인 후보를 찍어라. 진보에 외상은 없다, 네 이념대로 찍어라.

[김규항, 네 이념대로 찍어라]

언젠가 얘기했듯이, 나는 “비판적 지지”라는 말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정치적 위치를 규정하는 것은 “선택”이라는 “행위”이지, 누구를 지지한다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소에 민노당을 지지한다고 하면서 실제 투표는 김대중이나 노무현에게 했다면, 그는 보수주의자다. 따라서 비판적 지지를 외치는 사람들은 대개 위선적이다. 자기의 진보적 이념과 보수적 행위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논리에 불과한 것이다.

나는 사람들의 말을 쉽게 믿지 않는다. 그 대신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선택과 행위를 해왔는지 더 주의깊게 본다. 그 사람의 삶의 궤적은 현재의 그 사람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말로 하는 진보를 믿지 않는다. 그 말들이 아무런 달콤하고 장미빛 미래를 보여준다 해도 그 말이 세상을 바꾸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념대로 찍어라”는 김규항의 충고는 담백하기는 하지만 몇 가지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의 이념적 지향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않고 파악할 수도 없을 뿐더러, 이념이라는 것은 언제든지 바뀔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념을 잘 믿지 않는 이유는 자기 이념의 변절자들을 수없이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한때 대한민국 대표적 빨갱이였던 박정희는 빨갱이를 때려잡는 반공의 화신이 되었고, 극렬 좌파였던 이재오, 김문수는 수구 정당에 들어가 호의호식하고 있으며, 대학을 다닐때 노동자, 민중을 위해 투쟁했던 대다수 학생회장들은 보수 정당에서 궁물이나 빨아먹는 존재들이 되었다.

선거에서 우리는 “이념”이라는 추상적인 기준보다 보다 구체적이고 피부에 와닿는 잣대가 필요하다. “경제만 살리면 된다”며 도덕적 파탄자를 지도자로 뽑는 국민들에게는 “이념”이라는 것은 씨도 안먹히는 얘기다. 하여 나는 주장한다. 당신들이 가진대로 찍어라. 당신들의 재산대로 찍어라.

당신이 고려대 같은 명문대를 나오고, 소망교회를 다니며, 강남에 십억원이 넘는 아파트에 살면서 억대 연봉을 받는다면 당신은 이메가와 한나라당을 찍는 것이 맞다. 이 말은 경제적 관점에서만 얘기한 것이다. 물론, 당신이 고소영 범주이면서도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 진보를 지지할 수는 있다. 그것을 말릴 생각은 없다.

당신이 월세, 전세를 살면서 비정규직에 종사하고 아이들 사교육비를 걱정하며 제발 양극화가 해소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메가와 한나라당을 지지해서는 안된다. 당신이 종부세 대상자도 아니고 억대 연봉자도 아니면서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면, 당신은 당신의 현재 처지를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당신은 당신의 어리석은 정치의식 때문에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질 뿐이다.

총선에서 누구를 찍어야 될 지 모르겠다면 당신이 지금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헤아려 보시라. 그리고 당신이 가진대로 찍으면 된다. 이것이 서민이라 불리는 당신에게 드리는 기본적인 투표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