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가 부른 “놈현”이라는 애칭

2주 전쯤 한겨레신문은 “DJ 유훈통치와 놈현 관장사를 넘어라“라는 글을 올렸고,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정론지를 추구하는 언론이 서거한 전직 대통령을 두고 “놈현”, “관장사” 같은 표현을 쓸 수 있는지 분노했다. 비판이 거세지자 한겨레는 편집국장 성한용의 명의로 사과문을 올린다. 성한용이라는 자가 한겨레 편집국장으로 있는지 나는 이때 처음 알았으며, 성한용이라면 능히 “놈현”이라는 표현을 쓰고도 남을 작자임을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들이 어쩔 수 없이 내놓은 사과문에는 어떠한 진심도 발견할 수 없었다. 나는 한겨레에 대한 기대를 진작에 접은 터라 분노하지 않았고, 그에 대한 글을 쓸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이 필화사건은 월드컵에 묻혀버렸고, 그런대로 마무리가 되는 듯 했는데, 한겨레는 꽤나 속히 뒤틀렸던 모양이다. 한겨레는 오늘 “놈현”을 “놈현”이라고 불렀는데 뭐가 잘못이냐, 오히려 사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라는 식의 칼럼을 올렸다. 이 칼럼을 쓴 언론인 김선주는 자신은 “놈현”을 노무현의 애칭으로 부른다고 했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이 여자도 성한용과 한통속임을 고백했다.

그러나 때때로 나는 ‘놈현’이라고도 말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쪽에서 놈 자와 현 자를 합해서 악의적으로 만든 말이라 할지라도 그런 것을 따지지 않았다. 나 나름의 애칭일 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불편하고 길고 어감상 매끄럽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도 ‘명바기’ 혹은 ‘이명바기’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김선주, 말조심 글조심 ... 어렵네]

이런 글은 한마디로 개같은 글이다. 아니 개만도 못한 글이다. 반노들이 만들어낸 악의적인 말이라고 해놓고도 따지지 않는단다. 나름대로 애칭이라고 버젓이 일간지 지면에 써갈긴다. 김선주는 더 나아가 “놈현 관장사”라는 제목이 정곡을 찌르는 적절한 제목이었다고 말한다.

재론되는 것을 어느 쪽도 원하지 않겠지만 나로선 이 사건의 발단에서 마무리까지가 적절했다고 볼 수 없다. 그 기사를 읽었을 때 이런 반응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 ‘정곡을 찔렀네…제목 잘 뽑았네’ 했던 것이 첫 느낌이었다.

요즘 한겨레는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은 한겨레를 “한걸레”라고 얘기한다. 나도 한겨레에 대한 비판 글을 많이 썼지만, 한번도 한겨레를 “한걸레”라고 표현한 적은 없다. “한걸레”라는 것이 결코 명칭이나 애칭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고, 이제는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넜다.

지난 20여년간 진보 진영의 정론지라는 타이틀을 독점해 놓고, 그들은 아무런 성과도 업적도 내놓지 못하고 오로지 조중동 따라하기만을 반복한다. 그들의 오만과 독선, 그리고 치졸함은 조중동 못지 않다. “놈현 관장사”라는 제목을 붙이고 성한용과 그 일당들은 얼마나 낄낄거렸을까. 그들의 비아냥 섞인 미소가 눈에 선하다.

그들은 노무현의 죽음을 “관장사”로 비하했다. 그런데 정작 노무현의 죽음을 팔아먹기 바쁜 족속들은 오마이뉴스나 한겨레 같은 자칭 진보 정론지들이었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 가장 위대한 인물의 죽음을 그들은 “놈현 관장사”로 표현했다.

참여정부 시절 성한용과 그 일당들의 분탕질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때도 그들은 끝없이 노무현을 조롱했고, 노무현이 죽고 나서도 그들의 비하와 저주는 그칠 줄 몰랐다. 끝없는 횡설수설과 궤변도 그들의 위선을 감추지는 못했다.

김선주는 박정희는 “박통”으로 부를 수 있지만, 노무현은 “노통”이라고 부를 수 없고 어쩔 수 없이 “놈현” 또는 “노무혀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단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영어 이니셜이 아니라면 ‘박통’처럼 부르기 쉽고 적절한 이니셜을 이번에 문제를 제기한 쪽에서 마련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바보라고 할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놈현’ 혹은 ‘노무혀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으니까.

영어 이니셜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서도 그들은 김대중 대통령을 DJ라고 부르고, 이명박을 MB라 부른다. 김대중을 때중이라고 부른 적도 이명박을 쥐박이라고 부른 적도 없지만, 노무현에 대해서는 “놈현”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는 개만도 못한 족속들. 그들은 여전히 스스로 진보 정론지임을 자처한다.

이제 한겨레에 대해서는 분노할 필요도 비판하거나 비난할 필요도 없다. 분노나 비판이나 비난은 어느 정도 관심과 애정이 있을 때나 가능한 것이다. 그들이 짖어대면 그냥 개만도 못한 족속들이 짖어대는구나 하고 무시해 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다가 그들은 그냥 제 풀에 지쳐 사라질 것이다.

우리나라의 유일한 정론지는 이제 “딴지일보” 하나 남았다. 주간지로는 “시사인” 정도일 것이고.

<덧붙임>

참여정부 시절 한겨레의 분탕질을 정리한다. 아래 글들은 한겨레를 읽고 열받아 쓴 글들이다. 이제는 더이상 열받을 일도 없을 것이다.

한겨레신문의 살리에리 증후군

안토니오 살리에리(Antonio Salieri)는 19세기초 유명한 음악가 중 하나였다. 모짜르트만 없었다면 그는 비엔나에서 가장 뛰어난 음악가로 대접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살리에리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천재인 모짜르트를 능가할 수 없었다. 그는 모짜르트 때문에 열등감과 자괴감을 가지고 살았다. 그리하여 그는 모짜르트에게 늘 시기와 질투를 느꼈고, 모짜르트가 하는 일을 사사건건 방해했다.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면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과정들이 잘 묘사되어 있다. 후에 사람들은 모짜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를 바탕으로, 주위의 뛰어난 천재 때문에 극복할 수 없는 열등감, 시기, 질투를 느끼는 것을 “살리에리 증후군”이라고 불렀다.

자칭 진보정론지 한겨레신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만든 “민주주의2.0″이란 웹사이트가 영 불편한 모양이다. 한겨레는 “전직 대통령 토론 웹사이트 개설 유감”이라는 사설에서 다음과 같이 그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전직 대통령이라고 해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는 없다. 노 전 대통령 말대로, 민주주의에 긴요한 시민 토론을 활성화하기 위해 애쓴다면 그걸 탓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전직 대통령이 직접 토론사이트를 개설해 운영하는 건,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불필요한 논란을 확산시키며 정치적 ‘반목과 대립’만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전직 대통령 토론 웹사이트 개설 유감", 한겨레신문]

노무현 전 대통령이 토론사이트를 만들어 운영해 보겠다고 한 것은 그가 퇴임하기 이전에 이미 세워둔 계획이었다. 그가 퇴임을 해서 “민주주의2.0″이라는 사이트를 만들고 있었다는 것은 정치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사이트가 개설되자마자 한겨레신문이 “전직 대통령의 정치 재개” 운운하며 새삼스럽게 유감이라는 사설을 날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조중동이나 한나라당이 노무현의 행보를 주시하면서 민주주의2.0에 대해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조중동이나 한나라당과 정치적 이해 관계가 사뭇 다른 (다르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한겨레가 노무현이 만든 토론사이트를 싫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 가지 해석을 내놓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한겨레는 노무현에 대한 살리에르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 같다. 아니, 한겨레 뿐만 아니고, 민노당이나 최장집, 손호철, 김근태 등 이른바 얼치기 진보들도 마찬가지로 노무현에 대한 살리에르 증후군이 있다. 그동안 이들이 보인 행보를 보면, 조중동보다도 노무현에게 더 적개심을 보인 것이 사실이다.

노무현은 아는 바와 같이 운동권 내에서도 비주류에 불과했다.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민주세력의 중심이 되는 것이 이들은 내심 못마땅한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진보 세력이 오합지졸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노무현의 민주주의2.0은 이들의 위기의식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진보와 민주의 중심이어야 하는데, “퇴임한 (고졸 출신의) 전직 대통령 따위가 어찌 그 자리를 넘보려고 하는가”하는 그 같쟎은 엘리트들의 우월의식이 노무현 살리에르 증후군의 본모습이다.

진정으로 이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자들이라면 전직 대통령의 토론사이트 개설을 “열렬히” 환영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이트가 잘되도록 물심양면으로 협조하고 지원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민주주의 발전은 부수적인 문제고 그것보다 노무현이 그 중심이 되는 것이 싫은 것이다. 만약, 김근태가 이런 사이트를 내놓았다면 한겨레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사설과 머릿기사를 동원해 그 사이트를 선전하기에 여념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무당은 아니지만, 이런 것은 척보면 안다.

그런데, 문제는 김근태나 최장집이나 한겨레나 소위 그 잘난 엘리트 진보들은 노무현보다도 앞서서 이런 생각을 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실은 그들이 불쌍한 것이다. 노무현보다 앞서고 싶은데 늘 뒤떨어지는 그들. 노무현보다 다들 좋은 학교 나왔는데, 언제나 여론은 노무현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시기와 열등감. 전형적 살리에리 증후군이다.

무능한 한겨레신문의 삽질 중 전형적인 예를 하나 보자. 네이버가 포탈로서 지금과 같은 지위를 누리고 있는 그 중심에는 지식in이라는 서비스가 있다. 사실 그 아이디어는 한겨레신문이 2000년에 내놓은 “디비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디비딕은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덜떨어진 잘난 진보들은 어느날 갑자기 그 서비스를 유료화해서 그 잘나가던 서비스를 말아먹고 만다. 결국 디비딕은 엠파스로 팔렸고, 네이버는 그 서비스를 흉내내어 지금과 같은 성공에 이르고 있다.

마케터 님이 지적한대로 한겨레나 소위 엘리트 진보들의 시기심 가득한 무능을 더이상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해야 한다. 인터넷을 기반한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야 하고, 새로운 언론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 중심은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노무현이어야 한다. 왜? 그가 진보 세력 중에서 가장 영리하고 능력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노회한 살리에리 같은 한겨레에서 우리의 희망을 찾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미친 한겨레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되도록이면 정치에 관련된 글을 쓰지 않으려 했다. 집단적으로 이성과 도덕성이 마비된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노무현이 물러나고 나면 이 나라 정치에는 아무런 희망이 없기에 나는 그저 침묵하고자 했다. 그런데 세상은 나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조중동도 아닌 한겨레에서 “이명박 당선자를 도와야 한다”는 머릿기사를 읽고 나는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우리나라의 모든 언론이 썩어 문드러졌다해도 그래도 한겨레만은 그러지 않기를 바랬던 나의 기대가 산산조각이 났다. 한겨레마저도 이명박 앞에 딸랑딸랑 줄을 서는 듯한 이 칼럼에서 우리 언론의 마지막 단말마 같은 비명소리를 들었다.

지난 대선에서 BBK 문제로 이명박을 괴롭혔던 한겨레가 내심 이명박 정권이 두려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명박이 취임도 하기 전에 이명박을 돕자고 읍소하며 나섰다. 이명박이 성공해야 한다며 이 칼럼은 기염을 토하고 있다.

이명박 당선자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검찰, 경찰, 국세청, 정보기관을 대통령이 장악하려 해서는 안 된다. 금권선거를 부활시키면 안 된다. 남북관계를 대결구도로 끌고가면 안 된다. 복지 예산을 줄이면 안 된다.

꼭 해야 할 일도 있다. 경제의 활력을 되살려야 한다. 중소기업을 일으켜야 한다.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 부패를 추방해야 한다. 쉽지 않은 과제들이다. 그러나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중략]

이명박 당선자는 성공해야 한다. 실패하면 국민들이 고통을 받는다. 우리 모두 그를 도와야 한다. 한나라당은 정치적으로 그를 뒷받침해야 한다. 대통합민주신당은 발목을 잡으면 안 된다. 언론은 무책임한 추측 보도로 혼선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감시해 줘야 한다. 오만해지지 않도록 견제해야 한다. 이명박 당선자는 메시아가 아니다. 혼자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이명박 당선자를 도와야 한다, 한겨레신문]

정말 순진한 것인지, 아니면 이명박을 찍은 유권자들을 비아냥거리기 위해쓴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대한민국에는 이제 언론이라 부를수 있는 매체가 사라졌다는 사실뿐이다.

지난 10년 전 어느 정권 때문에 대한민국의 경제가 수렁에 빠졌는지 기억하지 못하는가 보다. 그 외환 위기로 인해 국민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았는지 그리고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난 10년간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어떤 일을 했는지 이젠 아예 모르쇠다.

정말 한겨레는 이명박이 양극화를 해소시키고, 중소기업을 일으켜 세우고, 부패를 추방할 것이라 생각하나? 남북관계가 발전하고, 금권선거가 부활되지 않고, 복지 예산이 줄어들지 않을 거라 생각하나? 정말 한겨레가 견제하고 감시하면 이명박 정권이 성공할 것이라 생각하나?

똥인지 된장인지 기필코 맛을 보겠다고 달려든 유권자들은 지금 똥통에 처박힌 상태다. 아니라고? 죽지도 않은 경제를 살리겠다고 덤벼드는 저 면허도 없는 돌팔이 의사의 수술대에 국민들은 아예 홀딱 벗고 누워버렸다. 그리고서 하는말 “제발 경제만을 살려주세요.”

이번 선거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심판이 아니다. 쓰레기 수구 언론과 떡찰을 앞세운 대한민국 수구 기득권층에게 3분의 1 가까운 유권자들이 강간을 당한 그런 선거다. 그런 특권 주류 계층에 놀아난 국민들이 불쌍하지만, 결국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유권자들의 몫으로 남았다.

한 줌도 안되는 이 기득권 세력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아니 조금 더 범위를 넓혀서 2% 정도되는 종부세 대상자가 아니라면 이명박 정권에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리석은 백성들은 그렇게 당하게 되어 있다. 나중에 이명박을 찍은 손가락을 꺽어버리고 싶은 심정이 들 때, 그 때나 정신을 차릴까? 아마 그 때도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야”를 외칠 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제대로 된 언론이 생기지 않는 한 아무런 희망도 없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상식과 정도를 걷는 그런 언론을 만들어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한겨레는 우리의 대안이 아닌 것 같다.

한겨레, 소중하지만 참 어이없는

몇달 전 한겨레신문 어느 지방 영업부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한겨레21을 구독해 달라는 부탁 전화였다. 예전 같았으면 기꺼이는 아니었겠지만, 도와주는 차원에서라도 구독을 했을 것이다. 대학시절, 그 용돈 궁하던 시절에도 “말”지를 몇년씩 보았던 내가 한겨레의 부탁을 거절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번에는 한겨레가 초심을 잃고, 그 논조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구독하지 않겠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언제부턴가 한겨레는 “가재는 게편”이라고 조중동의 가재 노릇을 하고 있었다. 논조는 민노당에 가까웠지만, 언론 밥그릇 문제만 나오면 가재가 되어버렸다. 대통령의 말투를 문제삼기 시작했고, 몇몇 얼치기 진보들을 끌어다가 참여정부 공격에 열을 올렸다. 그런 한겨레가 조중동보다도 더 어이없을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만약 당신이 단 하나의 신문을 꼭 봐야 한다고 한다면, 아직까지도 나는 주저없이 한겨레를 택할 것이다. 한겨레에 대한 비판을 많이 했지만 그래도 조중동문 같은 쓰레기 신문들과는 다를 거라는 일말의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최소한의 기대는 남아 있다.

한겨레는 이번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 사건을 거의 유일하게 제대로 보도하고 있다. 다른 모든 언론들과 포털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지금, 한겨레만이 이 사건에 대해 심층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런 경우 한겨레는 한국 언론의 유일한 희망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겨레의 노력이 삼성 비자금 사건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리의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소중하다. 칭찬해 주고 싶다.

하지만, 한겨레의 몇몇 기사를 보면 여전히 어이없기는 매한가지다. 여현호 논설위원의 “이명박이 무너지지 않는 까닭”이라는 칼럼을 보면, 정말 몰라서 이렇게 쓰는 건지, 아니면 알고도 일부러 이렇게 쓰는 건지 분간하기 힘들다.

그보다는 ‘이명박의 반대편’에서 이유를 찾는 게 빠를 것 같다. 단순화하면, 문제가 많다는 이 후보가 여전히 압도적 지지를 받는 것은, 그에 대한 불신과 불안보다 그 ‘반대편’에 대한 반대와 혐오가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 선거란 게 애초 차악(次惡)이 누군지를 찾는 일인 탓이다.

정말 우리나라 국민들이 이명박보다 이명박 반대편에 대해 더 혐오할까. 모든 사실이 제대로 보도되고 국민들이 이명박에 대해 신정아보다 더 많이 알게 되었는데도 이명박을 지지한다면 그건 이명박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에게 더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우리나라 언론들이 이명박의 의혹과 비리에 대해 신정아 보도의 10분의 1만 했더라도 이명박은 벌써 낙마했을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이명박이 차악인가? 객관적으로 이명박은 최악의 후보다. 이명박은 이회창보다도 훨씬 질이 낮은 후보다.

여현호 논설위원이 이런 글을 쓰기 2주 전쯤, 나도 이명박의 지지율이 저렇게 높은 이유라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내 글이라서 하는 얘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여현호 논설위원의 글보다는 핵심을 짚었다고 생각한다. 한겨레의 논설위원이 일개 블로거보다도 분석 능력이나 문제 파악 능력이 떨어진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명박에 대한 심층 취재와 보도는 언론의 의무다.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온 사람에 대해 언론이 검증을 하지 않는다면 누가 할 수 있단 말인가. 나같은 블로거가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한겨레는 진작 이명박의 의혹에 대해 사운을 걸고 취재를 했어야 했다. 적어도 한겨레가 조중동처럼 이명박에 줄을 서지 않았다면 말이다.

지금 한겨레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와 순발력이다. 늦은 감은 있지만 이명박에 대해 철저히 취재하고 검증하길 바란다. 이명박의 지지가 높은 이유는 한겨레 같은 언론이 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겨레의 분발을 촉구한다.

우리나라 신문들이 망할 수 밖에 없는 이유

한겨레신문 홍대선 기자의 ‘쫓기고 밀리고’ 자동차 산업 길을 잃다 라는 기사는 우리나라 기자들이 어떻게 독자들을 우롱하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라 하겠다. 이 기사는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이 쫓아오는 중국과 앞서가는 일본 사이에 끼여서 정말 어려워지고 있다는 내용이다. 물론 중국은 우리보다 기술 수준이 쳐져 있으니 우리를 쫓아오는 것은 사실이고,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있으니 우리가 그들 사이에 끼여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홍대선 기자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자료로 자신의 주장을 침소봉대하고 있다. 그가 제시한 그림을 한 번 보자.

출처: 한겨레신문

이 그래프를 언뜻 보면 일본과 중국으로의 수출이 최근 들어 급격히 감소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그래프는 눈속임이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의 데이터는 년간 수출액수이고 2007년은 1월부터 4월까지의 수출 액수이기 때문이다 (그림에는 2004년 1월~4월로 되어 있지만 이것은 2007년을 잘못 쓴 것으로 보인다).

그래프를 정확히 그리려면 2007년 평균 예상치로 이 액수에다가 3배를 해 줘야 한다. 그러면 2007년말의 년간 대중국 자동차 수출액은 8.1억 달러는 전년도 6억 달러보다 엄청난 증가를 하게 된다. 대일본 수출도 6.3억 달러로 전년도 4.7억 달러보다도 훨씬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부품 수출 또한 마찬가지다.

기자가 제시한 자료는 오히려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여 있지만 예상보다는 훨씬 선전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자료는 기자의 주장과는 정반대의 얘기를 해주고 있다.

홍대선 기자의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을 걱정하는 마음은 갸륵하다 할 수 있지만 이런 식으로 독자들을 호도하면 안된다. 이 기사는 지금도 한겨레신문 사이트 첫 헤드라인으로 걸려 있다.

한겨레신문은 제일 믿을만한 신문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신뢰도 1위의 신문조차 이런 식의 데이터 조작으로 독자들을 우롱한다면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보다 100배 먼저 시장에서 퇴출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적어도 세계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평가는 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언론은 어떤가? 이 질문이 쑥쓰러울 정도로 다른 나라의 언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질이다. 그러면서 기자들은 블로그를 까고 있다. 정말 어처구니 없지 않은가.

우리나라 신문들이 이런 식이라면 멀지 않아 신문들은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 경쟁력도 없을 뿐더러 왜곡과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신문은 더 이상 언론이라 할 수 없다. 그 자리를 블로그들이 대체할 것이다.

보도준칙까지 만든 한겨레는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다. 다른 신문들이야 더 말해야 무엇하랴.

노무현 대통령이 홍길동인가

홍길동은 서자라는 이유만으로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를 수 없었다. 봉건사회에서 신분이 천한 사람들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건 봉건사회였고, 지금은 지금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평포럼 강연을 두고 정치권과 전 언론이 들고 일어났다. 대통령의 말이 부적절하다, 선거법 위반이다, 원맨쇼 그만 해라 등 아주 난리들이다. 대통령이 홍길동이라도 되는가? 왜 그는 하고 싶은 말을 하면 안되나? 자기들은 지난 4년간 온갖 저주를 다 퍼부어 놓고 왜 대통령은 정치에 대해 말할 수 없는가? 대통령이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사실이 아닌 것을 얘기한 것도 아닌데 왜 대통령의 입을 막으려고 하는가? 그것은 바로 진실이 두렵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박근혜 한나라당 후보를 보고 “독재자의 딸”이라고 했다. 조선일보에게 묻는다. 박근혜가 독재자의 딸이 아닌가? 독립운동가의 딸인가 아니면 민주투사의 딸인가? 이것은 조선일보가 친일신문, 독재부역 신문인 것처럼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만약, 박근혜가 아버지의 잘못을 미안해 하고 사과하면서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간다면 다른 얘기지만, 박근혜는 자기 아버지의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아 그 잘난 박정희의 이름에 기대어 정치를 하고 있고,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다. 그러므로 박근혜는 제 2의 박정희나 다름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독재자의 딸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사실을 정확하게 얘기하는 것이다. 외국의 유명 언론들도 박근혜를 다 독재자의 딸로 소개하고 있지 않은가. 왜 독재자의 딸을 독재자의 딸이라 부를 수 없는지 조선일보는 대답해 보라.

대통령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대운하 사업에 대해 “제 정신 있는 사람이라면 투자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모든 언론에게 묻는다. 이명박의 경부운하라는 것이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이건 말도 안되는 공약이고, 이 문제에 대해서는 오마이뉴스를 제외한 모든 언론이 다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 이명박이 유력한 대선후보라 한다면 그가 주장하는 주요 공약에 대해 언론들이 먼저 검증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언론들은 자기 할 일들은 하지 않으면서 대통령이 이명박을 공격한다고 난리들이다. 나라를 말아먹게 생겼는데 그럼 알고도 모른척 해야 하나? 알고도 말 안하는 언론이 나쁘지, 대통령이 뭘 잘못했는가?

대통령은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책임있는 대안을 내놓은 적이 거의 없는 무책임한 정당”이라고 했다. 언론들에게 부탁한다. 지난 4년간 한나라당이 한 일이 무엇인지 한 번 조사해 보라고. 대통령 탄핵, 전효숙 반대, 사학법 반대,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신문법 반대, 예산안 통과 지연 등 정부가 하고자 하는 일마다 반대하지 않은 것이 있었는가? 하나 있긴 있다. 이라크 파병. 이런 정당이 책임있는 정당인가? 한겨레신문 어디 대답 한 번 해 보라.

왜 대통령이 사실에 근거해서 잘못된 것을 비판하는데 그것을 못하게 막으려고 하는가? 이것이 선거법과 무슨 관계가 있나? 대통령은 최고의 정치인인데 정치인이 정치에 관해 말하지 못한다? 정말 웃기는 얘기 아닌가? 진실이 두려운가? 그렇게 두려웠다면 부끄러운 짓을 하지 말았어야지.

대통령의 말이 사실에 근거하는 한 그도 언론의 자유가 있고, 정치에 대해 얘기할 수 있으며 대선 후보들에 대해 언급할 수 있다. 대통령이 어디 제대로 된 사람들을 비판한 적이 있었는가? 이명박, 박근혜가 정말 대통령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가?

한나라당이나 언론들이 그만두라고 해서 그만둘 대통령이 아니다. 대통령은 아니라고 생각되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대통령 입막음할 생각 하지 말고, 이명박, 박근혜부터 제대로 검증하란 말이다, 한겨레신문. 제발 이 따위 사설 내 갈기지 말고. 당신들은 조선일보가 아니란 말이다. 언제까지 정신 못차릴 작정인가.

한나라당이나 언론은 끝까지 대통령을 저주하겠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정치는 노무현을 중심으로 계속 돌 것이다. 미안하다, 당신들은 노무현을 이길 수 없다. 이명박, 박근혜로는 노무현 발끝도 따라갈 수 없다.

언론 자유는 언론만 누리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을 홍길동으로 만들려 하지 마라.

기자실 통폐합이 “언론탄압”이라 하는 언론들

정부가 기자실을 통폐합하겠다고 하자 자칭 진보언론이라 일컫는 한겨레를 포함하여 이 땅의 언론이라 불리는 전 언론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념의 좌우를 막론하고, 기자들이 누리는 특권과 편리함을 조금이라도 손상시키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는 그들의 기개에 숙연함마저 느껴진다. 어차피 나는 조중동을 보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뭐라 지껄이는지는 알 수도 없고 관심도 없지만, 한겨레와 오마이뉴스에도 참여정부를 비난하는 기사들로 도배되고 있다.

[한겨레신문] 소통 개선?…‘여론 수렴’ 또 건너뛰었다

[한겨레신문] ‘닫힌 정부’…정보 접근 벽 높아질라

[한겨레신문] 노대통령 발언 넉달만에 전격 ‘통폐합’

[한겨레신문] 인권침해·밀실행정 감시기능 위축

[오마이뉴스] 기자실통합? 브리핑 수준이나 올려라”

[오마이뉴스] 국민 알권리 무시한 정부로 낙인 찍히나?

기자실의 통폐합이 왜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하는 것인지, 왜 여론 수렴이 안되는 것인지, 왜 닫힌 정부가 되는 것인지, 왜 언론의 감시기능이 위축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기자실이라는 제도가 아예 없는 미국 같은 나라는 언론자유가 전혀 없는 나라이란 말인가? 기자실이 언론자유의 핵심이란 말인가? 기자실이 브리핑룸이 되면 언론은 탄압받는 것인가?

한겨레는 그나마 양심은 있는지 기자실 통폐합과 브리핑룸으로의 전환에 대한 장점을 나름대로 소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출입처 위주 취재관행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기자실 통폐합이 가져올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출입처에 매몰된 일선 기자들이 정책이나 사회현상을 큰 시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공급자 위주의 좁은 시각으로 다뤄 기사의 깊이가 얕고 일방적이라는 단점을 극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정부가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기자실 통폐합이 결과적으로 출입처 중심의 취재 시스템을 바꾸는 데 기여할 가능성이 크다”며 “기자들이 특정 출입처가 아니라 여러 부처를 넘나들며 종합적으로 취재해 심층 보도를 하는 시스템으로 바뀌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기존의 폐쇄적인 기자실 운영방식에 따른 부작용도 사라질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김창룡 인제대 언론정치학부 교수는 “과거 기자실에는 촌지 수수의 창구, 기사 담합, 폐쇄적 취재구조 형성 등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다”며 “정부의 기자실 통폐합은 언론의 부당한 정치적 개입이나 특혜를 없애겠다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서중 교수도 “기자실을 통해 언론사들이 압력단체가 된다든지, 브리핑 룸으로 바뀐 뒤에도 신생 언론사나 작은 언론사에 문턱이 높다든지 하는 폐해들을 기자실 통폐합으로 해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기적인 부작용 (예를 들면, 정부의 투명성이 낮고, 정보 공개가 안되는 것 같은) 때문에 반대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기자실이 있는 현재까지 우리나라 언론들은 얼마나 심도있는 기사들을 써 왔는지 반문하고 싶다. 스스로의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와 의도에 따라 얼마나 많은 소설같은 기사들을 생산해 왔는지 정말 알지 못한다 말인가?

정말 제대로 된 언론이고 기자들이라면 정부의 이번 조치를 환영해야 한다. 자신들이 조금 불편해 질 수 있음을 감수하고라도 투명하고 공정한 정보 취득과 심도있는 기획 취재를 해야 한다. 기자실이 이런 것을 해 주는 건 아니지 않은가? 발로 쓰는 기사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 아닌가? 요즘같이 통신 수단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 시대에 기자실이 없어서 제대로 된 기사를 쓰지 못한다고 하는 기자들은 기자 자격이 없는 것이다.

자신들의 특권과 편의가 침해받는다고 언론탄압이라 하는 그런 언론들은 진짜 언론이 아니다.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특권을 누리고자 하는 언론들이다. 이런 짝퉁 언론들을 개혁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