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wsed by
Tag: 겨울비

겨울비, 친구

겨울비, 친구

모처럼 겨울비가 촉촉히 내렸다. 매캐했던 미세먼지가 가라앉고 공기는 상쾌했다. 설 연휴, 고향에 내려온 친구들을 충북 영동에서 만났다. 생전 처음 와본 낯선 곳이었지만 전혀 낯설지 않았다.

우리들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났으니 벌써 35년이 된 사이다. 그 긴 세월 동안 우리들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꿋꿋이 버텨왔다. 언제나 한결 같은, 보석 같은 친구들이다. 이런 인연을 계속 이어올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영동의 맛집은 몹시 붐볐다. 이런 시골에서도 맛집으로 방송을 타게 되면 어디선가 사람들이 몰려온다. 한참을 기다려 먹은 탕수육과 짜장면은 소문 만큼 엄청난 것은 아니었다. 그 맛집을 다시 찾을 일은 없을 것 같다.

새로 생긴 찻집으로 자리를 옮겨 우리들은 못다 한 얘기를 나눴다. 다들 이제 직장에서 자리를 잡아 어엿한 중산층이 되어 있었다. 한 녀석은 아이를 외국으로 보내고 기러기 생활을 시작했고, 다른 녀석은 어린 아들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었다.

삶을 누구에게나 크게 다르지 않다. 하루 세 끼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일을 하고, 화장실에 가고…… 누구나 그런 삶을 산다. 차이는 그런 일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이다. 다들 지혜로운 녀석들이라 잘들 헤쳐나가리라 믿는다.

창 밖의 겨울비는 추적추적 소리 없이 내리고, 우리들은 또다른 만남을 기약했다.

방랑 규칙

방랑 규칙

다음은 바쇼가 썼다고 전해지는 방랑 규칙이다.
  1. 같은 여인숙에서 두 번 잠을 자지 말고, 아직 덥혀지지 않은 이불을 기대하라.
  2. 몸에 칼을 지니고 다니지 말라. 그렇게 해서 살아있는 것을 죽이지 말라. 같은 하늘 아래 있는 어떤 것, 같은 땅 위를 걷는 어떤 것도 해치지 말라.
  3. 옷과 일용품은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소유하지 말라. 지나침은 좋지 않으며, 부족함만 못하다.
  4. 물고기든 새 종류이든 동물이든 육식을 좋아하지 말라. 특별한 음식이나 맛에 길들여지는 것은 저급한 행동이다. ‘먹는 것이 단순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을 기억하라.
  5. 남이 청하지 않는데 스스로 시를 지어 보이지 말라. 그러나 요청을 받았을 때는 결코 거절하지 말라.
  6. 위험하거나 불편한 지역에 가더라도 여행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꼭 필요하다면 도중에 돌아서라.
  7. 말이나 가마를 타지 말라. 자신의 지팡이를 또 하나의 다리로 삼으라.
  8. 술을 마시지 말라. 어쩔 수 없이 마시더라도 한 잔을 비우고는 중단하라.
  9. 온갖 떠들썩한 자리를 피하라.
  10. 다른 사람의 약점을 지적하거나 자신의 장점을 말하지 말라. 남을 무시하고 자신을 치켜세우는 것은 가장 세속적인 짓이다.
  11. 시를 제외하고는 온갖 잡다한 것에 대한 대화를 삼가라. 그런 잡담을 나눈 뒤에는 반드시 낮잠을 자서 자신을 새롭게 하라.
  12. 이성 간의 하이쿠 시인과 친하지 말라. 하이쿠의 길은 집중에 있다. 항상 자신을 잘 들여다보라.
  13. 다른 사람의 것은 바늘 하나든 풀잎 하나든 취해서는 안 된다. 산과 강과 시내에게는 오직 하나의 주인이 있다. 이 점을 유의하라.
  14. 산과 강과 역사적인 장소들을 방문하라. 하지만 그 장소들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된다.
  15. 글자 하나라도 그대를 가르치는 사람에게 감사하라. 자신이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면 가르치지 말라. 자신의 완성을 이룬 다음에야 비로소 남을 가르칠 수 있다.
  16. 하룻밤 재워 주고 한 끼 밥을 준 사람에 대해선 절대 당연히 여기지 말라. 사람들에게 아첨하지도 말라. 그런 짓을 하는 자는 천한 자이다. 하이쿠의 길을 걷는 자는 그 길을 걷는 사람들과 교류해야 한다.
  17. 저녁에 생각하고, 아침에 생각하라. 하루가 시작될 무렵과 끝날 무렵에는 여행을 중단하라. 다른 사람들에게 수고를 끼치지 말라. 그렇게 하면 그들이 멀어진다는 것을 명심하라.
<마쓰오 바쇼, 류시화 옮김, 바쇼 하이쿠 선집, pp. 391-393>
우리의 삶은 여행이고, 우리들은 모두 나그네다.
여행자라고 이름 불리고 싶어라 초겨울비 旅人と 我名よばれん 初しぐれ
11월의 쓸쓸한 비가 겨울을 재촉하고, 우리들은 겨울나그네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