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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결혼

청첩장

청첩장

새해 들어 두 장의 청첩장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두 장 모두 안도현의 시가 적혀 있다. 20년 전과 마찬가지로 요즘 젊은이들도 사랑에 관한 안도현의 시를 많이 읽나 보다. 특히, 안도현의 <사랑한다는 것>은 결혼 전에 아내가 보내 준 시다.

청첩장을 받아 보니 풋풋했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세월이 살과 같이 흘렀다.

우리가 서로 뜨겁게 사랑한다는 것은
그대는 나의 세상을
나는 그대의 세상을
함께 짊어지고
새벽을 향해 걸어가겠다는 것입니다.

<안도현, 사랑한다는 것 中에서>

진정 내가 그대를 생각하는 만큼
새날이 밝아오고
진정 내가 그대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만큼
이 세상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
그리하여 마침내 그대와 내가
하나되어 우리라고 이름 부를 수 있는
그날이 온다면

<안도현, 그대에게 가고 싶다 中에서>

그 젊은이들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결혼 20주년

결혼 20주년

사랑하는 당신에게 당신과 결혼한지 오늘로 20년이 되었습니다. 20년 전, 당신은 화사한 봄날에 피어나는 복사꽃 같았지요. 그렇게 예쁘고 재기 발랄했던 당신과 스무 해를 같이 살았네요. 삶이 누구에게나 그렇듯, 그동안 좋은 일도 있었고 힘든 일도 있었습니다. 좋은 일은 함께 기뻐했고, 힘들고 지칠 때는 당신이 위로가 되어 주었지요. 그 모든 순간에 당신이 있었다는 사실에 얼마나 안도했는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보잘 것 없는 사내가 당신과 함께 20년을 살면서 괜찮은 중년의 아저씨가 되었습니다. 사랑을 알게 되고 행복을 깨달았으며, 좋은 아빠가 되려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당신 덕분입니다. 우리의 분신인 딸아이를 얻은 것도, 그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이제 열여덟의 예쁜 고등학생이 된 것도 모두 당신 덕입니다.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는 것은 그냥 인연이 아니라 운명이라 생각합니다. 당신이 얘기했듯, 우리는 이전 생에서 이미 여러 차례 부부나 남매의 인연을 반복해 왔는지도 모릅니다. 이번 생에서 당신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벼락 같은 행운이었고, 당신과 같이 지낸 모든 순간들이 축복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죽는 날까지 아니 그 이후의 생에서도 당신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네요. 모든 게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조금 더 성숙한 영혼이 되고 싶고 조금 더 괜찮은 남편이 되고 싶습니다. 결혼 20주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당신이 맨날 말로만 때우냐고 구박할 것 같아 칼릴 지브란이 쓴 결혼에 관한 시 한 편을 보냅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영원히 함께 할 겁니다. 사랑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두 사람은 함께 태어나서 영원히 함께 할 것입니다. 죽음의 흰 날개가 두 사람의 날들을 흩뜨려버릴 때에도 두 사람은 함께 할 것입니다. 그래요, 두 사람은 신의 고요한 기억 속에서도 함께 할 것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 하되 거리를 두십시오. 하늘 바람이 두 사람 사이에서 춤추게 하십시오. 서로 사랑하되 구속하지 마십시오. 사랑이 두 사람 영혼 사이에서 출렁이는 바다가 되게 하십시오.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 잔에서만 마시지 마십시오. 서로에게 빵을 나누되 한쪽 빵만을 먹지 마십시오.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기뻐하되 각각 혼자이게 하십시오. 마치 거문고의 줄들이 같은 노래로 함께 울릴지라도 각각 혼자이듯이. 서로 마음을 주십시오. 그러나 그 마음을 묶어 놓지는 마십시오. 저 위대한 생명의 손길만이 그 마음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함께 서십시오. 그러나 너무 가까이 있지는 마십시오. 성전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서는 자랄 수 없습니다. <칼릴 지브란, 결혼에 대하여>
주례사

주례사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많은 나이가 되었지만, 결혼 주례를 맡기에는 아직 삶의 경륜과 깊이가 모자라 주저하였다. 하지만, 이미 2년 전에 처음 주례를 했었고, 신랑, 신부를 모두 잘 아는 처지라 거절할 수 없었다.

신랑, 신부는 슬기롭고 신의있는 친구들이라 별 얘기를 하지 않아도 평생 행복하게 잘 살 거라 생각했지만, 결혼이란 것이 보통 일생에 한 번 있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니, 그 순간을 특별하게 기억할 수 있는 말을 해 주고 싶었다.

<전략>

결혼식에 가보면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곤 합니다. 부부가 일심동체로 산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사는 부부는 많지 않습니다. 눈에 콩깍지가 씌어 사랑하고 결혼했지만, 30년 가까이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두 사람이 갑자기 부부가 되었다고 한마음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아니 일심동체로 사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입니다.

이제 막 남편과 아내로 시작하는 신랑 신부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남편이나 아내를 자신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바꾸려고 애쓰지 말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기 바랍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두 사람은 닮아있을 겁니다. 겉모습도 닮을 것이고, 마음 씀씀이도 닮을 것이며, 인생의 목표도 닮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바라는 일심동체의 부부가 되겠지요. 하지만, 그 시작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 있습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쓴 단편 중에 <세 가지 질문>이라는 짧은 우화가 있습니다. 그 글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화두가 나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일까?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첫 번째 질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일까요? 그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입니다. 지나간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가불하지 마십시오. 행복의 시작은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후회 없이 즐기고 누리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두 번째 질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 사람은 바로 “지금 이 순간 당신과 함께 있는 사람”입니다. 신랑에게는 신부가, 신부에게는 신랑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입니다. 부모님께는 섭섭하게 들릴지 몰라도, 오늘부터 두 사람에게는 서로가 서로에게 부모님보다도 더 소중한 존재입니다. 마지막 질문에 답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지금 이 순간 바로 당신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신랑 신부는 오늘부터 늘 함께 하면서 서로를 위해 좋은 일을 하십시오. 그리하여 그 사랑과 행복이 널리 퍼져, 다른 사람들도 신랑 신부의 모습을 보면서 행복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길 바랍니다.

행복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파랑새입니다.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오늘 결혼하는 신랑 신부는 한 순간도 놓치지 말고 후회 없이 누리시길 바랍니다.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임을 깨닫고, 서로에게 좋은 일을 하십시오. 그리하면 두 사람의 인생은 행복으로 가득 차리라 확신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좋아하는 사랑과 결혼에 관한 시 한 편을 신랑 신부에게 선물하며, 이 주례사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길가에 민들레 한송이 피어나면
꽃잎으로 온 하늘을 다 받치고 살듯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오직 한 사람을 사무치게 사랑한다는 것은
이 세상 전체를
비로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차고 맑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우리가 서로 뜨겁게 사랑한다는 것은
그대는 나의 세상을
나는 그대의 세상을
함께 짊어지고
새벽을 향해 걸어가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신랑과 신부는 서로의 세상을 함께 짊어지고 새로운 삶을 향해 힘차게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저를 포함한 여기 있는 모든 분들은 신랑 신부가 걸어갈 삶의 여정에 늘 건강과 평안과 행복이 가득하길 기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내에게 불러주고 싶은 노래

아내에게 불러주고 싶은 노래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말했다. 너의 장미가 너에게 그토록 소중한 이유는 그 장미와 함께 한 시간때문이라고. 여우가 한 말은 맞는 말이지만, 사실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어린왕자와 그 장미가 그렇게 소중한 시간을 같이 보내도록 운명지워졌다는 것.

나는 남녀의 사랑과 결혼에 관해서는 운명론자다. 그 무수한 가능성과 확률을 뚫고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평생을 같이한다는 것은 “운명” 말고 다른 것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한 인연은 전생에서부터 미리 결정되어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속편한 일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아내와 결혼을 한지 꼭 10년째 되는 날이다. 우리 부부는 무슨 기념일을 챙기는 편이 아니지만, 10년이라는 세월 앞에서는 감개무량함을 감출 수 없다. 돌아보면, 살과 같이 흐른 지난 세월이 마치 꿈만 같다. 우리는 그 세월을 별 탈없이 살아왔다. 딸아이가 생겼고, 그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 우리들은 어느덧 학부형이 되었다. 재기발랄하고 풋풋했던 20대는 아니지만, 이제 삶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를 어렴풋이나마 깨달은 중년은 소중하다.

아내가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결혼 초였던가. 공원 벤치에 앉아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단팥빵을 나누어 먹었던 일. 그러면서 우리는 늙어서도 이런 부부가 되자고 얘기했었던 일. 우리는 노인이 되어서도 그런 부부가 될 것이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아내는 나에게 까불까불 할 것이고, 할아버지가 된 나는 아내의 그런 쾌활함을 즐길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단팥빵을 나누어 먹을 것이다.

아내와 나의 사랑이 10년이라는 나이테를 둘러 꽤나 틈실해졌다. 이제 예전처럼 바람이 불고 비가 온다 하더라도 여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그런 성숙함과 중후함이 보인다. 그렇다. 나이는 그냥 먹는 것이 아니고, 시간은 그냥 흐르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았다.

(아내가 늘 강조하는 것이지만) 나는 운이 좋은 놈이다. 아내처럼 예쁘고 현명한 여자와 평생 함께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아내를 닮은 예쁘고 똘똘한 딸을 얻었으니 말이다. 행복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잘해왔듯이 앞으로도 그렇게 잘 살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집착하지 않고 되도록 단순하고 소박하게 그렇게 살 것이다.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풍요롭게 하는지 우리는 지난 10년을 함께 배워왔다.

결혼 10주년에 아내에게 불러주고 싶은 노래가 있다. 아내가 늘 듣고 싶어하던 노래. 아내는 윤도현보다도 내가 더 이 노래를 잘 한다고 얘기했었지. 사실일 것이다. 내겐 너무 소중한 아내, 내겐 너무 행복한 당신. 앞으로의 10년은 더 행복한 시간이 될거야. 그렇지?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

나의 하루를 가만히 닫아주는 너
은은한 달빛 따라 너의 모습 사라지고
홀로 남은 골목길엔 수줍은 내 마음만

나의 아픔을 가만히 안아주는 너
눈물 흘린 시간 뒤엔 언제나 네가 있어
상처받은 내 영혼에 따뜻한 네 손길만

처음엔 그냥 친군 줄만 알았어
아무 색깔 없이 언제나 영원하길
또 다시 사랑이라 부르진 않아
아무 아픔 없이 너만은 행복하길
워우워우 예~~~

널 만나면 말 없이 있어도
또 하나의 나처럼 편안했던 거야

널 만나면 순수한 네 모습에
철없는 아이처럼 잊었던 거야

내겐 너무 소중한 너
내겐 너무 행복한 너

<윤도현 밴드, 사랑 Two>

블로그로 중매서기

블로그로 중매서기

3주 전쯤에 “아내를 사랑하는 이유”라는 글을 썼다. 이 글은 출근길에 우연히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라는 노래를 듣다가 울컥해져서 썼던 글이다. 공교롭게도 이 글에 세 분이 댓글을 주셨는데, 한 분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계신 어느 목사님이었고, 다른 두 분은 아직은 결혼 전인 분들이었다. 미혼이신 이 두 분의 블로거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거의 없다. 가끔 그분들의 블로그를 찾아 가서 글을 읽을 뿐이었다. 따라서 그분들의 글을 통해서 대강 어떤 블로거들일까 그냥 내 짐작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아직 노총각이라고 밝힌 남성 블로거는 블로그계에서는 꽤나 잘 알려진 유명한 분이다. 블로거로서 방송에도 섭외되어 인터뷰를 하실 정도니까. 게다가 그 분의 박학다식하고 사려깊은 글들은 나를 포함한 많은 블로거들을 사로잡고 있다. 가칭 연애 상담 전문 블로그를 운영하고 계시는 여성 블로거는 블로그계에 들어온지 얼마 안되는 초보 블로거다.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아주 신선하고 흥미로운 글을 썼고, 내가 우연히 그 글을 읽고 “좋은 남자 고르는 법”이라는 관련글을 보냈다. 굳이 불교 말씀을 꺼내지 않더라도 나는 살면서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편이다. 내 블로그에 올린 결혼과 사랑에 관련된 글에 두 분의 선남선녀가 댓글을 주셨고, 어떤 우주의 인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나는 이 두 분을 연결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불현듯 하게 되었다. 블로그계에서 이런 프로젝트는 아마 처음인 것 같고, 두 분의 블로거에게 결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 분들의 필명조차 적지 않았지만, 나는 두 분이 현재 교제하는 사람이 없다면, (굳이 결혼을 전제하지 않더라도) 한 번 서로 교신해 보는 것은 어떨지 정중하게 제의해 본다. 서로의 블로그를 찾아 댓글을 남기거나 관련글을 보내고, 이메일 주소나 휴대전화 번호 등을 교환하여 한 번 만나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내가 두 분의 블로거를 개인적으로 아는 것도 아니라서 상당히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그냥 나는 나의 본능이 시키는대로 하고 있다. 사실 이 글은 벌써부터 쓰려고 했는데, 연말에 개인적으로 바빠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새해에 두 분에게 좋은 소식이 있었으면 좋겠다. 좋은 상대를 만나 결혼하는 것은 결혼을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행복해 질 수 있는 지름길이다. 문제는 좋은 상대를 어떻게 만나느냐는 것인데, 거기에는 운명이란 것이 복선처럼 깔려 있다. 이 글이 두 분에게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새해에는 두 분 다 더욱 행복하세요. 😉
좋은 남자 고르는 법

좋은 남자 고르는 법

나리 님의 블로그에서 우리는 왜 나쁜 남자에게 빠질까?라는 신선하고 재미있는 글을 읽었다. 남녀관계는 어떤 경우든 다 각각 그 이유와 상황이 다르기에 일반적인 경향으로 정리하는 것이 큰 도움이 안 되고 때론 위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류가 시작되고 인류가 멸망하는 날까지 인간들 사이에 가장 많이 회자되고 갈구하게 되는 것은 역시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이야기이기에 이것은 아주 중요하고 흥미로운 주제이기도 하다.

경험에 비추어 내가 발견한 몇 가지 사실을 여자들에게 전한다. 물론 이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일반화하기 곤란하고,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냥 재미삼아 몇자 적어본다.

생물학적으로 남자들은 여자들에 비해 열등하다. 신체적인 완력은 남자들이 강하지만, 그 이외에 거의 모든 부분에서 남자들은 여자들을 당해낼 수 없다. 남자들은 대개 새로운 환경에 적응력이 약하고 극한 상황을 잘 참지 못한다. 남자들은 대개 즉자적이며 호전적이다. 결정적으로 남자들은 아이를 낳지 못한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 남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정자를 제공하는것 밖에는 없다. 이것은 남자들이 여자들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원초적 열등의식이다. 여자들은 남자들의 정자를 빌어와 아이를 만들 수 있지만, 남자들은 아무리 여자들의 난자를 빌어온다 하더라도 아이를 품을 수 없다. (물론, 남자들의 몸에 자궁을 넣을수 있는 기술이 생긴다면 얘기가 조금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원시사회는 우리가 알다시피 모계 중심 사회였다. 종족의 보존과 번성이 사회의 주요 임무이었기에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자들이 대접받고 권력을 잡았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이후 남자들은 피비린내나는 전쟁을 통해 권력을 쟁취하게 되고, 남성 중심의 사회 제도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 전통은 수천년을 지나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 사회가 많이 변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봉건적인 모습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대한민국은 남성 중심 사회이다. 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자들은 이미 여자들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엄마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여자친구의 입김에서, 그리고 결혼을 해서는 아내의 지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겉보기는 지극히 남자 중심으로 보이는 사회지만, 그 속은 이미 여자들이 점령했고, 이제는 겉에 보이는 사회 구조까지 여자들에게 넘어가고 있는 추세다. 머지 않아 인류는 모계 중심 사회로 되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사실 남자들은 이런 사실에 대해 몹시 두려워하면서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일종의 방어기제다.)

이런 상황을 전제로 지금까지 관찰한 몇 가지 사실을 얘기해 보면, 우선 열등한 남자들이 여자들을 행복하게해 주는 경우는 몹시 드물다는 것이다. 한다 하더라도 그건은 아주 일시적인 것이고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그런 물질적, 정신적 행복을 바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백마를 타고 오는 왕자님은 없을 뿐더러 설령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백설공주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지 일반 여자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는 것이다.

여자들의 행복은 남자들로부터 전해지는 것이 아니고 여자들 스스로 만들고 찾아가는 것이다. 남자들의 선물이나 근사한 프로포즈를 기대하지 말고, 마음에 드는 녀석들을 적극적으로 골라라. 그리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남자들에게 종속되지 말고, 남자들을 지배하라. 그럴려면 우선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이 필수다.

여자들에게 선물 공세와 사탕발림을 하는 남자들은 대개 별 볼일 없는 남자들이다. 그런 남자와 결혼한 여자일수록 결혼 후에 변하는 남자들의 행동에 분개하고 실망하기 마련이다. 연애할 때 일방적으로 잘하는 남자들은 사실 좀 위험하다. 그들은 결혼 후에 그런 일방적인 행위에 대한 보상을 요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녀와 나무꾼”에 나오는 나무꾼 증후군이라고나 할까. 기본적으로 관계는 상호적이어야 한다.

좋은 남자는 말이 통하는 남자다. 잘생긴 남자도, 돈이 많은 남자도 아니고,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남자다. 살아온 경험이 비슷하고, 지향이 비슷하고, 취미가 비슷하면 말이 통할 확률이 높다. 이 남자와 내가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 앞으로 얼마나 많이 맞춰갈수 있을지 가늠해 보라.

무엇보다는 남자를 알려면 여러 남자들을 만나봐야 한다. 사랑도 해보고, 배신도 당해보고, 이별도 해보면서 알아가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리고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사람도 변하고, 사랑도 변하고, 나 자신도 변한다. 남자이기 이전에 같은 인간으로서 신뢰를 쌓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 세상 경험을 많이 하게 되고, 나이를 먹다 보면 사람에 대해 그런 면면이 보이기 시작한다.

산전수전 겪다보면 이제 당신은 나쁜 남자를 판단할 수 있는 눈이 생기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혜안을 갖게 되었을 때 이미 당신은 예전의 그 파릇파릇하고 싱그러운 여자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랴, 그것이 인생인 것을.

태어나서 지금껏 만난 여자들(어머니와 아내를 포함하여)은 대개 남자들보다도 훨씬 뛰어나거나 사려깊은 이들이었다. 그런 행운에 감사하며, 그런 사려 깊은 여자들을 존경한다. 세상을 여자들이 지배하기 시작하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은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여 나는 새로운 모계 중심 사회를 꿈꿔 본다.

아내는 예뻤다

아내는 예뻤다

결혼 전 아내는 싱그러웠다. 화사한 복사꽃처럼 발그레한 그의 얼굴에서 향긋한 봄날의 냄새가 났다. 결혼 전의 여자들이 대개 그렇겠지만, 아내는 나의 눈에 햇살 비치기 전 풀잎에 달린 맑은 이슬처럼 보였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런 것이다.

나는 아직도 큰 길 건너 저 멀리 걸어가는 아내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키가 큰 아내가 겅정거리며 걸어가는 뒷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의 뒤태는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에서도 빛이 났다.

아내는 참으로 발랄했고, 재치있었다. 그리고 때로는 덤벙댔다. 그것들은 내가 가지지 못한, 그리고 내가 때로는 부러워했던 그런 것들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애어른처럼 굴었던 나는 늘 맏이처럼 행동했고, 늘 느긋했다. 그런 내게 아내의 재기 발랄은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아내는 글을 잘 썼고, 많이 썼다. 내게도 많은 메일을 보내 왔다. 그의 메일을 읽는 것은 그날 하루의 큰 기쁨 중의 하나였다. 지금은 그 많은 글들이 다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며칠 전 아내는 그 당시 자기가 썼던 시 한편을 찾아 보내왔다. 그 시를 읽어 보니 우리가 결혼 전 만났던 그 순간순간들이 눈에 어렸다. 우리에게도 그렇게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었다. 가슴 뭉클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더라도 잊지 말았으면 하는그 순간들. 아내의 시와 함께 고이 간직하고 싶다.

비가 오면

비가 오면
사람들은 빨래를 걷는다
나의 그는
비가 오면 방구석에 처박힌 빨래감을
주렁주렁 빨래줄에 내다 널 것 같은 사람

비가 오면
사람들은 우산을 쓴다
나의 그는
비어 젖어 제 색을 더해가는 녹음진 공원에 앉아
한 없이 함께 젖어 갈 것 같은 사람

비가 오면
나는
그가 보고 싶은 간절함이
맘 속에 빗물처럼 고여
열번이 넘게 간 신호에도
수화기를 놓지 못하는
바보가 된다

아내와 결혼한 지 벌써 10여년이 된다. 세월이 그의 싱그러움을 조금 가져가 버렸지만 여전히 내게는 예쁜 아내이고, 고마운 아내다. 사랑해,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