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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기독교

살아 있는 맘몬

살아 있는 맘몬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든지, 한쪽을 귀중히 여기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맘몬(재물)을 같이 섬길 수 없다.

No one can serve two masters; for either he will hate the one and love the other, or else he will be loyal to the one and despise the other. You cannot serve God and mammon.

<마태복음 6:24>

탐욕의 화신을 기독교 성서는 맘몬(Mommon)이라 부른다. 하늘에서 떨어진 타락천사 중에서 맘몬처럼 치사한 근성을 가진 자는 없었다. 맘몬이 살아있다면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다스의 실소유주가 이명박임이 밝혀졌다. 이것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명박은 죽기 전에 자신의 죄값을 치루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그의 유일한 존재 이유이다. 이명박은 살아 있는 맘몬이다.

예수의 기도

예수의 기도

흔히 기독교에서 “주님의 기도”로 알려져 있는 예수가 가르친 기도문이다. 마태복음 6장 9절에서 13절에 나와 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으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이 세상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소서.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우리가 용서해 준 것처럼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우리들을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으로부터 구원해 주소서.

Our Father in heaven, may your name be kept holy. May your Kingdom come soon. May your will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Give us today the food we need, and forgive us our sins, as we have forgiven those who sin against us. And don’t let us yield to temptation, but rescue us from the evil one.

<마태복음 6:9-13>

문창극의 참극과 “하나님의 뜻”

문창극의 참극과 “하나님의 뜻”

일본군 장교의 딸이자 남로당 군총책의 딸, 그리고 헌법유린 쿠데타 수괴의 딸인 박근혜가 국무총리 후보로 전직 언론인 출신인 듣보잡 문창극을 지명하였는데, 이 자의 과거 언행은 박근혜와 김기춘 일당을 기쁘게 하기에 충분한 바, 박근혜 정권의 총리로는 이보다 더 좋은 후보를 찾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 할 것이고, 문창극이 지껄인 것처럼 일본의 식민지배와 남북분단이 모두 “하나님의 뜻”이었듯이, 문창극이 총리 후보로 지명되면서 본인이 게으르고 무지하다고 폄하하고 조롱했던 무지몽매한 조선반도 국민들로부터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된 것도 모두 “하나님의 뜻”일 것이고, 이런 쓰레기 같은 인간을 보수라고 한다면 이 땅의 보수라 불리는 모든 인간들도 도매금으로 쓰레기로 취급될 것이니 그것 또한 “하나님의 뜻”일 것이며, 이런 인간을 기독교 장로로 인정한다면 이 땅의 기독교인들도 개독이라 매도될 것이니 그것 또한 “하나님의 뜻”일 것인데, 문제는 문창극의 이런 쓰레기 같은 역사 인식이 비단 문창극 일인의 문제가 아니고 이 땅의 지배계급이란 불리는 친일 군부독재 기회주의 세력의 공통된 인식인 바, 그 자들은 아무런 죄의식도 느끼지 못할 뿐더러 어떤 선거든 묻지마 투표를 자행하는 30%의 자칭 어르신들을 볼모 삼아 앞으로도 시궁창 같은 주둥아리로 똥물보다 더 더러운 막말을 쏟아낼 것인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도 그 모습이 지극히 아름답지 못하여 벼락과 광풍과 폭우와 우박으로 저 부끄러움을 모르는 탐욕스러운 족속들을 벌하고자 하시었으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하나님 본인조차 헷갈리시어서, 오늘도 이 땅의 참극은 계속될지어다. 아멘.

예수를 닮고자 하는 이들에게 권하는 책

예수를 닮고자 하는 이들에게 권하는 책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람 중 하나는 예수다. 그의 존재로 말미암아 인류의 역사는 예수 이전과 예수 이후로 나뉘었다. 그는 팔레스타인의 한 마굿간에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세상에 왔으나, 세상은 그를 견딜 수 없었고 그를 십자가에 매달았다. 그리고 세상은 그를 신의 아들로 만들었다.

그가 광야로부터 세상에 왔을 때, 사람들은 그를 외면했다. 사람들은 그를 인정할 수 없었다. 수천 년 동안 메시아를 기다려온 사람들이었다. 인류의 구원자를 기다려온 사람들이 정작 그가 나타나자 그에게서 달아나려 했다. 사람들에게 그는 이방인이었고, 걸인이었고, 위험한 혁명가일 뿐이었다. 그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을 의미했다. 모든 욕망을 버리고,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두려웠다. 그의 가르침이 두려웠다. 진리가 두려웠다. 그래서 그를 죽여야만 했다. 십자가에 못박아서 죽여야만 했다.

그가 죽었어도 그의 가르침은 남았다. 말씀으로 남아 회자되기 시작했다. 그가 죽었어도 그의 존재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 누구도 예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를 외면하고 싶은데, 외면해야만 하는데, 그의 말씀은 주홍글씨로 남아 사람들의 가슴을 도려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의 말씀을 견딜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그의 말씀으로부터 벗어나는 법을 깨달았다. 그를 신의 아들로 올리고, 그의 말씀 중 견딜 수 있는 것만 골라 경전을 만들었으며, 그 경전에 대한 해석을 특권화했다. 간교한 사람들은 예수를 팔아 장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천 년이 흘렀다.

많은 교회들이 여전히 예수를 팔았고, 사람들은 위로를 얻으러 교회에 갔다. 예수는 신의 아들이 되었지만, 그의 가르침은 거세되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의 가르침은 간교한 사람들로 말미암아 기복으로 전락했다. 사람들은 부자가 되기 위해 예수에게 기도를 했고, 권력을 얻기 위해 교회에 갔다. 예수는 가진 자들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주 드물게 예수의 말씀을 깨닫는 이들이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영적 스승, 구도자, 신비가 등으로 불렸고, 예수의 원래 가르침을 복기하려 했다. 오쇼 라즈니쉬의 “도마 복음 강의”도 그런 시도 중 하나다. 예수 믿고 구원받으려는 사람들이 아니고, 예수를 닮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읽어야할 책이다. 역자인 류시화는 책에 나타난 예수의 가르침을 이렇게 요약했다.

나를 추종하지 말고 나처럼 되라.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하느님의 씨앗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고통을 겪는 것은 죄 때문이 아니라 무지 때문이다. 진정한 자아를 아는 것이 곧 하느님을 아는 것이며, 자아와 신성은 동일하다.

[도마 복음 강의 서문 중에서]

모든 가르침이 일관되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니.” 진리는 이미 수천년 전에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세상을 구원할 진리가 이미 전해졌음에도 사람들은 그것을 외면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진리를 찾아 헤매고 있고, 여전히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누구든지 이 말씀들의 속뜻을 발견하는 사람은 죽음을 경험하지 않으리라.

[도마 복음 1절]

예수는 이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황금률이 사라진 종교

황금률이 사라진 종교

예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 그가 남긴 말씀과 행적들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지켜야 될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들에 대한 진리들이다. 그 진리는 지극히 단순하지만, 그것을 실천하기란 만만치 않다. 황금률이라 알려진 다음의 말씀도 그 중 하나이다.

너희는 다른 사람이 네게 해 주길 바라는 대로 다른 사람에게 해 주어라.

<누가복음 6:31>

다른 사람이 너희에게 해 주었으면 하는 대로, 너희가 다른 사람들에게 모두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내용이다.

<마태복음 7:12>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예수의 그 높은 경지를 따라갈 수는 없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이 네게 해 주길 바라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자세이다. 그런데, 예수가 이런 말씀을 하시기 500년 전쯤, 중국의 공자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子貢 問曰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子曰 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

자공이 여쭈었다. “한 마디 말로 평생토록 실천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서(恕)로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이다.”

<논어 위령공:23>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도리는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이야기되어 왔고, 기독교를 포함한 거의 모든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가르쳐왔다. 문제는 그런 인간의 도리를 가르치는 종교가 아니고, 그 종교를 믿는다고 주장하는 인간들의 행태이다.

우리나라 개신교의 한 목사가 “스님들이 빨리 예수를 믿어야 한다”며 설레발을 쳤다. 이런 자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증거하는 예수의 제자들이 아니고, 예수를 모욕하고, 예수를 팔아 장사하는 자들이다.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하겠다고 한 자가 대통령이 되는 나라이니, 저런 목사같지 않은 목사들이 날뛰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만약, 어느 유명한 스님이 우리나라 목사들은 빨리 부처를 믿어야 한다, 기독교가 들어간 나라는 다 못산다라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면 이 땅의 개신교도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아마 사찰마다 난리가 났을 것이다. 안 봐도 비디오 아닌가.

성숙한 종교인들은 다른 이들의 종교도 부정하지 않는다. 올라가는 길은 조금씩 다르지만 (많이 다른 것도 아니다) 그 정상에서는 다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다른 이들의 종교를 부정하는 자들은 자신의 종교도 부정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예수의 가르침이고, 부처의 가르침이며, 공자의 가르침이다.

지역과 이념과 계급 갈등으로 시달려온 이 한반도에 종교 갈등이라는 또다른 갈등이 추가되었다. 불과 6개월만에 이 나라는 끝모를 나락으로 끊임없이 추락하고 있다. 이미 예견되었던 일이라 놀랍지도 않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다시 희망을 세워나가냐는 것이다. 절망이 깊어지면, 다시 희망이 찾아 올 것인가.

예수는 성탄절을 기뻐하실까

예수는 성탄절을 기뻐하실까

유대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민족으로 일컬어진다. 마르크스,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등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석학들을 배출해낸 민족이고, 지금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을 막후에서 움직이는 민족이 유대인들이다. 명석한 두뇌, 고난과 역경을 기회로 바꾸는 도전 정신, 세계 제일의 교육열 등은 훌륭한 유대인들을 배출하는 동력이 되었다.

이렇게 명석하고 똑똑한 민족이지만, 그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적지 않은 과오를 발견하게 된다. 모세는 약 400여년간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을 홍해까지 갈라가면서 구해내지만, 정작 이집트에서 탈출한 유대인들은 모세를 믿지 않았다. 단 열흘이면 도착할 수 있었던 가나안 땅을 가지 못하고, 유대인들은 40여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게 된다.

유대인들이 배출해낸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인 예수도 그가 태어난지 2000년이 지나도록 유대인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 얼마나 지독한 역설이란 말인가. 그 수많은 이적을 행하고, 인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가르침을 행한 하느님의 아들이자 인간의 아들인 예수는 고향 사람들인 유대인들에 의해 십자가에 매달렸다. 그 유대인들은 아직도 예수를 외면하면서 구원의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 민족도 유대인들에게 버금갈만한 똑똑하고 부지런한 민족이다. 그 수많은 외세의 침략과 고난을 당하면서도 반만년동안 꿋꿋히 나라를 지켜온 민족이며, 20세기 들어와서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유일한 민족이다. 아마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민족은 단연코 우리 민족일 것이다.

훌륭한 지도자들을 거세하고 제거한 것은 비단 유대인들뿐만 아니었다. 우리 역사도 유대인 못지 않은 과오가 있었다. 조선 시대만 보더라도 조광조가 제거되었고, 정약용이 유배되었으며, 정조 이산이 독살되었다. 해방 이후 김구가 암살되었고, 여운형, 조봉암, 신익희가 뜻을 펴지 못한 채 사라졌으며 장준하가 살해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유대 민족이나 우리 민족 전체가 이런 훌륭한 인물들을 배척한 것은 아니었다. 늘 그 시대의 부도덕한 주류세력들이 그들의 정치적 권력과 탐욕을 지키기 위해 개혁 세력들의 지도자를 제거한 것이었다.

유대인들에게 버림받은 예수는 이억 만리 바다 건너 한반도에서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 땅 대형 교회의 목사들과 주류 세력들은 예수의 이름을 팔아 장사를 하고 있다. 예수는 가진 자들의 이익을 지켜주는 주류 이데올로기의 대명사가 되었고, 서울을 봉헌한 어느 기독교 정치인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팔레스타인에서 외면받은 예수는 한반도에서 또다른 방식으로 거세되어 버린 것이다.

팔레스타인이든, 한반도든 사회적 약자와 가지지 못한 자들의 예수는 발붙이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아니 그런 세상이 된 것이 아니고 원래 그런 세상이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런 부도덕의 댓가를 직접적으로 치뤄야 하는 사람들은 예수를 거세시킨 주류세력들이 아니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그들의 부도덕을 추인해버린 어리석은 백성들이란 사실이다.

2007번째 생일을 맞은 예수는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납치된 한국인 중 또 한 명이 살해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정말로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더 답답한 것은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에 특사를 보내 협상을 하고 있지만 이 협상이 성공하기는 정말 힘들어 보인다. 아프간 정부도 탈레반의 요구를 쉽사리 들어줄 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인질들은 하루에 한 명씩 살해될 것이고, 그것을 빌미로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군은 탈레반의 거점을 초토화시킬 것이며, 그 와중에 죄없는 민간인 수백 아니 수천명이 또 목숨을 잃을 것이다.

한국 정부와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과 미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다. 미국의 승인이 없으면 탈레반이 요구한 수감자 석방을 들어줄 수 없다. 그런데 오늘도 미국은 테러리스트와 협상은 없다라는 원칙만 되풀이하고 있다. 미국인이 인질로 잡힌 것도 아니기 때문에 뒷짐만 지고 있는 형국이다. 아프간 정부도 미국의 승인이 없이 탈레반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때문에 지금의 협상은 큰 결실을 맺기 힘들고, 시간이 갈수록 탈레반에 의해 살해되든 아니면 건강이 악화되어 죽게되든 납치된 사람들만 희생되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탈레반과 미국이다. 그러므로 납치된 사람들을 몇 명이라도 구출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미국을 설득해서 탈레반의 요구사항을 수용하게 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탈레반을 설득해서 그들의 요구를 낮추거나 취하하게 하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미국 정부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미국 국민과 여론이다. 미국 국민들을 움직일 수 있다면 미국 정부도 자신들의 원칙만을 고수할 수는 없다. 미국은 기독교 국가이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나서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봉사든 선교든 간에 납치된 사람들을 아프가니스탄에 보낸 한국의 교회들이 앞장서야 한다. 한국의 기독교인 중에 갈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은 미국 워싱턴에 가라. 그리고 백악관 앞에서 금식하며 기도하라.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때까지 기도하고 또 기도하라.

이교도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겠다고 전쟁 중인 아프가니스탄에 봉사단원을 보낸 사람들이 왜 같은 종교를 가진 미국 국민들을 설득하지 못하는가. 지금처럼 정부에게만 맡겨 놓을 일이 아니다. 물론 정부도 모든 외교 채널을 동원하여 미국과 얘기하고 있겠지만,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정말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납치된 사람들을 걱정한다면 지금이라도 미국으로 달려가 미국 국민과 여론에 호소하라. 결자해지라 하지 않았는가. 샘물교회 교인들부터 미국 설득에 앞장서라. 지금 열쇠를 쥐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다.

그와 동시에 탈레반을 설득하라. 탈레반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다. 꾸란의 가르침을 목숨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지금 탈레반이 하고 있는 짓들은 이슬람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꾸란의 가르침으로 그들을 설득하자. 그들이 저지르고 있는 이 납치극이 과연 알라의 뜻과 합당한지 아닌지 알려줘야 한다. 꾸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타인과 그리고 지상에 아무런 해악을 끼치지 아니한 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살해하는 것은 모든 백성을 살해하는 것과 같으며 또한 한 사람을 구제하는 것은 모든 백성을 구제하는 것과도 같다 하였으매 그리하여 선지자들이 말씀을 가지고 너희에게 오셨노라

[꾸란 5:32]

이슬람 국가들의 여론에 호소하여 탈레반을 설득하는 수 밖에 없다. 그들의 행위가 꾸란에 어떻게 어긋나고 있는지 얘기해야 한다. 지금 아픈 사람만이라도 풀려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벌써 보름이 흘렀다. 시간이 더 지나면 그들이 살해하지 않더라도 건강이 악화되어 죽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 있다. 서둘러야 한다.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며 언제나 비가 온다고 한다. 그것은 인디언들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라 한다. 전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를 자랑하는 한국의 기독교인들이여. 이제 더 이상 방관만 하지 말고 미국 설득에 앞장서라. 당신의 형제들이 지금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죽고 있지 않은가. 무슬림들을 기독교인으로 개종시키겠다는 그 용기로 미국 국민들을 설득하라. 미국의 기독교인들을 설득하라.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인디언들처럼.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종교는 진정한 종교가 아니다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종교는 진정한 종교가 아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이 납치되었다 한다. 그 젊은이들은 선교와 봉사 활동을 하러 그 위험한 지역에 들어간 사람들이다. 추측컨대 그들 대부분은 착하고 순수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일게다. 그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도한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 기독교 지도자들은 이슬람 지역 같이 다른 종교를 믿는 곳에서의 선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여러 종교가 있지만, 그 중 기독교의 배타성은 으뜸이라 하겠다. 다른 모든 종교를 우상 숭배라고 폄하하면서 하나님만이 모든 죄를 사하고 구원해 줄 것이라고 말한다. 교회를 다니지 않고는 구원을 받을 수도 천국에 갈 수도 없다고 한다.

기독교와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형제 종교들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이나 유대교의 여호와나 이슬람교의 알라는 부르는 이름만 다를 뿐 같은 신이다. 그들이 인정하는 선지자들이 다를 뿐 그 뿌리는 한군데이다. 이슬람교를 믿는다고, 유대교를 믿는다고 구원받지 못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들이 얘기하는 신은 모두 하나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기독교가 자신들의 종교만이 옳은 종교이고, 다른 종교들은 모두 이단이고 사교이고 우상 숭배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이번 사건과 같은 일은 계속될 것 같다. 물론 납치가 옳다는 것도 아니고, 기독교의 종교 활동 자유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상대에 대한 예의는 갖추어야 할 것이 아닌가. 한겨레신문의 ‘한국=기독교 선교’ 인식 탓 피해 가능성이란 기사를 보고 나는 정말 놀랐다.

한국 개신교 신자 1300여명은 지난해 8월 아프간에서 축제를 벌이려다가, 추방 직전에 행사를 취소한 바 있다. 당시 아프간 대통령까지 나서 추방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2002년부터 3년 동안 카불에서 봉사했던, 한국제이티에스의 유정길씨는 “선교단체들이 심지어 무슬림사원에서 통성기도를 하고 찬송가를 부르는 장면을 공표하기도 했다”며 “이를 통해 한국인들이 모두 개신교 선교사로 인식돼 한국인들이 테러의 표적이 떠올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무슬림 사원에서 찬송가를 부르고 통성 기도를 하는 개신교 신자들을 그 나라 사람들은 어떤 눈으로 보았을까. 정말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러 온 사도들로 보았을까? 아닐 것이다. 자신들의 종교를 부정하고 파괴하러 온 침략자들로 보았을 것이다.

다른 종교를 부정하고 오직 기독교만이 유일 정통 종교라고 주장하고 위와 같은 양식없는 행동을 한다면 기독교만 고립되고 인정받지 못하며 지탄을 받을 뿐이다. 절에 가서 찬송가를 부르고, 무슬림 사원에서 통성 기도를 하는 기독교인들. 종교에 대한 천착이 너무나 부족한 무늬만 종교인들이라 아니 할 수 없다.

한기총도 그렇고, 이랜드도 그렇고, 초대형 교회들도 그렇고, 이명박도 그렇고. 우리나라의 기독교가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다. 욕심을 버리고 회개하길 바란다.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종교인들은 진정한 종교인이 아니다.

다시 한 번 납치된 젊은이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바란다. 그리고, 이번 사건에서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이 뭔가를 깨달았으면 한다.

왜 이랜드의 예수는 나의 예수와 다른가

왜 이랜드의 예수는 나의 예수와 다른가

이랜드라는 기독교를 신봉하는 기업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량해고했고, 해고된 노동자들은 그에 맞서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다. 기독교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말인데, 도대체 그들이 믿는 예수는 어떤 예수란 말인가. 이랜드는 이익 6%를 이룰 수 있도록 기도한다고 한다. 정말 예수는 그들의 기도에 응답할까.

내가 알고 있는 예수는 부자가 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예수는 언제나 약자 편에 섰고, 그들의 병을 고쳐 주었고, 그들의 아픔을 달래 주었으며,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세상에는 내가 알고 예수 이외에 또 다른 예수가 있나 보다.

그 또 다른 예수는 가진 자 편에서 물질의 축복을 내리며, 부자는 더 부자가 되게 하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하게 만드는 그런 예수인가 보다. 그 또 다른 예수는 비정규직은 아무 때나 해고하고 그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게 만드는 그런 예수인가 보다. 그 또 다른 예수는 이랜드의 예수이고, 초대형 교회 목사들의 예수이고, 사립학교 이사장들의 예수이고, 한기총의 예수이고, 재벌들의 예수이고, 서울을 봉헌하겠다던 이명박의 예수인가 보다.

팔레스타인 그 척박한 땅에서 2000년 전에 태어나 세상을 바꾸고 하나님의 나라 지상낙원을 이루고자 했던 그 예수가 2000년이 지난 지금 이 땅 한반도 서울에서 그 또 다른 예수로 변신한 것인가. 천박한 자본주의를 비호하고 축복하는 예수로 전락한 것인가.

이랜드여! 당신들이 돈을 버는 것은 좋은데 제발 예수를 팔지 말라. 자본의 논리로 비정규직을 해고하더라도 예수를 들먹이지 말라. 당신들은 위선자들이고 독사의 자식들이다. 이것이 당신들의 기도에 대한 내가 아는 예수의 응답이다.

더 이상 나의 예수를 욕되게 하지 말라.

예수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예수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기총) 의 서경석 목사가 사학법 재개정을 촉구하며 무기한 단식기도에 들어갔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우리나라는 주님이 세우신 나라다. (중략) 21세기 위대한 도약의 기회가 왔는데, 어려운 일이 생겼다. 교육 위기다. 소련, 중국, 북한에만 있었던 강제적 사학법이 대한민국 국회에서 제정돼 혼란스럽다. 사학법은 재개정돼야 한다. 아니 ‘악법’ 사학법은 철폐돼야 한다.”

[단식, 삭발, 낙선운동… 보수 기독교계 “사학법 재개정하라”, 오마이뉴스]

부활절에 예수가 다시 이 땅에 오신다면 이들을 보고 무어라 했을까. 짐작컨대 예수께서는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다”라고 하셨을 것이다. 예수는 기독교를 만들지 않았고 기독교인도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예수는 유대교인이다. 다만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려는 제자들과 후세 사람들이 예수를 받들어 기독교를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땅의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고 있는가. 대형교회 목사들과 보수 기독교계의 지도자라 하는 이들이 얼마나 예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 혹시 예수를 팔아 장사하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를 핑계 삼아 재물과 권력을 탐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이들이 예수를 부끄럽게 만드는 사람들로 보인다. 예수로 하여금 기독교를 부인하게 만드는 사람들로 보인다.

예수는 당신들의 저렴한 입에서 회자될 그런 분이 아니시다. 예수를 욕보이지 마라. 제발.

“내 말을 듣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해 주어라.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들을 축복하고, 너희를 모욕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여라. 누가 네 뺨을 치거든 다른 뺨도 돌려 대라. 누가 네 겉옷을 빼앗거든 속옷도 거절하지 마라. 달라는 사람은 누구에게든지 주어라. 네 것을 빼앗는 사람에게 돌려 달라고 하지 마라. 너희는 다른 사람이 네게 해 주길 바라는 대로 다른 사람에게 해 주어라.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람은 사랑한다. 너희가 만일 너희에게 잘해 주는 사람에게만 잘해 준다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렇게는 한다. 너희가 만일 되돌려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꾸어 준다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대로 돌려받을 생각으로 죄인들에게 꾸어 준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좋게 대하며 되돌려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의 상이 클 것이고, 가장 높으신 분의 아들이 될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사람과 악한 사람에게도 자비로우시기 때문이다. 너희의 아버지가 자비로우신 것처럼 자비로워져라.

[누가복음 6:27-36]

예수가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그런 기독교인이 될 생각은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