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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떠날 때를 아는 노인은 지혜롭다

떠날 때를 아는 노인은 지혜롭다

건조하고 황량한 세상을 쉼없이 살았다고 해서 누구나 혜안을 갖는 것은 아니다. 견고하고 치밀한 부조리를 복기하고 예언한다고 해서 모두가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 진정 지혜로운 노인들은 자신이 떠나야 할 때를 아는 사람들이다. 그것은 책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누가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다. 본능과도 같은 것이다. 그 본능을 체득했다면 그는 주어진 자신의 삶을 미련없이 제대로 살아낸 것이다.

예수 이전에도 이후에도 세상은 언제나 말세였다. 세상은 늘 버릇없는 새로운 세대들 때문에 번민했고, 노인들은 그들의 싸가지 없음을 한탄했다. 하지만, 자신의 세대가 이미 지나갔음을 깨닫고 조용히 떠나는 노인들은 흔치 않았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음을 깨닫고 유유히 사라져야 하는데도 말이다. 자신들이 어쩌지 못하는 세상을 부여잡고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고집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세상의 법칙이 아니다.

물 위를 흘러가는 배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삶은 그런 것이다. 미련없이 살다가 흔적없이 사라지는 것. 악당이든 보안관이든 누구든 이 법칙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것을 깨달았다면, 그가 악당이든 보안관이든 지혜롭게 무대를 내려올 것이다. 지혜로운 자들은 담백하게 자신의 삶을 털고 일어난다. 물론 쓸쓸하다. 하지만 삶의 뒤안은 누구에게나 쓸쓸한 법이다. 그것만이 위안이 될 것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이러한 삶의 쓸쓸한 뒤안을 조용히 보여준다.

영화에서 인상깊었던 부분 중 하나였던 동전던지기 장면이다.

Chigurh: You need to call it. I can’t call it for you. It wouldn’t be fair. It wouldn’t even be right.

Proprietor
: I didn’t put nothin up.

Chigurh: Yes you did. You been putting it up your whole life. You just didn’t know it.

자기 삶을 모두 걸어 놓고 그 사실을 모를 뿐이다. 그리고 선택은 언제나 본인의 몫이다. Anton Chigurh는 잔인하지만 참 매력적인 악당이다. 그의 머리 모양만큼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