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wsed by
Tag: 빨갱이

빨갱이와 신자유주의

빨갱이와 신자유주의

수구반동 기회주의 세력들이 해방 이후 자신들의 친일 행적을 감추기 위해 들고 나온 무기는 “반공”이었다. 자신들의 정적을 죽이기 위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그들은 “빨갱이” 딱지를 남발했다. 수많은 민족주의 인사들과 독립운동가들이 빨갱이라는 미명으로 스러져갔다. 이성과 논리와 상식은 빨갱이 딱지 앞에 처참하게 뭉개졌다. “반공”을 국시로 50여년 간을 살았다.

수구반동 기회주의자의 전형인 박정희는 그의 정적 김대중을 빨갱이로 낙인찍어 평생을 괴롭혔다. 내가 어렸을 때, 나는 김대중이 정말 좌파 정치인인줄로만 알았다. 김대중의 <옥중서신>을 읽고서야 그가 얼마나 보수적인 정치인인지 알게 되었고, 사실 조금은 실망한 적이 있다. 남로당 군총책을 맡았던 박정희가 온건 보수정치인 김대중을 빨갱이로 몰아붙일 정도이니 더 이상 무엇을 말하겠는가.

수구반동 기회주의 세력들이 처음으로 정권을 놓친 것이 해방 이후 52년만인 1997년이었다. 그들은 지독히도 탐욕적이지만 또한 지독히도 무능했는데 그 결과는 1997년 IMF 외환 위기였다. 이때도 김대중은 원조 수구반동 기회주의자 중 하나인 김종필과 손을 잡지 않고는 정권교체를 할 수 없었다.

2002년, 혜성과 같은 노무현의 등장은 수구반동 기회주의 세력들에게는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 땅 한반도에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그들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단기필마로 정권을 쟁취했긴 했지만, 수구반동 기회주의 세력은 노무현을 탄핵했고, 끊임없이 흔들어댔다. 수구반동 세력들은 10년만에 정권을 다시 가져갔다. 그리고 그들은 2009년 노무현과 김대중을 죽였다. 인정하지도 않았고, 인정할 수도 없었던 그 10년의 세월을 지우려고 노무현과 김대중을 죽였다.

수구반동 기회주의 세력들과는 다르게 소위 자칭 좌파라는 세력들은 김대중과 노무현 10년의 세월을 “신자유주의” 시대로 규정하고 공격했다. 지금 이 땅의 주요한 문제들은 신자유주의로부터 기인하며 그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김대중과 노무현은 공공의 적이라는 논리였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이명박보다 더 파렴치하다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면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수구반동 기회주의 세력의 “빨갱이” 공격과 자칭 자파라는 세력들의 “신자유주의” 공격은 방향만 다를 뿐 본질은 같다. 수구반동 세력들은 무능하고 부패하고 탐욕적인 세력이고 자칭 좌파들은 몰역사적이고 독선적인 세력이지만 기회주의자들이라는 점에서는 똑같다.

최근 경향신문의 논설위원 이대근이 레디앙에 기고한 글을 보면 진보 정치학자 최장집의 논리와 판박이다. 이명박 정권을 반민주 정권이라 할 수 없고, 이명박 정권이 반민주이면 김대중, 노무현도 반민주가 되어야한다는 그 논리 말이다.

일반적으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반민주 독재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같은 기준으로 이명박 정권에 대해서도 그런 딱지를 붙여서는 안 된다. 물론 이명박 정권이 단순히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노선을 계승했을 뿐 아니라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분명히 차이가 있다. 그러나 역시 그 차이로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설정할 수 없는 것은 너무 자명하다. 사회적 시민권의 확산 정도, 사회 경제적 정책을 기준 삼아 이명박 정권을 반민주로 규정하고 싶다면 지난 10년 정권도 역시 반민주가 되어야 한다.

<이대근, “민주당-진보정당 모두 패배하는 길“, 레디앙>

이대근과 같은 사이비 좌파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수구반동 세력의 영구집권을 꿈꾸는 것일까? 정말 이들이 신자유주의를 반대한다면 이명박 정권 퇴진 운동에 나서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김대중, 노무현은 신랄하게 공격하면서 이명박은 애써 두둔하거나 모른척 한다. 김대중, 노무현이 신자유주의 정부라 공격을 받아야한다면 그 잣대로 이명박은 한 100만배쯤 더 신랄하게 공격받아야 한다. 때문에 나는 이들이 정말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자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역겹다.

자칭 B급 좌파인 김규항도 이대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10여년 동안 세 개의 정권이 존재했다. 그중 두 정권은 민주주의의 껍질을 앞세워 자본 편에 섰고 하나의 정권은 그 껍질마저 팽개치고 자본 편에 서고 있다. 그리고 그 두 정권을 맡았던 사람들이 그 ‘차이’를 내세워 오늘 다시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있다. “어떠세요. 겪어보니까 그래도 옛날이 그립지요?” 근래 그들 가운데 한 주요한 인사가 강연에서 했다는 말은 그들의 태도를 잘 드러낸다. 그들이 마치 인간이 어디까지 파렴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는 듯한 행태를 지속할 수 있는 건, 그들을 ‘그래도 현실적인 대안’이라 인정하는 사람들 덕이다.

<김규항, 민주주의의 씨앗, 한겨레>

김규항의 논리대로라면 노무현을 지지하는 나같은 사람은 파렴치한이다. 우스운 것은 나같은 파렴치한은 신자유주의를 찬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노무현을 지지했을까? 노무현은 정말 신자유주의자였을까? 노무현은 정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자본의 편에만 섰을까? 노무현의 정책은 모두 신자유주의이기 때문에 내팽개쳐져야만 라는 것일까? 과연 우석훈의 말대로 “행정도시 건설”이나 “4대강 죽이기 사업”이 똑같은 토목사업일 뿐일까?

나는 궁금하다. 진보신당 지지율 1.2%로 그들은 어떻게 권력을 쟁취할 것인가? 조중동과 한나라당과 싸우지 않고 그들은 어떻게 정권을 쟁취해서 신자유주의를 몰아낼 것인가? 반노무현, 반신자유주의만으로 그들은 그들이 꿈꾸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미안하지만, 이 땅의 민주주의는 김대중 노무현의 유산을 이어가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민주주의 씨앗은 김대중, 그리고 노무현이다.

“파시즘이 나타났다” 진보 양치기들의 딱지붙이기 놀이

“파시즘이 나타났다” 진보 양치기들의 딱지붙이기 놀이

2002년 월드컵 때 수백만 국민들이 광장으로 나왔다. 붉은 옷을 입고 “대한민국”을 외치며 응원을 했다. 대표팀은 월드컵 사상 첫 승을 거두고 내친 김에 4강까지 올랐다. 국민들은 환호했고, 기뻐했으며, 행복했다. 아마 그 때만큼은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축구는 축구일 뿐이다. 수백만의 국민들이 떼지어 응원하는 것을 아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진보 양치기들은 말했다. “파시즘의 징후가 보인다”고.

황우석 때도 그랬지만 이번 심형래의 “디 워” 논란에도 진보 양치기들은 딱지를 붙인다. 비판막는 건 파시즘 진중권을 내버려 두라고. 네티즌의 집단 항의에 대해 진보 양치기들은 언제부턴인가 편리한 딱지를 준비했다. 자신들의 의견과 맞지 않으면 그냥 네티즌들은 파시스트가 되어 버린다.

딱지붙이기 놀이의 원조는 원래 극우 수구세력 아니었나. 지금도 내가 쓴 몇몇 글 (특히 노무현을 옹호하는 글)에는 여지없이 “빨갱이” 또는 “북조선에서 사주받았냐”라는 댓글이 붙는다. 극우들의 50년 전통이 아직도 살아있는 것이다. 21세기 인터넷 시대에는 진보 양치기들의 네티즌들에게 “파시스트” 딱지를 붙인다. 이쪽 저쪽의 딱지로 인해 나는 “빨갱이”가 되기도 하고, “파시스트”가 되기고 한다. 웃기지 않은가.

도대체 누가 진중권의 입을 막았는가. 도대체 어떤 네티즌이 영화 주류들의 입을 막았단 말인가. 자기 하고 싶은 얘기들 다 하지 않았나. 이제 그들의 말과 글에 대해 네티즌도 한마디씩 하면 안되나? 그들의 의견이 무슨 “성역”이라도 된단 말인가.

지금 상황은 이런 것이다. 심형래라는 아이가 “SF 괴수 영화 만들기”라는 과목 시험에서 맨날 20~30점을 받아오다가 6년의 노력 끝에 40점 짜리 결과를 내 논 것이다. 이송희일이나 진중권이나 영화 평론가들은 “디 워”는 낙제이기 때문에 비평할 가치도 없는 “쓰레기”라는 것이고, 네티즌들은 “10점”이 어디냐, 정말 열심히 했구나 격려해 주는 것이다. 왜? 그동안 심형래가 10점을 높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기 때문에. 그리고 심형래가 “우리 자식”이기 때문에.

심형래의 1차 목표는 미루어 짐작컨테 “정말 제대로 된 괴수 한 번 만들어 보자” 이것 아니었을까? 맨날 괴수 인형입고 땀 삘삘 흘리며, 넘어져 가며 찍은 조악한 공룡이나 괴수가 아니고, 정말 헐리우드 영화같은 “괴수” 같은 “괴수” 그런 것 한 번 해보고 싶다고 소박한 꿈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심형래는 그 꿈을 이루었다.

정말 우리나라 영화계 주류들이 제대로 된 사람들이라면 심형래의 성취를 올바로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 심형래가 제작과 CG기술에 대해 이룬 성과를 시나리오 잘 쓰는 작가와 연출력이 좋은 감독과 결합시켜 한층 발전된 SF영화를 내 놓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봉준호나 박찬욱이 감독하고 심형래가 제작하면 안되는 건가? 심형래의 영화가 40점 짜리 밖에 안되기 때문에 비평조차 할 가치가 없다며 매장시킬 필요가 있는 것인가?

이 영화 이미 400만이 보았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볼 지 모른다. 당신들의 논리대로라면 비평할 가치도 없는 쓰레기 영화를 본 몇 백만의 관객들은 도대체 뭐가 될까. 왜 영화계 어렵다고 찌질대면서 정작 영화를 봐 주는 네티즌과 관객들을 “적”으로 만드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스크린 쿼터만 지켜지면 된다는 건지.

하나 더. 논쟁을 할 때 논리 못지 않게 중요한 건 논쟁하는 사람들의 태도다. 진중권은 40점 짜리 쓰레기 영화를 쓰레기라 얘기하는 것에 아무 문제 없다며 쓰레기 영화 한 편에 “사회가 미쳤다”라는 극언도 서슴지 않는다. 정말 좋은 논객이 되려면 논리도 정연해야 하지만 그 표현도 절제되고 정중해야 한다. 진중권이나 이송희일 같은 태도로 논쟁에 임하면 결국은 논점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왜? 우리들은 기계가 아니고 인간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빨갱이” 딱지로 50년간 시달렸다. 이제 대한민국 네티즌들은 진보 양치기로부터 “파시스트” 딱지를 부여받게 되었다. 딱지 붙이기 편리하지만 참으로 위험한 것이다. 왜 네티즌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진보 양치기들은 스스로 되돌아보기 바란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했고,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했다. 세상이 진보들의 논리로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그들도 알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들의 “겸손”한 주장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