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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선생님

후배들의 졸업

후배들의 졸업

오랫만에 모교를 방문하여 후배들의 졸업식을 보았다. 아들뻘 되는 아이들이 졸업을 하는데 세월은 아무도 비껴가지 않았다. 졸업식은 무척 간소하게 진행되었다. 교장선생님은 축하 말씀을 끝낸 후 모든 학생들에게 졸업장을 일일히 수여하였다. 후배들의 표정은 상기되어 있었고, 선생님들은 졸업하는 아이들을 껴안아 주었다.

모교를 방문하여 인구절벽을 확실히 알 수 있었는데, 지금 졸업하는 아이들보다 내년에 졸업할 아이들의 숫자가 3분의1이나 줄어들었다고 한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 세월의 흐름과 무상함을 느낄 수 있다.

오늘 졸업하는 모든 후배들의 건승을 빌었다.

졸업식 풍경

졸업식 풍경

조카의 중학교 졸업식에 갔다가 새롭게 발견한 사실이 있는데,

  • 3학년 담임선생님들이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자선생님이었다. 조카에 말에 따르면, 조카가 다니는 중학교에는 80%가 여자선생님이란다.
  • 졸업장들을 받은 학생들이 모두 담임선생님에게 달려가 안겼다. 어떤 학생들은 졸업장을 수여하는 교장선생님과 셀카를 찍기도 했다.
  • 교장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일일히 졸업장을 수여했다. 상장 수여는 거의 없었고 외부 귀빈들의 축사도 없었다.
  • 여학생들은 하나 같이 화장을 했는데, 입술에 바른 빨간 립스틱의 색깔이 모두 같았다. 남학생들은 거의가 버섯동자 머리를 하고 있는데 마치 붕어빵틀로 찍어낸 듯 비슷하게 보였다. 학생들의 80%는 롱패딩이라 불리는 검정색 긴 점퍼를 입고 있었다.
  • 교복을 찢거나 밀가루나 연탄재를 뿌리는 객기도 사라졌다. 학생들은 대체로 명랑했고 자유분방했다.
  • 예전에 불렀던 졸업식 노래는 사라졌고, 015B의 <이젠 안녕>이란 노래를 졸업생들이 같이 불렀다. 사실 이 노래도 아이들이 태어나기 훨씬 전인 1991년 노래인데도 중학생들이 곧잘 따라 불렀다.

세월이 흐르면서 졸업식 풍경도 많이 변했다. 그 변화가 낯설기도 했지만 예전보다 훨씬 나아진 것 같아 흐뭇했다. 세상은 그렇게 조금씩 진보하는 모양이다. 조카를 비롯해 오늘 졸업한 학생들의 건강과 행복을 빈다.

선생님께 드리는 편지

선생님께 드리는 편지

선생님을 뵌 지 올해로 꼭 삼십 년이 됩니다. 삼십 년 전, 저는 풋풋한 소년이었고, 선생님은 혈기왕성한 청년이셨지요. 세월이 살과 같이 흘러, 그때 청년이던 선생님이 벌써 정년퇴임을 하십니다.

새로 생긴 학교에 배정되었을 때, 제 부모님은 걱정을 좀 하셨습니다. 집에서도 멀었고, 학교에는 중장비가 지나다니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그때 별 생각이 없었는데, 선생님이 담임을 맡으신 후, 모든 것이 즐겁고 행복했었습니다. 아마 선생님을 만나려고 그 학교에 간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먼 길을 통학하던 것도, 선생님을 도와 반장으로서 학급을 운영했던 것도, 친구들과 같이 머리 맞대며 공부하던 일들도 모두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선생님도 기억하실 겁니다. 그때 우리 반은 모든 분야에서 상을 받아, 교실 한쪽 벽에 상장이 수도 없이 걸렸었습니다. 정말 신나고 재미있던 시절이었고, 아마 그때가 제 소년 시절의 절정이었을 겁니다.

선생님과 같이 갔던 심천 미루나무 숲도 생각나고, 김태곤의 망부석을 멋들어지게 부르시던 모습도, 언젠가 카메라를 새로 사셨다고 우리들 사진을 찍어주시던 것도 생각납니다. 아직도 그때 사진이 제 앨범에 남아 있습니다.

공부도 공부지만, 남자답게 사나이답게 사람답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늘 가르쳐주시고 보여주셨던 선생님. 선생님과 같이 했던 그 시간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제가 없었겠지요. 자주 연락도 못 드리고, 자주 찾아 뵙지도 못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언제나 청년의 모습으로 제 마음 속에 계십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선생님!

이제 삼십 년이 넘게 교단에 계시다가 정년을 맞이하게 되셨네요. 정년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여러 가지로 감개무량하고 시원섭섭하시리라 짐작해 봅니다. 정년으로 교단을 떠나시지만, 선생님께서는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시겠지요. 저는 선생님의 원조 제자로 늘 선생님의 제 2의 인생을 응원하겠습니다.

선생님의 정년을 축하하며, 선생님의 진정한 여행을 위해 제가 좋아하는 시 한 편을 선물로 드립니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 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실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나짐 히크메트, 진정한 여행>

선생님의 진정한 여행은 이제부터일 겁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