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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야구

대통령과 장보기

대통령과 장보기

프로야구 경기가 열리던 어느 야구장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경기 전 시타를 했는데, 그는 반지의 제왕의 간달프가 입던 로브를 입고 있었다. 전혀 염색을 하지 않은 흰머리가 바람에 날렸고, 그의 상징이 되어 버린 동그란 안경이 햇빛에 번득였다. 그는 투수가 던진 공을 가볍게 받아 쳤다. 그리고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환호하는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었다.

그가 나와 아내를 보더니 반가운 표정을 지으면서 악수를 청했다. 그의 손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바쁜데 어떻게 왔냐고 물었고, 나는 쭈뼛거리며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라고 수줍게 말했다. 그러자 그가 나를 꼭 안아 주었다. 그는 키가 2미터쯤 되어 보였다. 그의 품이 몹시 푸근했다. 그는 만화 원피스에 나오는 명왕의 모습이었다.

우리는 야구장을 나와 조그마한 가게에 들렀다. 김정숙 여사가 채소 한단과 버섯 한봉지를 들었고, 아내는 과자를 집어들었다. 내가 서둘러 계산을 하려 하자, 그는 김영란 법에 저촉될 수도 있다며 결벽증을 드러냈다. 나는 “이건 만원도 안 됩니다.”라고 큰소리 치면서 채소와 버섯 값을 계산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알람시계가 울렸다. 꿈이었다. 기분 좋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김성근, 김종인, 그리고 어버이연합

김성근, 김종인, 그리고 어버이연합

김성근. 올해 나이 75세. 한화 이글스 감독. 한때 야구의 신(야신)으로 불리며 한국 프로야구의 상징으로 떠오른 인물. 김성근 식 리더십으로 야구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리더들의 본보기가 된 사람. 지난 해 한화 이글스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만년 꼴찌 한화를 프로야구 최고 인기구단으로 만들어 놓았으나, 올 들어 김성근의 마법은 유통기한이 다 된 듯하다.

한화 이글스의 현재 성적은 3승 15패, 승률 1할5푼8리. 넥센의 신인 투수 신재영이 벌써 4승을 했으니, 한화 구단은 신재영보다도 적게 승리했다. 넥센 신재영의 연봉은 고작 2700만원.

김성근의 리더십은 특타와 야간 펑고로 대표되는 (될 때까지) “하면 된다”의 새마을 정신이라 할 수 있겠다. 송창식, 권혁 등의 투수들을 혹사시킨다는 평을 받으면서도 (단기간의) 성과를 위해 무리한 선수 교체를 감행한다. 김성근 식 야구는 단기적으로는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화 이글스의 미래와 선수들의 장래를 보았을 때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한화 선수들은 가장 많은 훈련을 하지만, 가장 많은 실책을 범한다. 선수들의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고, 감독과의 소통이 어려우며, 시키는 대로만 하는 장기판의 말이 되었다. 급기야는 “김성근 감독과 야구하기 싫다”며 트레이딩을 거부하는 선수들이 나왔다. 지난 해, 김성근 감독을 연호하던 팬들은 “감독님, 나가주세요”라는 플래카드를 펼쳐 들고 시위를 한다. 이쯤 되면 김성근 식 리더십은 끝난 것이 아닐까.

김종인. 올해 나이 77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확인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 경제민주화의 상징처럼 군림하는 사람. 처음 더민주에 올 때, 비례대표에 전혀 뜻이 없다 얘기했으면서도, 본인을 셀프공천하여 국민들의 빈축을 산 인물. 정청래, 이해찬 등을 공천탈락시키면서 정무적 판단이라고 얼버무린 노회한 정치인이다.

그는 더민주에 남아 있는 기회주의자들을 주저앉히는데는 성공했으나, 젊고 진보적인 유권자들을 끌어모으는데는 실패했다. 총선이 끝나고 그의 주변에서 당대표 추대론이나 전당대회 연기론이 끊이지 않고 나오는 것으로 봐서 그는 계속 더민주에서 제왕적 당대표를 노리는 것 같다.

김종인도 소통에 문제가 있으며, 고집은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경제민주화의 상징이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노욕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어버이연합. 어버이라는 고귀한 말을 욕보이는 자칭 어르신으로 구성된 극우단체. 박정희와 박근혜를 숭배하며 전경련의 지원과 청와대의 지시로 끊임없이 관제데모를 주도하는 사람들.

“하루 2만원이 어디냐”며 탈북할아버지들은 어버이연합 주도로 관제데모에 나선다. 생활고에 허덕이며 극우집회에 동원되어야 하는 그들의 처지가 불쌍하다. 칠십 넘게 세상을 살았으나 여전히 지혜와는 거리가 멀고 노욕덩어리가 되어 가는 사람들. 부끄러움도 모르고 무지가 죄가 될 수 있음을 모르는 어버이연합 노인들.

김성근, 김종인, 어버이연합 노인들께 드리고 싶은 말, 떠날 때를 아는 노인만이 지혜롭고 존경받는다는 것.

잊혀지는 것과 기억해야 하는 것

잊혀지는 것과 기억해야 하는 것

세상의 모든 일이란 잊혀지게 마련이고 잊혀져야 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지만, 때로는 의식적으로 기억을 되살려야 하는 것도 있는 법이다. 워낙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사회인데다 언론이라 불리는 집단들의 의도적 여론몰이로 사람들의 기억에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일들이 적지 않다.

올해 초, 미네르바라고 불렸던 30대 청년이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구속되었다. 인터넷 통제의 신호탄이라 불렸던 이 사건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반발했다. 인터넷에 정부의 경제 정책을 비판한다는 이유로 힘없는 네티즌을 구속할 수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가짜 미네르바를 인터뷰하고 두 번씩이나 사람들을 속여온 “신동아”라는 잡지는 아무일 없다는 듯 넘어가면서 유독 힘없는 네티즌만을 상대로 구속 수사하는 것은 당연히 형평성에 어긋난 것이었다. 형평성? 이 말은 너무나 사치스런 말이 되어버렸다.

그리고나서 용산에서 참사가 일어났다. 철거민들의 시위에 경찰이 과잉대응하면서 벌어진 인재였다. 6명의 사람이 불에 타서 숨졌는데, 유족들은 숨진 철거민들의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다. 할 줄 아는 것이 오로지 삽질 뿐인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경찰이 견찰이 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사람이 6명이 죽었는데도 아무도 처벌받지 않고, 아무도 미안해하지 않았다. 다만, 경찰청장이 될뻔했던 사람이 물러났을 뿐이었다. 이명박은 그 사람이 아깝다고 했다.

용산참사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때마침 연쇄살인범이 잡혔다. 그리고 권력과 언론은 여론의 관심을 용산참사에서 연쇄살인범 강호순으로 돌리려고 했다. 쓰레기 언론들은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는둥, 사실상 무력화된 사형제도를 부활시켜야 된다는둥 법석을 떨었다. 간교했다. 강호순 사건으로 인해 용산참사는 잊혀졌다. 죽은지 두달이 넘도록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철거민들은 여전히 눈을 감지 못했다.

권력이 강호순 사건으로 돌려막기를 시도했다는 정황이 포착되었다. 전두환 시절의 보도지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용산참사는 일어나서는 안되는 사건이었지만, 설령 일어났다 하더라도 정부와 경찰이 사과하고 고인들과 유족들을 달래야하는 것이 상식이다. 정권은 쓰레기 언론을 통해 여론의 관심을 다른 사건으로 의도적으로 돌리려했다. 상식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었지만, 상식, 도덕 이런 말들도 역시 사치였다. 강호순 사건으로 돌려막기를 했다는 상황은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으로 역시 묻혀버렸다.

모든 일이 그런 식이었다. 촛불재판에 관여했다는 신영철 대법관 사건은 어떤가? 법원들의 소장 판사가 들썩였고, 대법원장까지 조사를 해야한다는 말이 나왔다. 조사 결과, 신영철 대법관이 지난 해 있었던 촛불시위 관련 재판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인정되었다. (이 결과 발표는 사실 의외였다.) 신영철 대법관은 공직자 윤리위원회에 회부되었고, 사람들이 신영철 대법관이 곧 사퇴할 것이라 생각했다.

신영철 대법관은 한국 야구가 살렸다. 한국 야구가 극적인 승부를 벌이면서 결승까지 진출하자 사람들은 흥분하고 환호했다. 언론도 여론도 신영철이 누구? 하면서 신경도 쓰지 않는다. 신영철 대법관은 WBC 야구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되었다.

우울증으로 자살한 줄로만 알았던 여배우 장자연 사건은 또 어떤가? 의외의 거물들이 연관이 되자 이 사건이 수사당국과 언론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고, 박연차 리스트가 다시 등장했다. 박연차는 정권의 곶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필요할 때마다 하나씩 둘씩 빼먹는 재미. 노무현 조카 사위가 등장하는 것을 보니, 이제 보궐선거가 다가왔음을 알아채야 한다.

이 많은 일들이 불과 지난 석달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연연해하지 않는 것은 장점이지만, 적어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늘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은 힘없는 서민이라는 사실이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 대법관들이 웃을 얘기다. 이런 일들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지만, 카르마는 절대 잊지 않는다는 것, 반드시 기억해야할 진리는 이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