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wsed by
Tag: 이별

흰둥이를 보내며

흰둥이를 보내며

흰둥이는 1997년 7월 11일에 와서 2021년 10월 8일에 떠났다. 24년의 시간을 함께 했고, 20만 Km 넘는 거리를 함께 달렸다. 내 젊은 날의 푸른 추억 속에 흰둥이는 하얀 구름처럼 떠다녔다. 말 못 하는 기계였지만, 그는 영혼을 가진 친구이자 동료였다.

그를 떠나보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폐차장 전화번호를 받고도 며칠을 망설였다. 하지만 인생의 모든 인연이 그렇듯이,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것. 그의 몸은 낡았지만 심장은 여전히 뜨거웠고, 앞으로 몇 만 Km는 더 달릴 수 있을 것 같이 으르렁댔다.

애초 너무 깊고 오랜 인연은 만드는 게 아니었다. 회한은 오직 그뿐이었다. 하지만 그와 함께 했던 시간은 가슴 속에 영원히 새겨졌다. 잘 가라, 흰둥아! 고맙고 고맙고 또 고맙다.

흰둥이가 가고 재돌이가 왔다.

미치도록 사랑했으면 됐지

미치도록 사랑했으면 됐지

남자와 여자의 사랑, 그것은 가장 달콤하고 가장 아름답지만, 그것은 대개 영원하지 않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견딜 수 없는 아픔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헤어짐의 슬픔도 깊어진다. 헤어짐의 슬픔을 견딜 수 없다 하여 사랑을 하지 않는 남자와 여자는 없다. 설령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도 서로 미치도록 사랑했으면 됐다. 그것 말고 또 무엇을 바랄 수 있단 말인가. 그 사람을 만나 정말 그 순간 만큼 처철하게 사랑했으면 그만이다. 그 사람과의 그 순간의 사랑은 그렇게 시간의 기억 속에 봉인되어 버린다. 아비정전의 아비가 수리진에게 “이 순간의 1분을 잊지마”라고 얘기한 것처럼. 그 1분은 두사람에게는 영원한 기억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살면서 내가 인정한 세상의 두가지 진리는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과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사랑이라도 변하게 되어 있고, 이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뼈아픈 후회가 되는 것은 미치도록 사랑한 사람이 떠난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을 제대로 사랑하지도 못하고 헤어지는 것이거나 아니면 아예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바이브와 장혜진의 “그 남자 그 여자”를 들으면서 아픈 사랑을 하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로해 본다. “정말 아프겠지만, 그때가 좋은거야”라고.
혹시 니가 다시 돌아올까봐 다른 사랑 절대 못해 남잘 울렸으면 책임져야지 니가 뭘 알아 남자의 마음을 모든걸 다주니까 떠난다는 그 여자 내 전부를 다 가져간 그 여잔 한때는 내가 정말 사랑했던 그 여자 다 믿었었어 바보같이 여자는 다 똑같나봐 혹시 니가 다시 돌아올까봐 다른 사랑 절대 못해 여잘 울렸으면 책임져야지 니가 뭘 알아 여자의 마음을 모든걸 다주니까 떠난다는 그 남자 내 전부를 다 가져간 그 남잔 한때는 내가 정말 사랑했던 그 남자 다 믿었었어 바보같이 남자는 다 똑같나봐 우린 미치도록 사랑했었지 우린 미치도록 사랑했었지 모든걸 다주니까 떠난다는 그 남자 내 맘 하나 몰라주는 그 남자 한때는 내가 정말 사랑했던 그 남자 다 믿었었어 바보같이 그땐 사랑이 이별인줄 모르고 (이런 줄도 모르고) 다 믿었었어 우리 둘이… <바이브, 장혜진, 그 남자 그 여자>
딸과 헤어지는 것은

딸과 헤어지는 것은

공항에서 딸아이는 연신 팔을 쳐들었다. 안아달라는 얘기다. 이제 만 여섯을 훌쩍 넘긴 아이는 앞니가 빠지고 새 이가 나기 시작했다. 키도 제법 크고 몸무게도 늘어나 옛날 아기 때처럼 안고 업고 하기엔 좀 버거웠다.

아빠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아이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이제 아빠 가면 심심해서 어떡해? 엉~ 엉~ 엉.” 공항까지 웃고 까불면서 따라온 아이의 가슴 속에는 그리움과 허전함이 공존했던 것이다. 그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이 아빠의 무심함이 부끄러웠다.

딸아이의 울음에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피로 연결된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 나의 분신인 딸아이의 가슴에 나의 부재로 인한 허전함이 사무쳤다. 아이는 내일이면 또 이 순간의 그리움을 잊을 것이다. 그렇다해도 내 가슴은 미어졌다.

나는 딸아이에게 몇 가지를 얘기했다. 건강할 것, 친구들하고 재미있게 놀 것, 엄마 말씀 잘 들을 것 등등. 딸은 훌쩍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딸아이의 건강이 좋지 않았을 때, 나는 하루 24시간 딸과 같이 있었다. 그때 나는 미리 알았다. 내 인생에서 딸과 가장 오랜동안 같이 보낼 시간이라는 것을. 이것은 신이 나에게 준 선물이라는 것을.

이제는 딸아이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1년에 고작 두어달 정도. 아이가 커서 사춘기가 되면 같이 살더라도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자라면 부모 곁을 떠나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지만, 막상 나는 그 순간을 견디기 어려울 것 같다.

딸아이가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게 되는 날,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 것 같다. 지금은 나의 부재에 대해 딸아이가 울지만, 그날에는 딸아이의 부재에 대해 내가 울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딸아이는 엄마 품에 안겨 울면서 공항을 떠났고, 나는 비행기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