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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죽음

참나를 알기 위한 도구

참나를 알기 위한 도구

참나를 깨닫기 위한 단순하지만 강력한 도구.

“지금 잠깐 멈추고 숨쉬기.”

길고 깊게 숨 쉬고, 느리고 부드럽게 숨 쉬어라. 에너지가 가득하고 사랑이 가득한 삶, 그 삶의 부드럽고 달콤한 무(無)를 숨 쉬어라. 너희가 쉬는 숨은 신의 사랑이니, 깊이 숨 쉬어라. 그것을 느낄 수 있도록 아주아주 깊이 숨 쉬어라. 그 사랑이 너희를 울게 하리니. 기쁨에 겨워 울게 하리니.

<남우현, 죽음 그 이후, 지식과감정, 2022, p. 189>

돈이 너무 많으면

돈이 너무 많으면

기훈: 왜 그런 짓을 한 거지?

일남: 자네, 돈이 하나도 없는 사람과 돈이 너무 많은 사람의 공통점이 뭔 줄 아나? 사는 게 재미가 없다는 거야. 돈이 너무 많으면은 아무리 뭘 사고 먹고 마셔도 결국 다 시시해져 버려.

<오징어 게임, 운수 좋은 날>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삶의 의미는 줄어든다. 풍요보다는 결핍이 사람을 더 성숙하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수명이 늘어날수록 오늘 하루는 점점 무의미해진다. 삶이 의미 있는 이유는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알리는 신호

죽음을 알리는 신호

사람들은 죽기 직전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본인과 가족 모두 편안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다.

– 2주 전: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된다.

– 1주 전: 물도 삼키기 힘들어지고 걸을 수 없게 된다. 의식이 명료하지 않고 자는 시간이 길어진다.

– 6일 전: 환시, 환청이 생기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섬망 증상이 나타난다.

– 5일 전: 호흡이 불규칙해지고 목에서 그르릉거리는 소리가 난다.

– 4일 전: 소변이 안 나오게 된다.

– 3일 전: 대화가 불가능해진다. 전혀 거동을 못하고 누워 지낸다.

– 2일 전: 불러도 반응이 없다.

– 1일 전: 몸에서 철이 녹슨 듯한 냄새가 난다.

– 한나절 전: 손발이 차가워지고 자줏빛으로 면한다. 혈압이 떨어진다.

– 임종: 호흡이 멈추고 온몸이 차가워진다.

<오가사와라 분유, 더 없이 홀가분한 죽음, 위즈덤하우스, 2018, p. 184>

빈소

빈소

나이 어린 후배가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사업이 잘 된다고 해서 그런 줄만 알았는데, 실상은 아니었나 보다. 그가 짊어졌던 절망의 무게가 쓸쓸하고 안쓰러웠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선배는 초라한 변명조차 하지 못한 채, 그저 황망한 마음으로 빈소를 찾을 뿐이다.

영정 속 그의 모습은 꽃다운 청년이었다. 딸의 통곡 소리가 장례식장에 번졌다. 문상객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숙였다. 먼저 떠난 후배의 명복을 빌 뿐, 어떤 위로도 위로가 되지 못하고 허공에 흩어졌다. 다음 생에서는 부디 행복하길 빌어 보는데, 그것조차 부질 없었다.

영원히 사는 방법 (2)

영원히 사는 방법 (2)

베네딕트의 계율 4장 47절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매일 죽음을 눈앞에 두라.

이 말의 의미를 깨달으면 우리는 영원히 사는 방법을 알 수 있다. 베네딕트 수사인 데이비드 스타인들라스트는 이 말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돌이킬 수 없는 최종적 죽음은 우리로 하여금 한 가지 결정에 도전하도록 한다. 지금 여기에 완벽히 존재하고, 그럼으로써 영원한 삶을 시작하겠다는 결정이다. 올바르게 이해된 영원성은 시간의 영속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는 지금을 통한 시간의 극복이다.

<파커 파머,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글항아리, 2018, p. 234>

영원히 사는 것은 시간의 영속이 아니라 지금을 사는 것이다.

영원히 사는 방법

영원히 사는 방법

우주의 모든 생명체에게 죽음은 숙명이다. 태어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죽게 되어 있다. 오직 인간들만이 그 죽음을 피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중국 진시황은 영생을 위해 불로초를 찾으려 했고, 현대 과학은 생명 연장을 위해 냉동인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모두 부질없는 짓이다. 영원히 산다는 것은 시간 속에서 영속적으로 존재하는 삶이 아니다. 시간이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고 주어진 순간 순간을 최대한 충실히 사는 삶이다. 다른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If we take eternity to mean not infinite temporal duration but timelessness, then eternal life belongs to those who live in the present. 우리가 만약 영원을 시간이 무한히 지속된다는 뜻이 아니라 무시간성으로 받아들인다면, 영원한 삶은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몫이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산티아고 순례길 6] 무산몽환(霧山夢幻)

[산티아고 순례길 6] 무산몽환(霧山夢幻)

오리송 산장에 비가 부슬부슬 내렸고, 카미노는 안개 속에 사라졌다. 꿈결에 빗소리를 들었다. 아침에 보니 어제 그 청명했던 하늘은 온데간데 없고, 산은 안개와 구름으로 덮혀 있었다. 앞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안개 속에 사라진 카미노는 이미 이 세상 길이 아니었다.

이슬비와 안개와 구름으로 가득한 꿈같은 길. 그 길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순례자들. 안개 속에서 풀을 뜯고 있는 양떼와 소들. 우리는 모두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산티아고로 향했던 카미노는 이제 다른 세상에 닿아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삶이란 안개 속의 카미노와 같은 것.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지만, 저 안개 너머에 무지개가 있을 거라 기대하며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나아가는 것.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과 설레임으로 온몸을 전율하는 것. 무산몽환(霧山夢幻).

피레네 산맥의 안개 속 카미노를 걸으면서 삶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삶과 죽음은 본래 하나다. 마치 동전의 앞면과 뒷면과 같이 늘 같이 그리고 가까이 있는 것. 죽음이 삶을 가치있게 한다는 역설. 안개 속 카미노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워 나갔다.

안개 속의 카미노
안개 속의 카미노
소와 자전거
소와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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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에서 풀을 뜯고 있는 양떼
양치기와 개
양치기와 개
카페 앞의 순례자들
카페 앞의 순례자들
숲 속의 안개
숲 속의 안개
안개 속으로 사라진 길
안개 속으로 사라진 길
론세스바예스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
론세스바예스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
인간의 욕망과 운명

인간의 욕망과 운명

인간의 욕망이 바로 그의 운명이다. 왜냐하면 그의 욕망이 바로 그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의지가 곧 그의 행위이며, 그의 행위가 곧 그가 받게 될 결과이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인간은 그가 집착하는 욕망에 따라 행동한다. 죽은 다음에 그는 그가 한 행위들의 미묘한 인상을 마음에 지니고서 다음 세상으로 간다. 그리고 그의 행위들의 수확을 그곳에서 거둔 다음에 그는 이 행위의 세계로 다시 돌아온다. 이와 같이 욕망을 가진 자는 환생을 계속할 수 밖에 없다.

<브리하다라냐카 우파니사드>

임종을 맞이할 때 읽는 기도문

임종을 맞이할 때 읽는 기도문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임종을 맞이할 때 붓다와 보디사트바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진리와, 진리를 깨달은 자와, 그를 따르는 구도자들에게 임종자 자신이나 그의 가족들이 예물을 바친다. 마음으로 상상해서 예물을 바칠 수도 있다. 손에는 향기 좋은 향을 들고 마음을 모아 다음과 같이 반복해서 말한다.

아, 열 가지 방향에 있으며 더없는 자비를 갖추시고 지혜와 투시력과 사랑을 갖고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보호해 주시는 붓다들과 보디사트바들이여. 자비의 힘으로 이곳에 내려오셔서 차려 놓은 공양물과 마음으로 만든 공양물을 받으소서.

아, 자비로운 이여. 당신은 무한한 지혜와 자비의 사랑과 신통력과 보호하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자비로운 이여, 지금 (동진이)가 이 세상을 떠나 저 세상으로 가려 합니다. 그는 지금 이 세상을 떠나려 하고 있습니다. 그는 큰 이동을 하려고 합니다. 그는 이제 친구가 없습니다. 불행은 참으로 큽니다. 그는 이제 지켜 줄 이도 보호해 줄 이도 없으며, 아무런 능력도 동행자도 없습니다. 이 세상의 빛이 져 버렸습니다. 그는 다른 곳으로 갑니다. 그는 무거운 어둠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는 가파른 절벽 아래로 떨어집니다. 그는 고독의 밀림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는 카르마의 힘에 끌려 다닙니다. 그는 광막한 정적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는 거대한 바다 위에 떠다닙니다. 그는 카르마의 바람에 밀려 다닙니다. 그는 안정이 없는 곳으로 들어갑니다. 그는 큰 갈등 속에 빠집니다. 그는 거대한 악귀들의 포로가 됩니다. 그는 죽음의 왕이 보낸 사자 때문에 두려움과 공포에 빠집니다. 카르마가 그를 윤회 속으로 끌어당깁니다. 그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그는 이제 혼자서 가야 할 때가 왔습니다.

아, 자비로운 이여. 지켜 주는 이 없는 (동진이)를 지켜 주소서. 보호받지 못하는 그를 보호해 주소서. 그의 힘이 되어 주시고 동행자가 되어 주소서. 사후세계의 어둠으로부터 그를 보호해 주소서. 카르마의 붉은 광풍으로부터 그를 비켜 가게 하소서. 죽음의 왕들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부터 그를 벗어나게 하소서. 사후세계의 길고 좁은 여행길로부터 그를 구하소서.

아, 자비로운 이여. 자비의 힘을 늦추지 마시고 그를 도우소서. 그를 불행한 곳으로 가게 하지 마소서. 당신의 옛 맹세를 잊지 마소서. 당신의 자비의 힘을 늦추지 마소서.

아, 붓다들과 보디사트바들이여. 이 사람을 향한 자비의 힘을 거두지 마소서. 당신의 자비의 밧줄로 그를 붙잡으소서. 악한 카르마의 힘에 이 생명 가진 자가 굴복하게 하지 마소서.

아, 진리와 진리를 깨달은 자와 그를 따르는 구도자들이여. 사후세계의 불행으로부터 이 사람을 보호하소서.

<티벳 사자의 서, pp. 457-459>

겸허하고 강한 믿음을 갖고 이렇게 기도하고 모든 참석자들이 그것을 세 번 반복해 읽는다.

사후세계

사후세계

<티벳 사자의 서>에서 얘기하는 죽음 이후의 세계는 다음과 같다. 바르도(Bardo)는 글자 그대로 ‘사이(Bar)’와 둘(do)’을 뜻한다. 두 상태 사이, 다시 말해 죽음과 환생 사이가 바르도이다.

죽음을 맞이한 순간부터 3일 반이나 때로는 4일 동안, 대부분의 경우 의식체는 자신이 육체로부터 분리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기절 상태 또는 수면 상태에 빠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기간이 첫번째 바르도이며 그것은 치카이 바르도(Hchikhahi Bardo), 곧 ‘죽음 순간의 바르도’라고 부른다. 이때 최초의 투명한 빛이 사자 앞에 나타난다. 그 빛은 모든 존재의 근원으로부터 밝아 오는 순수한 빛이다. 그러나 사자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다시 말해 그 빛이 상징하는 마음 본래의 초월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지 못하고, 자신의 카르마 때문에 그것을 흐릿하게 인식한다.

첫번째 바르도가 끝났을 때 자신에게 죽음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자는 두번째 바르도를 경험하기 시작한다. 이것을 초에니 바르도(Chösnyid Bardo), 곧 ‘존재의 근원을 체험하는 바르도’라고 부른다. 이 상태는 곧이어 세번째 바르도의 상태로 흘러들어간다. 그것이 시드파 바르도(Sridpahi Bardo), 곧 ‘환생의 길을 찾는 바르도’이다. 이 바르도는 의식체가 인간계나 다른 세계, 또는 천상의 극락세계에 환생함으로써 막을 내린다.

<티벳 사자의 서, p. 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