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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철거민

이제는 추기경의 죽음으로 돌려막아야 할때?

이제는 추기경의 죽음으로 돌려막아야 할때?

어제 저녁, 김수환 추기경이 87년의 생을 마감했다. 아침에 일찍 KBS를 보니 온통 추기경의 죽음에 대한 뉴스 뿐이었다. 처음 서너 꼭지야 그렇다해도 10여분이 넘게 추기경의 죽음에 대한 보도가 이어지니 점점 지겨워지다가 마침내, 혹시 푸른 기와집에서 또 돌려막기 지령이 내려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천주교 신자가 아니기 때문에 추기경이 얼마나 높은 자리인지 잘 알지 못한다. 또한, 그가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얼마나 헌신해 왔는지도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사제들은 진정한 종교인임을 인정한다. 그리고, 박정희 시절 탄압받는 사람들의 편에 섰던 지학순 주교의 이름을 또렷히 기억한다.

지난 성탄절에 이명박이 김수환 추기경을 문병 갔을때, 추기경은 이렇게 말했다.

이 대통령은 김 추기경에게 “교회에서 성탄예배를 보고 오는 길”이라며 인사를 건넸다. 이에 김 추기경은 “이렇게 누워서 맞게 돼 좀 미안하다. 바쁘신 대통령께서 이렇게 오셔서 감사하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김 추기경은 특히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대통령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 내가 참 힘이 난다”며 격려했다.

[김수환 추기경 “대통령 말들으면 힘난다”, 한국경제신문]

지난 시절 김수환 추기경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내가 잘 모르지만, 이제 병원에 누워있던 추기경은 이명박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 힘이 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는 이명박의 목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끼치고 구역질이 올라오는데, 추기경은 힘이 난단다. 문병 온 사람에 대한 인사치레인지, 아니면 너무 나이가 들어 판단력이 흐려진 것인지도 모르고, 그도 아니면, 원래 이명박 같은 특권층을 좋아한 사람이지도 모른다.

용산참사를 강호순 사건으로 돌려막겠다던 이명박 정권이 이제 김수환 추기경의 죽음으로 위기를 모면할지 모른다. 이제 정권의 주구가 되어버린 KBS가 온종일 추기경의 삶과 죽음에 대해 방송을 해댈 것이고, 조중동은 온 지면을 추기경 이야기로 도배를 할 것이다. 용산참사와 강호순을 이용한 여론조작으로 궁지에 몰렸던 이명박이 한숨을 쉴 수 있을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혹 저 세상에서 용산 참사로 먼저 가신 철거민 양반들을 만나거든, 빈말이라도 “미안하다”라고 한마디 하고, 그들을 위로해 주시라. 추기경에게는 힘을 주던 이명박의 말이 그들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나를 열받게 하는 것들

나를 열받게 하는 것들

아무리 사랑하고 아껴주는 남녀지간이라도 싸울 때는 싸워야 한다. 아주 가끔 가다 평생 부부싸움 한 번 하지 않았다는 불가사의한 부부들을 만나곤 하는데, 나의 경험을 비춰 보았을 때 그들의 증언은 너무나 초현실적이어서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 몇 십년 간 같이 살을 맞대고 산 부부라도 가끔 말다툼을 하는데, 그런 것조차 없다면 그 부부들은 이미 성인의 경지에 다다른 사람들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새해 들어서 나의 사랑하는 아내가 딱 한 번 나를 열받게 했는데, 사실 지나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었지만, 아내가 나를 열받게 하는 순간을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러자 아내는 나를 “밴댕이”라 놀려댄다. 대개의 여자들이 남자들을 비아냥거릴 때 가장 자주 쓰는 말 중의 하나가 이 “밴댕이 소갈딱지”인데, 이것도 여자들이 남자들을 틀짓는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 중 하나이다.

남자는 대체로 아량이 넓어야 하고, 이해심도 많아야하고, 대범해야 한다는 일종의 선입견 때문에 많은 남자들이 여자들로부터 밴댕이라고 손가락질 당하지만, 사실 남자들 중에서 (나처럼) 꽤나 소심한 사람들이 여자 못지 않게 많다. 그 소심한 남자들은 여자들처럼 잘 삐지기도 하고, 참을성이 없으며, 사소한 일에도 열받곤 한다. 그런 남자들을 일방적으로 밴댕이라 몰아부치는 것은 그들을 너무나 억울하게 만드는 일임을 여자들은 알까?

안도현의 시 “나를 열받게 하는 것들”을 읽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가, 정작 분노해야 할 것에는 침묵하면서 사소한 것들을 참아내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이 느껴져 씁쓸했다.

나를 열받게 하는 것들은,
후광과 거산의 싸움에서 내가 지지했던 후광의
패배가 아니라 입시비리며 공직자 재산공개 내역이 아니라
대형 참사의 근본원인 규명이 아니라 전교조 탈퇴확인란에
내손으로 찍은 도장 빛깔이 아니라 미국이나 통일문제가
아니라 일간신문과 뉴스데스크가 아니라
아주 사소한 것들
나를 열받게 하는 것들은,

이를테면,
유경이가 색종이를 너무 헤프게 쓸 때,
옛날에는 종이가 얼마나 귀했던 줄 너 모르지?
이 한마디에 그만 샐쭉해져서 방문을 꽝 걸어 잠그고는
홀작거리는데 그때 그만 기가 차서 나는 열을 받고
민석이란 놈이 후레쉬맨 비디오에 홀딱 빠져있을 때,
이제 그만 자자 내일 유치원 가야지 달래도 보고
으름장도 놓아 보지만 아 글쎄, 이 놈이 두 눈만 껌뻑이며
미동도 하지 않을 때 나는 아비로서 말못하게 열받는 것이다

밥 먹을 때, 아내가 바쁘다는 이유로 시장을 못 갔다고
아침에 먹었던 국이 저녁상에 다시 올라왔을 때도 열받지만
어떤 날은 반찬가지수는 많은데 젓가락 댈 곳이 별로 없을 때도
열받는다 어른이 아이들도 안 하는 반찬투정하느냐고
아내가 나무랄 때도 열받고 그게 또 나의 경제력과 아내의 생활력과
어쩌고 저쩌고 생활비 문제로 옮겨오면 나는 아침부터 열받는다
나는 내가 무지무지하게 열받는 것을
겨우 이만큼 열거법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나 자신한테 열받는다
죽 한그릇 얻어 먹기 위해 긴 줄을 서 있는 아프리카 아이들처럼
열거는 궁핍의 증거이므로

헌데
열받는 일이 있어도 요즘 사람들은 잘 열받지 않는다
열받아도 열받은 표를 내려고 하지 않는다
요즘은 그것이 또한 나를 무진장 열받게 하는 것이다

<안도현, 나를 열받게 하는 것들>

2년 동안 7명의 여자들을 죽였다는 어떤 싸이코패스가 잡혔는데, 인간이라는 탈을 쓰고 짐승만도 못한 짓을 저지른 그런 자에게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철거민들이 과격 시위를 한다고 하룻밤 사이 6명의 사람을 불 속에서 태워 죽게 한 어느 경찰청장과 그런 청장을 처벌하면 어떻게 법질서를 세우겠냐고 게거품을 무는 또다른 싸이코패스들에게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친일과 독재에 부역했던 그런 자들과 같은 하늘을 이고 산다는 것 자체가 나를 무척 열받게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무기력하게 블로그질이나 하고 있는 나에게 무진장 열받는 것 또한 사실이다.

왜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는데, 세상 살기가 이리 쉽지 않은 것일까? 나는 살기 어려운 세상에 또다시 열받고 만다.

이명박 치하에서 국민 자격 없는 사람들

이명박 치하에서 국민 자격 없는 사람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대한민국 여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이명박 정권 아래서 자기가 당연히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생각한다면, 아니 대한민국 국민은 고사하고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이고 오해고 오산이다.

용산에서 5명의 철거민들이 불길에 휩싸여 개만도 못한 죽음을 당했다. 누구한테? 민중의 지팡이라고 자부하는 경찰한테 말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그 경찰한테 말이다. 엄동설한에 오갈데 없는 철거민들이 시위를 시작하자 3시간 만에 특공대 투입이 결정됐고, 하루만에 무자비한 진압을 통해 5명이 죽고, 수십 명이 체포되었다.

그들의 죄는 수십년 동안 용산에서 세입자로서 “가난”하게 살았다는 것이고, 재개발이 시작되자 갈곳이 없었다는 것이고, 이사비 정도만 받고 나가라고 할 때 조용히 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 아래서는 그것이 이 엄동설한에 불에 타서 죽어도 될 정도의 중죄인 것이다.

용산구청은 이미 지난해부터 이런 사태를 미리 예고하고 있었다.

구청에 와서 생떼거리를 쓰는 사람은 민주시민 대우를 받지 못하오니 제발 자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용산구청 앞 간판, “생떼거리 쓰는 사람은 자제하시길”, 오마이뉴스]

여기서 생떼거리를 쓰는 사람은 당연히 철거민들을 지칭하는 것이고, 민주시민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개만도 못한 취급을 할 수 있다는 경고였다. 철거민들은 지금이 이명박 정권 세상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하기야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그들에게 보이는 것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5명의 철거민이 죽고나서도 청와대의 한 대변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런 과격시위의 악순환이 계속될 수 있는데 이번 사고가 그런 악순환을 끊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김은혜, “과격시위 악순환 끊는 계기” 발언 논란, 오마이뉴스]

이건 이명박 정권의 솔직한 심정을 철모르는 청와대 대변인이 순진하게 얘기한 것이다. 앞으로도 생떼거리를 쓰거나 과격시위를 하면 저렇게 죽을 수 있으니 밤길 조심하라는 일종의 부드러운 협박이다.

신지호라는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아예 대놓고 이렇게 얘기했다.

전철연은 반 대한민국 단체이고, 이번 농성은 생존권 투쟁이 아니라 전철연이라는 반 대한민국 단체가 벌인 도심테러이다.

[신지호 “반국가단체의 도심테러”, 오마이뉴스]

철거민들이 모여 만든 단체는 반국가 테러단체이고, 철거민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 테러분자라는 말을 공공연히 한다. 물론 신지호라는 자도 이명박과 같은 뉴라이트 출신이다.

이명박 정권 치하에서 국민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고소영, 강부자 정도 그리고 종부세 대상자가 될 정도의 재산이 있는 사람들 정도이다. 전체 국민에 1~2% 되는 사람들이다. 이명박 정권이 얘기하는 거의 모든 정책, 경제 살리기 등등은 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지, 나나 당신들을 위해서가 아니다.

이런 극한 상황을 당하고도 아직도 이명박이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사람들은 정신적으로는 이명박 정권의 국민이 될 수도 있겠다. 물론, 그들이 국민 취급을 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이명박이 지하 벙커로 들어가고나서, 자칭 미네르바라는 네티즌이 구속되었고, 5명의 철거민이 숨졌다. 이명박은 이미 만반의 준비를 끝낸 셈이고, 이건 시작일 뿐이다. 누차 얘기하지만, 선택은 둘 중 하나다. 견디든지 아니면 싸워 끌어내든지. 이도저도 아니면 소망교회라도 다녀보든지.

돌아가신 철거민들의 명복을 빈다. 다음에는 철거없는 나라에서 태어나서 행복하게 사시길.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