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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추석

2019년 추석 가정 예배

2019년 추석 가정 예배

  1. 사도신경
  2. 찬송 (460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3. 개회 기도
  4. 말씀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혹은 ‘무엇을 입을까?’ 하면서 걱정하지 마라. 이런 걱정은 이방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에게 이 모든 것이 필요한 줄을 아신다. 먼저 아버지의 나라와 아버지의 의를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들이 너희에게 덤으로 주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할 것이고, 오늘의 고통은 오늘로 충분하다. <마태복음 6:31-34>
  5. 기도
  6. 감사 묵념
  7. 찬송 (305장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8. 주기도문

달의 꽃

달의 꽃

일본의 하이쿠 시인 오니쓰라는 보름달 달빛 아래서는 모두가 꽃이라고 말한다.
나무도 풀도 세상 모든 것이 꽃 달의 꽃 木も草も世界みな花月の花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살아 있는 모든 이들이 꽃처럼 아름답기를 기도한다. 한가위 달빛 아래에서 모든 것들이 꽃이 되길 기도한다. 그리하여 이곳이 천국이 되길, 밝은 달님 아래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천국이 되길 기도한다.
사위어가는 고향

사위어가는 고향

어릴 적, 추석에 고향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고향가는 사람들로 꽉 들어찬 버스는 차리리 꽁치통조림이었다. 비포장길을 먼지 풀풀 날리며 굽이굽이 달렸던 통조림 버스 속에서 고향은 여전히 아득했다. 서너 시간의 고생 끝에 드디어 당도한 고향은 생기와 위안을 주었다. 시골이라도 북적거렸고, 명절 냄새가 가득했다.

세월이 흐르고, 모든 것은 변했다. 고향을 지키던 사람들은 이제 모두 팔순이 넘거나 아니면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많은 것이 편리해졌지만, 고향은 점점 소멸해가고 있었다. 뜨거운 가을 볕에 팔순을 넘긴 농부 몇이 밭에 엎드려 힘겨운 노동을 견디고 있을 뿐, 그 예전의 북적거림과 생기는 모두 사라졌다.

그들이 모두 사라지면, 고향은 어떻게 될 것인가? 노인들은 해가 다르게 야위어가고 기력을 잃었다. 머리 맡에 한 바구니의 약봉지만이 그들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더러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남은 이들도 오래지 않아 떠날 것이다. 고향에는 빈집들만 덩그러니 남을 것이고, 논밭에는 이름모를 풀들이 무성할 것이다.

명절에 찾은 고향은 점점 사위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곧 사라져 버릴 것 같다. 아름다운 것은 그렇게 사라질 것이고, 사라지는 것은 그리움의 여운을 길게 남길 것이다. 고향은 이제 기억 속에만 남게 될 것이고, 누군가는 그 아련함을 추억하며 살 것이다.

빈둥거릴 때 읽으면 좋은 시

빈둥거릴 때 읽으면 좋은 시

6일이나 되는 추석 연휴 내내 한없이 빈둥거렸다. 사놓기만 하고 읽지 않았던 책이나 읽어보자고 계획 아닌 계획을 세웠지만, 그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하루 세끼 꼬박꼬박 찾아먹고, 평소에 자지않던 낮잠도 실컷 잤는데, 밤에는 여전히 잠이 쏟아졌다. 체중은 하루가 다르게 늘었고, 운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 하루는 딸아이를 데리고 집 근처 뒷산을 다녀왔으며, 하루는 고궁에 나갔다 하릴없이 쏘다닌 것이 전부였다.

정현종의 <시간의 게으름>을 읽고 행복했다. 6일이 살과 같이 흘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했다.

나, 시간은,
돈과 권력과 기계들이 맞물려
미친 듯이 가속을 해온 한은
실은 게으르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런 속도의 나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보면
그건 오히려 게으름이었다는 말씀이지요)

마음은 잠들고 돈만 깨어 있습니다.
권력욕 로봇들은 만사를 그르칩니다.
자동차를 부지런히 닦았으나
마음을 닦지는 않았습니다.
인터넷에 뻔질나게 들어갔지만
제 마음속에 들어가보지는 않았습니다.

나 없이는 아무것도
있을 수가 없으니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실은
자기 자신이 없습니다.

돈과 권력과 기계가 나를 다 먹어버리니
당신은 어디 있습니까?

나, 시간은 원래 자연입니다.
내 생리를 너무 왜곡하지 말아주세요.
나는 천천히 꽃 피고 천천히
나무 자라고 오래 오래 보석 됩니다.
나를 ‘소비’하지만 마시고
내 느린 솜씨에 찬탄도 좀 보내주세요.

<정현종, 시간의 게으름>

이런 것은 “저주”라 부를 만하다

이런 것은 “저주”라 부를 만하다

만약 화성 표면에서 일직선으로 된 무언가를 발견한다면, 인간들은 화성에서 생명체가 산다는 또는 살았다는 증거를 찾았다고 환호성을 지를 것이다. 자연과 우주는 일직선으로 된 무언가를 만들지 않는다. 어떤 생명체라든지, 아니면 초자연적인 존재의 의지가 들어가지 않는 한 그런 직선은 나타나지 않는다. 추석 연휴에 서울과 수도권에 물폭탄이라 부를만한 비가 쏟아졌다. 시간 당 거의 100mm의 비가 대여섯 시간 쏟아지니, 도시는 순식간에 물바다가 되었다. 기상 관측 이후 100여년만에 처음으로 광화문과 청계천 일대가 침수되었다. 이런 폭우를 가져온 비구름은 서울을 정확하게 조준한 폭탄처럼 보였다. 이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그런 구름이 아니었다. 무언가의 의지가 포함된 듯한 그런 구름이었다. 초자연적인 현상이라 할만했다. 이런 현상을 전문 용어로 “저주”라 부른다. 이 구름 사진을 보면서 나는 문수 스님을 떠올렸다. 왜 그랬을까? 추석 연휴 첫날부터 방송에 나와 찌질거리는 자가 있었고, 광화문과 청계천, 그리고 수도권에는 물폭탄이 떨어졌다. 하지만 정작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서민들만이 폭우의 피해자가 되었다. 풍성하고 즐거운 한가위가 아니라, 잊지 못할 슬픈 한가위가 되어버렸다.
가을 풍경

가을 풍경

추석이 지났다. 가을 들녘은 표현 그대로 황금 물결이었다. 신은 늘 그렇게 세상을 축복했다. 연일 따사로운 햇빛과 드높은 하늘과 맑은 물로 세상을 어루만졌다. 보릿고개는 그야말로 옛말이 되고 말았다. 곡식은 차고도 넘쳤지만,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예나 지금이나 힘에 겨웠다.

풍년이 되어도 농민들은 울상을 짓는다. 쌀값은 그들의 힘겨운 노동을 보상해 주지 못했다. 자연은 농민들을 축복했지만, 세상은 그들을 따돌렸다. 그들은 자식과 같은 벼를 갈아엎으며 눈물을 흘렸다.


© 김도균

남쪽에는 쌀이 넘쳤고, 북쪽에는 여전히 굶는 사람들이 많았다. 남는 쌀로 굶는 사람들을 먹이면 좋으련만 이념과 탐욕은 쌀을 버리고 사람을 굶어 죽게 만들었다. 짐승만도 못한 아집과 억지만이 난무했다.

성묘를 갔더니 밤나무에 밤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시골에는 사람이 없었고, 아무도 밤을 따가지 않았다. 감나무에도 감이 지천으로 열려 있었는데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

누런 곡식과 선홍색 감, 그리고 푸른 하늘이 어우러져 더할 나위 없는 풍광을 연출했다. 산은 고요했다. 바람은 선득선득 불었다. 가을 잠자리들이 산 기슭 밭을 어른거렸다. 옹달샘에는 맑은 물이 퐁퐁 솟아났다.

지구촌 곳곳에서 지진과 해일이 일었지만, 손바닥만한 한반도의 가을은 완벽했다. 바로 이런 곳을 천국이라 할 터인데, 인간들의 탐욕은 천국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었다.

슬픈 고향

슬픈 고향

길가의 코스모스가 한들거렸다. 바람은 흰구름을 동쪽으로 밀어냈고, 하늘은 깊은 푸른빛을 드러냈다. 소나무들은 쏴~아 하는 소리를 내며 춤을 추었다. 할아버지 산소는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었으며, 그 옆에 서 있는 밤나무에는 밤이 탐스럽게 영글어 있었다. 태풍이 몰고 온 더운 바람으로 가을은 성큼 다가올 수 없었다. 예년에 비해 비도 많았고, 더위도 쉽게 물러가지 않았지만 어김없이 추석은 찾아왔다.

어르신들은 들에 일을 나가시고, 빈 집을 지키는 개들만이 짖어댔다. 고향은 그렇게 고즈넉했다. 명절의 풍성함이 마을의 쓸쓸함을 막지 못했다. 퇴락해가는 마을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졌다. 사람들은 도시로 향했고, 고향에는 노인들만이 남겨져 있었다. 남겨진 고향이 그렇게 사라져 버린다면 어찌될 것인가.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들은 어찌할 것인가.

남겨진 고향은 그렇게 슬퍼보였다.

너무 멀리 오다

너무 멀리 오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여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해ㅅ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어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정지용, 향수(鄕愁)]

내일이 추석이다. 고향의 정겨운 풍광들이 그리워지는 때다. 길가에 한들거리는 코스모스, 뒷산 언덕배기에 떨어져 있는 밤송이,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그리고 연하게 푸른 하늘, 안부를 묻는 친척들의 느린 사투리, 할아버지 묘소의 고즈넉한 침묵, 끈질긴 생명력의 잡풀들, 앞 산으로 구불구불 사라지는 마을길. 이렇게 그리운 것들을 떠나 나는 너무 멀리 온 것 같다.

정지용의 향수를 이동원 박인수의 목소리로 들으며, 고향의 품 속으로 되돌아 간다. 부모님이 보고 싶다.

[audio:Leedongwon-Nostalgia.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