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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의 상상력

헌재의 상상력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본래 정치적이다. 헌재는 형식 상으로는 어떤 법률이 헌법에 위배되는지를 판결하는 곳이다. 하지만 헌법은 원칙과 틀만을 제공하기 때문에 판결은 재판관의 해석에 따르게 되어 있다. 헌재 재판관들의 헌법 해석은 그들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므로 같은 사안을 놓고도 재판관의 성향에 따라 전혀 다른 판결이 나오게 된다.

우리나라 헌재는 창의적인 상상력으로 꽤 유명한 판결을 내려 왔다. 대표적인 것이 2004년 행정수도 이전에 관한 법률이 위헌이라는 판결이다. 헌재 재판관 대다수가 관습헌법을 들먹이며 수도를 옮기려면 헌법을 고쳐야 한다고 판결했다. 성문헌법을 따르는 나라에서 헌법 조항에도 없는 사항을 어떻게 수정할 수 있을까? 사실 그들은 스스로 헌법 조항을 만들어 수도 이전을 반대했던 것이다. 그 당시 전효숙 재판관만이 유일하게 상식에 맞는 의견을 냈다.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도 마찬가지다. 이석기 전 의원을 변명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나, 그의 내란음모 혐의는 대법원에서 무죄로 판명되었다. 헌재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기 전에 1심의 판결만을 바탕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은 정당을 해산한다. 그들의 정치적 색깔을 과감하게 드러낸 것이다. 이때도 김이수 재판관만이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냈다.

2008년 종부세 위헌 판결도 역사에 남을만한 것이다. 물론 헌재 재판관 대다수가 종부세 대상자였으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들은 그들의 가치관, 정치관뿐만 아니라 이해 관계에 따라서도 판결을 해왔던 것이다.

헌재 재판관들 중 몇몇은 이번 박근혜 탄핵 사건도 기각해 버리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을 것이다. 관습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왕인데, 어디 무지렁이 백성들이 왕을 쫓아내려고 한단 말인가. 기각하고 싶은데 워낙 증거가 뚜렷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할 것이다. 이번에는 어떤 이유를 들어 탄핵을 기각하려 할까? 박근혜 뇌물죄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으니 탄핵은 안 된다고 할까? 특검이 박근혜를 직접 조사하지 않았으니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할까? 아니면 대통령은 왕이니까 원래 탄핵할 수 없다고 할까?

그들의 창의성과 상상력을 기대해 본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판결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판결들

1. 며칠 전 헌법재판소는 미디어법에 대한 권한쟁의 청구 사건에 대해 절차상 위법이지만 법의 효력은 유효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대리투표도 사실이고, 일사부재의 원칙도 위배했지만 법의 효력은 인정한단다. 헌법재판소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행정수도 심판에서는 관습헌법과 경국대전을 들먹였고, 종부세에 대해서는 취지는 인정하는척 하면서 무력화시켰다. 그리고 이번 미디어법에 대해서는 절차는 위법이지만 효력은 인정한단다. 그들의 상상력과 계급의식과 비열함에 경의를 표한다. 헌법재판관 중에서도 상식을 가진 이들이 있지만 그들은 역시 소수에 불과했다. 평생 법을 공부한 법의 전문가들이 내놓은 판결은 유치원생들의 상식에도 부합하지 못했다. 그 법관들은 유능했고, 명석했고, 상상력이 풍부했고, 거의 완벽에 가까웠지만, 단 한가지 부끄러운 줄을 몰랐다. 그들의 판결이 그들의 이름과 함께 역사에 남는다는 사실에 부끄러워 하지도 않았고, 두려워 하지도 않았다.

2. 용산 참사 피고인들에 대해 중형이 내려졌다. 그 피고인들의 가족과 이웃 5명은 용산에서 경찰의 진압 도중 불에 타 숨졌다. 물론 사건 발생 열 달이 지났는데도 장례조차 치루지 못했다. 그 피고인들은 피고인이기 전에 피해자였다. 그럼에도 검찰은 농성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그들을 기소했고 법원은 그들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검찰은 법원이 제출하라는 수사기록 3천 페이지조차 제출하지 않았지만, 법원은 검찰의 손을 들어주었다. 법원은 증거도 없이 추측에 근거하여 판결을 내렸다. 남편은 불에 타 숨졌고 아들은 징역을 살아야 하는 기구한 운명에 처한 여인이 오열했다. 법을 다루는 자들은 그 여인의 오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억울한 사람들의 피눈물을 모른척 했다. 법은 가진 자의 손을 들어 주어야 하는 것이 이 나라의 법이 되어버렸다.

3. 지만원이라는 사람은 영화배우 문근영의 기부 행위에 대해 “문근영 기부는 빨치산 선전용 심리전”이라는 말을 했다. 이 말에 대해 한 네티즌이 “지만원은 만원이라도 냈나”고 일갈하자 그 네티즌은 모욕죄로 고소되었고 법원은 그 네티즌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지만원의 인격이 소중하다면 문근영의 인격도 그에 못지 않게 소중하다는 것이 상식일 터인데, 법원은 지만원의 인격을 보호해 주었다. 물론 문근영은 지만원을 고소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만약 문근영이 지만원을 고소했다면 법원은 문근영의 인격을 지만원의 인격처럼 보호해 주었을까?

4. 판사에게 석궁을 쏘았다고 알려진 김명호 전 교수는 대법원에서 4년형을 선고받았다. 물론 그가 진짜 판사에게 석궁을 쏘았는지는 김명호 교수와 그 판사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김명호 전 교수는 최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했으나 역시 패소했다. 정직에 대한 댓가를 처절하게 치른 그가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아직도 법에, 법원에, 판사에게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수학자이기에 그의 논리로 법에 도전했지만, 이 땅의 법은 논리가 통하는 법이 아니었다. 절차가 위법인데도 그 효력을 인정해주는 법원에 논리를 들이댄다면, 그 논리를 들이대는 사람만 바보가 되어버린다.

유사 이래 법은 단 한 번도 만인 앞에 평등하지 않았다. 법은 가진 자의 편이었고, 권력의 편이었다. 불쌍하고 억울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보다는 그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도록 만들었다. 이것이 법에 대한 나의 기대이고, 법은 여간해서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종부세가 합헌이었다면 그건 더 놀라운 일이다

종부세가 합헌이었다면 그건 더 놀라운 일이다

종부세에 관련된 위헌소송에서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면, 그것은 미국에서 흑인 대통령이 선출된 것보다도 더 놀랍고 역사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이런 판결에서 합헌 결정을 바란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너무 순진한 사람이거나 또는 외계인일 가능성이 크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 중 8명이 종부세 대상자다. 재판관의 90% 이상이 이해당사자라는 말이다. 이들 중 재산이 10억 미만인 사람이 두명뿐이다. 이 두명만 합헌 결정을 내렸고, 나머지 7명은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들은 헌법이라는 잣대로 종부세를 판단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재산을 기준으로 종부세를 재단한 것이다.

위헌 판결을 내린 7명의 재판관은 강만수보다도 더 교활하다. 이들은 종부세의 취지는 합헌이라고 박아놓고, 세대별 합산과 1가구 1주택 세부과에 대해 위헌과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림으로써 사실상 종부세를 빈 껍데기로 만들었다. 차라리 강만수처럼 종부세는 징벌적 과세 운운하는 것이 더 순진하고 착해보인다.

종부세는 관습헌법으로도 위헌이다. 관습헌법.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몇년 전에 행정수도 이전에 관한 법률이 관습헌법에 의해 위헌판결 났던 것을 기억하는가? 관습헌법에는 서울이 수도로 규정되어 있기에 관습헌법을 고치지 않고는 수도를 옮길 수 없다고 주장했던 헌법재판소의 노친네들을 기억하는가? 마찬가지다. 종부세 같은 것은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있는 세금이다. 감히 가진자에게 세금을 물리다니. 세금은 원래 천한 아랫것들이나 내는 것이었다. 그런 세금을 상위 2%에게 물리다니 노무현은 그들에게 (오바마가 아닌) 오사마와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만약 종부세가 헌재의 노친네들에 의해 합헌 판결이 났다면, 나는 정말 놀랐을 것이다. “내가 아는 대한민국이 이 정도 수준이 아닌데, 내가 알고 있는 대한민국 주류의 파렴치함이 이 정도가 아닌데” 하면서 참회의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그들은 그들의 저렴한 수준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말았다.

종부세, 행정수도 이전, 간통죄 등등의 문제를 헌재의 노친네들에게 물어본다는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그들이 사회적으로 존경받을만한 삶을 살지도 않았고, 그들의 도덕성이 일반인들보다도 딱히 낫다고 볼만한 근거도 없기에 그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이런 가치관과 관련된 문제의 판결을 맡기고, 그 판단이 최종이 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다. 그들은 매트릭스의 오라클이 아니다. 그들은 선출된 권력도 아니고, 9명의 출신 성분이 대한민국 국민들을 대표할 수 정도로 분포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헌법재판소의 이런 시스템이 계속되는 한, 수도이전이나 종부세 판결과 같은 파렴치한 결과가 계속될 것이다.

직접 민주주의가 강화되지 않고는 이런 문제들은 영원히 해결될 수 없다. 선거 참여가 의무화되어야 하며, 국민투표는 대통령뿐만 아니라 다수의 국민들에 의해서도 발의되어야 한다. 브라질이나 호주처럼 투표가 의무화된다면, 이명박 같은 자가 대통령으로 뽑힐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지고, 오늘과 같은 헌재의 교활한 판결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가진 자들이 무엇을 해주길 기대하지 말라. 주류들에게 무엇을 나누어 받기를 기대하지 말라. 당신이 강부자나 고소영이 아닌 한, 이명박에게 무엇을 기대하는 것은 당신이 등신이라는 사실을 만방에 과시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그냥 견디든지, 견딜 수 없으면 싸우든지, 선택은 둘 중에 하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