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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보다 지독한 현실

악몽보다 지독한 현실

2014년 4월 16일, 300명 넘는 사람들이 진도 앞바다에 수장되었다. 이것은 불가항력의 선박 사고가 아닌, 미필적 고의와 구역질나는 탐욕이 부른 학살에 가까운 인재였다. 죽은 이들 중 대부분은 아직 꽃도 피지 않은 어린 학생들이었다. 부모들은 피를 토하며 울부짖었다. 참혹한 슬픔과 절망이 차라리 악몽이길 빌었다.

아이의 시신조차 찾지 못한 어머니는 흐느끼며 이렇게 말했다.

“먼저 시신이라도 찾은 가족들을 보면 우리는 ‘축하한다’고 말하고 유가족들은 ‘미안하다’고 말한다.”

<[세월호 참사]”사과할 시간 있으면 잠수부들 안마나 해달라”, 노컷뉴스>

시신 찾은 것을 축하해야 하는 현실, 이것을 견디어야 하는 가족들, 그 말을 전해들어야 하는 국민들, 이 모습은 악몽보다 지독한 대한민국의 현실이었다.

2012년 12월, (비록 냉소적이었지만) 안녕하길 바랬는데, 그것은 그냥 공염불이 되어 버렸다. 슬픔은 늘 그렇듯 살아남은 자들의 몫으로 남았고, 악몽보다 지독한 현실은 기억 뒷편으로 사라질 것이다. 또다른 탐욕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와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을 것이고, 깨어있는 몇몇은 또다시 그들의 안녕을 기도할 것이다.

가위에 눌리다

가위에 눌리다

꿈 속에서 나는, 현실에서 내가 자고 있는 모습과 똑같은 모습으로 자고 있었다. 말하자면, 꿈 속의 나와 현실의 나는 구분되어지지 않았다. 꿈 속의 나는 잠을 자면서 또다른 존재를 느끼게 되는데, 그 존재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만, 꿈 속에서 그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알 뿐이었고, 그 존재가 “또다른 나”란 사실을 알았다. 그 존재는 꿈 속에서 자고 있는 나에게 달라붙었다. 꿈 속에서 나는 움직일 수 없었고, 현실의 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현실의 나는 꿈 속의 나와 동조되어 있었고, 꿈 속의 나는 또다른 나와 달라붙어 있었다.

너무나 답답하여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전혀 움직일 수 없었고, 숨도 쉴 수 없었다. 더이상 견디기 힘들게 되었을 때 가까스로 나는 꿈 속에서 눈을 떴고, 그러자 현실에서도 눈을 뜨게 되었다. 눈을 뜨자 꿈 속에서 나에게 달라붙어 있던 그 존재는 사라졌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가 조금 넘었다. 식은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