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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황사

3월의 황사와 뼈아픈 후회

3월의 황사와 뼈아픈 후회

서쪽에서 온 바람에 모래가 실려 왔다. 사람들은 황사라고도 했고, 흙비라고도 했다. 숨쉬기가 버거웠고, 목이 아팠다. 모래알갱이가 서걱서걱 씹혔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사람들은 봄을 기다렸지만, 봄은 황사에 밀려 쉬이 오지 못했다.

서걱거리는 황사 속에서 왜 자꾸 황지우의 “뼈아픈 후회”라는 시가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그 끝없는 이기심들의 암묵적 합의로 태어난 거짓의 향연 속에 사막의 모래바람이 사정없이 불어온다. 후회가 부질없기는 하지만 때로는 뼈에 새기는 아픔이 필요하기도 할 것이다.

이제 겨우 2주가 지났을 뿐인데, 황사 속에 끝없는 폐허가 아른거린다.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돌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高熱)이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희생, 나의 자기 부정 ;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주는 바람뿐

[황지우, 뼈아픈 후회]

황사를 예언한 놀라운 시

황사를 예언한 놀라운 시

4월의 첫날은 잔인했다. 숨을 쉬기조차 힘들 정도로 대기는 누런 먼지로 가득했다. 고비사막으로부터 불어온 모래 바람이 한반도를 뒤덮었다. 살아있는 것들은 웅크릴 수 밖에 없었다. 누가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가?

T. S. Elliot. 그는 1922년에 쓴 황무지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남긴다.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T. S. Elliot, The Waste Land]

첫 행만을 따로 떼어 놓고 보면,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숨쉬기에” 라고 해석될 수도 있지 않은가. 정녕 85년전에 Elliot은 중국과 한국에 있을 4월의 황사를 정확히 예언했단 말인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의 황무지 첫 구절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잔인한 날이었다.

인간은 자연을 정복할 수 없다. 자연이 허락하지 않으면 인간은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다. 자연 앞에 겸손하지 않는 인간들은 결국 자연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진리다.

맑은 공기로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느끼게 해 준 4월의 첫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