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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숭배하는 나라

영어를 숭배하는 나라

우리나라가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문화유산이 무엇일까? 한가지만을 꼽으라면 나는 서슴없이 “한글”이라 말하겠다. 문자를 발명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우수한 문자를 개발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프로젝트이다. 나는 한때 세종대왕이나 집현전 학자들이 지구인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 우리보다도 훨씬 문명이 발달한 어느 별에서 내려와 우리에게 문자를 만들어주고 간 별나라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 보았다.

한겨레 논설위원 곽병찬은 다음과 같은 짧은 칼럼에서 한글의 우수성을 얘기했다.

1997년 10월1일,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한 문자는? 1998년부터 2002년 말까지 유네스코는 말뿐인 언어 2900여종에 가장 적합한 문자를 찾는 연구를 했는데, 여기서 최고의 평가를 받은 문자는? 유네스코가 문맹퇴치 기여자에게 주는 상의 이름은 어떤 문자를 염두에 두고 지어졌나? 지구상 100여개의 문자 가운데 제작자 그리고 제작 원리와 이념이 정리되어 있는 유일한 문자는?

문맹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에서 사용하는 문자는? 일본의 오사카시는 엑스포 기념 세계민족박물관을 지어 세계의 문자를 전시했는데, 이 가운데 ‘가장 과학적인 문자’라는 설명이 붙어 있는 문자는? 언어학 연구에서 세계 최고라는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언어학대학이 합리성, 과학성, 독창성, 실용성 등의 기준에 따라 점수를 매긴 결과 1등을 차지한 문자는?

컴퓨터 자판에서 모음은 오른손으로, 자음은 왼손으로 칠 수 있는 유일한 문자는? 이동전화의 한정된 자판을 가장 능률적으로 운용할 수 있어 디지털시대의 총아로 떠오를 문자는? 발음기관의 움직임과 작용, 음성학적 특질을 본떠 만들었으며, 음양오행의 철학적 원리와 하늘·땅·사람의 존재론적 구조를 담고 있는 문자는?

〈대지〉의 작가 펄 벅이 “세계에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훌륭한 글자”라고 평가했고, 〈알파베타〉의 저자 존 맨은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라고 말한 문자는? 언어학자 라이샤워 교수가 “가장 과학적인 표기체제”라고, 시카고대학의 매콜리 교수는 “10월9일이면 꼭 한국 음식을 먹으며 지낸다”며 존경심을 털어놓은 문자는? 영국 리스대학교의 제프리 샘슨 교수가, 기본글자에 획을 더해 동일 계열의 글자(ㄱ, ㄲ, ㅋ)를 만든 독창성은 어떤 문자에서도 볼 수 없다고 칭송한 문자는? 그런데, 정작 그 나라 사람들은 그 귀함과 고마움을 잘 모르는 문자는?

<곽병찬, 답: 한글, 한겨레신문>

이런 훌륭한 말과 글을 가지고 있는 나라에서 정말 눈물겹게 웃기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단군 이래 최고의 거짓말쟁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가하면, 그 자의 여자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인수위원장이라는 여자는 영어 숭배 정책을 내놓고 국민을 협박하고 기만하고 있다. 이들로 대변되는 한국의 특권층이 영어 숭배 정책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지금 시점에서 영어는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켜주는 든든한 무기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야말로 한국의 특권층이 자신들을 일반인들과 차별화하는 수단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자녀들은 이미 어릴 때부터 미국에서 유학을 했기 때문에 다른 것을 몰라도 영어는 잘 한다. 영어가 숭배되는 나라에서 영어를 잘 하는 것은 선망의 대상이고 출세의 지름길이다. 지금 이명박, 이경숙으로 대변되는 자들은 이러한 환경을 공고히 하기 위해 영어 몰입 교육이라는 교활한 카드를 빼들었다.

물론, 이 정책이 그들의 배를 살찌우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영어 숭배 정책이 실행되면 테솔(TESOL)을 비롯한 영어 사교육 기관이 행복한 비명을 지를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돈이 없는 일반 서민들은 영어 양극화에 눈물을 글썽일 것이다. 이쯤되면 경제 때문에 이명박을 찍었다는 서민들은 자기 손가락을 자르고 싶은 충동을 느낄지도 모른다.

어느 시대든 마찬가지다. 훈민정음을 만든 세종 때에도 그 시대 기득권층은 한글 창제에 전면적으로 반대했다. 집현전 학자 최만리를 중심으로 한글이 중국문화와 제도를 따르지 않는 것이라 이유로 반대 상소를 올린 것은 유명한 일화 아닌가. 지금도 이런 생각에 젖어 있는 일부 법조인들은 법전에 있는 용어들을 한글화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옛날 의사들은 라틴어로 처방전을 쓰면서 자신들을 일반인들과 차별화했고, 다른 전문직 종사자들도 자신들만이 알 수 있는 전문 용어를 거침없이 사용하면서 자신들이 특권층임을 과시했다.

영어는 하나의 의사소통 수단일 뿐이다. 그것이 필요한 사람만 하면 된다. 영어를 잘 하는 것과 국가 경쟁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영어가 하나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사용되고 있고, 국민들의 그들이 벌인 사기판에서 또다시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당하고, 또 당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우매한 민중들이 가엾고 불쌍할 뿐이다. 당신들의 민도를 높이지 않으면 당신들은 언제나 특권층의 호구로 살아갈 것이다. 금모으기나 하면서, 기름에 절은 돌멩이나 닦으면서 말이다.

이명박이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무소유> 란다. 정작 그 책을 쓴 법정 스님은 그 책에 있는 “미리 쓰는 유서”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리고 내생에도 다시 한반도에 태어나고 싶다. 누가 뭐라 한대도 모국어에 대한 애착 때문에 나는 이 나라를 버릴 수 없다. 다시 출가 수행자가 되어 금생에 못 다한 일들을 하고 싶다.

<법정, 미리 쓰는 유서>

법정 스님은 한국말과 글에 대한 사랑 때문에 다음 생에서도 한반도에 태어나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이명박이 <무소유>를 제대로 읽었는지도 의심스럽다. 이 얼마나 눈물겨운 코메디인가. 대한민국 국민들은 5년간 자신들의 무덤을 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