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wsed by
Tag: 100분토론

이명박 지지율이 저렇게 높은 이유

이명박 지지율이 저렇게 높은 이유

어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100분토론 이후 블로그계가 난리가 났다. 어떻게 저런 인물이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가 될 수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다. 그의 지지율이 50%를 넘는다고 연일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으니 논리상으로는 유권자 2명중 한명은 이명박을 지지한다는 말인데, 과연 그럴까?

이명박 후보는 일반 국민들의 평균 수준에 비해 아주 현저하게 낮은 도덕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살아왔던 삶의 궤적도 전혀 본받을만한 것이 없는 인물이다. 게다가 그는 열손가락으로도 제대로 다 셀 수 없는 수많은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장본인 아닌가. 그렇다면 이명박 후보는 왜 가장 유력한 후보로 자리매김되었을까?

이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언론의 대국민사기극”이다. 적어도 우리나라 언론의 8할 이상이 “깜”도 안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다. 물론 그 선봉에는 “조중동”이라는 수구 신문들이 있는 것이고.

이명박의 셀 수 없는 비리 의혹이 나올 때마다 이들 수구 신문들은 그것을 덮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신정아, 변양균 이야기가 두달이 넘도록 신문들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것도 사실은 이명박 의혹을 감추기 위한 전술 중 하나이다.

신문들이 또하나 이용한 방법은 “여론조사”를 이용한 대세론 만들기이다. 여론조사라는 것이 얼핏 보면 과학적인 방법 같지만, 실상 알고 보면 그렇지 않은 구석이 너무 많다. 당장 응답률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1000명을 조사하기 위해 여론조사 업체들은 적게는 5000명에서 10000명의 사람들과 접촉한다. 응답률이 채 20%도 안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업체들이라면 응답률이 30%가 되지 않는 결과는 신뢰도가 너무 낮기 때문에 발표하지 않지만, 우리나라 업체와 언론들은 그렇지 않다.

한국 갤럽이라는 여론조사 기관의 전 회장이 이명박 캠프의 상임고문으로 간 것만 보더라도 이명박 캠프와 여론조사 기관들이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부풀려진 결과가 언론에 연일 대서특필되면서 언론들은 대세론을 만들어 나가고, 별 고민없는 국민들은 그려러니 하면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 순환 과정을 통해 이명박은 가장 유력한 후보로 변신하는 것이다.

여기에 또 나름대로 조연급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검찰과 선관위가 바로 그들이다. 검찰은 이명박의 도곡동 땅 문제를 수사해 놓고도 그 결과를 제대로 발표하지 않았다. 그 땅이 이명박 형의 소유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라는 아주 검찰답지 않은 온순한 모습을 보였다. 신정아에게 한 것의 단 10분의 1이라도 했으면 그 땅 주인은 벌써 밝혀지고도 남았다. 이것이 대한민국 검찰의 모습이다.

또 선관위는 어떤가. 대통령에게는 선거법 위반했다고 대들면서 이명박에 대한 나쁜 이야기만 나오면 선거법 위반이라고 네티즌들을 협박하고 다닌다. 신문 기사에 나온 이야기만을 모아 놓아도 삭제하라며 얼른다.

이런 노력들이 모여서 지금 이명박의 높은 지지율이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이명박의 지지율은 우리나라에서 방귀 꽤나 뀐다는 주류세력들이 만들어 놓은 결과다. 정말 이들은 방귀는 대단한것 같다. 저렇게 형편없는 사람을 지지율 50%짜리 유력 대선 후보로 만들 정도니까.

그들의 시나리오에는 딱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바로 이명박이라는 인물 그 자체다.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들어가면 주위의 모든 주류 세력들은 이명박의 지지율을 올리려고 혈안이 되겠지만 정작 본인 스스로 자기의 지지율을 까먹게 되어 있다. 어지간한 사람을 후보로 만들었으면 (예를들면 이회창 정도되는) 정권교체는 그야말로 받아 놓은 밥상인데, 이명박은 생방송 토론 3번으로 50%의 지지율을 거의 다 까먹을 사람이다. 이것이 권력을 다시 잡고자 하는 대한민국 주류세력들의 딜레마다.

이해찬이 신당의 대선주자가 된다면 이명박이 대통령 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만약 정동영이나 손학규가 신당의 후보가 된다면 이명박은 상대적으로 쉬운 싸움을 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대한민국은 김영삼을 넘어서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갖게 될 것이다.

신은 참으로 공평한 것인가. 신은 우리나라에 노무현이라는 걸출한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내려주셨지만, 사람들은 그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고마워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신은 우리나라에 최악의 대통령을 주실지도 모를 일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인 예수도 2000년전 유대땅에 나셨지만 유대인들은 아직도 그를 인정하지 않고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싸우고 있다. 신은 어느 백성에게나 기회를 주지만 결국 선택은 인간의 몫이다. 어리석은 백성들은 고난 속에서 살게 되어 있다. 나는 그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파시즘이 나타났다” 진보 양치기들의 딱지붙이기 놀이

“파시즘이 나타났다” 진보 양치기들의 딱지붙이기 놀이

2002년 월드컵 때 수백만 국민들이 광장으로 나왔다. 붉은 옷을 입고 “대한민국”을 외치며 응원을 했다. 대표팀은 월드컵 사상 첫 승을 거두고 내친 김에 4강까지 올랐다. 국민들은 환호했고, 기뻐했으며, 행복했다. 아마 그 때만큼은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축구는 축구일 뿐이다. 수백만의 국민들이 떼지어 응원하는 것을 아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진보 양치기들은 말했다. “파시즘의 징후가 보인다”고.

황우석 때도 그랬지만 이번 심형래의 “디 워” 논란에도 진보 양치기들은 딱지를 붙인다. 비판막는 건 파시즘 진중권을 내버려 두라고. 네티즌의 집단 항의에 대해 진보 양치기들은 언제부턴인가 편리한 딱지를 준비했다. 자신들의 의견과 맞지 않으면 그냥 네티즌들은 파시스트가 되어 버린다.

딱지붙이기 놀이의 원조는 원래 극우 수구세력 아니었나. 지금도 내가 쓴 몇몇 글 (특히 노무현을 옹호하는 글)에는 여지없이 “빨갱이” 또는 “북조선에서 사주받았냐”라는 댓글이 붙는다. 극우들의 50년 전통이 아직도 살아있는 것이다. 21세기 인터넷 시대에는 진보 양치기들의 네티즌들에게 “파시스트” 딱지를 붙인다. 이쪽 저쪽의 딱지로 인해 나는 “빨갱이”가 되기도 하고, “파시스트”가 되기고 한다. 웃기지 않은가.

도대체 누가 진중권의 입을 막았는가. 도대체 어떤 네티즌이 영화 주류들의 입을 막았단 말인가. 자기 하고 싶은 얘기들 다 하지 않았나. 이제 그들의 말과 글에 대해 네티즌도 한마디씩 하면 안되나? 그들의 의견이 무슨 “성역”이라도 된단 말인가.

지금 상황은 이런 것이다. 심형래라는 아이가 “SF 괴수 영화 만들기”라는 과목 시험에서 맨날 20~30점을 받아오다가 6년의 노력 끝에 40점 짜리 결과를 내 논 것이다. 이송희일이나 진중권이나 영화 평론가들은 “디 워”는 낙제이기 때문에 비평할 가치도 없는 “쓰레기”라는 것이고, 네티즌들은 “10점”이 어디냐, 정말 열심히 했구나 격려해 주는 것이다. 왜? 그동안 심형래가 10점을 높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기 때문에. 그리고 심형래가 “우리 자식”이기 때문에.

심형래의 1차 목표는 미루어 짐작컨테 “정말 제대로 된 괴수 한 번 만들어 보자” 이것 아니었을까? 맨날 괴수 인형입고 땀 삘삘 흘리며, 넘어져 가며 찍은 조악한 공룡이나 괴수가 아니고, 정말 헐리우드 영화같은 “괴수” 같은 “괴수” 그런 것 한 번 해보고 싶다고 소박한 꿈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심형래는 그 꿈을 이루었다.

정말 우리나라 영화계 주류들이 제대로 된 사람들이라면 심형래의 성취를 올바로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 심형래가 제작과 CG기술에 대해 이룬 성과를 시나리오 잘 쓰는 작가와 연출력이 좋은 감독과 결합시켜 한층 발전된 SF영화를 내 놓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봉준호나 박찬욱이 감독하고 심형래가 제작하면 안되는 건가? 심형래의 영화가 40점 짜리 밖에 안되기 때문에 비평조차 할 가치가 없다며 매장시킬 필요가 있는 것인가?

이 영화 이미 400만이 보았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볼 지 모른다. 당신들의 논리대로라면 비평할 가치도 없는 쓰레기 영화를 본 몇 백만의 관객들은 도대체 뭐가 될까. 왜 영화계 어렵다고 찌질대면서 정작 영화를 봐 주는 네티즌과 관객들을 “적”으로 만드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스크린 쿼터만 지켜지면 된다는 건지.

하나 더. 논쟁을 할 때 논리 못지 않게 중요한 건 논쟁하는 사람들의 태도다. 진중권은 40점 짜리 쓰레기 영화를 쓰레기라 얘기하는 것에 아무 문제 없다며 쓰레기 영화 한 편에 “사회가 미쳤다”라는 극언도 서슴지 않는다. 정말 좋은 논객이 되려면 논리도 정연해야 하지만 그 표현도 절제되고 정중해야 한다. 진중권이나 이송희일 같은 태도로 논쟁에 임하면 결국은 논점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왜? 우리들은 기계가 아니고 인간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빨갱이” 딱지로 50년간 시달렸다. 이제 대한민국 네티즌들은 진보 양치기로부터 “파시스트” 딱지를 부여받게 되었다. 딱지 붙이기 편리하지만 참으로 위험한 것이다. 왜 네티즌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진보 양치기들은 스스로 되돌아보기 바란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했고,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했다. 세상이 진보들의 논리로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그들도 알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들의 “겸손”한 주장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