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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2008년

눈을 맞으며 눈물 흘리다

눈을 맞으며 눈물 흘리다

절규하지는 않더라도 가슴이 더 아려올 때가 있다. 분노하지 않더라도 가슴이 더 먹먹할 때가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참으로 착한 사람들 뿐인데, 이런 사람들만 있으면 세상은 그래도 살아볼만한 곳일 것 같은데, 그것은 불행하게도 순진한 사람들의 착각일 뿐이다.

2008년은 탐욕에 찌들은 자들이 마음껏 본색을 드러낸 한해였다. 부끄러워하지도 미안해하지도 않은 것은 물론이었다. 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눈과 귀를 막지 않고는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모든 것은 뒤죽박죽이었고, 아무런 계획도 없었고, 오직 한줌도 안되는 무리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우왕좌왕이었다.

새천년에 되불러져온 야만은 그전의 것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원치 않는 자들에게 알지도 못한 채 당한 폭력의 세월을 뒤로 하고, 이제는 스스로의 손으로 선출한 권력에 모든 것을 알고도 당하는 무자비함은 차라리 개그의 한장면이라 하는 것이 속편할 일일지도 모른다.

성탄절이 다가와도 그 흔한 캐롤 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어느 누구도 예전에 누리던 그 연말연시의 들뜸을 누리지 못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성탄 전야에도 개조차 컹컹거리며 뛰어다니지 못한다. 모든 것은 경제 논리와 자본의 논리로 치환되었고, 사람들은 하나씩 둘씩 잘려나갔다.

그 흔하디 흔하게 얘기하던 희망이라는 덕담 한마디도 이제는 쉽게 내뱉을 수 없는 어둠의 시간들. 이런 시간을 이런 노래라도 듣지 못한다면 차마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어느 문닫은 상점
길게 늘어진 카페트
갑자기 내게 말을 거네

난 중동의 소녀
방 안에 갇힌 14살
하루 1달라를 버는

난 푸른 빛 커피
향을 자세히 맡으니
익숙한 땀, 흙의 냄새

난 아프리카의 신
열매의 주인
땅의 주인

문득, 어제 산 외투
내 가슴팍에 기대
눈물 흘리며 하소연하네
내 말 좀 들어달라고

난 사람이었네
공장 속에서 이 옷이 되어 팔려왔지만

난 사람이었네
어느날 문득 이 옷이 되어 팔려왔지만

자본이라는 이름에
세계라는 이름에
정의라는 이름에
개발이라는 이름에
세련된 너의 폭력
세련된 너의 착취
세련된 너의 전쟁
세련된 너의 파괴

붉게 화려한 루비
벌거벗은 조명이 되어
돌처럼 굳은 손을 내밀며
내 빈 가슴 좀 보라고

난 심장이었네
탄광 속에서 반지가 되어 팔려왔지만

난 심장이었네
어느날 문득 반지가 되어 팔려왔지만

난 사람이었네
사람이었네
사람이었네
사람이었네

난 사람이었네
사람이었네
사람이었네
사람이었네

난 사람이었네
사람이었네
사람이었네
사람이었네

<루시드 폴, “사람이었네”>

게으른 블로거의 2007년

게으른 블로거의 2007년

며칠째 겨울비가 내려 쌓인 눈을 모두 녹였다. 나를 비롯한 인간들이 싸질러놓은 오물로 어머니 대지는 확실히 더워지고 있다. 나 같이 없이 사는 사람들한테 따뜻한 겨울은 축복일 수 있겠으나, 이것을 온전히 달가워할 수만은 없는 슬픈 겨울이다.

2007년 한해가 간다. 시간의 연속성으로만 본다면야 오늘 뜨는 해와 내일 뜨는 해가 다르지 않겠지만, 그 시간을 마디마디 끊어서 새로운 숫자를 부여하는 인간들의 행위는 나름대로 의미를 가진다. 그렇게라도 해야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자기 삶의 궤적을 돌아볼 것이 아닌가.

7년만의 귀환이었다. 객지를 떠돌다 돌아온 나에게 한반도는 적당히 낯설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안식처를 제공하였다. 지난 7년 동안 심신이 피로하였으나, 2007년은 그 피로를 어느 정도 덜 수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고, 개인적인 성취와 보람도 있었으며, 늘 그렇듯 부끄러운 모습도 있었다. 올해도 나는 운이 좋았다.

처음으로 블로거로서 온전한 한해를 보낸 나는 이제 갓 초보 딱지를 뗀 운전자의 모습이었다. 돌아보면 내 주장의 과잉에 종종 얼굴이 붉어지는 경우도 있었고, 좀 더 따뜻한 글들을 많이 써볼껄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2007년 순간순간의 내 모습이었기에, 훗날 이 글들을 되돌아보면서 2007년을 추억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만으로도 이 블로그는 참으로 게으른 나에게 의미가 있다.

보잘 것 없는 글에 이름모를 많은 분들의 성원이 있었다. 그분들의 댓글로 이 블로그는 숨을 쉴 수 있었다. 밀실에 유폐되지 않은 채 광장과 나름대로 소통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이 블로그를 찾아와서 글을 읽어주고 댓글을 남겨주신 분들의 관심 덕분이었다.

2008년이 더 나은 한 해가 될지는 알 수 없다. (지금으로봐선 그렇지 않을 확률이 더 높아 보인다. 때문에) 감히 “더 행복하세요”라고 빈말이라도 기원할 자신이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새해인사 한마디에 인색해서는 안될 것이다.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십시오. 살아보니 건강만큼 소중한 것이 없더이다. 몸도 건강하고 그리고 생각도 건강한 그런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견뎌야할 시간들이 우리들이 예상한 것보다 쉽게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