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미국의 노무현이 될까

오바마, 미국의 노무현이 될까

지금 개표가 한창이지만, 버락 오바마가 제44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은 미국 정치사뿐만 아니라 세계 정치사에 있어서 상당한 의미를 갖는 사건이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에서 비주류 그것도 흑인대통령이 탄생했다는 것은 변화와 개혁을 열망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에 충분한 일이라 말할 수 있다.

물론, 좌파의 입장에서야 오바마의 당선이 미국의 극빈층이나 흑인들의 삶에 근본적인 변화를 주지 못한다고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김대중이나 노무현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적어도 오바마는 최소한의 양심과 상식을 가지고 정책을 펴나갈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인물이다. 그는 최소한 부도덕한 이라크전 같은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고, 의료 개혁을 실시해 국민 건강 보험을 도입하려 할 것이며, 양극화를 줄이려 노력할 것이다. 그런 노력들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그런 방향으로 정책을 밀고 갈 것이다.

미국 경제 위기가 없었다면, 오바마의 당선이 그리 낙관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백인이 아직 대다수인 미국 사회에서 흑인이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불가능한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지난 8년간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를 말아드신 역사상 최악의 미국대통령 부시와 네오콘 때문이었다. 오바마는 부시의 삽질로 인해 어렵지않게 대통령이 되었지만, 부시가 망쳐놓은 경제를 수습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아무튼 비주류가 권력의 최고 정점인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라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참으로 역사적인 일이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미국보다도 훨씬 전인 2002년도에 노무현이라는 비주류 정치인의 당선을 경험했었다. 노무현의 당선은 우리나라 현대 정치사에 가장 획기적인 사건이었고,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훌륭한 대통령이 되었다.

오바마는 정치적으로 노무현보다도 훨씬 좋은 환경에서 대통령직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의회 상하원 모두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고, 주지사 선거에서도 민주당이 앞서고 있으니 정치적으로 민주당이 다수인 상황에서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바마의 성공은 집권 초기에 얼마나 강력한 개혁 프로그램을 성공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원칙과 상식을 가지고, 민중의 편에 선다면 노무현이 성공한 것처럼, 오바마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다시 한국이다. 미국이 지난 8년간의 과오를 씻기 위해 미국의 노무현인 오바마를 당선시켰다면, 우리는 이제 한국의 오바마를 찾아야 한다. 지난 8개월간 그래왔듯이, 리만 브라더스의 삽질은 계속될 것이고, 그들이 임기를 채울 수 있을지도 의심되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희망을 찾아야한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정치 노선과 정책 방향도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 않게 후보의 매력도 중요하다. 노무현이 이길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오바마가 이길 수 있었던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정말 매력적인 후보였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도 한국의 오바마를 찾아야 한다. 지금부터 우리는 준비해야 한다. 누가 한국의 오바마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오바마의 당선을 축하하며, 그가 존경받는 미국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버락 오바마

문제는 여전히 탐욕이다

문제는 여전히 탐욕이다

20세기의 위대한 영혼 간디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Earth provides enough to satisfy every man’s need, but not every man’s greed.

자연은 모든 인간의 “필요”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지만, 모든 인간의 “탐욕”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라는 이 간결한 말은 지금 우리가 처한 경제 위기가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결국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세계화된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는 끝없는 탐욕의 추구에 있다. 문제의 근본 원인이 간단하게 진단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다수의 인간들은 그 탐욕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청빈하고 간소하게 사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들뿐만 아니라 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행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규범이라 할 것이다. 나는 지금 시작되는 이 경제 위기 속에서 인간들이 삶의 방법을 보다 현명하게 배워나가기를 바란다. 지능이 있는 생명체라면 그렇게 진화해야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이런 피눈물나는 대가를 치루고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다.

인간들은 신과 자연 앞에 겸손해야하며, 욕망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하고,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모든 종교가 인간들에게 주는 가르침이다.

https://i0.wp.com/www.languageinindia.com/dec2002/gandhi1.jpg?w=640

어머니를 사로잡은 남자

어머니를 사로잡은 남자

지난 여름 은퇴를 하신 어머니는 이미 환갑을 넘기셨지만, 아직까지도 마음 가득히 동심을 품고 계신다. 그동안 고생도 많이 하셨지만, 아직 육십대라고 하기엔 너무 젊고 건강하시다. 말없이 보여주신 어머니의 삶은 내가 평생 보고 배워야할 내 인생의 교과서 같은 것이었다. 그러고보면 나는 참 운이 좋은 녀석이다. 정말 좋은 어머니를 만났고, 정말 좋은 아내를 만났으며, 정말 예쁘고 사랑스러운 딸을 만났으니 말이다. 지난 주말 어머니는 뜬금없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왜 젊은 애들이 연예인을 보고 ‘오빠’, ‘오빠’ 하면서 난리치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어머니도 드디어 오빠부대에 합류를 하신 것이다. 도대체 나이 육십을 넘긴 할머니 – 물론, 어머니는 할머니라고 불리기엔 너무 젊으시다 – 를 사로잡은 녀석이 누구란 말인가? 그는 연기자 김명민이었다. 어머니는 그를 처음 본 것이 “불멸의 이순신” 때였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니의 표현에 따르면, 진짜 이순신보다도 더 이순신 같이 연기를 했다는 그 배우. 어머니는 김명민이 나오는 드라마를 거의 다 봤다고 하셨다. 하얀거탑의 장준혁을 거쳐 요즘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베토벤 바이러스”까지 그의 연기는 어머니 말씀마따나 더할나위 없이 무르익고 있었다.
꿈? 그게 어떻게 니 꿈이야? 움직이질 않는데. 그건 별이지. 하늘에 떠 있는, 가질 수도 없는, 시도조차 못하는, 쳐다만 봐야 하는 별! 누가 지금 황당무계 별나라 얘기하재? 니가 뭔갈 해야 될 거 아냐? 조금이라도 부딪치고, 애를 쓰고, 하다 못해 계획이라도 세워봐야 거기에 니 냄새든 색깔이든 발라지는 거 아냐? 그래야 니 꿈이다 말할 수 있는 거지. 아무거나 갖다 붙이면 다 니 꿈이야? 그렇게 쉬운 거면, 의사, 박사, 변호사, 판사 몽땅 다 갖다 니 꿈하지 왜? 꿈을 이루라는 소리가 아냐. 꾸기라도 해 보라는 거야. 사실 이런얘기 다 필요없어. 내가 무슨 상관 있겠어. 평생 괴로워할 건 넌데. 난 이정도 밖에 안되는 놈이구나, 꿈도 없구나, 꾸지도 못했구나, 삶에 잡아 먹혔구나. 평생 살면서 니 머리나 쥐어 뜯어봐.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지휘’? 단발마의 비명 정도 지르고 죽던지 말던지
어머니를 사로잡은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는 지금 나에게 “꿈”이란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꿈이란 그냥 하늘에 있는 별이 아니라고. 무언가를 해야 그것이 나의 꿈이 될 수 있다고. 그렇다면 나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강마에. 너는 나의 어머니를 사로잡을만한 녀석임을 인정한다.
딸에게 권하는 책들

딸에게 권하는 책들

초등학교 2학년이 된 딸아이가 세상에 대해 조금씩 알기 시작했다. 친구들도 많이 생기고, 학교도 재미있고, 이제는 숙제도 스스로 알아서 한다. 셈을 하고, 보고 싶은 책을 알아서 도서관에서 빌려온다. 박경리의 토지가 오세영의 그림으로 다시 탄생했는데, 그것을 빌려와서 읽기도 했다. 무슨 얘기인지 아느냐 물었더니 잘 모른다고 했다. 딸아이는 만화책을 참 좋아한다.

딸아이가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으례 그렇듯이 두가지다. 하나는 참으로 대견하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참으로 아쉽다는 것. 아이가 어른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없지만, 그 푸릇푸릇하고 착한 마음을 간직하면서 좀 더 행복하고 희망찬 세계를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딸아이가 자라면서 꼭 읽었으면 하는 책들을 정리한다. 물론, 특별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책들은 나의 주관적인 기준에 의해 선택된 것이고, 내 인생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책들이다. 딸아이가 자라면서 여기 적혀있는 책들을 읽는다면, 그의 삶이 조금은 더 풍요롭게 될 것이라 믿는다.

이 목록들은 계속 늘어날 것인데, 몇 권이나 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순서는 큰 의미가 없다. 그냥 생각나는대로 적는 것이니 말이다.

  • 신약성경 (특히, 4복음서)
  • 장자
  • 도덕경
  • 법구경
  • 숫타니파타
  • 반야심경
  • 논어
  • 월든
  • 채근담
  • 티벳 사자의 서
  • 간디 자서전 (The Story of My Experiments With Truth)
  • 스콧 니어링 자서전 (The Making of a Radical)
  • 크로포트킨 자서전 (Memoirs of a Revolutionist)
  • 조화로운 삶 (The Good Life)
  • 전태일 평전
  •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 우리들의 하느님
  •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 어린 왕자 (Le Petit Prince)
  • 예언자 (The Prophet)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무소유
  • 작은 것이 아릅답다 (Small is Beautiful)
  • 시민 불복종 (Civil Disobedience)
  • 간디의 물레
  • 부자의 그림일기
그러거나 말거나

그러거나 말거나

세상이 나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해서, 내가 세상에 집착한다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려 놓고 급전 300억 달러를 빌릴 수 있게 되었다고 환호작약하는 저들에게 해줄 얘기는 아무것도 없다. 한나라당이 1%만을 위한 정당인 줄 알면서도 선거만 있으면 한나라당을 찍어대는 국민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거나 말거나.

민주당은 우리의 대안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희망도 패기도 정열도 용기도 없다. 그냥 리만 브라더스와 한나라당에 질질 끌려다니는 무기력만 가득할 뿐이다. 비전도 없고, 대안도 없고, 그저 떡고물이나 쫓아다니는 궁물들과 386 떨거지들이 모여있는 노회한 정당일 뿐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사라진 정당에는 적막만 감돈다.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제대로된 정치 세력, 정당이 없다는 것이다. 수십 만의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서도 그것을 정치적 힘으로 묶어낼 세력이 없다. 아무리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깽판을 쳐도 4년 후에 그들을 딛고 일어설 세력이 있다면 그나마 위안이 될 수도 있을텐데 우리에겐 그것이 없다. 희망이 없다는 것만큼 견디기 힘든 것도 없다. 새로운 정당이 생겨야 할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것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될 수 있으면 당분간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침묵하고 싶다. 지쳤다. 아니 저들의 탐욕에 질려버렸다. 저들의 탐욕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은 당분간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 탐욕의 극한에서 그 탐욕에 의해 저들이 쓰러질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탐욕은 죄다. 그 죄의 댓가를 모두가 질 것이다. 같은 하늘을 이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그러거나 말거나.

단풍이 아름답다. 떨어지는 낙엽 사이로 가을은 깊어간다. 바람이 살랑거리고, 햇살이 따사롭다. 인간의 탐욕만 외면해버리면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 아직도 자연의 품은 그렇게 넉넉하다. 밥 굶지 않고, 내 몸뚱이로 노동을 감당할 수 있을만큼 건강하다면 행복할 것이다. 이 나라에서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사치인 것 같다.

그러거나 말거나.

피폐해지는 블로그

피폐해지는 블로그

“티벳 사자의 서”의 저자 파드마삼바바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의 과거 삶을 알고 싶으면 현재 그대의 행동을 들여다보아라. 그대의 앞날을 알고 싶으면 현재 그대의 행동을 들여다보아라.

블로그의 글들이 점점 피폐해진다. 비난과 비판과 비아냥으로 가득 차 있는 글들은 내가 써놓은 것이긴 하지만 참으로 읽기 민망하다. 증오와 분노가 영혼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달라이 라마의 가르침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분노한다. 인간들의 역사가 파렴치하고 탐욕적인 자들의 농간으로 끊임없이 더럽혀져 왔다는 사실에 나는 절망한다.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려야 했고, 간디는 암살당했다. 달라이 라마는 정치적 망명을 떠나야 했으며, 김구도 저들의 총탄에 세상을 떠났다.

왜 역사는 이리도 부조리하단 말인가? 왜 사필귀정은 영화 속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왜 가난한 자들은 늘 그렇게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가? 왜 정의로운 자들은 늘 그렇게 탄압을 받아야 하는가? 수천 년 전 예수와 부처가 고민한 문제들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인간이란 구원받을 수 없는 절망적인 존재들이란 말인가?

블로그 글들이 피폐해지는 만큼 내 영혼도 피폐해진다. 파드마삼바바의 말처럼 현재 나의 모습은 과거와 미래의 나의 모습일 것인데, 나는 그 사실이 두렵다.

따뜻하고 소박한 글들을 쓰고 싶다. 하지만 이런 바람은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원하는 것만큼이나 공허해 보인다. 그런 나의 무기력이 슬프고, 비루하고 처참한 세상이 슬프다.

어떻게 살 것인가.

경제 위기를 절대 극복할 수 없는 이유

경제 위기를 절대 극복할 수 없는 이유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의 저자 짐 콜린스는 위대한 기업의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사람”을 꼽았다. 짐 콜린스가 5년간 그 엄청난 연구를 통해 밝혀낸 것은 위대한 기업들은 겸손하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야말로 제대로 된 인물들을 리더로 삼았고, 그 리더들은 제대로 된 사람들을 고용하여 기업을 성공시켰다는 사실이다. 그야말로 상식 중의 상식 아닌가. 기업뿐만 아니라 어느 조직이든지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경제 위기가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 위기를 절대로 극복할 수 없다. 이명박과 강만수, 그 유명한 리만 브라더스가 저렇게 버티고 있는 한 말이다. 도대체 전과 14범의 사기꾼을 대통령으로 뽑아놓고 경제를 살려내라고 아우성치는 국민들의 사고방식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그들 대부분도 조중동을 비롯한 독사의 새끼들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이긴 하지만.

이번 경제 위기의 진원지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 부시는 지난 8년 동안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말아먹었다. 미국 대통령 부시와 FRB 의장이었던 그린스펀이 현 금융 위기를 몰고 온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부시가 그런 사실을 알고는 있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미국은 다음달 선거를 통해 오바마라는 인물을 새 대통령으로 뽑을 것 같다. 때문에 우리나라만큼 상황이 암울하지는 않다.

미국발 경제 위기를 피해갈 수는 없었겠지만, 리만 브라더스는 이 사태를 계속 악화시키고 있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가래로도 아니 포클레인으로도 막을 수 없는 지경에 몰리고 있다. 조중동은 국민들을 속여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들었지만, 시장은 조중동에게 속지 않는다. 시장은 이명박과 강만수를 절대 믿지 않는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끊임없이 주식을 팔 것이고, 채권도 팔 것이고, 어떻게 해서든 한국 시장에서 발을 뺄 것이다.

증권사 직원들의 자살이 보도되기 시작했다. 이런 위기가 지속되면 기업들이 망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수많은 실업자들이 쏟아지게 될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97년 IMF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많이 어렵고 힘들었지만, 그때는 그나마 준비된 대통령 김대중이 있었기에 1~2년 만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지금은? 임기 8개월 만에 나라를 말아먹은 리만 브라더스를 앞으로 4년 4개월이나 보고 있어야 하는 한국은 그야말로 처참한 지경이다.

리만 브라더스를 사퇴시키고 제대로 된 사람을 새 지도자로 뽑지 않는 한,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다. 이렇게 당하고도 4년 4개월 후에 또 박근혜 타령을 해댄다면 정말 답이 없는 민족이 될 것이다. 그들을 사퇴시킬 수 없다면, 4년 4개월 이를 악물고 견디는 수밖에 없다. 지난 8개월은 연습이었고, 본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일 테니.

위기의 바닥을 알고 싶은가? 리만 브라더스의 사퇴까지가 바닥이라고 보면 된다.

“달러모으기 운동”의 조건

“달러모으기 운동”의 조건

“잃어버린 10년을 찾아서…”

(써놓고 보니 무슨 소설 제목도 아니고) 어찌되었든 잃어버린 10년을 찾아서 한시도 쉬지않고 매진하는 리만 브라더스(이명박 & 강만수)와 한나라당, 그리고 조중동의 노고를 치하한다. 오늘 환율과 주가가 크로스되는, 일명 리만 크로스를 연출하느라 얼마나 밤잠을 설쳤겠는가. 지난 봄부터 말이지.

조금만 있으면 거의 10년 전의 한국으로 완전히 되돌아갈 것이다. 예상보다도 아주 빠르게 말이다. 환율은 거의 2000원을 넘나들고, 주식을 가볍게 1000선 아래로 내려가 주는 바로 그런 10년 전의 모습. 우리 국민들에게 아주 익숙한 그런 모습. 우리 국민들이 10년 전의 우리나라에 지독한 향수가 있었나보다. 그 향수를 즐기기 위해 다시 한 번 피눈물을 흘리게 생겼으니 어찌하면 좋을까.

미국에서부터 시작된 이번 금융위기는 적어도 우리나라를 피해가지는 않을 것이다. 왜? 우리나라는 리만 브라더스가 있지 않은가. 현대건설, BBK, 그리고 서울시까지 가는 곳마다 부도와 파탄을 몰고 다녔던 이명박과 외환위기 초래의 달인 강만수. 이 두 사람이 있는 한 우리나라는 위기를 피할 길이 없다. 한 나라에서 같은 인물이 두 번씩이나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네스북이 알면 얼마나 놀랄 것인가.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 이명박의 당선은 결국 대한민국의 파탄이 될 것이라는 예상은 슬프게도 적중하고야 말았다. 결국 쓰레기 언론과 한줌도 안되는 수구세력(친일과 독재의 후예)들을 제거하지 못한 그 업보를 이렇게 다시 한 번 받게 되었다.

이제서야 뭔가를 깨달은 듯한 한나라당의 몇몇 의원이란 작자들이 “달러모으기 운동”을 시작하자며 국민들의 염장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 지점에서 나는 이런 작자들이 도대체 무얼 먹고 사는지 궁금해진다. 어떤 사고를 하길래 저런 염장 만땅의 생각이 나올 수 있는지 의학적으로도 연구해 볼 가치가 있어 보인다. 아무튼 한나라당도 10년전 금모으기 운동으로 외환위기를 나름대로 극복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다. 역시 그들에게 국민은 봉이다.

나도 지갑에 100달러 짜리 지폐가 있기는 하다. 오늘도 환율이 50원이 올라, 앉은 자리에서 5000원을 벌었다. (리만 브라더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나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만족되면, 내 지갑에 있는 100달러를 기꺼이 기부하며 달러모으기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이다.

  1. 리만 브라더스의 사퇴
  2. 조중동 폐간
  3. 한나라당 해산
  4. 뉴라이트 해체 (A2 님의 제안으로부터)

이 정도 조건이면 국민들도 지난 번 금모으기 때처럼 기꺼이는 아니겠지만 달러모으기에 나서지 않겠는가.

어차피 리만 브라더스와 조중동, 그리고 한나라당이 지금처럼 정권을 잡고 있는 한, 위기를 피할 수는 없다.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즐겨야 될까? 아니 내 생각에는 우리나라, 우리 국민들이 밑바닥까지 철저히 깨져야 된다. 다시는 이런 아픔과 고통을 잊지 못하도록 뼈속 깊이 아니 국민들의 유전자에 새겨야 된다. 그래야만 저런 무리들이 권력을 다시 잡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이번 위기 속으로 들어가며 우리 국민들이 건질 수 있는 유일한 몫이다. 참으로 안타깝고 통탄스럽지만, 그 길 밖에는 없는 것 같다. 그런 기나긴 절망 속에서 다시 희망의 싹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최진실 죽음의 진실(?)

최진실 죽음의 진실(?)

최진실의 자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최진실을 좋아했든, 좋아하지 않았든 수많은 국민들이 어리둥절하고 당황한 것은 사실이다. 대다수 언론들은 연일 그의 죽음을 팔기에 바쁘고, 인터넷을 눈엣가시처럼 생각하는 수구 정치 집단들은 ‘최진실법’을 만들겠다고 아우성이다. 쓰레기 언론들과 수구들이 지목한 범인은 ‘인터넷 악플’이란다. 또한, 진보라고 하는 이들도 최진실 죽음에 대해 강만수가 비판받아야 한다며 일갈했다. 다들 한 여인의 자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에 여념이 없다. 참으로 인간에 대한 그리고 고인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조차 없는 인간들이다.

그렇다면 최진실은 왜 갑자기 자살을 했을까? 경찰은 충동적인 자살이라고 결론지었다. 사랑하는 두 아이까지 둔 엄마가 왜 자살 충동을 이기지 못했을까? 정말 인터넷에서 나뒹구는 쓰레기 같은 댓글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이들까지 남기고 자살을 했을까? 자기가 사채업자라고 매도당했다 해서 그것이 억울해서 죽었을까? 그렇게 억척스럽고 똑순이 같았던 여자가, 삶의 그 많은 굴곡을 견디며 살았던 그가 이 정도의 난관을 왜 견디지 못했을까?

최진실의 죽음을 ‘인터넷 악플’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인간들은 최진실을 가장 모독하는 짓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물론, 알고도 그런다면 더 나쁜 인간들이겠지만.) 최진실이 쓰레기 악플 때문에 세상을 등질 그럴 사람이 아니다. 차리리 그 엉뚱한 소문을 퍼뜨린 자들을 찾아 법의 심판을 받게 하면 했지, 그런 사소한 일에 자신의 목숨을 버릴만한 무책임한 사람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두 아이가 있지 않은가?

경찰의 결론, 즉 충동적 자살이라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인다는 가정에서 출발하면, 최진실은 죽고 싶은 충동을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최진실이 죽었던 그 순간, 그는 이성을 잃었다는 얘기다. 어쩔 수 없었다는 얘기다. 자기의 이성으로 제어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왜 그랬을까?

나는 그의 우울증에 주목한다. 경찰에 따르면, 최근 6개월동안 그는 신경안정제의 복용을 늘려왔다고 한다.

최진실이 우울증을 앓았다고 하던데?
“모친에 따르면 이혼 후 몇년간 우울증으로 신경안정제를 복용해왔다고 하는데, 최근 6개월간 복용량이 조금씩 늘어났다고 하더라.”

<경찰 “최진실, 우울증으로 최근 신경안정제 복용량 늘여”>

그렇다면 신경안정제의 원리가 무엇일까? 신경안정제는 인위적으로 세로토닌이라는 물질을 증가시켜 안정을 취하게 해준다. 세로토닌은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호르몬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신경안정제들이 세로토닌은 증가시켜 주지만, 지나친 세로토닌의 증가로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을 감소시킨다는데 있다. 도파민은 행복을 느끼게하는 호르몬이다. 때문에 최근의 한 연구보고에 따르면 신경안정제의 장기 복용은 오히려 우울증이나 자살충동을 높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Many depressed patients do not improve with 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 (SSRI) Antidepressants, such as Prozac, Paxil or Zoloft. Prozac and Paxil only increase serotonin and norepinephrine activity. When serotonin is increased above normal levels with medication, the brain downregulates dopamine production. Dopamine downregulation explains why some patients become suicidal on “antidepressants.”

<Antidepressants Can Increase Depression, Impulsivity and Suicide Risk by Decreasing Dopamine, Reuters>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세로토닌이 정상적인 수준보다 (인위적으로) 높게 되면, 인간의 뇌는 도파민의 생산을 줄여버린다. 이 때문에 신경안정제를 복용하는 환자들이 오히려 자살 충동을 이기지 못할 수 있다. 최진실은 이혼 이후 복용하던 신경안정제의 양을 최근 6개월동안 지속적으로 늘려왔다. 더군다나 사건 당일에는 촬영 후에 속이 상해 술을 많이 마신 것으로 나타났다. 신경안정제를 장기 복용하는 환자가 지나친 알코올을 섭취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약효가 지나치게 증폭될 수 있다. 지나치게 높은 수준의 세로토닌 증가로 도파민의 수준이 너무 낮아졌고, 최진실은 자신의 자살충동을 이성으로 제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최근 몇 년간 자살을 했던 여자 연예인들을 보면, 대부분 공통적으로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그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있었다.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한 약의 복용이 오히려 자살 충동을 억제할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이들의 죽음은 ‘신경안정제’의 과다복용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전에도 얘기했듯이, 우울증을 치료하는 약들이 그리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이성으로 제어할 수 없는 자살충동까지 불러일으킨다면, 이런 약들에 대한 처방과 복용은 정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광우병 위험이 제기될 때, 과학을 들이밀던 인간들이 지금 최진실의 자살에 대해서는 ‘최진실법’을 운운하며 인터넷 통제를 하려 하고 있다. 이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고인의 죽음까지도 이용하는 그런 인간들이다. 정말 귀신은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왜 엉뚱한 사람들만 데려가는가.

배우는 사람이 아니다?

배우는 사람이 아니다?

영화판에서 잔뼈가 굵은 한 제작자는 배우(俳優)라는 말을 풀어쓰면서, 한자로 배우를 나타내는 배(俳)는 사람인(人)과 아닐비(非)가 합쳐진 낱말로 “배우는 사람이 아니지만 아주 뛰어난 사람”이라는 엉뚱한 정의를 내렸다. 그는 이어서 배우들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주로 의존한 삶을 살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에 비해 감수성이 아주 예민할 뿐더러 때로는 즉자적이고, 때로는 엇나간 모습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배우들은 영화나 연극 혹은 TV 연속극에서 늘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서의 연기를 해야 하는 직업을 가졌기에 때로는 진짜 자기가 누구인지 헷갈릴 때도 있을 것이다. 진짜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은 자기를 버리고 실제로 감독이나 연출자의 지휘에 몸을 맡겨버린다. 그리고, 그 작품을 촬영하는 동안에는 자기가 아닌 그 작품 속의 인물로 살아간다고 한다. 영화 밀양에서 신애를 연기한 전도연이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 작품이 끝나고도 본래의 자기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실제로 주홍글씨 촬영을 마친 이은주는 자살했다. 물론, 그 죽음이 영화 때문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에서 나오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배우든, 가수든 우리가 흔히 속된 말로 “딴따라”라고 부르는 광대들은 그들의 예술과 창작으로 관객들을 즐겁게 그리고 행복하게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들의 삶은 순탄치 않다. 아니 행복하고 바른 광대들은 더이상 광대라고 부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생의 밑바닥까지 부딪혀 보지 않고는, 그 쓰디쓴 인생의 절망을 맛보지 않고는 제대로된 광대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그들의 천형이라면 천형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길을 간다.

한때 이 시대 최고의 우상이었던 최진실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배우로서, 연기자로서, 그리고 광고모델로서 꽤나 성공한 축에 들지만 그의 삶은 순탄치만은 않았던 것 같다. 견뎌야했던 것들과 견딜 수 없던 것들 속에서 그는 수없이 방황했을 것이고, 그 롤러코스터 같은 삶의 끝은 그에게 너무도 갑자기 그리고 어이없게 닥쳐버렸을 것이다. 슬픔은 엄마를 그렇게 보내버린 두 아이의 몫으로 오롯이 남아버렸다. 그에게 주어진 삶이 그만큼이라는데 누굴 탓할 것인가.

최진실의 죽음은 그가 너무 유명한 스타이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지만, 실제 우리나라에서는 하루에 35명이 넘는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있다. 삶은 유명 배우에게도, 생활고에 시달리는 서민들에게도, 돈이 너무 많아 주체할 수 없는 재벌 회장에게도 그렇게 견디기 힘들고 팍팍한 것임을, 그리하여 붓다는 삶은 고(苦)라고 말씀하셨는지도 모른다.

비루하고, 고통스럽고, 쓸쓸하지만, 삶은 또 그렇게 지속된다. 스스로 세상을 등질 수 밖에 없었던 모든 이들의 명복을 빈다. 다음 생은 부디 편안하기를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다 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