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어머니의 젖가슴을 만지며

늙은 어머니의 젖가슴을 만지며

내가 철이 들기 시작한 것은 아마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다. 어머니의 노동과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 그때부터 나는 비로소 인간이라는 범주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어머니가 될 수 없는 사내들의 열등감을 깨달았다. 그것은 신이 사내들에게 내린 형벌이었다.

내가 고통과 절망 속에서 방황할 때도 어머니의 가슴은 늘 한결같았다. 따스함. 언제나처럼 그 가슴은 나에게 안도와 위로를 주었다. 나는 정말로 좋은 아들이고 싶었지만 그것은 부질없는 욕심이었고, 어머니는 그 존재로서 사랑이었다. 감히 헤아릴 수 없는.

만약 혁명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무기가 있다면 그것은 성경 말씀이나 맑스의 유물론이 아닌 바로 어머니의 따스한 가슴일 것이다.

늙은 어머니의 젖가슴을 만지며 비가 온다
어머니의 늙은 젖꼭지를 만지며 바람이 분다
비는 하루 종일 그쳤다가 절벽 위에 희디흰 뿌리를 내리고
바람은 평생 동안 불다가 드디어 풀잎 위에 고요히 절벽을 올려놓는다
나는 배고픈 달팽이처럼 느리게 어머니 젖가슴 위로 기어올라가 운다
사랑은 언제나 어머니를 천만번 죽이는 것과 같이 고통스러웠으나
때로는 실패한 사랑도 아름다움을 남긴다
사랑에 실패한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늙은 젖가슴
장마비에 떠내려간 무덤 같은 젖꽃판에 얼굴을 묻고
나는 오늘 단 하루만이라도 포기하고 싶다
뿌리에 흐르는 빗소리가 되어
절벽 위에 부는 바람이 되어
나 자신의 적인 나 자신을
나 자신의 증오인 나 자신을
용서하고 싶다

<정호승, 늙은 어머니의 젖가슴을 만지며>

원천적으로 어머니가 될 수 없는 남자들이 느끼는 사랑은 불완전하고 공허하다. 그리하여 나는 어머니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세상의 모든 것을 녹여낼 수 있는 그 넓고 따스한 가슴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

생신 축하드립니다, 어머니. 아! 나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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