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인간에 대한 예의다

문제는 인간에 대한 예의다

심형래 감독의 “디 워(D’ War)”가 연일 화제다. 나는 영화를 아직 보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 자체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미루어 짐작컨대 이 영화가 아주 작품성이 뛰어난 건 아닌 것 같다. 심형래 감독이 그것을 의도한 것도 아니었을 것이고, 관객들도 작품성을 기대하고 영화를 보러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영화평론가들의 혹평 속에서 (물론 그들의 호평을 기대하지도 않았겠지만), 많은 블로거들과 네티즌들은 한 때 최고 코미디언이었던 영화 감독 심형래에게 열광하고 있다. 아니 열광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의 집념이 일구어낸 결과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이 정도면 돈 주고 봐도 아깝지 않다고.”

그렇다면 왜 많은 블로거들과 네티즌들이 심형래를 옹호할까? 정말 관객들이 영화의 작품성을 평가하는 눈이 형편없기 때문에? 이송희일 감독의 말마따나 애국애족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비상식적인 벌거숭이 꼬마들이기 때문에? (사실 나는 이송희일 감독의 영화를 본적이 없지만, 영화 감독이 관객들에게 “평론가들에게 악다구니를 쓰는 벌거숭이 꼬마”라고 지칭하는 것은 관객 모독이고 상식을 벗어나는 자살 행위이다.)

영화 평가는 평론가들이나 감독의 몫이 아니다. 물론 그들도 나름대로 자기의 의견을 피력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관객들이 평가를 하는 것이다. 이송희일을 비롯한 감독들과 많은 영화평론가(영화판 주류)들이 범한 실수 중 하나는 관객들을 가르치려 한다는 것이다. 정말 “디 워”를 보러 간 사람들이 예술적 작품성을 보고자 간 것일까? 관객들은 심형래의 영화에서 칸의 황금종려상을 원한 것이 아니다.

관객을 가르치려는 자들의 태도에서 우리는 “겸손”이라는 단어는 눈을 씻고 찾아 볼래야 찾아 볼 수 없다. 이송희일 감독을 비롯한 이들은 심형래를 타자화한다. 같은 영화인의 범주에 놓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신물나도록 보아왔던 비주류에 대한 주류 계층의 공격이다. 아직까지도 (대학을 못 나온)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는 이 땅의 기득권 주류들, 황우석이 의사였으면 그렇게 매몰차게 매장되었을까. 마찬가지로 심형래도 영화판에서 오래 굴렀지만 영화판의 주류들은 심형래를 같은 영화인으로 보지 않는다. 이송희일 같은 영화 감독의 태도에서 나는 소위 진보 좌파들의 교만을 본다. 자기들만의 주장이 옳고 우월하다는 그들의 독선을 본다.

관객들이 심형래의 영화에 호응하는 이유는 그의 삶의 궤적을 알기 때문이다. 그가 “디 워”를 만들기 위해 지난 십 수년 동안 쏟은 땀과 눈물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보여 준 초기작과 “디 워” 사이의 그 간격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심형래의 성취가 호응을 받을만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관객들이 단지 애국 마케팅에 휘둘려 심형래의 영화를 보는 것이라 한다면 그건 우리나라 관객들의 수준을 너무 얕잡아 보는 것이다.

“영화를 영화로만 평가하자”는 영화판 주류들은 아직도 “스크린 쿼터” 사수를 주장한다. 심형래의 영화는 영화 그 자체로만 평가되어야 하고, 자신들의 영화는 “문화 제국주의”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는 그들의 이중성을 관객들이 감내하기란 쉽지 않다. 자신들의 영화는 정치, 경제, 문화의 논리로 보호되어야 한다면서 심형래의 아리랑 삽입에 대해서는 애국 마케팅이라 비하한다. 이런 상황을 네티즌들이 그냥 지나치기란 정말 쉽지 않다.

영화판 주류들은 심형래라는 인간에 대한 기본 예의조차 지키지 않았다. 영화의 최종 소비자이자 평가자인 관객들을 서슴없이 모독했다. 늘 그들이 마지막에 보이는 카드는 인간에 대한 “비아냥”이다. 과정과 결과로 정정당당하게 평가받을 수 없는 찌질이들의 마지막 자위 수단은 비아냥과 건방짐 뿐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간과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바보 전략’은 바보 아닌 것들을 비난하며, 서로를 바보, 바보 애정스럽게 부르다가 끝내는 정말 바보가 되어 선거함에 투표 용지를 몰아 넣거나 친절하게 호주머니를 털어 티켓값으로 교환해주는 바보 놀이, 즉 아주 수완 좋은 훌륭한 마케팅이라는 것이다.

[이송희일, 막가파식으로 심형래를 옹호하는 분들에게?]

어떤 관객들이 심형래의 영화를 막가파식으로 옹호한단 말인가. 심형래의 인생 궤적과 작금의 성취는 많은 관객들의 옹호를 받을만 하니 받는 것이다. 심형래를 시기할 것이 아니라 심형래보다도 더 훌륭한 삶의 자세와 더 멋진 영화로 당신들도 관객의 평가를 받는 것이 맞는 것 아닌가.

심형래의 영화가 작품성이 좀 떨어질지는 몰라도 심형래는 적어도 관객들을 비아냥대지 않았고 모독하지 않았다. 그것이 심형래에게서 영화판의 주류들이 배워야 할 첫번 째 덕목이다.

먼저 인간에 대한 예의부터 배우고 갖추길 바란다. 그 다음에 영화를 논하자.

10 thoughts on “문제는 인간에 대한 예의다

  1. 연일 디워얘기가 나와도.. 지인의 글 외엔 보지 않았는데, “음 이거 내용 좋겠군.” 해서 들어와보니 soyoyoo 님 글이군요. 정곡을 찌르는 말씀, 잘 읽고 갑니다.

  2. 글 잘 읽었습니다. 다만 단지 이송희일 감독이 그런 발언을 했다는 것 만으로 심형래 감독이 고 말할 수 있는지 궁금하네요. 거기다가 에 영화 평론가들이 들어가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대다수의 영화 평론가들이 디-워에 대해 편향적인 시각으로 평가하였다는 증거가 있나요?

  3. 문제의 시작은 이송 감독이 아니죠. 시발점은 정식 개봉(8월 1일) 전으로 거슬러갑니다. 기자시사회라는 걸 통해서 디워를 먼저 본 기자나 평론가들이 대부분 디워에 호의적인 평을 내놓지 않았죠. 여기에 ‘디워 적극 옹호자’들(이분들은 시사회를 본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보기 전일 걸요)이 평론가들에게 입에 담기도 힘든 인신 공격을 하면서부터에요. 그 댓글 본 적 있으세요? 예의는 거기서부터 따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디워 적극 옹호자들의 이런 행위를 가만 보고 있진 않았겠죠. 여기서 진흙탕 싸움이 시작됩니다. 이송 감독의 발언은 굉장히 과격하지만 디워 옹호자들의 댓글 공격에 비하면 아주 양반입니다. (아..그렇다고 이송 감독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은 안되지만..)
    http://ozzyz.egloos.com/3299988
    http://blog.cine21.com/yaroslav/56849 등등 여기뿐만이 아니라 각종 영화 전문 사이트도 한번 찾아보세요.
    문제는 디워가 재미 있고 없고가 아니에요. 어차피 어떤 영화든지 재미의 유무는 개인마다 다 다를 테니..
    근데 재미 있다고 글쓴 사람보다 재미 없다고 글쓴 사람에게 악성댓글이 훨씬 많이 달리는 건 사실이에요.
    이것도 여기 저기 돌아다녀 보면 금방 알 수 있지요.

    그리고 혹시 이 글 전에 디워에 대한 글 쓰지 않았나요? (내가 잘못 봤나? 평이 꽤 안 좋았던 걸로 아는데..)
    혹시 ‘모 정치인 팬클럽’이나 포탈사이트 ‘다음’블로그에서 활동하는 정치성향이 비슷한 분이 공격?당한다고 이런 글 쓴 건 아니죠?

  4.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춰야 할 대상과 순서가 조금 뒤바뀐 듯 합니다. 트랙백 거는 위치가 안 보여서 댓글 주소 남기고 갑니다.

  5. 댓글 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네티즌들의 댓글은 작용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입니다. 심형래의 영화를 비판했다고 네티즌들이 떼로 달려 들어 악성 댓글을 남기지는 않습니다. 네티즌들은 그 비판이 어떤 비판이냐를 가려낼 줄 아는 민감한 후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형래의 인생을 건 영화에 “300억 짜리 루즈”, “1억원 짜리 떡볶이” 운운하는 것은 그냥 “심형래의 영화는 영화가 아니고 쓰레기야”라는 얘기지요. 영화 감독으로서의 심형래에 대한 애정, 아니 인간 심형래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 없는 것입니다. 심형래가 지난 20여년 동안 보여 준 열정과 노력을 그냥 쓰레기통에 처박는 것입니다. 이것이 충무로의 주류 영화인들, 영화평론가들, 기자들의 자세지요.

    네티즌들은 심형래의 영화 인생에 일말의 애정을 보인 겁니다. 부족하지만, 이런 정도라도 정말 훌륭한 성과다, 내가 돈 내고 봐 줄께, 다음 영화는 더 멋지게 만들어 달라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뭔가 다르지 않나요?

    주류들이 드러내는 특권 의식에 네티즌들은 댓글로써 반응합니다. 물론 개념없는 악성 댓글 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네티즌들의 반응과 인식이 어느 방향으로 쏠렸다는 얘기는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상식’의 판결이 났다는 것입니다.

    저는 네티즌들의 집단 지성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보인 건전한 상식을 믿습니다. 심형래의 영화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대다수 네티즌의 공격을 받았다면 왜 받았는지 자신을 되돌아 볼 일입니다.

    부루스 님의 댓글 중 마지막 문단은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군요. 저는 ‘디 워’에 대한 글을 이 전에는 쓴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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