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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4대강

잔인한 겨울

잔인한 겨울

흐르는 강이 막혀 버리자, 땅은 기운을 잃고 병들어 갔다. 살을 에는 바람이 불고 눈이 쏟아져 겨울은 깊어 갔지만, 엄동설한에도 역병이 창궐했다. 구제역과 조류독감이 돌아 죄없는 짐승들만 산 채로 땅에 묻혔다. 인간들은 그런 것을 살처분이라 불렀다.

굴삭기의 삽질 아래 강은 신음하다 죽었고, 헤아릴 수 없는 뭇 생명들이 스러졌다. 수백만 마리의 소와 돼지 그리고 닭, 오리들이 살처분됐다. 잔인한 겨울이었다.

2011년 새해가 시작되었지만, 으례 하는 인사로도 “희망찬 새해”라 말할 수 없었다. 이 땅의 모든 생명들이 신음했고, 비명을 지르며 아우성쳤다.

한무리의 족속들만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인간들도 고달프기는 마찬가지였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뛰었고, 전세난으로 집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오래 전에 잊혀진 줄 알았던 전쟁의 고통까지 되풀이되었다. 제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모든 것은 예견된 것이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예견된 저주였고, 그 저주는 인간들의 탐욕과 어리석음, 그리고 무관심이 불러 온 것이었다.

올 한해 냉정하게 지켜볼 작정이다. 인간들의 탐욕과 어리석음의 끝이 어디일지 그리고 그 탐욕과 어리석음의 댓가가 어떤 것인지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망자를 쉽게 욕보이는 방법 1

망자를 쉽게 욕보이는 방법 1

망자에 대한 예의라는 말이 있다.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생전의 관계가 어떠하든 예의를 차리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는 것이다.

법정 스님이 어제 입적하자마자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자가 이런 식으로 논평을 했다.

법정 스님의 저서 <조화로운 삶>에 대해 이 대통령이 “산중에 생활하며 느끼는 소소한 감성과 깊은 사색을 편안한 언어로 써 쉽게 읽히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고 말한 추천의 사유도 소개했다.

이어 김 대변인은 “대통령이 해외 출장이나 순방갈 때, 휴가 떠날 때 법정 스님 수필집을 지니고 갔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한 핵심 참모는 “이 대통령과 법정 스님의 철학이 비슷하다”면서 그 비슷한 점을 “소박한 삶과 중도”라고 밝혔다.

<청와대 “이대통령과 법정스님 ´중도´ 철학 비슷”, 데일리안>

내가 알기로 법정 스님은 <조화로운 삶>이란 책을 쓴 적이 없다.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이 쓴 <조화로운 삶>을 읽은 적은 있지만, 법정 스님의 <조화로운 삶>은 없다. 도대체 이명박이 읽었다는 책은 도무지 무엇이란 말인가. 법정 스님의 저서가 조화로운 삶이라는 출판사를 통해 나온 적은 있다. 그렇다면 이명박은 책은 안읽고 출판사만 읽었단 말인가.

이명박이 즐겨 읽는 책이 법정 스님의 <무소유>란 말을 듣고 기겁을 하며 웃은 적이 있다. 그럴 수도 있다. 이명박이 법정 스님의 책을 좋아한 것이 나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법정 스님의 책은 그의 인생에 아무런 영향을 못준 것 같다.

이거야 청와대 대변인의 하찮은 실수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뒤의 청와대 핵심 참모라는 자의 말은 더욱 가관이다. 이명박과 법정 스님의 철학이 비슷하다면서 그것을 “소박한 삶과 중도”라고 말했다. 갑자기 개그맨 안영미의 말이 생각났다. “얘네들 미친 거 아냐~~.”

입적하신 스님을 욕보여도 이렇게 욕을 보일 수 있을까. 스님이 돌아가시기 직전에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반대했다고 이런 식으로 욕을 보인다 말인가. 어떻게 이명박의 철학과 법정 스님의 철학이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당신들의 상상력이 부럽기만 하다.

법정 스님은 한반도 대운하(지금의 4대강 죽이기) 사업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연을 수단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생명의 근원으로서 하나의 생명체로서 바라봐야 한다. 자연은 인간과 격리된 별개의 세계가 아니다. 크게 보면 우주 자체가 커다란 생명체이며, 자연은 생명체의 본질이다. 우리는 그 자연의 일부분이며, 커다란 우주 생명체의 한 부분이다. 이 사실을 안다면 자연을 함부로 망가뜨릴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사업으로 은밀히 추진되고 있는 한반도 대운하 계획은 이 땅의 무수한 생명체로 이루어진 생태계를 크게 위협하고 파괴하려는 끔찍한 재앙이다.

<중략>

강은, 살아 있는 강은 굽이굽이마다 자연스럽게 흘러야 한다. 이런 강을 직선으로 만들고 깊은 웅덩이를 파서 물을 흐르지 못하도록 채워 놓고 강변에 콘크리트 제방을 쌓아 놓으면 그것은 살아 있는 강이 아니다. 갈수록 빈번해지는 국지성 호우는 토막 난 각 수로의 범람을 일으켜 홍수 피해를 가중시킬 것이 뻔하다.

대통령 공약사업 홍보물의 그럴듯한 그림으로 지역주민들을 속여 엉뚱한 환상을 불어 일으키고 있다. 개발 욕구에 불을 붙여 국론을 분열시키면서 이 사업을 추진하려는 것은 지극히 부도덕한 처사이다.

일찍이 없었던 이런 무모한 국책사업이 이 땅에서 이루어진다면 커다란 재앙이 될 것이다. 이런 일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다면 우리는 이 정권과 함께 우리 국토에 대해서 씻을 수 없는 범죄자가 될 것이다.

<법정 스님, 한반도 대운하 안된다>

법정 스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한반도 대운하, 즉 4대강 죽이기 사업은 이 땅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끔찍한 재앙이고, 지극히 부도덕한 처사이며, 이것을 막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는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라고.

온 국민의 80%가 반대하는 사업을 눈 하나 꿈쩍 하지 않고 진행하는 자들이 법정 스님과 철학이 비슷하다고? 그것도 아직 장례를 치르지 않은 스님의 법구 앞에서 할 말인가? 그러고도 당신들이 과연 인간의 탈을 썼다고 할 수 있는가?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못하는 자들이여, 이제 더 이상 법정 스님의 맑은 정신을 욕보이지 마라.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저문 강에 삽을 씻고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 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 바닥 썩는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
흐르는 강은 슬픔을 위로하고 노동을 어루만졌다. 스스로 깊어가는 강에 삽을 씻으며 절망으로부터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담배 한 대 피우며 흐르는 강으로부터 위안을 얻었다해도 고단한 삶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자연과 하나되면서 노동의 피로를 잊을 수 있었고 슬픔을 씻을 수 있었다. 이제 강은 아무도 위로해주지 못할 것이다. 수많은 삽과 포크레인이 강을 짓이길 것이며, 수십개의 댐은 강물을 가두어 버릴 것이다. 강변은 콘크리트로 뒤덮일 것이고, 그 위에 썰렁한 자전거 도로만이 덩그러니 놓여질 것이다. 강은 인간의 탐욕으로 그렇게 질식해 죽어갈 것이다. 강이 죽어갈수록 인간들의 병은 깊어질 것이다. 자연은 더 이상 인간을 위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정희성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 같은 아름다운 시는 더 이상 불려지지 않을 것이다. 자연은 그들의 탐욕을 저주할 것이며, 나도 그들의 탐욕을 저주할 것이다. 출처 : “진짜 강변 걸어봐요, 4대강사업 하고픈가” – 오마이뉴스 이 아름다운 강변의 갈대를 어찌한단 말인가.
정운찬, 씁쓸한 인생

정운찬, 씁쓸한 인생

황석영의 경우에는 변절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도 있겠다. 한국의 대표하는 저항 문인이었고, 남북을 이어보겠다는 일념으로 월북을 감행하기도 하여 오랜 기간 옥고를 치루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이명박과 손을 잡고 중도 어쩌구 할 때에는 참담했다. 어찌 황석영이 이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해보았고, 칠십에 가까운 그의 “황구라” 인생이 그렇게 스러지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다.

정운찬에 이르러서는 아무런 정서적 반발감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건 변절이 아닌 회귀이거나 자연스러운 드러냄이었기 때문이다. 정운찬의 삶이 한나라당과 이명박의 지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가 말로는 이명박 정권을 몇 번 비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그의 인생을 통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는 그저 깔끔한 이미지의 주류였다.

작년 12월에 그는 대규모 토목사업을 반대한다는 강연을 한 적이 있다.

뉴딜은 제도를 바꾸고 효율성을 높이는 데 역점을 둔 것이지 대규모 토목공사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뉴딜한다고 잠수돼 있던 대운하가 나올까 걱정이다. 경제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맞지 않는 대운하 사업에 들어갈 돈은 장기적 연구와 개발 등 소프트파워 신장에 써야 한다.

<2008년 12월 10일 뉴욕 초청 강연 중에서>

그의 말은 불과 1년도 안되어 이렇게 바뀐다.

“대운하에 대해선 반대입장 분명히 했다. 환경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대운하가 우선순위에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러나 4대강은 수질개선과 관련 있기 때문에 쉽게 반대하기 어렵다. 청계천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친환경적으로 만들고 4대강 주변에 중소도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반대할 의사 없다.”

[“MB경제 비판했지만… 대통령과 생각 비슷 대운하 반대했지만, ‘4대강’ 반대 의사 없다”, 오마이뉴스]

정운찬에게 있어서 4대강은 토목공사가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평생 학자로 지냈던 사람의 권력욕이 정치인 못지 않다.

정운찬과 같은 학과에 근무하고 있는 이준구 교수는 4대강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지금 정부가 내놓고 있는 4대강 정비사업은 별 경제적 효과 없이 환경을 대규모로 파괴할 잠재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대운하사업과 단 한 치의 차이도 없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정부가 이제는 우리 강을 살리기 위해 그 사업을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정부가 무슨 말을 하든 간에 4대강 정비사업이 주변 환경과 생태계에 대운하 사업 이상의 피해를 가져올 것은 너무나도 뻔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다.

[이준구, 전혀 반갑지 않은 대운하 포기 선언]

서울대 경제학과에 근무했던 유명한 두 명의 경제학자가 같은 대규모 토목사업에 대해 전혀 상반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국무총리라는 감투를 받고 자신의 입장을 180도 바꾸었다. 과연 누구의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어떤 이들은 정운찬의 입각에 대해 여러 해설을 곁드리기도 하지만, 별 의미없어 보인다. 그저 이명박의 일회용 얼굴 마담일 뿐이다. 지금 황석영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면 답이 나온다.

살만큼 산 사람들이 자기 인생을 이렇게 망가뜨리는 것을 보면 그저 “씁쓸”할 뿐이다.